죽음의 역설법 · 마루14화 — 14.

CHAPTER 14

14.

죽음의 역설법 · 약 12분 분량 · 2026.10.04

작가의 말

상해, 살인, 식인 요소 등이 등장하며, 묘사가 자세한 편입니다.

미쳤지, 미친 짓이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애초에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증오했으면서,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 왜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는데 괴로워하고 있는 걸까. 오래도록 그리워해서? 아직, 마음의 덩어리가 남아 그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한심하다. 돌을 맞아도 할 말이 없다.


뻔뻔하게 관리국에 돌아와 들어간 곳은, 물품관리반의 작은 연구실. 아멘티스에게 시체를 전달했던 그 공간이었다. 나는 그때와 같이 시체를 내려놓았다. 아직도 느껴진다. 이건 미친 짓이라고,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마땅히 알고 있지만, 이대로 떠나보낼 수 없었다.


루반의 팔을 살폈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 사이로 연하게 혈관이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째어낸 피부는 갈라지며 근육을 드러냈고 깊게 쑤셔 벗겨내자 신경과 정맥, 동맥이 복잡하게 엉켜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피가 마를 때까지 바닥에 흘렀다. 날에도, 내 손에도 피가 튀겼지만, 아랑곳 않았다. 정맥을 짓눌러 끊어냈다. 힘을 줘 짓이기면 뜯겨 나갔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 근육과 기타 신경을 찢었다. 피가 걷잡을 수 없이 튀고 흘렀다. 그 선혈이, 동그랗게 바닥을 덮어나가는 그 혈이, 마치 우리의 추억과도 같았다. 손에 힘이 빠졌고, 날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철이 바닥에 두어 번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열었다. 서랍의 위치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앰풀이 그대로 있었다. 1급 발암물질이라던 포름알데히드. 앰풀을 꺼내 주사기에 들이부었다. 주사기 내부에 깔끔하게 흘려 넣을 수 없었다. 주사기를 지탱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약액은 주사기에 반, 바닥에 반 흘렀다. 그렇게 반이 약액으로 채워진 주사기를 들어 동맥에 찔러넣었다. 멍하게, 그대로 계속, 그 상태로 있다가, 또 힘이 빠져 주사기를 떨어뜨렸다. 이런 짓을 내가 왜 하는 걸까. 죽고 싶어졌다. 고요한 공간 안에 나만 남았다. 눈물이 계속해서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흥건한 피 위로 떨어져 그 티가 나지 않았다. 손을 뻗어 만신창이가 된 팔을 집어 들었다. 피부는 벗겨졌고, 근육은 뜯겨 있었으며, 신경과 정맥, 동맥 모두 끊기고 터져 피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제 몸의 피가 다 떨어져 나간 듯, 그 속도가 느렸다.


손가락 끝을 입에 물었다. 이에 조금만 힘을 줬을 뿐인데, 쉽게 뼈가 으득, 하며 부러졌다. 약간 짠 맛과 부드러운 맛의 살점이 입안을 감돌고, 실수로 들어간 머리카락과 같은 혈관, 철 맛의 혈액, 딱딱하고 맛없는 뼈는 뱉어냈다. 예상외로 간단했다. 살점은 이미 삼켜 넘긴 지 오래고, 거부감은 없었다. 오히려 중독성이 강했다. 손가락 끝까지 씹어 넘기고 나서부터는, 망설임이 없었다. 너무도 간단했다. 두렵고, 역겹고, 징그럽고, 못할 짓이 아니었다. 그저 음식을 먹듯, 오늘의 저녁 식사를 즐기듯 한 입 한 입 식도를 넘어갔다. 부드러워 식감이 좋으며, 맛은 짭짤했다. 어릴 적 입술에 피가 나면 혀로 금세 빨아 먹었는데, 그때의 맛을 여러 번, 많이 느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가득한 철분의 맛. 식욕을 돋우는 아름다운 붉은 색. 선혈의 향기, 선혈의 맛, 그 아름다움. 멈출 수 없었다. 처음엔 단순 호기심과 욕구에 의했다면, 정말 맛있었기 때문에, 먹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지방은 부족했지만, 처음 느껴보는 맛에 뒤따라오는 낮은 기대치를 넘기에는 충분했다. 계속, 계속해서, 으득, 츄욱, 찍.


