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역설법 · 마루10화 — 10.

CHAPTER 10

10.

죽음의 역설법 · 약 10분 분량 · 2026.10.04

작가의 말

상해, 살인, 식인 요소 등이 등장하며, 묘사가 자세한 편입니다.

“루반.”


그 눈물은 감정의 호소라고 부르기에는, 일종의 협박과 같았다. 그 눈물이 턱선을 따라 뚝뚝 떨어질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꽉 막혀버린 회로를 뚫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말해봐, 내가 뭘 잘못했어?”


루반이 해주었던 이야기들은 당연히 충격적이었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많은 대접 온 몸으로 받으며 부유하게 사치 부리고 산 줄만 알았던 그가, 사실은 그런 일들을 뒤에서 겪고 있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루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시릴은, 왜 죽어야 했던 거지.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까만 실로 얽혔다. 얽히고 얽히고 얽혀서 머리통을 조였다. 루반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난 그를 원망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 나는 루반에 약하다. 난 그를 원망할 수 없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혐오하기에는 난 루반을 오래도록 그리워했다. 루반이었으니까. 함께 웃고 떠들고, 나를 안아주었던 사람이니까. 난 너무 약해져 있었다. 원망의 감정과 연민의 감정이 뒤섞였다.


결국 깍지 낀 손을 떼어내고, 그 손을 뻗어 그를 조심스럽게 감싸안았다. 그의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고, 난 자연스럽게 품에 끌어안았다. 잔인하게도, 계속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고, 차가운 피부와 다르게 따뜻한 눈물이 셔츠에 느껴졌다. 나는 루반을 원망하지만, 원망할 수 없었다. 여전히.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비록 내 사람을 죽였을 지라도, 그도 내 사람이었기에. 영원히 난, 그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혐오하면서, 작은 따뜻함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다시 또 품에 안고 말 것이다.


확실히 루반의 피부는 하얗고 차가웠다. 햇빛을 받지 못하며 자랐나. 최근까지도 밤에 일하던 나보다도, 더했다. 가만히 그 감각을 느끼며 먼 곳을 바라보던 때. 그때 무언가 형용하기 힘든 강렬한 통증이 팔에서 저릿하게 느껴지더니, 잠깐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서서히 고통이 새겨졌다. 내려다보자, 팔이 썰리고 있었다. 깨끗하고 예리해 보이는 칼날이, 살을 파고들어 와 천천히 팔을 썰고 있었다. 피가 울컥울컥 나오고 있었다. 숨이 막히고, 눈앞이 흐려졌다. 충격에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당장에 빠져나와야 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힘이 들어가지 못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무언가 막히는 소리만 컥, 컥, 하고 날 뿐 비명이 되지 못했다. 칼날이 한 번 들어가고 나오는 자리에 근육 조직과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 상태로 다시 칼날이 근육 깊숙이 파고들었다. 피는 걷잡을 수 없이 바닥을 흠뻑 적시도록 흘러나왔고, 난 몸에서 조금 분리되어 아래로 기울어진 팔을 보고서야 저항했다. 백색근이 길게 늘어져 몸과 팔 사이를 지탱하고 있었다. 루반은 그를 자르려 했다. 저 하얀 줄이 잘리면, 팔이 뜯겨 나가는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를 힘껏 발로 차 빠져나왔다.


“마르타, 도망갈 거야? 혼자? 가는 도중에 과다 출혈로 죽을 거야.”


맞는 말이었다. 피는 계속 흐르고 있었고, 주변에 치료 도구로 마땅한 건 보이지 않았다.


“이리 와. 내가 잘 자른 다음에 응급처치 해서 보내줄 테니까.”


루반이 포옹을 요청하듯 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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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죽는 것보다, 어차피 잘리고 있는 거 다 자르고 치료받는 게 낫잖아?”


움직이지 못했다. 루반은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 다가와 칼날로 백색근을 짓눌러 끊어냈다. 팔이 서서히 중력을 따라 뜯겨 나갔다. 눈앞이 거의 흐렸다. 정신이 혼미했다. 어지러웠다. 피는 계속 흐르고, 내 의식은 사라져만 가는데, 루반의 칼날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툭, 하는 소리가 들렸고,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눈을 뜨자 병실이었다. 가끔 부상을 당했을 때 찾아와 치료를 받던 관리국의 공간. 이불을 덮고 있던 나는 상체를 힘겹게 일으켰다. 오른팔에만 의지해서. 옆 의자에 앉아 있던 아멘티스와 눈이 마주쳤다.


“보여요?”


그가 물었다. 그가 가리킨 곳은 내 왼팔이었다. 반 이상이 잘려 나간 팔은 일부만 남아 봉합되어 있었다.


“며칠...”


“이틀 정도 지났어요.”


잠시 조용했다. 기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근데, 그거 말고요. 여기 봐주세요.”


아멘티스가 팔을 돌려 안쪽 팔을 보여주었다. 붕대 위에 천이 하나 덧대어져 묶여있었다. 리본 모양으로.


“아,”


“이건 제가 했어요.”


“아니, 안, 안 돼.”


오른손으로 리본을 잡아 뜯었다. 통증이 다시 느껴졌다. 천을 마침내 완전히 풀어냈다. 아멘티스의 당황한 표정과 눈이 마주쳤다.


“죄, 죄송하지만... 리본은... 유치하니까...”


내가 횡설수설 변명했다. 아멘티스는 잠시 뜯겨나간 천을 바라보더니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제가 잘 묶는 편은 아니죠. 깨어났으니 의원을 불러올게요.”


아멘티스가 병실을 나갔다. 리본은 유치하다는 말. 내가 무심코 생각 없이 뱉어버렸지만, 정말 그러했다. 리본은 유치하다. 어린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다. 유치한 걸 좋아하는 나는, 유치한 인간이다.


