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먹었던 음식물이 토사물이 되어 엉키고 엉킨다. 역겨운 색, 역겨운 맛, 역겨운 냄새가 변기를 가득 채웠다. 드문드문 튄 흔적이 더 기분을 끔찍하게 만들었다.
“하...”
한숨 소리가 화장실 칸에 울렸다. 속이 너무 좋지 않았다. 어째서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을 수 있을까.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아니면...
“안 돼.”
의심하지 말아야 해. 이 상황에서 의심하기엔 이미 뇌가 사용된 곳이 너무 많았다. 아팠다. 더는 머리가 아팠다. 휴지로 변기를 닦고, 변기 물을 내리고, 손을 흐르는 물에 씻고 나서 입을 닦았다. 기분이 아직도 더럽고, 속이 안 좋았다. 인육 자체로 충분히 기분이 더럽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의 인육이라 해봤자, 기분이 더럽고, 불쾌하고, 양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 것에서 그쳤겠지만, 누가 친구를 먹고 싶겠는가. 안 그래도 죽음의 여파로 괴로운 와중에. 머리카락을 쥐었다. 손을 뗐다. 내 머리카락이 손에 몇 가닥 붙어 있었다. 그새 빠진 것이다. 아...
깔깔 웃던 루반의 얼굴이 떠나지 않는다. 흐릿하게, 머릿속을 감싸고, 눈동자를 기어다녔다.
“드레이크 군?”
아멘티스의 목소리가 화장실 밖에서 들렸다. 그 목소리를 따라 화장실을 나왔다. 아까의 그 얼굴과 표정 그대로, 그는 말을 걸었다.
“입맛에 안 맞았나 봐요? 뭐, 출처가 불분명한 고기긴 했죠. 전 그럭저럭 잘 맞았는데.”
괜한 말을 또 하고 있다.
“그러게요, 안 맞았나 봅니다.”
결국 대꾸해 주고 말았다. 그가 또 말을 걸려 했다. 더 이상, 듣기, 싫었다.
“죄송합니다. 약속이 있어서요.”
그를 지나쳐 복도로 나갔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라든가, 쫓아오는 발소리라든가, 하는 건 들리지 않았다. 루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장이 전해달라고 했던 말, 그때의 그 장소로 다시 와달라고. 지금 도망칠 곳은 그곳인가. 약속이 있다고 해버렸잖아, 젠장, 이런 멍청한 게! 차에 시동을 걸고, 다시 또 밟았다. 그곳으로. 가지 않으려 했던 곳으로. 이번엔 루반을 다시 만나지 않길 바라며.
9화를 다 읽었어요.
9/15
이번에도 계단을 오르고 문 앞에 섰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이번엔 문을 두드렸다. 두 번 짧게 두드리자, 안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작은 체구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 혹시 드레이크 님?”
그가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대장님이 조금 바쁘셔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러죠.”
마침 시간도 때우고 나쁘지 않았다. 보이는 소파에 앉았고, 그는 내 대각선 즘에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읽을 거라도 가져다드릴까요?”
“됐습니다.”
“전 리아나 이렐로스라고 해요.”
주변을 둘러보며 대충 대꾸하다가 멈칫했다. 초면에, 그것도 적진의 인물에게 자신의 이름을 굳이 알려줄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경계심 하나 없는 그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편한 대로 부르세요. 마실 거 가져다드릴까요?”
대체 왜,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의 이름을 알아버렸다.
“됐습니다. 가세요.”
그는 약간의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돌아서 가버렸다. 책장 정리, 서랍 정리 등 바빠 보였다. 저런 사람에게 손님 대접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염치가 없었다.
십 분 정도 지났을까, 총성이 귓전을 때렸다. 경찰에게 발각된 걸까, 창가 쪽을 보았지만 그쪽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렸다. 방 안쪽이었다. 닫힌 문 안쪽.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참 정리하던 이렐로스가 문 쪽으로 달려갔다.
“대장님! 루반 선배님!”
이렐로스가 방 안을 향해 외쳤다. 루반, 이라고...?
“제가 들어가 볼 테니 밖에 가만히 있어 주세요.”
그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잠깐, 안에 대체 누가...”
