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역설법 · 마루8화 — 8.

CHAPTER 8

8.

죽음의 역설법 · 약 9분 분량 · 2026.10.04

작가의 말

상해, 살인, 식인 요소 등이 등장하며, 묘사가 자세한 편입니다.

시릴을 보내고 한 시간쯤이 지났다. 코트는 비린내 없이 보송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너무도 마음이 졸이고 걱정이 돼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날. 심장이 잠시 상황을 헷갈렸거나, 마음을 비우려는 강박 탓이거나, 쿵쿵, 하고 뛰던 심장이 느리게 바뀌었다. 그 순간은 여기, 루반과 자주 만났던 곳, 골목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있는 먼지 쌓인 넓은 공간. 이 곳에 도착한 이후부터였다. 관리국과 걸어서 삼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시릴이 차를 가져갔음에도 충분히 올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너무 간단했다. 루반이 나에게 다시 찾아온 이유. 아버지에 대한 단서도 아니고, 관리국에 숨은 비밀도 아니고, 반정부의 작전도 아니고, 그저 루반. 그저 이상한 애겠거니 하고 넘기기엔, 루반은 너무 큰 존재였다. 그리고 궁금증이 점점 커져 날 갉아먹고 있는 것 또한 원동력이었다. 루반의 심리를 알 수 없었다. 오히려 놀아나는 걸까?


“야!”


어깨에 닿은 두 손과 목소리에 흠칫하며 뒤를 보자 루반이 태연하게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 비릿한 쇳내가 다시 감돌았다. 선지피가 바닥에 흥건해졌다. 밑창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그 감각이 소름 끼치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너,”


말을 걸려고 입을 간신히 떼어내자 루반은 이미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대답을 들어 보여주었다.


“이거?”


시릴이 가겠다고 했을 때 분명 말렸어야 했다. 더 좋은 선택지가 꼭 존재했을 텐데. 그러기엔 난 너무 무지했다. 시릴의 머리였다. 머리카락 가닥가닥은 루반의 손가락 사이에 감싸져 꼭 붙잡혀 있었고, 가장자리는 말라가고, 목 아래는 혈관이 제 갈 곳을 잃어 축 늘어져 있었다. 단면이 깔끔하지 못했고, 선홍색의 크레파스와 같은 채도 높은 혈이 바닥을 적셨다. 이미 축축해진 바닥이, 더 축축해질 수도 있었구나. 규칙적으로 바닥을 치는 물소리가 끔찍했다.


루반은 나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덜 잘린 단면을 보았다.


“미안, 이런 데는 재능이 없어서, 여러 번 했어.”


루반은 손가락을 폈고,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혈관끼리 죽기 살기로 붙잡고 있어서, 목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못하고 반만 매달려 있는 머리 본 적 있어? 그 상태에선 아직 눈 정도는 여러 번 깜박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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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발을 머리 위에 올렸다.


“뭐, 지금은 못하지만.”


발에 힘을 주자 갖가지 의성어와 함께 피가 튀기고, 척수액과 뇌가 흘러나왔다. 완전히 터져버렸다.


“네가 궁금해했던 것, 대답이 됐을까?”


루반이 물었다.


“너,”


그 뒷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흰 셔츠에 튄 검붉은 피도, 코 끝을 도는 쇳내도, 질척거리는 부츠도, 모두. 정상적인 말을 하지 못하게 했으니까.


“왜 이런...”


겨우 꺼낸 첫 질문이 그거였다.


“멍청한 네가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으니, 친절하게 내가 알려주자면, 넌 내가 돌아온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잖아, 맞지?”


“어...”


“전에도 말했지만, 난 널 버리지 않았어. 그러니까 쭉, 내가 널 지켜봤지. 넌 그냥 네 할 대로만 하면 됐었어. 일을 하고, 보수를 받고, 그걸로 여가나 즐기고 하는 거 말이야. 근데 넌 시릴과 친해졌잖아. 이렇게 말하면 어렵나? 내 동생과 친해졌잖아.”


“그게 왜,”


“끝까지 넌 나는 안 중요한 거지?”


말을 하려 해도 끊어버리자 의지가 시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순간 눈이 뜨거워졌다. 눈앞이 흐릿하고, 젖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네 말 하나도 이해 안 돼! 그래, 내가 멍청이여서 그런가 보네. 천재 같은 너에게 감히 덤빌 수 없는, 뇌 같은 거 점심으로 먹은 멍청한 쓰레기여서 그런가 보네! 그러니까 설명해 봐, 왜 그런 건데? 왜 날 짓밟은 건데!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미소만 실실 띠던 그 역겨운 면상이 잠시 말을 멈췄다. 내 손에 칼이 있었다면 안쪽 근육이 보일 때까지 피부를 도려내고 싶었다.


“마르타는 나보다 얘가 더 소중한가 보네.”


루반이 가리키듯 발로 터진 머리를 툭 찼다.


“얘가 먼저 날 죽이려 했어. 내가 먼저 죽이지 않았다면 난 이미 숨이 막혀 죽었을 거야. 그래도 아직 나한테 화가 나?”


루반이 다시 미소를 띄었다.