잠시 후, 의료반 의원이 들어와 이것저것 말을 걸었고, 팔을 이리저리 확인하고, 들고 있던 것에 슥슥 글을 적더니, 이후 말없이 병실을 나갔다. 일어나도 되는 걸까, 싶어 오른팔에 체중을 실어 몸을 바깥으로 돌리고, 기둥을 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내 몸이 이렇게 무거운지 몰랐다. 방향을 잡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다.


병실에서 나와 비틀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방으로 들어왔다. 왼손과 입을 사용해 코트를 걸쳐 입었다. 화장실에서 토하던 때 벗어둔 뒤 두고 온 그 코트였다. 누군가 가져다주었나 보다. 코트엔 내 기기가 제대로 들어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는 마침 전화가 울렸다. 국장의 호출이었다. 다시 방을 나가 국장실로 이동했다.


국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경을 쓴 국장이 무언가를 작성하던 중에 그것을 잠시 내려놓고 내 쪽은 보지 않은 채 말을 걸었다.


“거기 앉게.”


국장의 앞에 앉았다. 그는 양 손가락을 꿰고 팔꿈치를 책상에 붙였다.


“얘기는 들었네. 시릴을 잃은 이래로 충격적인 사건이군.”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은 안 했지만, 네, 하는 숨이 대부분 섞인 대답이 희미하게 샜다.


“이제 괜찮나?”


“...그렇습니다.”


그가 물었고, 내가 대답했다.


“그래도 며칠 간이라도 좀 쉬게. 앞으로 어려운 일은 맡기지 않을 테니. 자네는 열심히 하는 요원이었는데 안타깝게 됐군.”


“감사합니다.”


잠시의 정적 후에,


“시릴의 일은 어떻게 된 건인지 알고 있나?”


그가 그 일을 물었다.


“잘 모릅니다.”


거짓말이었다.


“시릴이 자네와 마지막으로 임무를 간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네.”


“시릴은 개인 임무가 있다고 중간에 떠났습니다. 그 이후로 저도 보지 못했습니다.”


“보지 못했겠지, 살아있는 모습은.”


국장이 낮은 톤으로 말했다.


“시체를 본 건 보지 못했다고 표현하고 싶은 건가?”


머릿속이 다시 하얘졌다. 심장이 쿵쿵 쳤다.


“죄송합니다, 시체를 봤습니다.”


“시릴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대체 왜 그자를 만나러 간 거지?”


“그건,”


“자네, 왜 처음에 거짓말을 한 건가?”


숨이 막혔다.


“시릴이 어떤 방식으로 죽었고, 누구에게 죽었는지 다 봤으면서, 왜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연기를 했는지, 들어보고 싶은데. 협조해 주겠나?”


대체 국장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반정부 수장은 국장의 속을 알아내 무너뜨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반정부와 접선했다는 사실조차 국장이 알고 있다면, 다음에 잘릴 것은 목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수장이 루반에 의해 죽은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난 거짓말을 해야 할지, 진실을 고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 누구 앞에서도 강할 수 없었다. 너무도 무력한 존재였다.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식은 땀을 흘리며, 입만 뻐끔거리고 있던 내게 국장이 다시 말을 걸었다.


“시릴은 착한 아이였지. 똑똑하기도 했고, 자네와 일하는 걸 좋아했어.”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난 또 모르고 있다.


“루반도 착한 아이였지.”


그가 덧붙였다.


“내 자랑스러운 첫째 아들이니까. 자네도 알고 있지?”


그가 물었다.


“실종된 이후로 참 걱정했었는데 말이지, 이렇게 다시 소식을 들으니까 반갑네. 자네도 그 아이를 다시 만나 반갑진 않은가?”


“거, 거짓을 고해서 죄송합니다. 시릴의 일이 어떻게 됐는지 다 봤지만, 전, 전 루반과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사건을 목격했을 뿐, 그 이상은 정말 모릅니다, 국장님.”


국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국장실이 너무도 고요했다. 팔이 간지러웠다. 이 공간을 어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차라리 여기서 죽었으면 좋겠다.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게.”


그 말과 함께 나는 곧바로 인사를 한 뒤 국장실을 나온 것 같았다. 금세 일어난 일이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내가 그 이후에 서 있던 것은 국장실 앞 복도였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뛰었다.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거울을 본다면 분명 붉은색이나 푸른색일 것이다. 어쩌면 검은색, 하얀색, 노란색, 보라색... 눈을 천천히 감으며 생각을 비우려 노력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국장이 내게 압박을 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심장이 뛰지 않았을까. 아니면 루반이 팔을 자르지 않았다면, 시릴을 죽이지 않았다면. 또 아니면 애초에 관리국에 들어온 것부터. 그것도 아니면, 아버지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아니, 정확히 말해서 아버지를 관리국에서 데려가지 않았더라면. 아버지와 지금쯤 저녁 식사를 마쳤을까. 아버지와 연락이라도 한 번 최근에 나눴을까. 난 알아야만 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관리국에 발을 들여 시릴을 만나고, 시릴을 잃고, 루반에게 당하고, 국장에게도 목이 잘릴까 말까 한 이 순간에 난 알아야만 했다. 여기까지 온 목적이 있으니까, 내가 약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고 싶었다. 그러면 이 불행이 적어도 허무한 것이 되지 않을 테니까. 내 불행이 정당화될 수 있을 테니까. 희생으로 남아 내가 죽을 때에 좋게 남을 수 있을 테니까. 난 불행하게 살지 않았고, 희생적으로 살았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여기까지 온 목적을 이뤄내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