입을 떼려 했지만, 이미 그는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고요했다. 총성도 다시 울리지 않았고, 대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안에 루반이 있다. 지금이라도 이 곳을 빠져나가야 될까? 가만히 있으라는 말 즘, 무시해도 괜찮잖아. 일어나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아멘티스가 들고 있던 고기의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리고, 시릴의 마지막 모습까지. 내가 서 있을 곳이 없었다. 그 어느 곳도, 날 저 절벽 아래로 떨어뜨릴 사람 뿐이었다. 차라리,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서 언제쯤 떨어질까 불안해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들어왔던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그 순간.
“마르타!”
루반의 목소리였다. 문손잡이를 잽싸게 잡아 문을 열고 계단을 신속히 내려갔다. 발목이 살짝 삐끗했지만, 중요치 않았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나빠, 도망가지 마.”
손목이 잡혔다. 저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몸이 비틀거렸고, 뒤를 돌아보자 손목을 터질 듯 꽉 쥐고 있는 루반이 있었다.
“밖에서 만나고 싶은 거야? 그럼 그러자.”
루반은 손목을 여전히 잡은 채로 계단을 앞질러 내려갔다. 그를 따라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에서 완전히 내려가 한적한 곳으로 걸어갔다.
“방금 총성, 뭐야.”
“알려줘야 되는 이유가 있어?”
“당연히 들었으니까,”
“정부에 속해 있는 주제에.”
앞서 걷던 루반이 뒤돌아 나를 보더니 웃었다.
“우리끼리 얘기야. 위법적인 조직이니까, 당연히 위법적인 얘기겠지. 합법적인 놈들, 아니, 정확히는 정당화하는 놈들에게 알려줘야 될 필요 없어.”
루반이 말했다. 내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이 약간 느슨해졌다. 그 말대로, 내가 그들의 이야기에 굳이 관여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만 알려줘, 죽인 거야?”
“마르타는 총에 두 번 맞고 살 수 있어?”
자꾸 확실한 대답 없이, 오히려 내게 해답을 요구하는 태도. 저 징그럽고 영악한 태도. 속이 다시 끓어올랐지만, 참았다.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마르타.”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손목, 풀어줄게. 도망가도 좋아. 하지만 나, 지금부터 네가 궁금해했던 것을 알려줄 거야. 예를 들면, 내가 널 떠난 이유라든가. 그래도 듣기 싫다면 도망가도 좋아.”
그는 꽉 쥐고 있던 손의 힘을 완전히 풀었다. 손이 자유로워졌고, 도망치기에 수월해졌다. 당장 도망치기 가능했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루반이 한 말 때문에.
“착하다.”
루반이 씩 웃었다.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솔직히 말해서 말이야, 네가 관리국에 취업하겠다고 했을 때... 기분이 정말 더러웠거든.”
루반은 어두운 골목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대답은 딱히 하지 않았다.
“그런 거 있잖아, 나랑 싸워서 멀어진 친구랑 내 친구가 놀고 있으면... 무언가 배신감 들지 않아?”
“누가 그래.”
루반은 골목 벽에 기댄 채 내 쪽을 바라보고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싸워서 멀어진 친구? 뭐, 내 친구가 걔랑 놀고 있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친구는 그 사실을 몰랐던 거잖아? 그게 왜 배신감이 드는데.”
“내가 그렇다는데 네가 왜 내 감정을 지적해?”
잠시 정적이 돌았다.
“루반, 아니, 그러니까... 너에겐 관리국이 싸워서 멀어진 친구 같은 존재라는 거잖아? 그래서 나에게 배신감이 든 것이고.”
“응.”
짧은 외마디 대답이었다.
“넌 진짜,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럼 진작에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왜 말없이 멀어진 건데?”
“그래서 지금 말해주잖아.”
대화가 안 통했다. 더 설득하려고 할 수록 화가 났다. 이러다 한 대 칠 지도 모르겠다.
“그 싸움 얘기나 해봐.”
내가 말했다. 루반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요구대로 했다.
“마르타는, 정말 내게 시릴과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
그야, 같은 집안 사람이고, 형제니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그를 지켜보았다.
“마르타는 내 눈 자세히 본 적 있어? 무슨 색이야?”
