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역설법 · 마루4화 — 4.

CHAPTER 4

4.

죽음의 역설법 · 약 10분 분량 · 2026.10.04

작가의 말

상해, 살인, 식인 요소 등이 등장하며, 묘사가 자세한 편입니다.

“당신, 마르타 드레이크. 맞죠?”


무덤덤하지만 꿰뚫는 그 눈빛과 마주쳐버렸다.


“전 편한 대로 불러줘요. 어차피 제 이름은 서류에서 봐서 익히 알고 있잖아요? 그 서류, 제가 흘린 거거든요.”


그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당황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있죠, 당신은 왜 그들의 말을 따르고 있나요?”


그는 턱을 괴며 물었다.


“그들의 말이라면, 정부 측을 얘기하는 겁니까?”


“네, 뭐… 그쪽.”


“알 필요 있습니까?”


“없죠,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그는 그 말이 끝나자 한 카드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본부에서 사용하는 ID카드다. 하지만 이렇게 낡고, 불명확한 ID카드는 본 적이 없다. 디자인도 약간은 달랐다.


“적힌 이름, 읽어볼래요?”


카드를 집어 들어 쌓인 입자 사이로 새겨진 이름을 찾기 위해 돌려보았다. 그렇게 찾아낸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드레이크 앞 그 이름이 눈을 도려내듯 아프게 하였다.


“당신의 목적을 알아요. 진실을 알고 싶은 거죠? 하지만 그곳에 있다 보면, 진실은커녕 홀려버려 그곳이 하는 말을 모두 믿게 될 걸요.”


그는 손을 내밀었다. 장갑을 낀 손이었다.


“도와줄게요. 우리도 밀정이 필요해요.”


“그런 목적으로 카드도 훔치고 내가 가짜 은신처를 따르도록 정보를 흘리고 다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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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은 안 할게요.”


손쉽게 손을 맞잡을 수는 없었다. 더한 고민, 생각, 고뇌, 비판이 필요했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총을 거뒀다.


“살려드리는 겁니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찾아오죠.”


그렇게 말하고 창고를 나왔다. 그는 따라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 저들이 내 비밀을 다 꿰차고 있는 걸까. 나의 모든 게 세상에 까발려진 기분이다. 발가벗겨진 기분. 눈만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연속. 차에 다시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어머니의 병은 단순 질병이 아니었다. 괴생명체에 의한 감염이었다. 찰과상에 괴생명체의 흔적이 닿았고, 흔적은 급격히 확산했다. 어린 시절이라 들은 것도 없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머니는 감염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정부에서 보내드렸다고 추측한다. 한마디로 안락사다. 아버지는 그저 나에게, 괴물을 가까이 해선 안 된다고, 밖에서 괴물을 마주치게 된다면 반드시 근처의 어른에게 알리거나 관리국에 연락을 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괴물은 어린아이를 좋아했다.


그러던 날, 아버지는 갑자기 피를 토하셨다. 분명 그때엔 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피라고 부르기 어렵다. 빛을 흡수하는 새카만 색이었으니까. 빠진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뭉친 듯한 액체는 괴생명체의 형체를 떠올리게 하였다. 그 입에서, 괴생명체가 흘렀다. 계속, 계속, 계속.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 하고 울었다. 괴생명체에서 인간의 특징이 나타나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이 괴생명체의 특징을 가지는 건, 전혀 보지 못한 현상이다. 연구소를 몰래 뒤져보았었지만, 수많은 서류에서도 이와 관련한 현상에 대한 연구는 밝혀진 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만으로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하기는 무모하다. 결정적으로 내게 계기를 심어준 건 그 후 이야기다. 아버지는 급하게 무언가로 연결을 시도했고, 이내 까만 옷을 입은 덩치 큰 사람들이 몰려와 아버지를 데려갔다. 나는 그 이후로 보호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외로울뿐더러,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의 행방이 어떻게 되었는지, 대체 왜 검은 액체를 토했던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그 까만 옷을 입은 덩치 큰 사람이 되어 보면 알게 될까. 그렇지 않을까. 나는 까만 옷을 동경했다.


때로는 외로울 때면, 눈물이 나고는 했다. 눈물이 나지 않을 땐 다행이다, 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면을 보면 또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 모습이 웃겨 깔깔 웃기도 하였다. 결국 차를 돌려 유턴했다.


그 숲의 창고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이런 낡은 거처가 전등이 고장 나지도 않았는지 밝은 빛이었다.


“저기!”


문에 얼굴을 들이밀고 안을 보았다. 아까의 그가 여전히 앉아 있었다. 옆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생각이 바뀌셨나요?”


“봐, 다시 올 거라고 했잖아.”


그가 물었고, 그 옆 사람이 거들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네, 하고 대답했다. 옆 사람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일어나 다가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선 그는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으며, 눈빛과 기운이 정신을 억눌러 위압했다. 반정부의 수장에 대해선 그 어느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대략적인 나이와 성별, 신체 정보, 목격 진술 등 미지수였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자가 수장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우린 십몇 년 전 정부에서 여럿이 실종되었는데도 묵비한 사건을 조사하고 있어. 좋은 무기가 될 것 같거든.”


수장은 미소에서 발전된 웃음을 띄며 말했다.


“당신은 세간에는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실종되었으며 그 이후로 어떤 정보도 알려진 게 없는 드레이크 요원의 아들이지?”


