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를 하던 도중, 젖은 머리에 수건을 둘러 맨 시릴이 나와 물었다.
“오늘 열 시에 일 있어?”
열 시면 루반과 만나기로 한 시각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대답을 바로 못 했다.
“나 그때 일 따로 있어서.”
시릴이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오늘은 열 시 전에 일 끝나는 거 아니었어? 나랑 같이 다녀야 되잖아.”
“몰라, 아무튼 있어. 가야 돼.”
내가 물었고 시릴이 머리를 감싸던 수건을 빼내며 대답했다. 하기야, 그 시릴인데, 매번 나와 함께여야만 임무가 있다는 사실이 말이 안 됐다.
“그래, 뭐... 머리 말리고 와.”
방문이 닫히고, 닫힌 방 안에서 드라이기 소리가 들렸다. 입안에 물을 가득 머금고 있다가 뱉었다. 오늘따라 시릴이 퉁명스러워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항상 웃음을 지은 채 유쾌한 태도였는데.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머리를 굴리며 칫솔을 정리했다. 아직 드라이기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지나쳐 걸어가 걸려있는 코트를 몸에 걸치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주머니 속에 지갑이 깊이 담가져 있었다. 몇 번 만지작거리고 내려놓았다. 시릴을 기다리는 동안 미리 나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복도는 최소한의 불만 켜져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 내 구두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고개를 돌린 곳엔 어둠이 깔린 도시에 조명이 톡톡 찍힌 풍경이 창문 너머로 펼쳐져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창문에 손을 올렸다. 틀도 없이 넓게 트여있는 깨끗한 창은, 조용히 야경의 일부가 되기 충분했다. 어제 루반과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분명 세게 짓밟았지, 반정부 신분이라면 병원도 쉬이 가지 못할 텐데, 장기가 터졌으면 어쩌나 생각했다. 이런, 또 걱정을 해버렸다.
난 그날 루반이 떠난 이후로 그를 미워하기로 결심했다. 루반이 날 역겨운 벌레 보듯 쳐다봤던 표정과 말을 걸어도 무시하던 냉담한 태도를 기억하며. 이 녀석과 인연을 이어가는 건 나에게 손해일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학교를 어느 때부터 오지 않았을 때, 심하게 걱정해 버렸다. 루반은 벨베도르의 장남이었다. 벨베도르의 집안에선 이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아 했지만, 사회는 이 일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루반이 사라진 이유를 아무도 몰랐다. 그 어디서도 루반을 발견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명확한 미지의 이유로, 실종된 것이다. 납치되어 버린 건 아닐까, 지금쯤 죽어버린 건 아닐까, 여러 갈래로 잘려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을까? 나쁜 생각이 불안함과 섞여 겹치고 겹쳐 루반에게 미안할 정도로 커졌었다. 나도 망가지는 듯했다. 그 녀석이 뭐라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비하면 루반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크다고. 난 왜 이 녀석 때문에 내 인생 가장 중요한 순간에 생채기를 내야 하지. 그런 말을 여러 번 반복했고, 책상 앞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 덕인지 루반을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마침내 관리국에 입사하고 시릴을 만났을 땐 싹 잊어버린 것 같았다. 가끔 찾아오는 희미한 기억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나일 뿐이었어야 했다. 어제 루반을 만난 이후로 밤에 또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 녀석이 먼저 잘못했다. 그런 말을, 그때처럼 되뇌어 보아도, 굽 밑에 짓밟혔던 배 위 옷감의 움직임과 더럽혀짐이 말을 덮었다. 너무 충동적이었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창에 주먹을 약하게 내리쳤다. 아름다운 야경에 아무런 금도 내지 못했다.
“여기서 뭐 해?”
어깨에 올려진 손의 촉감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릴이 완벽히 갖춘 채 내 뒤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