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은 눈이 내리면 서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먹 같은 하늘에서 희멀건 것들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며칠 내내 늦은 시간까지 하늘을 올려다보다 시간을 죄 흘려보내고 만 바람에, 더는 미룰 수 없는 작문 숙제를 하려 창문을 굳게 닫은 이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흰 종이 위에 서걱거리는 연필이 몇 번 지나가면 문장이 완성되었다. 쓰이는 것보다 지워지는 게 더 많았지만, 한 번 남기기를 결정한 문장은 채워진 채 종이 위에 앉았다. 고요한 방에 유일한 소음은 이수의 소매가 책상을 스치거나, 종이 위에 문질러지는 지우개 소리, 연필이 종이 위를 긁는 것 뿐이었다.
툭, 툭. 낯선 소음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무시로 일관했으나 끈질기게 들려오는 소음에 결국 이수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근원지는 제 손으로 닫은 창문 너머였다. 가끔 짓궂은 장난을 치던 그가 떠올라 혹시 싶은 마음에 창문을 열자, 기대하던 손님이 아닌 불청객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겨울이 다가올수록 초조했던 마음이 눈송이를 본 순간 얼어붙는 것 같았다. 얼굴에 닿는 순간 사라질 덧없는 객과 함께, 문이 열린 틈을 놓치지 않고 들어온 파괴적인 겨울의 향기가 이수를 덮쳤다.
덜컥 겁을 먹었다. 첫눈은 쌓이지도 않고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라는데, 당장이라도 그가 떠날 것 같은 불안에 휩싸여서. 이수는 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하고, 신발도 구겨 신은 채 무작정 달려 나가 상점 문을 두드렸다. 통금 시간이라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를 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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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소란에 천천히 나온 인영이 문을 열었다. 서로 다른 색의 눈을 확인하자마자 이수는 그의 품에 안겼다. 어떤 말도, 설명도 없이. 그 역시 이수의 얼굴을 확인한 그 짧은 순간, 한 손으로 품에 안긴 이의 허리를 단단히 감싼 뒤 다른 손으로 등 뒤에 선 사람에게 손짓했다.
팔 하나에 다 담기는 여린 몸이 그의 품에 안겨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사정없이 떨리고 있는 온몸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만 진정되지 않은 상태의 이수에게 곧바로 물을 수 없어 그는 그저 안아주는 것으로 위로를 전달했다. 이수의 등에 닿는 손길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눈을 감고 그의 품에서 감정을 애써 눌러 내리는 이수의 코 끝으로 매캐한 담배 냄새가 맡아졌다. 철컥, 금속 장치의 둔탁한 소리까지 이어지자, 이수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었다. 담배를 문 채 막 탄창을 빼고 있던 미요시가 이수와 시선을 마주하곤 웃어 보였다.
“안녕, 이수.”
언제나 아름다운 이의 미소를 보자 제 꼴이 머리에 스쳐, 이수는 붉은 얼굴을 내려 숨겼다. 그 와중에도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되돌리는 이수의 뒷머리를 보며 미요시가 웃음소리를 흘렸다.
- “무슨 일이야.”
물음 뒤로 밖에서 통행금지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대답을 듣지 못한 그는 이수와 상점 밖을 나서는 대신 문을 잠그는 선택을 했다.
미요시는 총을 서랍 안에 되돌리고 있었고, 이수는 고개를 숙이고 선 채 손가락을 꾸물거리고 있었다. 이수에게 다가가자 이수가 고개를 들고는, 리처드…… 하며 그의 이름을 속삭였다.
- “무슨 일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