“내가 얼마나 무서워서 벌벌 떨었는지 몰라. 마르타는 이해하겠지? 나의 친구니까, 그치? 마르타는 내가 가장 소중하니까, 다 이해할 거지?”


웃는 얼굴엔 침을 못 뱉는다고 하였던가. 난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일지 알랑거리는 거짓말일지 생각할 힘도 없었다. 소리 지르고 화내고 우는 것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덜했다. 루반은 만족한 듯이 소리 내 웃었다.


“응, 이해해 줘서 고마워. 역시 마르타는 최고의 친구네. 그런 의미로 나랑 신발 바꿀래?”


루반이 축축한 선홍색 피가 밑창에 얼룩덜룩 묻은 구두를 슬쩍 보여주며 물었다.


“더러워서.”


루반이 말했다. 난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나도 많이 묻었어.”


“흠.”


루반이 날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님이 너한테 내일 밤에 전에 만났던 그 장소로 와달라고 전해달래.”


루반이 말했다. 수장을 얘기하는 것인가. 물어볼 힘도 없어 다시 고개를 또 끄덕였다. 다행히 그 말 이후 루반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잘 가라는 뜻이다. 이런 짓을 해놓고, 잘 가라니.


시릴이 타고 왔던 차를 타고 돌아가며 조수석을 몇 번씩 보았다. 내가 무엇을 보고 지금까지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얻고자 했던 것, 바라고 있었던 것, 그중에 놓치고 있었던 것. 무언가 꼬인 건 내가 걷던 길이 틀어지게 된 건, 루반 탓이다. 루반의 일을 더 이상 떠올리지 말자. 그와의 접점을 더 만들지 말자. 오직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리자. 결국 선택한 건, 내일 밤에 일이 끝나자마자 일찍 자는 것이었다. 반정부와의 접점을 끊어낸다. 무슨 손해가 있더라도, 루반과 또 만나는 것보다 이득일 테니.


방으로 돌아와 코트를 벗어 걸치고 옷도 하나씩 벗었다. 곱게 접어 정리해 두는 대신 대충 쓸어모아 바구니에 담았다. 세탁해야 했으니까. 옷장을 열어 아무 옷이나 걸치고 침대에 누웠다. 세탁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일어나 챙겨둔 시릴의 개인 키로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불이 꺼져 있었다. 박하 향이 났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딱히 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다. 침대에 널브러진 옷을 개어 옷장에 넣고, 옷장 속 옷들을 분류하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펼쳐 읽고, 별거 아닌 내용임을 알고 나선 다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과정이 반 시간이었다. 깨끗해진 방 가운데, 책상에 손을 올리고, 책상을 마주 보며 생각했다. 만일 내일 나에게 시릴이 어떻게 됐는지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그들의 입장에서 시릴과 마지막으로 있었던 건 나다. 시릴과 항상 함께 다니는 것도 나다. 그들이 나를 의심할까? 대충 사고로 둘러대지도 못했다. 그런 사고가 있었다면 바로 보고해야 하니까. 루반이 죽였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어떨까? 몇 년 동안 실종 상태에 있던 벨베도르의 장남이 갑자기 찾아와 시릴만 죽이고 사라졌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까? 해결 방안, 또는 변명 거리를 찾기엔 머리가 너무 아팠고,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누가 동료의 죽음 앞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하더라도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망가지는 게 연약한 사람의 심리인데, 죽은 사람이 오래 함께한 동료라면 그 충격이 어느 정도일까, 감히 누가 상상해 본 적은 있는가. 뇌에 무리가 왔다. 뇌가 벌레에게 갉아 먹히고 있다. 차라리 이 뇌를 괴물에게 던져주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죽었으면 좋겠어.


다음날, 어영부영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관리국에 돌아왔다. 사실 아침에 국장과 대화를 나눴다. 국장은 시릴이 죽었는지 여부만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고, 국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얹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나는 혼자 일을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버겁다는 기분은 딱히 들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달라졌는데, 그 달라짐을 설명할 수 없을 뿐이다. 나는 항상 나대로만 움직였으니까. 시릴은 동업자라기보단, 그저 곁에 있는 한 사람이었다.


승강기 쪽으로 가던 도중 아멘티스를 만났다. 그는 손에 손바닥보다 조금 큰 팩을 틀고, 작은 포크로 팩 속의 음식을 집어먹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바짝 익히지 않아 핏물이 고인 잘게 썰린 고기였다. 나를 마주치고도 인사하지 않은 이유가 이 고기 때문인가. 아멘티스가 이쪽을 보았다.


“드레이크 군도 드실래요?”


그의 말에 입을 살짝 벌렸다. 포크에 찍힌 작은 고기가 입속으로 들어왔다. 약간 질겼고, 기름졌으며, 소고기인 듯 아닌 듯 오묘했다. 담백하고 진한 냄새가 났다.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일하는데, 국장님 앞으로 배송 온 포장된 고기를 본 거예요. 당연히 국장님께 드리려 했죠. 근데 거절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먹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도 고기의 출처를 모른단 뜻이에요.”


아멘티스가 말을 마치고 입에 고기 조각을 하나 더 넣었다.


“발신인이 누구였습니까?”


내 질문에 아멘티스는 질긴 듯 고기를 두어 번 더 씹더니 삼켰다. 그리고 그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루반 벨베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