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는 어두웠다. 조명 하나 켜져 있지 않았고, 사람은 없는 듯 한적했다. 환기 소리만 울리고, 쿵쿵대는 소리만 희미하게 위층에서 들려오는 그런 공간에, 난 서 있다. 막상 마음을 굳게 먹고 들어섰지만, 처음엔 무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정말 모르겠기에 그랬다기 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탓이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며 안을 걸어 다녔다. 깨진 유리 조각,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 확실히 꼼꼼한 사람이 관리한 것 같지 않았다. 비뚤게 놓인 하얀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푸른 서류꽂이 앞에 몇몇 서류가 펼쳐져 있었다. 함부로 건들었다가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맨 위에 놓여 전면이 다 보이는 부분만 읽어보기로 했다. 이렇게 펼쳐두는 걸 보니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내용은 간략했다. 한 괴물의 이상행동에 대한 연구였다. 여타 괴물과 달리 좀 더 지성이 있는 것 같다고 연구자는 의심을 시작했고, 여러 실험을 진행했다. 그 괴물은 숫자를 알아들을 줄 알았다. 하나의 공을 보여주면, 똑같이 하나의 공을 들었고, 두 개의 공을 보여주면 똑같이 두 공을 들었다. 나중에는 손가락을 세 개 펼치자, 세 공을 드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 외에도 괴물은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고, 언어의 구실을 하는 말을 어쭙잖게 뱉기도 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지만, 연구자는 지성이 있는 괴물은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차후 폐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보고서였기에 정말 폐기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 관심 가는 내용이었다.
서류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쿵쿵 소리와 괴물의 울음소리가 옅게 들렸다. 이 소리 중 무언가는 지성이 있을 수 있다. 보고서 속 괴물 외에도, 몇몇 괴물은 인간의 특징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잡아먹으면 먹을 수록, 인간과 가까워지는 걸까?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어 간다는 걸까? 혹은, 인간이 아닌 것이라는 건.
“당신...”
목소리에 흠칫 놀라 그쪽을 돌아보았다. 루반과 만나기 전 잠깐 봤던, 그 청소에 열중하던 그자였다. 이렐로스, 라고 했던가. 그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왜, 왜 여기 있는 거죠?”
그가 물었다.
“임무가 있어 승인받고 들어왔습니다.”
뻔뻔한 거짓말로 응수했다. 그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런, 가요. 전 소장님이 부르셔서... 먼저 와서 기다리던 중이었어요.”
“소장이 반정부 측 사람을 왜 부르죠?”
“공개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내부 측에서는 가끔 정보를 목적으로 접선하기도 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연구소에는 저 같은 하위 요원이 주로 와요. 수장님은 철저히 세간에 비밀에 부쳐져야 하거든요.”
11화를 다 읽었어요.
11/15
수장. 그러고 보니 분명 루반과 함께 있었는데, 총성 이후로 본 건 루반 뿐이었지. 수장은 확실히 죽은 걸까?
“그때 수장은 어떻게 됐죠?”
내가 물었다. 그는 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쉽게 표정이 드러나는 투명한 사람이다.
“알려드릴 수 없어요. 당신을 신뢰하게 되더라도, 정부 소속인 이상 수장님의 신원과 상황을 자세히 알려드리는 건 안 돼요.”
그는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는 이상 죽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럼 반정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곧 소장이 오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렇겠죠.”
그가 얼버무렸다.
“그를 만나게 되면 제 얘기는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감시 차원에서 온 거라 소장이 누가 감시를 왔는지 알게 되면 방해됩니다. 소장도 그저 누군가 감시를 왔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겁니다.”
그에게 말했다. 즉석에서 굴린 뻔뻔한 거짓말이 먹히길 바라며.
“...그렇게 할게요.”
그는 내 눈을 슬쩍 피하며 대답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이 곳을 세밀하게 조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돌아서서 다른 방으로 가려다가, 어깨에 올라온 손을 느끼고 멈춰 섰다.
“언제부터 정부 요원이 승인 없이 연구소에 드나들 수 있었습니까?”
낮은 목소리였다. 소장이다. 소장과는 만난 적이 한 번 뿐이었지만, 분명 기억이 났다. 뒤를 돌아보자 역시 그가 서 있었다. 폼 잡으며 도둑을 잡은 듯 군 말과는 달리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분명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변명을 해야 자연스럽게 빠져나갈지, 머리가 복잡했다. 이 상태로 얼버무려서 빠져나와봤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다시 돌아갈 것 같았다.
“...오랜만입니다.”
그에게 인사했다. 흐트러진 모습의 그는 잠시 머리카락을 슥슥 정리하더니 고개를 까딱 기울여 끄덕였다.
“뭐, 오랜만인 건 맞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목적으로 온 건지도 알겠고요.”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 목적을 알고 있다고? 순간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당신은 국장이 최근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가 물었다.
“무슨 짓 말입니까.”
내가 또 물었다.
“교도소의 범죄자들과 신원불명 노숙자들의 소유권을 대량 구매했습니다. 암암리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들로 국장이 무엇을 하려는지 아십니까?”
금시초문의 이야기였던 탓에 나는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
“십몇 년 전 관리국의 요원이 대량 실종되었던 사건과 연관 깊은 이야기입니다. 자세히 알려드릴 테니 따라오시죠.”
소장이 몸을 돌려 어디론가 앞서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 이렐로스가 걸었고, 망설이던 나는 그를 결국 따라갔다.
“국장은 그 모든 권한을 우리에게 넘겨주면서 선행을 베푸는 척하지만, 사실 그 책임을 전가하는 중입니다. 후에 그 악행이 밝혀지면, 전적으로 제 탓을 하려는 거죠. 저는 그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복도 끝 벽에 손을 갖다 댔다. 벽이 조각조각 나뉘어 해체되더니, 재조립되며 문이 만들어졌다. 그가 그 문에 다시 한번 손가락 끝을 두어 번 붙였다 떼자, 문이 느리게 열렸다.
