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할리우드 여배우인 모니카 스피어(곧 이 이름을 되찾을 것이다)는 정체가 탄로 나지 않도록 얼굴의 반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똑바로 고쳐 쓰고, 몸매를 가리기 위한 트렌치코트를 딱딱한 파이프 의자 위에서 잘 추슬렸다. 손에 들고 있는 번호 판는 아직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경매사가 다른 직원에게 손짓을 하자, 드디어 기다려온 순간이 온 것을 모두가 직감하였는지 경매장의 혼잡스러움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충분히 조용하게 된 후에도 한참 뜸을 들이고 나서, 경매사는 말했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여러분 앞에 선보입니다, 이번 경매의 주인공! 폴 메이어의 그림, '어떤 봄날의 풍경'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덮어 있던 가벼운 천을 날렵한 손놀림으로 치워 보였다.
앞에 있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그저 낡고 평범한 그림이었지만, 처음으로 실물을 마주하여 모니카는 마치 그 그림이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이 느꼈다.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가는 2천만 달러부터!"
"2천5백!"
"3천!"
일단 경매사가 매긴 첫 가격부터 시작을 하였지만, 여기 있는 이라면 아무도 이 그림이 5천 이하로 팔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잘 흥이 붙기만 하면 그 두 배도 충분히 넘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모니카는 스스로 온 것이다.
그녀는 꼭 이 그림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인 폴 메이어는, 평생을 평범하고 건실한 이발사로 살았지만 사실 태어났을 때부터 불가사의한 능력이 있었다. 그 초능력을 드러낸 적은 별로 없지만, 경찰에게 <피터 더 랩터>를 잡는 조언을 한 것으로 일반 오컬트 애호가에게도 유명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의 취미가 그림이었고, 그가 그린 몇 남지 않은 그림들에게는 모두 불가사의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다.
모니카는 온몸의 신경을 가다듬고 기회를 노렸다.
그녀의 수중에 있는 돈은 딱 1억 달러뿐이었다. 모니카는 원래 유복한 집에 태어났고 할리우드 시절에 번 돈도 있는 데다가 요즘까지도 피나도록 절약하여 돈을 모았지만, 이 그림을 반드시 낙찰하기에는 불안한 액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기회를 잘 노리고 있는 것이다.
때가 왔다.
"1억 달러."
그녀는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관중들의 시선이 집중하는 속에서, 모니카는 선글라스와 트렌치코트를 벗어던졌다.
".... 왕세자비님!"
가까이 앉아있던 남자가, 넋을 잃은 듯이 무심코 그녀의 현재 호칭을 불렀다.
폴 메이어의 '어떤 봄날의 풍경'은, 소유자를 원만하게 이혼시키는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이 그림을 가진 자는 모두, 배우자와 아주 사이가 좋았든 반대로 아주 격렬하게 재산다툼의 수렁에 빠지고 있었든, 모두 1년 이내에 깨끗하고 원만하게, 관계자 모두가 납득하면서 뒤끝 없이 행복하게 갈라졌다.
모니카가 이 그림의 존재에 대해 들은 것은 아직 자기의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던 신인 여배우 시절이었다. 그 후 그녀는 대스타가 되었다가, 유럽의 어떤 역사 있는 소국의 왕세자가 영화를 보고 그녀에게 반했고, 마치 동화에 나올 법한 로맨틱한 일이 일어나자 그녀는 그만 껌뻑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모니카는 자신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남편은 바람둥이인 데다가 폭군이었고, 왕실에 그녀의 편은 한 명도 없었다.
경매장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적절한 타이밍을 보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어, 그 자리를 접수한다.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곧 모니카가 기대한 대로, 경매사가 낙찰봉을 크게 들어 올리고 내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