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역설법 · 마루2화 — 2.

CHAPTER 2

2.

죽음의 역설법 · 약 10분 분량 · 2026.10.04

작가의 말

상해, 살인, 식인 요소 등이 등장하며, 묘사가 자세한 편입니다.

그와 시릴의 아버지는 국장이고, 살아있다. 내 아버지는 전 국장 밑에서 일한 요원이었다. 두 문장으로 우리의 가정사를 정리하면 그렇다. 내 아버지는 덥수룩한 수염을 입꼬리로 끌어올리며 자주 호탕하게 웃던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질병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침대에 미동도 없이 누워있던 날은, 아버지의 어깨가 처음으로 내려갔지만, 며칠 안 있어 다시 호탕하게 웃어 보이셨다. 그때만큼은 죽음이라는 것이 별거 아닌 줄 알았다. 단지 이별할 뿐. 다시 못 만나게 될 뿐. 아쉽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은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꾀하여 웃으셨을까. 어린 나이에 깊게 파여 비어버린 내 마음은 작은 것을 밀대로 누르고 밀고 펴서 겉으로 보기에 잔뜩 채워진 것으로 되었다. 그 작은 것을 준 것이 아버지였고, 밀대를 쥐고 있는 것이 아버지였다. 하지만 아버지마저 삶에서 사라지자,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었다. 텅 비어버린 마음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자, 공허함에서 오는 답답함과 두려움이 나를 옥죄었다. 이러다 나도 갑자기 죽어버리지 않을까,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어버리지 않을까, 죽음은 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던 나를 버리고 떠났다. 죽음으로 떠난 건 아니었지만, 버려졌다는 기분이, 죽음과도 같은 공포를 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나름 괜찮아졌다. 아버지와 그가 떠난 이후로 난 공부에만 매진했고, 좋은 성적을 받았으며, 아버지의 신념을 이어 나가고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기회가 바로 이곳이었다. 국가괴현상관리국. 시릴과 그의 아버지가 국장으로 임하고 있는 곳.


“이봐.”


시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 마시러 간다더니, 한참 걸리네.”


그는 이곳저곳 쿡쿡 찌르며 불평했다.


“찌르지 마, 다 마셨어.”


그의 손을 잡아 저지하며 손에 쥐고 있던 컵을 도로 돌려놓았다. 독시반에서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에서부터 몇십 분 정도 떨어진 곳에 폐건물이 있는데, 그곳에 남겨진 미확인 시체들을 먹고 자란 괴생명체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 이름조차도 지도에서 사라졌을 정도로 잊힌 곳이었지만, 근처 건물은 아직 남아있으므로, 찾아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것들 건당 보수는 꽤 세기 때문에, 그 정도 문제가 걸림돌이 될 일은 없었다. 화면을 두어 번 건드리니 옅은 진동과 함께 차가 움직였다. 조수석에 앉은 시릴은 팔짱을 낀 채 바깥을 둘러보는 듯했다. 우린 항상 해가 지는 저녁에 활동했다. 밤이 깊어 가면 깊어질 수록 서늘해지는 것이 자연의 원리이고, 그 원리 탓에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의 원리이기 때문에 따스한 해가 없는 시간에 일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폐건물은 답답하고 칙칙했다. 썩은 음식물 냄새가 났다. 시체에 구더기가 잔뜩 끓을 만한데, 비위가 어떻길래 그 시체를 먹었을까. 인간도 벌레가 들끓은 짐승은 먹지 않는데.


“독시반이 감시한 곳은 여기.”


시릴이 발로 한 타일을 꾹 눌렀다.


“그리고 위쪽.”


고개를 들어 올려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다.


“올라가다가 마주치면 쟤네들의 먹이가 될 거야.”


단호하게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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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하는 게 좋으려나?”


시릴은 발 앞꿈치로 타일을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계단으로 먼저 올라섰다. 당황한 마음에 따라가려다 멈칫했다.


“데리고 내려올게. 보이면 바로 쏴.”


