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역설법 · 마루5화 — 5.

CHAPTER 5

5.

죽음의 역설법 · 약 10분 분량 · 2026.10.04

작가의 말

상해, 살인, 식인 요소 등이 등장하며, 묘사가 자세한 편입니다.

시릴은 본인의 손에 묻은 검은 액체를 손수건으로 닦아내었다. 매일 있는 일이다, 손에 저 액체가 묻는 것은. 하지만 항상 역겨웠고 불쾌했다. 시릴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꼼꼼히 닦아내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시체가 없었지?”


“응, 아마 다 먹었겠지. 바닥만 닦고 가자.”


바닥엔 혈이 검게 변해 죽죽 눌어붙어 있었다. 물과 맞닿을 때마다 미끈해지며 뭉쳐졌다. 바닥을 닦고 나니 차가워져 버린 손은 양손을 맞대고 살짝 비벼 데워주었다.


“마르타, 오늘 같이 저녁 먹을 거야?”


시릴을 돌아보자 그는 깨끗해진 손으로 옆구리에 손을 얹은 채 묻고 있었다.


“...미안, 일이 있어서.”


반정부 관련 일이라는 걸 시릴에게 말했다간 좋은 일을 보진 못할 것이다. 시릴은 꽤 인간적이고 다정한 면모를 보이지만 정부에서 나고 자라 누구보다 충실하게 자라온 일등 공신이며, 관리국이 아니면 어느 곳에도 설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내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반항하고 싶어도, 국장의 아들이라는 이름상 벗어나기 어려웠을 테니까. 나보단 국장의 편에 서는 것을 택하겠지.


“서운해.”


“서운하긴, 애냐.”


“요즘 나랑 저녁 안 먹더라. 그래서 내가 어제 얼마나 기뻤던 줄 알아? 너 나중에 후회한다? 아, 그때 시릴과 저녁을 같이 먹었더라면 이 죄책감이 덜했을까, 하고.”


“헛소리 하지 마.”


시릴이 얼굴에 살짝 웃음을 띄었다.


“그래, 미안. 이만 돌아가자.”


“...넌 본부에 내려줄게. 난 그다음 약속에 바로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그러든가.”


그는 여전히 서운하다는 식의 표정을 지었지만, 옅은 웃음을 띄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괜히 툭 치고는 지나가 차 문을 열었다. 아얏, 하는 가식적인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시릴을 내려준 후 약속했던 장소로 차를 돌렸다. 붉은 빛, 노란 빛이 도로를 비췄다. 그러던 중에, 앞창으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어쩐지 아침부터 흐릿하더니, 비가 오나 보다. 평소에 날씨 예보를 체크하고 다니지 않다 보니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되는 게 허다했다. 그래도 항상 우산은 들고 다니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차에서 내려 검은 우산의 손잡이 쪽을 딸깍, 누르니 무거운 소리가 들리며 우산이 펼쳐졌다. 우산 위로 투둑 떨어지는 간격 먼 빗소리를 들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쪽지에 적혀있던 주소는 역시나 외진 곳이었다. 그래도 전에 보았던 창고보다는 제법 구색이 갖춰져 있었다. 여기도 본부는 아니겠지, 아무리 손을 잡았다 해도 적군에게 모든 걸 내어놓을 만큼 신뢰하진 못하니까. 내 손엔 아직도 악수했던 장갑의 감촉이 남아있는 듯한데.


계단을 올라 도착한 문 앞에서, 당연하게 문을 두드리려다가 잠시 멈췄다. 이런 무법자들에게까지 고개 숙이며 살라고 배우진 않았다. 아버지가 그랬다. 문손잡이를 잡고 내 집인 양 당당하게 들어갔다. 일반 가정집 같은 거실이었다. 불은 현관 쪽만 켜져 생활은 할 수 있지만 밖에서는 언뜻 어두워 보이게 하였다. 분명 이 곳도 사람 냄새가 나는 집안이었겠지, 괴물의 등장으로 살던 사람들이 몰살 당했을지 몰라, 하는 추측을 하며 발을 안으로 들였다. 현관문과 마주 보는 방향으로 있는 주방 앞에는 전에 보았던 그가 서 있었다. 님프 아이스타티스, 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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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티스 양?”


