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 신의 아들이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미소년이었다. 그에겐 얼굴을 보지 않아야 장수한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인간과 요정들의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하니 한 남자가 복수의 신을 찾아가 저 자에게 사랑을 잃는 것이 무슨 기분인지 깨닫게 하여달라 부탁하였다. 그 저주로 소년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스스로 뛰어들어 죽었다 전해진다.
어릴 적에 계곡에 놀러 갔다가 들은 얘기다. 얘기를 해준 아이는 자신이었다면 빠져 죽지 않고, 매일 그 호수를 찾아가 얼굴을 감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굴을 감상할 수 있었던 수많은 시간을 익사로 날려버렸다는 것이 멍청하다며 웃었다. 그때부터 물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게 얽혔다. 나에게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물 속 깊은 곳에서부터 사람을 빠져 죽도록 만드는 검은 손길이 존재하지 않을까. 숨을 천천히 조이는 괴물이 물 속에 서식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종종 들고는 했다.
“꽤 깊죠?”
가만히 날 바라보던 그가 말을 걸었다. 현실 공간의 그 목소리는 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던 내게 찬물이 끼얹어진 기분이었다. 그랬지, 이 연구소에 대해 물품관리반 소속인 그, 즉 아멘티스가 하나씩 설명해 주던 도중이었다. 내 옆에는 저수조가 흥미로운 듯 빠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시릴이 함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아멘티스는 저수조에 담긴 물의 수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의 숨을 앗아가려 온 손이 휘적이는 것이 머릿속으로 느껴졌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그는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내 쪽을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유적 같지 않나요?”
그는 저수조의 해치를 한 번 닫더니 다시 열었다.
“해치는 열어두라고 들었어요. 점검할 때 여닫는 게 불편하다더라고요. 그것만 유의하면 돼요.”
“이해했습니다.”
아멘티스가 말했고, 나는 답변해 주었다.
“그리고 여긴 벽이 두꺼워 소리가 밖에서 잘 들리지 않아요. 이 점도 기억해 두면 쓸모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손에 든 서류를 천천히 넘겨보며 말했다. 어려운 용어와 함께 알아보기 힘든 언어로 쓰인 글귀, 유치원생이 그린 듯한 낙서가 대부분이었다.
시릴이 내 팔꿈치를 툭툭 건드렸다. 내가 그의 서류를 너무 빤히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거슬렸나보다. 그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지만,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중인데 내가 훔쳐보면 아무래도 곤란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아멘티스는 서류를 한 곳에 모아두더니 우리 쪽과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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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대되는 공간이죠, 그것들이 갇혀있는 곳으로 가보죠.”
아멘티스의 걸음을 따라 시릴과 함께 계단을 올라가자, 청록색의 조명으로 어둡게 깔린 풍경 속 새까만 것들이 기괴하게 관절을 꺾으며 유리창을 두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유리가 두꺼운지 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지만, 유리가 얇았더라면 저것들이 어찌나 내 귀를 괴롭혔을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아멘티스는 ‘그것’들을 지나쳐 복도의 중앙에 서 있는 소장에게로 다가갔다. ‘그것’들은 우리가 지나가는 순간들을 놓지 않겠다는 듯 어설프게 자라난 인간의 눈동자로 우리를 좇았다.
소장은 아멘티스와 짧게 대화를 나누더니, 우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연구의 고뇌가 쌓이지 않은 깨끗하고 새하얀 얼굴이었다.
“전 국가괴현상관리국 처리반 마르타 드레이크고, 이쪽은 같은 소속 시릴 벨베도르입니다.”
소장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신분을 밝히며 준비해 두었던 명함을 내밀었다. 소장은 내민 명함을 다 핀 손으로 막아 살짝 밀어내고는 풀로 붙인 듯 막혀있을 줄만 알았던 입을 뗐다.
“따라오세요.”
소장의 다섯 글자 뱉기가 끝나자 아멘티스는 손을 살짝 흔들어 구석에 있던 철문을 열고 들어가며 사라졌다. 이 괴생명체들이 갇혀 울부짖는 지독한 공간에 나와 시릴, 그리고 낯짝에 풀칠을 한 듯한 소장 뿐이 남았다.
소장은 유리에 손을 대고 살짝 쓸며 먼저 걸었다. 괴생명체들은 역시나 그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계속 시선을 좇았다. 소장이 그 입을 열고 안전합니다, 하고 말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이렇게 가둬두면 안전한가요?”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발걸음을 옮기며 따라오던 시릴이 소장에게 물었다. 소장은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그것’들과 눈을 마주했다. 사실, 그게 눈인지도 잘 모르겠다. 관절을 꺾고 비틀대며, 먹을 바른 듯이 빛을 삼키는 어둠을 가진 그것들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눈이라 할 수 없는 위치에 인간의 눈을 달고 있었다.
“아마 부술 수 없을 겁니다. 육안으로는 관찰할 수 없지만, 정밀하게 조직들이 엉겨 붙어 있거든요.”
소장이 유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안전하다기엔 역시 너무 투명했다.
“가둬두고 정확히 뭘 연구하죠?”
“완전 박멸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죠.”
시릴이 괴생명체와 일단은 눈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마주하며 물었고, 소장이 대답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 녀석들에겐 신체 재생 능력이 있어요. 처리 후 일시적으로 모든 기능을 중단하지만, 몇 주 후에 새로 재생된 신체로 다시 활동하죠.”
“그렇게 되면 같은 존재로 여기나요?”