“눈? 금색...”
그의 밝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금색이었다. 시릴과 달랐다. 국장과도 달랐다. 이따금 떠돌아다니는 사진 속 국장의 아내와도 다른 색이었다. 시릴의 눈은 국장의 색과 같았다. 그럼, 저 금색은 어디서 왔지? 금색, 하고 말을 멈추고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루반이 내 모습을 가만 보다 웃었다. 소리 내 하하, 하고 웃었다.
“네가 정말 좋아, 마르타.”
그렇게 말하더니 또 웃었다. 배를 잡고, 과장되게 웃었다. 끊기는 숨소리, 막무가내로 얽힌 호흡. 과했다. 과하게 웃고 있었다.
“마르타, 나 계속 웃음이 나와. 안 멈춰. 죽을 병에 걸린 걸까? 아하하!”
“왜...”
“마르타아.”
루반은 숨 막히도록 웃던 것을 멈추고 늘어지는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쪽을 쳐다봤다. 좀체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 부름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굳이 내 입으로 말하게 해야겠어 넌?”
방금까지 웃음기 넘치던 얼굴이 굳어 있었다. 눈썹은 찌푸려졌고, 한 층 낮아진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루반이 날 떠났던 이유를 아는 것, 그것보다 중요하고,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저 이 자리를 벗어나 침대에 눕고 싶은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약했으니까. 너무도 약하고 모자랐으니까. 나라는 존재는.
“나랑 시릴은 모친 쪽이 달라. 다르게 말해서, 나는 간통 사이에서 태어났어.”
“뭐...?”
그 국장은 신성하고 근엄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그런 사람이었다니. 무언가 깨지는 기분이었다.
“너라면 어때? 물려도 안 아픈 손가락인 거야, 난.”
대답하지 않았다. 루반이 이후로 한 얘기는 이러했다. 자신은 안 아픈 손가락으로 태어나 정통 자식인 시릴과 다른 취급을 받으며 자랐다고 했다. 단순히 다른 취급이라고 부르기엔 그 정도가 간단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폭력이라든가, 감금을 당했고, 죽이고 사고인 척 가볍게 묻으려 했으나 때 좋게 루반이 가출을 해 그 시도가 끝이 난 것이다. 루반이 가출한 시점은, 내가 루반에게 관리국에 취업하겠다고 말한 이후였다.
“얼굴은 피해서 때리더라. 당연하지, 얼굴을 때리면 모두에게 사실이 들킬 거니까. 잘 안 보이는 부위 있잖아, 허벅지, 등, 어깨. 주요 타깃은 그런 곳이야. 굶은 날은 몇 킬로그램이나 빠졌는지도 모르겠어. 잴 기회도 없었으니까.”
루반이 재밌는 설화를 얘기하듯 털어놓았다. 루반과 함께 밥을 먹으면, 항상 몇 숟가락 뜨더니 내려놓았다. 입맛이 없는 걸까, 이미 많이 먹고 온 걸까, 여러 번 질문해 봤지만 대답은 항상 모호했다. 이제 대략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날 사랑하기로 했어. 나 아니면 아무도 안 사랑해 주니까. 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야.”
루반은 그렇게 말하더니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부드럽게 손목부터 아래로 쓸어내리더니, 자연스럽게 깍지를 꼈다. 차가웠다.
“그리고 마르타는 내 친구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를 위해, 넌 내 옆에 있어야 해. 내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돼, 마르타. 네가 내 옆에 있어야, 내가 기뻐져.”
그런 내가 루반의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그렇게 떠나버렸던 걸까. 아직도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기는 싫었다. 하지만 후회했다.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선, 한 쪽이 몸을 깎아 상대에게 맞출 필요가 있으니까.
“마르타.”
루반이 살짝 웃었다.
“떠나면 안 돼.”
정작 떠난 건 루반이었다. 난 떠날 생각 없었다. 저 자기중심적으로밖에 생각 못하는 머리통이 가식적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루반이 울었다.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흐른 눈물이 얼굴선을 따라 바닥에 떨어졌다. 울고 있다. 얼굴이 빨개져서는. 울고 있다... 왜, 대체 왜 나에게 그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