내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기에, 그가 나에게로 고개를 돌릴 필요는 없었지만, 조금 더 나를 인식하고 있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대장님은 저 안쪽 방에 있어요. 안은 밝긴 하지만 창문이 없어 좀 답답할 거예요. 문은 닫아두셔야 해요.”


내가 먼저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가, 갑자기 그는 방문을 다섯 손가락으로 받치듯 가리켰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방문 쪽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대장님이라니, 호칭 참 이상하네, 하며 천장을 살피기도 하고 말이다.


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닫았다. 안엔 차를 마시기에 적합한 원형 테이블과 두 의자, 의자 하나를 차지한 수장이 있었다. 난 수장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아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웃는 상이었지만, 올라간 눈꼬리였고, 미지다운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공기를 한층 누르는 무게가 있었다.


“님피는 도통 대화하기 어려운 친구지?”


그는 분위기를 가볍게 하며 대화를 시작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보내자, 그는 ‘님피’라고 불렀던 그 아이스타스 요원이 무뚝뚝하지만 일도 열심히 하고 귀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연구소에 가는 일에는 그 요원이 따라붙을 거라 일러주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정확히 뭐죠?”


내 질문에 그는 턱에 검지를 살짝 갖다 대더니 눈동자를 약간 굴린 다음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데이터 카드를 넘겨주기만 해도 괜찮아. 하지만 뭔가 개인적으로 얻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따라와서 따로 탐구해도 좋고.”


“당신들은 정확히 뭘 찾으려는 거죠?”


“웬만하면 바로 사건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되면 좋겠지만, 그들이 쉽게 드러낼 리 없으니 다른 약점을 위주로 노려야지.”


“연구소의 약점이라면, 실험 속 비리나 조작 같은 거라든가?”


“좋지,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데 치중하는 거야.”


“별로 똑똑한 접근은 아니네요.”


미소 짓던 그가 내 말에 눈썹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관리국에 직속되어 있는 기관이라,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그들이 뜻을 굽히진 않을 겁니다.”


“덤벼보면 알겠지.”


“무력을 취한다면 이 협성은 취소하겠습니다.”


그는 대답 대신 다시 눈썹을 올려 웃었다. 그의 표정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서려 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 카드를 밀어주었다.


그는 방 문을 열고 아까의 거실로 나갔고, 거실에선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수장이 요원과 대화를 나눌 동안, 나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 비가 오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어릴 때 햇살이 더워 비가 왔으면 좋겠다, 하고 징얼거릴 적에, 정말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우수수 쏟아진 적이 있었다. 금세 추워진 공기에 맨팔을 붙잡으며 슬슬 비비자, 계곡의 친구는 이런 비쯤 맞아버리자며 팔을 벌리고 오히려 뛰어다녔다. 값 있는 그 옷이 비에 젖고 더러워지고 있었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날은 함께 빗속에서 뛰어다녔다. 이후로 비가 좋아졌다. 예상하지 않았던 날 비가 오면, 마치 비가 맞이하러 온 기분이었다.


“드레이크 군.”


타티스가 말을 걸었다.


“그러다 총 맞아. 빵.”


수장이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며 내 쪽을 가리켰다.


“...총, 을 왜.”


“창문으로 들키면 사살이야.”


수장이 먼저 몸을 돌려 가자 타티스가 뒤따라갔다.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 발을 내디뎠다가 그 자리에 멈췄다. 저들을 믿어도 될까? 이대로 저들을 따라가기가 불안했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서도 안 됐다. 내 카드가 넘겨진 이상, 내 감시에서 벗어나는 건 더 불안한 일이었다.


