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역설법 · 마루7화 — 7.

CHAPTER 7

7.

죽음의 역설법 · 약 10분 분량 · 2026.10.04

작가의 말

상해, 살인, 식인 요소 등이 등장하며, 묘사가 자세한 편입니다.

양치를 하던 도중, 젖은 머리에 수건을 둘러 맨 시릴이 나와 물었다.


“오늘 열 시에 일 있어?”


열 시면 루반과 만나기로 한 시각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대답을 바로 못 했다.


“나 그때 일 따로 있어서.”


시릴이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오늘은 열 시 전에 일 끝나는 거 아니었어? 나랑 같이 다녀야 되잖아.”


“몰라, 아무튼 있어. 가야 돼.”


내가 물었고 시릴이 머리를 감싸던 수건을 빼내며 대답했다. 하기야, 그 시릴인데, 매번 나와 함께여야만 임무가 있다는 사실이 말이 안 됐다.


“그래, 뭐... 머리 말리고 와.”


방문이 닫히고, 닫힌 방 안에서 드라이기 소리가 들렸다. 입안에 물을 가득 머금고 있다가 뱉었다. 오늘따라 시릴이 퉁명스러워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항상 웃음을 지은 채 유쾌한 태도였는데.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머리를 굴리며 칫솔을 정리했다. 아직 드라이기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지나쳐 걸어가 걸려있는 코트를 몸에 걸치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주머니 속에 지갑이 깊이 담가져 있었다. 몇 번 만지작거리고 내려놓았다. 시릴을 기다리는 동안 미리 나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복도는 최소한의 불만 켜져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 내 구두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고개를 돌린 곳엔 어둠이 깔린 도시에 조명이 톡톡 찍힌 풍경이 창문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창문에 손을 올렸다. 틀도 없이 넓게 트여있는 깨끗한 창은, 조용히 야경의 일부가 되기 충분했다. 어제 루반과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분명 세게 짓밟았지, 반정부 신분이라면 병원도 쉬이 가지 못할 텐데, 장기가 터졌으면 어쩌나 생각했다. 이런, 또 걱정을 해버렸다.


난 그날 루반이 떠난 이후로 그를 미워하기로 결심했다. 루반이 날 역겨운 벌레 보듯 쳐다봤던 표정과 말을 걸어도 무시하던 냉담한 태도를 기억하며. 이 녀석과 인연을 이어가는 건 나에게 손해일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학교를 어느 때부터 오지 않았을 때, 심하게 걱정해 버렸다. 루반은 벨베도르의 장남이었다. 벨베도르의 집안에선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아 했지만, 사회는 이 일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루반이 사라진 이유를 아무도 몰랐다. 그 어디서도 루반을 발견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명확한 미지의 이유로, 실종된 것이다. 납치되어 버린 건 아닐까, 지금쯤 죽어버린 건 아닐까, 여러 갈래로 잘려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을까? 나쁜 생각이 불안함과 섞여 겹치고 겹쳐 루반에게 미안할 정도로 커졌었다. 나도 망가지는 듯했다. 그 녀석이 뭐라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비하면 루반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크다고. 난 왜 이 녀석 때문에 내 인생 가장 중요한 순간에 생채기를 내야 하지. 그런 말을 여러 번 반복했고, 책상 앞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 덕인지 루반을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마침내 관리국에 입사하고 시릴을 만났을 땐 싹 잊어버린 것 같았다. 가끔 찾아오는 희미한 기억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나일 뿐이었어야 했다. 어제 루반을 만난 이후로 밤에 또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 녀석이 먼저 잘못했다. 그런 말을, 그때처럼 되뇌어 보아도, 굽 밑에 짓밟혔던 배 위 옷감의 움직임과 더럽혀짐이 말을 덮었다. 너무 충동적이었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창에 주먹을 약하게 내리쳤다. 아름다운 야경에 아무런 금도 내지 못했다.


“여기서 뭐 해?”