“잠, 잠깐, 시릴.”


“금방 갔다 와.”


“벨베도르!”


정적이 이 초간 흘렀다. 그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미안해,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 차라리 내가 올라갈게. 넌 밑에 있어 줘.”


이젠 아무도 잃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그 자리에 있어 주길 바랐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고향이, 영원히 내 곁이길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시릴을 보낼 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러지 뭐. 네가 그렇게 부르는 건 당황스럽네.”


시릴은 계단을 도로 내려왔다. 나는 그를 제치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섰다. 철로 이루어진 계단은 내가 부츠로 짓누를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중간중간 녹슬어 흐른 녹물이 철 기둥을 따라 떨어지다 굳은 모습과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한 지점에 다가서자 멈춰 섰다. 독시반이 전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러했다. 5층에 계단과 가장 가까운 집 안 구석에는 ‘그것’이 녹슨 가구를 뜯어먹으며 떠나지 않고 있었다고. 5층에 멈춰 바로 보이는 문을 열려고 손을 뻗자 연락이 왔다.


“어, 마르타.”


“무슨 일 생겼어?”


“...조금? 그래서 유인하고 내려오지는 말고, 거기서 직접 처리해야 할 것 같아. 그러다가 위험하면 도망쳐.”


“알았어.”


전화를 끊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결국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구는 녹이 슬었고, 몇몇 가구는 뜯어먹은 자국도 있었다. 바닥에는 뭉친 핏덩어리가 혈 자국을 따라 놓여 있었고, 벽에도 튄 선혈이 오래 지나 굳어져 검게 비쳐 보였다. 무엇보다, 쇳내와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혈 자국의 근원지를 따라 걷다가, 실수로 핏덩어리를 밟았지만, 뭉쳐져 있던 핏덩어리는 단지 갈라져 새로운 혈을 토할 뿐이었다.


‘하...’


돌아가면 가장 먼저 씻어야겠다.


문이 닫혀있는 듯 보였지만 작게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소리가 들렸다. 쩝쩝대는 소리, 비틀리는 소리, 그것의 숨소리. 안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혈을 잔뜩 뭉쳐 여러 번 지르밟을 때 나는 물컹한 소리가 귀를 쿡쿡 찔러댔다. 문을 열면 분명 낡았기에 기긱, 하는 소리를 낼 것이고, 그럼 난 여기서 핏덩어리가 될 뿐이었다. 문틈 사이로 발을 밀어 넣어 틈을 조금씩 벌인 후, 관찰을 하다 때가 되면 급소를 노려 기절시키면 된다. 그것이 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강해 보였다. 그래, 약한 것이었다면 거리로 나가 민간인들을 목숨을 걸고 잡아들일 텐데, 이 녀석은 여유로웠을 것이다. 누구라도 한 번에 끝내버릴 자신이 있으니까, 사냥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으니까. 그것은 인간의 목을 손가락으로 뜯어버렸다.


젊은 남성으로 추정되는 시체는 이미 팔다리가 뜯긴 상태였다. 거실의 많은 피의 주인인 듯, 비틀어 말려 눈에는 초점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고, 피부는 말린 해산물과 같이 창백하고 건조해 보였다. 그것은 시체를 들어 인간 손의 두 배가 될 손가락을 이용해 목을 잡아 지탱했다. 그 후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몸을 꾹 누르며 목을 돌렸다. 마치 나사를 조이듯 머리는 돌아갔고, 곧 몸에서 뜯겨 나가며 혈을 끝까지 잇다 놓았다. 그것은 머리가 껌이라도 되는 양 입안에 넣고 굴리고 씹다 벽에 뱉었다. 벽에 뱉어진 머리는 붉게 칠갑이 된 채 들러붙어 녹고 있었다. 그 후 그것은 남은 몸의 살점을 하나하나 뜯어먹고 있었다. 저 정도로 커다랗고 힘이 세며 지능이 있는 괴생명체라면, 살아있는 나 조차도 똑같이 죽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의무이기에, 도망치면 안 되었다.