어느새 그의 오른팔은 반의반도 남지 않게 되었다. 바닥엔 조각난 뼈와 그 위로 피가 범벅이었으며, 초반에 흘린 피들은 이미 말라 바닥에 눌어붙어 있었다. 분명 내 입가에도 살점과 피가 가득할 것이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만히, 오래도록, 느리게 스캔하듯, 살폈다. 그리고 소리 내 웃었다. 똑같아졌다. 너와 나의 모습. 그리고, 나와 괴물의 모습이.


그의 배 위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이런 적 처음이야. 아마 대부분이 겪는 흔한 경험은 아니겠지. 근데 괴물들은 이런 걸 자주 겪었겠지? 네가 만약 괴물한테 먹혔다면 지금쯤 뼈밖에 남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난 이 시간까지 팔 하나 먹었잖아. 왜 그런지 알아? 맛을 느끼며 먹고 싶었거든. 이 부위는 맛이 어떠하고 식감이 어떠한지, 조금씩 음미하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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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다.


“나, 내가 그렇게 끔찍하게 여겼던 괴물이 되어가나 봐. 전에도 한 번 사람을 먹은 적 있었어. 하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평온하지 않았어. 곧바로 화장실에 달려가 다 토했거든. 너 때문이잖아, 알아? 너 때문에 처음 먹어버렸다고. 근데...”


아깐 거부감이 없었어. 뒷말은 머릿속으로 이어간 뒤 잠시 숨을 골랐다.


“최악이야. 더는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어. 한 사람을 잃었고, 그 사람을 되찾고 싶어서 떠난 곳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더 잃었어. 너 때문이야. 네가 나한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았어. 그 중엔, 너도 있어.”


루반의 왼손을 잡았다. 엄지손가락으로 손바닥을 쓸었다. 너무도 차가웠다.


“정확히 따지자면 내 책임이긴 하지. 아버지도, 시릴도, 너도, 다 나 때문에 잃은 거잖아. 그렇지?”


숨을 골랐다.


“내가 죽일 놈이네. 내가 죽어야 되네. 너 말고 내가 죽었어야 했어. 죽어야 될 놈은 네가 아니라 나여야 했어.”


그 말만 여러 번 반복해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내 감정을 무어라 규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너무도 슬펐고, 너무도 화가 났고, 죄책감이 강하게 들었다는 것이다. 너를 너무 미워했던 것도, 너를 너무 사랑했던 것도 나였음을.


“나 아직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해.”


울음을 멈추고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맞아, 네가 돌을 던지고 있었어. 계곡을 향해서.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비싸 보이는 얼굴을 한 채로 말이야. 주변에 아무도 없어 보였어. 넌 그런 모순적인 모습이었지. 그런 네가 위험해 보였던 것도 맞아. 하지만 동시에, 네가 너무 궁금했어.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 그리고, 나도, 네가 마음에 들었어.”


루반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널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나 봐. 네가 시릴을 죽여도, 죽은 시릴을 먹게 했음에도, 내 팔을 잘랐음에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사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건 거짓말이 아니야. 확실해.”


루반에게 말했다. 분명 들어주고 있을 것이다. 그 한결같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아니면 고개를 살짝 기울여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것도 아니면 투정을 부리면서 말이다.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문 쪽에서 쿵쿵,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내 문이 열리고 신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신발 소리가 멈추었다. 내 뒤에 누군가 서 있다.


“제가 없는 동안 이런 짓을 하면 어떡해요.”


아멘티스의 목소리다.


“약액도 다 흘리고, 피도 바닥에 다 눌어붙고, 이 시체는 어떻게 처리할 거예요?”


그가 물었다.


“거기 티슈 있으면 좀 전해주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잠시 대답이 없더니, 내가 내민 손 위에 티슈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인사와 함께 나는 내 입 주변을 닦았다. 역시나 피가 검게 묻어나왔다.


“제가 처리할게요. 얘기는 다 들었거든요.”


그가 말했다.


“얘기 말입니까?”


“네, 국장 관련 일 말이에요. 진짜 비상사태 아니에요? 온 층에 비상사태 경보 울려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조용해서 처음엔 아무 일 없는 줄 알았어요.”


그 말에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제가 벌인 난장판을 책임져 주겠다고 하시면, 저야 좋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가요.”


그가 짧게 말했다. 난 그를 가만 바라보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시릴이 준 손수건이다. 그 소중하고, 귀한 손수건. 그 손수건을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거, 여기 묶어주세요.”