어깨에 올려진 손의 촉감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릴이 완벽히 갖춘 채 내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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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시 생각 정리할 게 있어서.”


“연애 관련 고민이라면 형한테 털어놓아도 좋아.”


“형 같은 소리.”


시릴은 내 말에 웃으며 앞장서 걸었다. 그는 승강기 앞 버튼을 눌렀고, 사람이 없는 탓인지 조용한 복도 속 띵, 소리와 함께 금세 열렸다.


“이번엔 내가 운전할게, 마르타.”


“...어? 왜?”


“어제 너 잠을 못 자길래.”


어젯밤, 루반과의 일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했던 일 때문인가, 그걸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아, 고마워.”


시릴은 뿌듯하다는 듯 씩 웃었다. 곧 승강기 문이 열렸고 넓게 펼쳐진 로비에 발을 얹었다.


“국가괴현상관리국을 찾아주신 분들께 환영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쪽 프론트 데스크에서 용무를 말씀해 주시면, 친절한 대응으로 맞이해 드리겠습니다.”


나른한 여성 목소리의 안내 방송. 녹음된 메시지를 때마다 반복해서 틀어두는 거지만, 아직도 내용을 외우지 못했다. 국가괴현상관리국을 찾아주신... 그게...


“분들께 환영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건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나 보다. 헷갈리던 부분을 시릴이 이어 말해주었다.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다. 시릴이 어깨를 팔꿈치로 툭 치며 웃었다.


데스크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독시반의 사무실 중 하나이다. 조용하고 어두운 내부에서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귀를 때렸다. 독시반의 업무는 감시하고,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눈을 빼고 잠깐 손을 움직이고, 다시 눈을 빼는 것의 반복이다.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독시반의 요원 옆 물건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총?”


물건은 사용감 있는 권총이다. 독시반에서 거둬온 것이기에, 쪽지로 물건 번호가 붙여져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권총을 단서 삼아 임무를 나갔다가 실종된 처리반 요원을 찾는 것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해보자면, 이미 괴생명체에게 씹고 뜯겨 괴생명체의 일부가 됐을 요원에 대해 약간의 애도를 표하고, 그 괴생명체를 살해하고 오면 된다. 권총은 그 괴생명체가 누군지에 관한 단서가 된다. 요원이 가지고 있던 마지막 물건이기에, 총에 담긴 체취나 물질 등으로 요원을 먹은 괴물을 추측할 수 있다.


“아, 보니까 알겠다. 열심히 하던 애였는데, 안타깝게 됐네.”


시릴이 총을 이리저리 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총만 보고 어떻게 알아?”


“이 흠집, 전에 본 기억이 나거든.”


시릴이 가리킨 총 겉면 작은 흔적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릴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도 이렇게 소지품만 보고 사람을 떠올릴 수 있을까?


“시릴.”


“응?”


“나도 무언가... 네 소지품, 공유해 주지 않을래?”


시릴이 작게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 초 정도 지났다.


“말투가... 왜 그래.”


시릴의 표정이 이상한 사람을 마주한 듯 약간 일그러졌다.


“그, 그럼 뭐라고 말하는데? 네 물건 내놔?”


“음, 차라리 그게 더 마르타같네.”


“날 뭐로 보는 거야?!”


시릴이 킥, 하고 웃음을 뱉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물건이었다. 분홍색의 꽃 자수가 끝에 새겨진 하얀 손수건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주신 거야.”


손수건을 받아 손에 쥐었다. 부드러웠다.


“왜 이런 귀한 걸 줘.”


“그야, 네가 달라고 했으니까?”


“별로 귀하지 않은 걸 줘도 되잖아.”


“마르타니까 받아도 돼.”


시릴은 넣어둬, 넣어둬 하는 손짓으로 내 손에 손수건을 꼭 쥐여주었다. 결국 주머니 속에 넣어버렸다. 부드러운 감촉과 꽃향기가 손에 밴 듯했다. 시릴과 어울리지 않는 선물이었지만, 그렇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가자.”