시체에 살점이 뜯겨 뼈가 드러나고 있었다. 고된 일 끝에 맛있게 닭 다리를 뜯어먹듯, 그것은 사지를 붙잡고 고개를 돌려가며 뜯어먹었다. 혹여나 소리가 들릴까, 문에서 떨어져 장전했다. 다시 문으로 다가갔고, 틈 사이로 총을 밀어 넣었다. 두 손까지 들어갈 틈은 충분했다. 손이 떨렸다. 아니, 안 떨렸다. 내가 떨리지 않는다고 말하면 떨리지 않는 거다. 저 놈은 강하지 않다. 내 사지를 뜯어버릴 정도로 강하지 않다. 방아쇠를 당겼다. 탄내가 훅 끼쳐왔다.


그놈의 머리가 갈라졌다. 머리를 뚫은 탄이 혈을 감싸며 벽에 박혀 사라졌다. 비틀거렸다. 쓰러질 기미가 보이자 여러 발 더 쏘았다. 그것이 쓰러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 놈의 머리를 짓밟았다. 밟고, 분지르고, 누르고. 발로 여러 번 공격했다. 놈은 그럴 때마다 기괴한 소리로 혈을 심하게 토했고, 머리는 터졌다. 터진 머리 사이로 눈알이 굴렀다. 끝냈다. 뜯어먹히다 만 시체를 돌아보았다.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망가져 있었다. 시체를 들어 올려 집을 나갔다. 밖은 더 어두워져 있었다. 저 꿉꿉한 집 안에 있던 시간이 몇 달 같게 느껴졌다. 시체를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가 시릴을 찾았다.


바닥엔 검은 액체가 내장과 함께 섞여 번지고 있었지만, 시릴은 보이지 않았다. 기둥 뒤 어두운 그림자가 깔린 곳으로 다가가자,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워!”


“윽.”


뒤를 돌아보자 시릴이 뻔뻔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나는 걱정돼서 심장을 졸이고 있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날 놀라게 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장난칠 게 따로 있지, 뭐하냐?”


“어?”


“왜 자꾸 업무 중에 장난치는데? 재밌어?”


“미안, 그냥 겁에 질려 보이길래...”


시릴이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바로 꼬리를 내리니 나도 더는 할 말이 없어졌다. 하도 뻔뻔하게 나오며 더 장난치던 사람을 상대한 탓인지, 갑자기 사과를 하며 물러나자, 내가 괜한 일에 열을 낸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함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사과하지는 않았다. 시체를 들고 있는 상황에선, 돌아가는 게 우선이었다.


“...돌아가자.”


내가 먼저 차로 향하자, 시릴이 말없이 따라왔다. 주눅이 든 표정은 아니었다. 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트렁크에 시체를 싣고,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았다. 창문 밖이 너무 어두웠다.


“아까 화내서 미안.”


나지막하게 시를 읊조리듯 말했다.


“아냐.”


시릴이 대답했다. 말투에 토라진 구석은 없을지 귀를 기울였지만 다행히 평소와 같아 보였다.


돌아가면 시체를 먼저 물품관리반에 보내야 한다. 검시반이 있긴 하지만, 초기에 교육을 받을 때 알아보기 어렵게 훼손된 시체의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물품관리반을 통해 처리하라고 배웠다. 사실 완전히 시체가 떠내려가거나, 흔적도 없이 재가 되지만 않는다면 조금의 조직이라도 남기 때문에, 정부의 기술에 의하면 조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물품관리반으로 보내라는 이유는, 단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은 것 때문이다. 감기에 걸렸다고 수술을 받지 않듯, 정부에게 검시 기술은 일반인들에겐 쓰고 싶지 않은 귀물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은 존엄하니까.


“관리반 갔다 오면 피자라도 먹자.”


시릴이 말했다.


“기분 풀어주려는 거야? 나 이제 화 풀렸어.”


내가 대답했다. 시릴이 조용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