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온 벽은 불명의 액체로 가득 찬 수조가 채워져 있으며, 알 수 없는 장치들과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아래엔 각종 기계들과 널브러진 서류들이 펼쳐져 있었다. 초록색의 불명의 액체에 담긴 건 분명, 인간이었다.
“저건...”
이렐로스는 입을 반쯤 틀어막으며 멈칫했다. 수조 속 인간들은 나체의 상태로, 피부 곳곳에 기계와 장치가 가득했다. 몇몇 인간은 피부가 벗겨진 채 있었고, 피부가 벗겨지지 않은 인간 쪽은 하얀 선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얀 선은 몇 번 꿈틀대더니 피부에서 떨어졌다가 다시 달라붙고 있었다.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홀로그램이거나, 혹은 인간이 아니길 바랐지만, 그 형태는 완전히 인간 그 자체였다.
“국장이 대량으로 소유권을 사들였던 범죄자와 노숙자들입니다.”
소장이 초연한 태도로 말했다.
“이들로 뭘 하려는 거죠?”
이렐로스가 다급하게 물었다.
“변이의 과정입니다. 괴물로서 변이죠.”
소장은 그렇게 대답하고, 수조 앞에 놓인 장치에 다가갔다. 소장이 몇 번 건드리자, 꿈틀거리던 하얀 선이 멈추며 수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자리에서 폭로합니다.”
소장은 장치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렸다.
“국장은 인간을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잠시 정적이 일었다. 인간을, 괴물로.
“그게 무슨, 당신 억지로 헛소리 하는 거라면 당장 그만둬.”
소장은 기계 끝을 툭툭 건드리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 돌연변이는 짐승에게서 발생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말입니다. 변이된 짐승은 주변 짐승들을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의약품을 연구하는 데에 목적이 있던 전 소장에게 거역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그 짐승이 인간을 잡아먹도록 연구하라는 국장의 요청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그럼 인위적으로 인간을 잡아먹도록 진화시킨 건가요?”
소장의 말에 이렐로스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비슷합니다만, 이상하게도 그 변이 짐승은 인간을 잡아먹지 않았습니다. 그 짐승은 같은 종의 짐승만 무질서하게 잡아먹었죠. 그 때문에 그 변이가 동종을 잡아먹는 습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종, 하고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인간에게 같은 변이를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동종인 인간을 잡아먹도록 말입니다.”
“잠깐, 하지만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인간을 잡아먹길 바랐던 거지?”
속이 울렁거렸다. 그에게 질문했다.
“관리국은 괴현상을 처리해 인간을 지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짐승 따위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견제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공격하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로 한 거죠. 결과적으로, ‘인간을 지킨다’라는 위상을 더 드높이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한 겁니다. 평화로운 세상에 영웅은 필요 없으니까.”
관리국은 그러기 위해 존재한 건가. 순간 지금까지 쓰러지고 죽었던 괴물들이 머릿속에 여럿 스쳐 갔다.
“국장이 처음에 시도했던 변이 실험 대상은 관리국 요원이었습니다. 요원들이 자신의 소유 아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검진을 명분으로 하여 여럿 변이를 시도했고, 변이의 기점이 보이면 정부 측에서 데려가 실종으로 처리한 뒤 지속적인 변이를 시도했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아버지를 부르던 날, 아버지는 검은 액체를 끊임없이 토하며 고통스러워 했고, 마치 준비된 듯이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아버지를 데리고 갔었다. 아버지가 말했던 검진, 돌연 괴물의 액체를 쏟았던 아버지, 그 이후로 영원한 실종 처리, 이후 사망 신고. 테두리부터 천천히 끼운 퍼즐에 그림이 새겨졌다.
“알다시피 대량의 식인 괴물이 발생했고, 관리국의 권력은 강해졌으며, 국경은 폐쇄되었습니다. 이후 전 소장은 은퇴했고, 전 전 소장의 일을 이어받아 괴물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반정부의 등장으로 더 이상의 희생은 발생하지 않게 되었지만, 국장은 다시 한번 이들로 변이를 시도하려고 하고 있으며, 전 다시 전 소장이 했던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걸 내버리고 다 말해버렸으니, 죽든 살든 상관 없습니다. 그저 이 일을 맡고 싶지 않습니다...”
잠깐의 정적. 그저 혼란이었다. 아버지에게 있었던 일과 지금의 상황. 나는 여기서 소장의 손을 잡아야 하는가? 국장에게 발각된다면 명백히 죽음뿐이다. 소장의 손을 잡고, 이 일을 세간에 알리고, 조용히 죽거나 영웅이 되든가, 혹은 손을 잡지 않고, 이러한 일이 있었음을 마음에 새기고 그저 할 일을 하며 말없이 넘길 것인가. 나는 이러한 선택을 하기에는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손이 떨렸다. 마음 먹고 왔는데, 단단히 살기로 결심했는데, 내 무력함이 나를 더 짓눌렀다.
이렐로스는 소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전 도울게요, 와 같은 영웅적인 말을 뱉었다. 선한 역할이구나, 그는 주인공이고 영웅이구나. 나는 뭐지? 나는 대체 무슨 역할이지? 손만 떨고 있는 멍청한 조연? 또는, 정부에 집어삼켜진 악역.
“하하...”
바람 빠지듯 작게 웃었다. 눈을 가린 손 사이로 아버지의 얼굴이 비쳐 보이는 듯했다. 어릴 때부터 모든 게 잘못되었다. 이런 선택을 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당하기 위해서 난 태어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