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렐로스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무언가 특이 사항은 없었다. 조용할 뿐이다.
“무슨 소리 있었습니까?”
소장이 턱에 손을 대고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제가 확인해 보고 올게요.”
이렐로스가 다짐한 듯이 말하고 어디론가 몸을 돌렸다. 그러자 소장은 급하게 그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자, 잠시, 잠깐만요. 괴물 소리라면 제 관할이니까...”
“아뇨, 사람 발소리였어요.”
이렐로스의 말에 소장은 당황한 듯 멈칫했다.
“이 시간에 또 누군가가 왔다는 말입니까?”
소장의 물음에 이렐로스는 뭐라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한 탓인지 잠시 망설였다.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인물이라면 분명 정부 쪽이다.
“마르타 드레이크.”
12화를 다 읽었어요.
12/15
낮은 중년의 목소리다. 확실히 국장이었다. 무언가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심장이 그러길 거부했다. 당황한 건 소장 쪽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소장은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아까 한 말 명심하라고 일깨우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굴어야 한다.
발걸음 소리가 더 가까워졌고, 국장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긴 코트를 펄럭이며 다가온 국장은 평소보다 표정이 어두웠다.
“연구소까지 섭렵해서 아예 반정부에 몸을 담그려고 했나?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니 웃기군.”
국장은 노골적으로 내 쪽에 다가섰다.
“처음부터 자네 같은 사람이 왜 들어왔는지 모르겠군. 노력?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쏟았던 내 피와 땀을 보고 날 가여이 여겨주세요? 그딴 건 받아주지 않아. 게다가 이제 쓸모없어졌다면 더더욱.”
국장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죠?”
“반정부와 놀아난 것도 모자라 팔 한 쪽까지 없는 주제에 계속 우리에게 빌붙으려 하는 건 욕심이지. 자진해서 퇴사하게.”
무어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반박할 수 없었다. 오류를 지적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무력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다시 닫았다.
“정 쓸모가 생기고 싶다면 괴물이 되어도 좋아. 자네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는 말을 마쳤다. 심장이 미친 듯이 뼈를 부술 듯 뛰었다. 서러웠다. 화가 났다. 지독하게 얽혀버렸다. 모든 일들이, 모든 감정들이. 몸을 오른편으로 잠시 기울였다가, 주먹을 이용해 그의 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세게 올려 쳤다. 다리를 사용해 비틀거리며 몸을 지탱했다. 국장의 얼굴이 붉게 부었다. 그 모습을 보고 픽 웃고 말았다.
“퇴사하죠! 내가 여기에 미련이나 남아있겠습니까. 시릴은 없고 당신만 있는데.”
내 말에 국장은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시릴을 언급한 것이 불쾌한 것 같았다. 그가 시릴을 사랑하긴 했을까. 시릴이 그의 아들로서 살아가긴 했을까. 국장은 참 웃긴 존재였다.
국장은 맞은 부위에 잠시 손을 대고 있다가 내리고는, 몇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올려, 얼굴을 향해 내려쳤다. 막으려 했으나 너무 늦었다. 맞은 쪽의 시야가 흐릿했다. 검은 무언가가 시야를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내부 혈관이 터진 듯 얼굴은 뜨겁고 통증은 심했다. 국장은 그에 그치지 않고, 앞섶을 잡아당겨 제 앞에 고정하고, 다시 손을 올렸다.
“그만!”
이렐로스는 몸을 던져 국장을 밀어냈다. 팔꿈치에 무게가 강하게 실린 듯 작은 체구에도 국장은 떨어져 나갔다.
“그만둬요. 당신은 남에게 폭력을 휘두를 자격이 없어요!”
이렐로스가 소리쳤다. 힘이 실린 확실히 큰 목소리였다.
“반정부...”
밀쳐진 국장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읊조렸다. 코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더니, 허리 뒤쪽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국장의 손에 쥐어진 것은 권총이었다.
“제 발로 내 앞에 굴러와 줬다면 마다할 필요가 없겠군.”
권총이 이렐로스의 이마 쪽에 조준되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이렐로스는 움직이지 않고, 총구와 눈을 마주했다. 피할 생각인 건가. 표정과 달리 그의 손가락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함부로 국장을 막았다가 바로 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정말 국장은 조준만 해둔 채, 가만히 있었다. 우리들 중 누군가라도 움직이는 순간, 그는 바로 총알을 발사할 계획을 해둔 것인지, 국장의 손가락은 방아쇠에 올려져 있었다. 그는 우발적인 사람이 아니다. 충분히 그는 눈앞의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 다음엔, 남은 사람들도 전부.
“전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항상 죽을 각오를 하며 사니까요.”
이렐로스는 그렇게 말했다. 손이 아까보다 더 떨렸다. 국장이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에 힘을 주었고, 거친 총성이 울렸다. 일순간의 정적이었다. 이명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바닥에 주저앉는 소리가 툭, 들렸다. 국장이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목을 부여잡고 컥컥 소리를 내었다. 끊기는 소리만 들릴 뿐 말이 되지 못하고, 말은 피가 된 듯 목에서 피가 몸을 따라 흘렀다. 혼란스러웠다. 국장이 들고 있었던 총이 바닥에 구르고 있었다. 어째서 국장이 이렇게 된 거지? 그는 몇 번 더 고통에 몸부림치더니, 고개를 숙였다.