“수장.”


내 부름에 수장은 멈추어 설 뿐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옆에서 걸어가던 타티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담보로 뭐라도 받아야 보내줄 수 있겠는데.”


수장의 뒤통수만 쳐다보았다.


“안쪽에 돈,”


“아니.”


수장이 타티스의 말을 끊고 뒤돌아섰다. 팔짱을 낀 모습으로 분명 올려다보고 있지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인질을 줄게. 우리가 배신한다면 죽여도 좋아.”


“반정부가 그 정도로 동료를 아꼈습니까?”


“글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진짜 말은 있잖아, 네가 그 인질을 마음에 들어 할 거야.”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왜 반정부 요원을 마음에 들어 합니까.”


내 말에 수장이 배를 잡고 웃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배를 팔로 감싸고, 고개를 숙이며 깔깔 웃었다.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그가 부탁했어. 네가 이 곳에 협성하도록 조정해달라고. 그러면서 너에 대한 정보를 다 알려줬지.”


“뭔,”


“네 아빠의 ID카드도, 그 요원이 우리에게 준 거야. 우리에게는 꽤 소중한 자원인 걸. 이 정도면 신뢰해?”


머릿속에 혼란이 일었다. 근간 나를 따라다니는 무언가가 기억에 있지 않았다. 그 경비와 내 주의를 피해 한 치의 의심도 주지 않고 나의 정보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반정부 요원 단 한 명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인가. 게다가 대체 아버지의 ID카드는 어느 경로로 입수했는지 전혀 알 턱이 없었다. 심지어 그 정도 능력을 갖췄으면서, 한낱 고위 요원에 겨우 걸친 나를 조사하고, 나를 선택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한 명, 정말, 한 명? 누구? 누가? 어떤? 어떤 한 명?


“드레이크 군, 서서 자면 안 돼.”


수장이 아까와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내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장님 말씀대로 하실 건가요?”


타티스가 무덤덤하게 물었다. 그 혼란 속 요원을 인질로 데리고 있다가, 배신당하면 죽인다. 언뜻 간단해 보였지만, 수월하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를 대신할 제안은 없었다.


“...그렇게 하죠.”


내 대답에 수장은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미묘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눈은 반쯤 감겨 내려앉았다.


“그 요원은 잠시 뒤면 올 거야. 저 아래에서 다른 일을 맡고 있으니까.”


수장의 말에 나는 창문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아, 만약 따라오고 싶어지면 언제든 연구소로 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수장은 걸친 코트를 아치형으로 휙 돌리며 뒤돌아 걸어갔다. 바닥을 때리는 굽 소리가 멀어졌다.


창밖을 보려고 했지만, 그러는 순간 총을 맞는다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 관두기로 했다. 대신 창문 앞 소파에 등을 기대앉았다. 어쩌면 눕는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가 침을 삼켰다. 목이 말라왔다. 일어나 낡은 주방 쪽을 돌아보았다. 녹이 슬어있었고, 냉장실과 냉동실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다행히 안에는 아무 음식도 없었다. 버튼을 눌러도 물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판매하는 수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값이 나간다. 오랫동안 수도세를 내지 않았는지 주방에는 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사실, 아무도 없는 기간 동안 물이 전부 증발해 버렸다는 쪽이 합리적이지만 말이다. 습격당하지 않은 일반 가정이었다면 물이 나올 구멍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옆에 귀를 대고 기댄 채로.


순간 내 자신이 멍청해 보여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일어났다. 그 순간 닫혀있던 현관문에서 똑똑, 하는 작은 손의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열어줘야 할까, 하는 생각에 조용히 문 쪽으로 몸을 돌려 서 있자 예상대로 철컥, 하며 문이 열렸다. 나와 한 뼘보다는 조금 더 적게 차이 나는 사람의 실루엣이 슬쩍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