이 자는 아는 게 많았다.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건 왜 그런 일이 있고도 똑같이 정부를 택했냐는 거지. 위험하다고는 생각 안 해봤어?”


“관리국의 입장이 되어보면 진상을 알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수장은 자신의 입가에 손을 댄 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뭐, 한 쪽의 입장만 듣는 것보단 두 입장이 모두 되어보는 것이 해석에 유리할 테니까. 그래서 우리도 밀정이 필요하다는 거야. 협조해 줄 거지?”


수장도 장갑을 낀 손을 내밀었다. 결국 맞잡고 말았다. 수장은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짧게 흔들더니 손을 떼고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저러다 어깨에 걸친 코트가 흘러내리진 않을까, 괜히 신경 쓰였다. 그는 다시 책상 위에 앉아 날 바라보았다.


“연구소를 먼저 찾아갈 거야. 침략하는 거야 부수고 들어갈 수 있겠지만, 은밀하고 조용해야 하거든. 그러기 위해선 연구소를 자연스럽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정부 측 밀정이 필요했어. 드레이크 군, 연구소에 데이터, 저장되어 있지?”


“제 신분을 도용할 생각인가요?”


“그래서, 안 돼?”


“...가능합니다.”


수장의 말에 대답했다. 수장의 옆에 앉아 있던 타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갔다 올게요.”


그는 그대로 창고를 나갔다.


“드레이크 군은 내일 밤에 와줘. 님프가 안내해 줄 거야.”


수장은 찢긴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잉크가 꽤 빠진 볼펜으로 주소가 적혀 있었다. 종이를 받아 들고 나도 곧이어 창고를 빠져나왔다. 차로 다시 걸어 돌아가는 순간도, 내 선택이 맞을까 몇십 번씩 고민하고 있다. 저들이 정말 날 도와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이 대체 어디서 나와서, 손을 맞잡았을까. 하지만 이미 주소까지 받은 이상, 살려준 이상, 국장에겐 그가 죽었다고 전해야겠지. 다시 차의 시동을 걸었다.


문을 열고 들어와 코트부터 벗어 걸었다. 사람의 피를 묻히지 않고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코트는 평소와 같은 향이 났다. 넥타이도 풀어 코트 위에 걸쳐 두었고, 셔츠의 단추를 천천히 풀며 욕실로 들어갔다.


몸이 느슨해지고 편안해질 때쯤 가운을 묶고 키를 챙겼다. 시릴과 난 스위트메이트기 때문에 전체 방 자체는 같이 쓰지만, 생활하는 개인적인 방은 따로 사용하기 때문에 항상 개인 키를 지참하고 다녀야 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며, 시릴의 방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문은 닫혀 있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 자고 있겠지, 하며 문을 잠갔다.


내일이면 또 임무를 나갈 테고, 끝나고 돌아오면 시릴은 또 자러 가고, 난 종이 속 주소를 찾으러 갈 것이다. 그리고 새벽을 틈타 그들이 연구소에 침입할 수 있도록 해주게 될 것이다. 그들이 연구소에 숨겨진 비밀을 이래저래 파악하여 내게 알려주면 나는 놀랄 것이고... 그래, 놀랄 것이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무엇이 있지? 정작 목표를 향해 달려왔으면서, 목표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목표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진 않았다. 바보 같아, 하며 중얼거렸지만, 이외에는 빠져나갈 길이 없었기에, 난 목표 달성을 원했다.


키를 서랍 위에 올려두고 가운을 벗어 갈아입었다. 적당히 비싸 보이지만 꽤 괜찮은 가격의 내의다. 그 상태로 침대로 가 앉았다. 요즘 볼 거 없나, 하며 탭을 켜 화면을 두드리다 보면, 보고 난 후 아무 의미와 교훈을 얻지 못하는 영화들이 화면을 스쳐 간다. 단순히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건드리는 자극적이고 잔인한 영화가 요즘의 유행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와 관련한 작품을 공감하고 좋아한다고 하던가, 실제로 거리에선 괴생명체에 의해 목을 뜯기고 있는 사례가 활보하는 중에도 유혈이 낭자한 영화가 인기 순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난 도저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료진이 유혈이 가득한 수술을 집도하며 온갖 혈액과 장기를 봤음에도 동요하지 않지만, 집에서 평화롭게 지내다 종이에 베여 피를 보면 화들짝 튀어 오르듯, 괴생명체에게 총을 겨누고 그들이 터져나가는 것을 보는 건 일이기 때문에 크게 동요되지 않지만, 평화롭게 보내고 싶은 새벽에 미디어 속 자극적인 유혈을 지켜보기는, 화들짝 튀어 오를 일이었다.


결국 화면을 닫고, 탭은 협탁 위에 올려놓아 충전시켰다. 베개를 눕혀 그 위에 머리를 얹고, 이불도 허리까지 올려 덮었다. 여러 일이 지나간 후에 찾아오는 고요한 이 밤에는 대부분 사나운 잠자리가 동반되었었다. 더러운 악몽이 찾아오거나, 선의 가면을 쓴 자각몽이 잠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꿈은 무의식의 향연. 그저 그들이 이끄는 대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장기를 덜 보길 바라며, 시체를 찾지 못하게 되길 바라며, 피를 덜 보길 바라며, 아무것도 터지지 않길 바라며, 꿈을 좇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