도착한 곳은 며칠 전 괴물을 쓰러뜨렸던 위치와 차로 십 분 거리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그때 분명 강적이었던 탓에 고전했지만, 이번은 그다지 위험할 것이라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그때 튀었던 검은 액체와 혈 비린내가 느껴지지만 말이다.


차에서 내리자 몇몇 뜯긴 시체가 보였다. 장기만 빼먹은 듯 겉가죽과 뼈만 남아 바닥을 채우고 있었다. 조만간 다음 처리반이 와서 청소할 예정이겠거니, 하고 시체가 놓인 길을 따라 걸어갔다.


“무언가 느껴져?”


총을 보면서 걷던 시릴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내 쪽과 눈을 마주했다.


“검은 액체...”


시릴은 중얼거리더니 시체 위에 흩뿌려져 있던 검은 액체에 용지를 반의반쯤 넣었다. 몇 초 후 떼어내자 용지 위 스펙트럼이 형성돼 있었다.


“일치해. 기존 총에 배어져 있던 액체에 이 요원의 DNA가 섞여 있어.”


시릴이 말했다. 그는 용지를 제 눈앞에 두고 바라보더니 덧붙여 말했다.


“체취가 근처에서 느껴져.”


그리고는 먼저 걸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릴에게선 국장의 모습이 잘 보였다. 루반을 봤을 때는 떠오르지 않던 국장의 위엄함이, 시릴이 입을 다물고 있을 땐 희미하게 겹치곤 했다. 확실히 아들과 아버지라는 것인가.


아스팔트 위 조용하던 발소리가 금속을 밟는 센 소리가 되었을 즈음에 그는 날 막아섰다.


“골라 죽일 필요 없어. 동시에 무작정 다 쏴버리자.“


시릴이 귀에 가까이 입을 대고 속삭였다. 시릴이 데려온 컨테이너 안 쪽엔 피 칠갑이 되어버린 바닥과 그 위 흩뿌려진 소장과 위, 간, 대장 등. 그것을 하나씩 주워 먹고 있는 괴물이 두셋 있었다. 간이 괴물의 손에 의해 올라와 이빨에 짓씹기더니 머금고 있던 것을 한 번에 토해내며 입속으로 사라졌다.


“밥 되지 않으려면 조심해, 하나.”


시릴이 말했다.


“둘.”


괴물이 다음으로 짚은 건 소장이었다.


“셋.”


내 총이 먼저 총알을 날렸고, 이어 한 두발 더 소리를 내며 박혔다. 검은 액체가 컨테이너 벽을 두드리며 묻었고, 혈이 굽 앞까지 스며 퍼졌다. 터져버려 형체가 일그러진 괴물의 시체와 마주하다가 꿉꿉하고 쇳내로 비릿했던 컨테이너를 나갔다.


“상쾌하지 않아.”


“피 냄새 때문이야.”


내가 말했고 시릴이 답했다. 그는 자신 코트의 소매를 내 코 가까이 들이대었다. 맡아보라는 건가, 왜, 쓸데없이. 그러면서도 눈을 감고 맡아보았다. 지독한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욱.”


“나 약속 있는데, 이거 곤란하게 됐네. 같이 세탁소 가자.”


텅텅 빈 세탁소 안에 둘이 모여 세탁기 앞 의자에 앉았다. 세탁기가 돌아가면서 철퍽, 철퍽 물소리를 냈고 옷은 물과 함께 돌아가며 흔들렸다. 기계 소리 한 번 웅 들리고 철퍽, 다시 기계 소리 웅. 그 모습을 어떠한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릴, 정말 어디 가는지 말 안 해줄 거야?”


침묵 사이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시릴은 내 쪽을 돌아보더니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한테 알려주기에 썩 유쾌하지 않은 얘기야.”


시릴이 대답했다.


“내가 본사 앞에 너만 내려줄게. 먼저 들어가서 씻고 자.”


“으응.”


시릴이 덧붙여서 말했고, 내가 대답했다. 다시 찾아온 고요 속에 세탁기 물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