난 왼팔의 봉합된 부위 바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 부위 아래를 소매째로 묶고 싶었다.


“전엔 싫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하고 싶어졌어요. 리본 모양으로.”


아멘티스는 말없이 손수건으로 봉합 부위 아래를 소매째로 묶었다. 한 바퀴 돌리고 집어넣어 끝부분을 약하게 잡아당기자, 흔히 아는 평범한 리본 모양이 완성되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곳을 빠져나왔다.




“왜 안 먹어.”


루반의 앞에 접시를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접시를 볼 생각은 하지 않는 듯 보였다.


“맛이 없어?”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부터 오고 싶었던 식당이었는데, 루반은 음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괜히 민망하고 후회가 들었다.


“난 마르타 먹는 것만 봐도 괜찮아.”


루반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넌 사람 무안하게 대체 왜 그러냐.”


“하지만 별로 먹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왜? 맛이 없어?”


“음, 조금...”


루반이 그렇게 말하며 눈을 피했다. 괜히 짜증이 나고, 심술이 났다. 내가 식당에 가자고 할 때 좋다고 따라올 땐 언제고, 막상 오니까 시켜놓고 먹지도 않는지. 음식도 아깝고 돈도 아깝고, 시간까지 아까웠다.


“그럴 거면 나 줘.”


“너 많이 먹어.”


루반이 내 앞으로 자신의 접시를 들이밀었다. 한두 입만 먹고 남긴 흔적이 선하게 보였다. 입에 있던 음식물을 삼키고, 루반이 내민 접시 속 음식을 집어먹자, 루반이 웃었다.


“돼지.”


루반이 멋대로 사진을 찍어갔다.


“그래, 나 돼지니까 먹을 것 좀 사줘라. 맨날 투정만 부리지 말고. 애냐?”


루반이 계속 킥킥거리며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나 이렇게 화내는 돼지 보는 거 처음이야.”


그 어이없는 말에, 순간 할 말을 잃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두어 번 쓸어넘기고 헤쳤다.


“다 먹었다. 이만 가자.”


포크를 내려놓고 말했다.


“내가 놀려서 그만 먹는 거야? 그런 게 어딨어. 더 먹어도 돼.”


“아니, 진심으로 배불러서 그래. 아무리 돼지지만 위장이 여러 개 있지 않거든?”


루반이 그 말을 듣고 소리내어 깔깔 웃었다.


식당을 나온 이후에는, 배를 꺼뜨릴 겸 같이 걸었다. 함께 나란히 걸으며 이것저것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는 모든 순간에 루반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루반은 웃음을 쉽게 잃지 않는 존재였다.


“마르타, 우리 계곡 가자.”


“뭐, 계곡?”


“응, 내가 길을 알아.”


루반은 뜬금없이 제안인 줄 알았던 통보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갔다. 영문도 모르고 루반의 뒤를 바짝 쫓았다. 루반이 향한 곳을 따라 걷고, 걷고, 걸어서 도착한 그 곳은, 정말로 풀이 무성하고 물이 물소리를 맑게 내며 떨어지고 흐르는 곳이었다.


“예쁘네, 근데 여긴 왜,”


내가 말을 끝마치기 이전에, 갑작스레 찬 물이 얼굴에 몇 방울 튀겼다. 할 말을 잃어, 찬 물이 튀긴 쪽 방향을 바라보자, 루반이 당당하게 소매를 걷고 물을 모으고 있었다.


“이러려고 데리고 왔지.”


내가 묻자, 루반은 모은 물을 소중하게 들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


“응.”


루반은 그렇게 대답하며 소중하게 들고 있던 물을 내 쪽으로 힘차게 뿌렸다. 찬 물을 맞고 옷까지 젖은 나는, 그대로 허리를 숙여 물을 모았다.


“후회하지 마라, 루반 벨베도르.”


찬 물이 손에 가득 담겼다. 그 사이 자잘한 물방울들이 얼굴에 튀겼다. 가득 담긴 찬 물을 루반 쪽으로 던졌다. 루반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두 걸음 뒤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보고 깔깔 웃었다.


집에 돌아갈 적에는 옷은 물론 머리카락까지 축축해진 상태였다.


“괜찮아, 걸어가면서 다 말라.”


루반은 그렇게 말하며 또 웃었다. 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미안해, 마르타. 우리 다음엔, 평화로운 곳에서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