“국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울린 쪽에, 수장이 서 있었다.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쓴 채, 총으로 쓰러진 국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 대장님.”
이렐로스가 한 번 말을 더듬으며 수장을 불렀다. 수장은 한 번 더 쓰러진 국장의 머리를 조준하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탄 냄새와 함께 총성이 크게 울렸다.
“국장은 죽었어, 이걸로.”
수장은 그렇게 말하며 총을 허리춤에 끼웠다. 또 어두운 공간에 정적이 고였다.
“고마워, 드레이크 군의 데이터 카드.”
수장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내 데이터 카드를 끼운 채 내 쪽을 보고 웃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아 들어 올리더니, 그 위에 데이터 카드를 올려주었다. 얼떨떨한 상태로 받아서 들었다. 괜히 한 번 돌려보았다.
“대장님, 아직 상처가 낫지 않았을 텐데...!”
이렐로스가 당황한 얼굴로 수장에게 다가가 이곳저곳 살폈다. 그의 얼굴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수장은 이렐로스의 모습을 가만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총 쓸 정도는 움직일 수 있으니까.”
수장이 말했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를 보게 된 기분이었다. 죽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멀쩡하게 총까지 쏘며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확실히, 전에는 없던, 오른 눈을 감싸고 있는 저 안대는 총알로부터 살아남았음을 보여주었다.
이렐로스와 잠시 대화하던 수장은 내 쪽을 돌아보았다.
“국장에게 들킨 거야?”
수장이 물었다.
“...네, 알고 있던 것 같습니다.”
“뭐,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우리 탓으로 일이 많이 꼬였네, 그렇지?”
수장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다, 아니다, 대답을 나누지 못하고 잠시 멈칫했다.
“아버지의 일을 알고 싶다고 했지? 우리가 네 뒷조사까지 해가면서 요구했으니까. 정당하게 알려줘야 될 것 같네.”
수장이 말했다. 그리고는 뒤돌아 섰다. 따라오라는 듯 뒤쪽을 향해 손짓을 보였다.
“변이 실험에 아버지가 이용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내 말에 수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 뿐만 알려준다면 정당하지 않으니까.”
수장이 말했다. 소장이 수장보다 앞서가기 위해 걸음 속도를 높이더니, 먼저 가서 아까의 그 문을 열었다.
“드레이크 군. 조금 충격적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것까지 우리가 책임져주지 않아. 진실을 알려줄 때 감정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열린 문 앞에서, 수장이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드레이크 군 외 나머지는 밖에서 기다려.”
수장은 그렇게 말하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국장이 죽은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시릴이 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직도 관리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고, 돌아간다면 시릴이 장난을 치고 있을 것 같았고, 밥은 시릴과 함께 먹고 있을 것 같았고, 가끔 호출이 있으면 국장과 마주 앉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이젠 없다. 긍정적 의미든, 부정적 의미든. 어쨌든 이젠 느낄 수 없고, 내가 슬퍼하든, 기뻐하든. 여하튼 되돌아갈 수 없었다. 순식간에 주변에서 너무도 많은 것이 사라진 탓이다. 처음 시작은 아버지였고, 다음은 루반, 시릴, 팔, 직장. 그리고 나는, 그 어느 것도 돌려받지 못했지만, 그 원인과 경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이 순간만 더하면 되었다. 수장이 만약 정말 아버지의 경로를 자세히 알려준다면, 난 많은 걸 잃었지만 무엇을 잃었고, 왜 잃었고, 어떻게 잃었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아, 찾았다. 여기, 이 글이야.”
수장은 그렇게 말하며 서류 두 장을 내게 건넸다. 하얗고 깔끔했다. 서류를 받아 확인했다.
‘로건 드레이크, 처리반 중급 요원, 변이 실험에 2회 참여, 변이 증상을 보임. 감금 후 경과를 관찰하자, 변이에 완전히 성공.’
그 아래에는 실험 내용과 감금 후 살핀 경과가 표 형태로 정리되어 있었다. 뒷장으로 넘겼다.
‘관리국으로부터 50km 떨어진 외곽에 방생. 주기적으로 행동을 관찰하기로 함. 아래는 관찰 내용을 서술.’
아래에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 곳의 인간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기 시작한 괴물은, 갑자기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후 건물을 한 층씩 돌아다니며 인간을 잡아먹고, 다음 건물로 이동해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거주민과 인근 사람들이 이사하거나 괴물에게 잡아먹히자, 전체적으로 건물은 폐쇄하고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괴물은 그 곳을 떠나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었다.”
가슴이 먹먹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 장을 꺼내 들었다. 이 장은 날짜가 최근이었다.
‘드레이크의 변이된 괴물이 어디선가 미확인 시체를 끌고 와 잡아먹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점점 그 위력은 강해지고, 인간은 부족해지니 타 괴물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처리반의 요원을 불러 해당 괴생명체를 처리하도록 명령하기로 했다. 해당 괴생명체는 폐건물 5층에서 녹슨 가구를 뜯어먹으며 목숨을 부지하고, 가끔 미확인 시체를 가져온다는 특징이 있다.’
“...뭐?”
‘임무를 맡은 요원에 의해 안전하게 처리되었음을 확인했다.’
관리국과 몇십 분 거리, 폐건물, 미확인 시체, 녹슨 가구, 5층. 수장이 내 표정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