“완전히 같은 존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처리된 수만큼 새로 재생되니 동일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다.”
시릴이 소장과 대화할 동안, 나 또한 괴생명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분명히 시선은 계속 나를 좇고 있지만, 위협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걸까.
“마르타?”
시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웃었다.
“그렇게 빤히 바라보다간 괴물이 너한테 반할 수도 있어.”
“농담 재미없어.”
“무섭나 봐?”
그렇게 즐거운지 그는 킥킥 대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소장을 따라가며 먼저 가버렸다. 그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중요한 얘기는 나중에 시릴에게 들으면 되겠지.
괴생명체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식인 괴물인 셈이다. 각자의 방법으로 죽지 않을 만큼 공격한 뒤, 기절한 인간을 음식 먹듯 들어 산채로 씹어 삼킨다. 다른 특징은, 잡아먹은 인간의 신체 부위 하나가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 신체가 특정한 역할을 할 수는 없는 것 같고, 테라토마와 같은 일종의 종양이라고 한다. 궁금한 점은, 이 생명체들도 감정이란 게 있을까? 근본은 짐승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점점 인간의 형태를 띄고, 일부는 인간의 5살 수준의 인식을 하는 경향도 보인다. 그렇다면 인식 그 이상의 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될까, 궁금해졌다.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이것은 그저 나를 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보였지만 말이다.
“마르타, 이만 돌아가자. 이 정도면 충분히 돌아봤어.”
“설명은 들었어?”
“뭐, 대충. 평소 알고 있던 거랑 다르지 않았어.”
시릴은 먼저 걸으며 소매를 손으로 툭툭 털었다.
“저 짐승들도 인간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될까?”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시릴은 내 말에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인간이 짐승 되는 건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을 덧붙였다.
“예를 들면 어떻게?”
“저것들은 인간을 잡아먹잖아.”
“…그렇지?”
“인간을 잡아먹는 건 야만인이나 하는 짓이지,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그런 행위를 할 리가 없잖아?”
“역사에선 위급한 상황에 서로를 잡아먹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지.”
“그 순간부터 인간의 자격을 잃고 짐승이 되는 거야. 하지만 짐승은 어느 날 갑자기 위급하다고 벌떡 일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겠다고 하지 않으니까.”
시릴의 말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저 갑갑한 공간에 갇혀 우리를 쳐다보던 괴생명체들이 우리처럼 정장을 입고 존댓말을 하며 국가괴현상관리국 처리반 괴생명체입니다, 하는 상상을 하니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다.
시릴은 연구소의 뒷문으로 나가 길을 돌았다. 여기서 본부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십 분 정도 걸으면 충분했다. 길거리는 벌써 밤이 집어삼켜 어두워져 있었다. 간간이 설치된 가로등만이 거리를 옅게나마 비춰주고 있었다. 가로등을 지날 때마다 몸을 스쳐 가는 주황빛이 지친 밤의 몸을 녹였다.
“아무도 안 지나다니네.”
시릴이 캔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뭐야. 그거 어디서 났어? 아까 없었잖아.”
“이거? 소장 자리에서 하나 가져왔어.”
내 질문에 그는 당연하다는 듯 커피를 살짝 흔들었다.
“훔쳐 왔다고?”
“날 뭐로 보는 거야, 정당하게 허락받고 가져왔지.”
“그래…”
사실 신뢰가 가진 않지만, 일단은 그렇다니 넘어갔다. 주변엔 정말로 사람이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이 어둡고 아름다운 도시에, 우리 둘뿐이었다.
몇 시간 후, 본부에 도착한 뒤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새벽이 다가오던 시각, 발코니로 나와 서로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별도 다 저문 어둠 속 담뱃불만이 조명이 되어주었다.
시릴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릴 적 계곡에 갔을 때, 나에게 미소년의 이야기를 해주었던 아이는 시릴의 형이었다. 아니, 시릴이 그의 동생이라고 하는 쪽이 내게는 더 익숙할 지도 모르겠다. 시릴과는 이 곳에 입사한 뒤로 처음 만난 사이다. 그럭저럭 죽이 잘 맞았고, 임무도 많이 겹쳐 항상 같이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항상 걸리는 점은, 시릴이 그의 동생이었다는 것이다. 가끔 시릴을 볼 때면, 그가 생각났다. 그는 그 계곡에서 처음 만나 친해진 나의 소꿉친구이자 오랜 절친이었으니까. 지금은 다시 친해지기에는 너무 멀어져 버린.
“시릴.”
“응.”
“원래 인간관계가 어려운 거였나.”
“…나 뭐 잘못한 거 있냐?”
“아니, 너 얘기 아니야. 그냥… 그런 게 있어. 무시해.”
시릴이 피식 웃었다.
“인간관계 어렵지. 원래 맞춰가는 게 제일 어려운 거야. 우리 정말 잘 맞는다, 하는 관계는 보통 한 쪽이 희생하고 있는 거거든.”
“…맞는 말이네.”
“너무 신경 쓰지는 마. 잘 맞지 않아도, 인정하고 지내면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어.”
그래, 나는 그 상황을 바로 회피했다. 순간적으로 든 배신감에, 대화를 이어갈 생각보다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 어떤 목소리도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게는 잘 맞지 않아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나?”
시릴이 나를 바라보며 농담을 던졌다.
“아니거든.”
“킥, 장난이야.”
맞지 않은 퍼즐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튀어나온 조각을 칼로 썰어 부러질 정도로 짓눌러 돌리며 맞춰댄다, 그 문장이 이상적인 관계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