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늘한 자각 끝에,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오는 기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죄책감과 연민, 그리고 소유욕이 뒤섞인 비틀린 애정의 시작이었다.
"안 되겠어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정신 붙잡고 있어요, 어떻게든 응급실로 데려다줄 테니까."
마음을 고쳤다. 이 고라니를 죽게 둘 순 없었다. 다시 남자를 들처매고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숲을 푸르스름하게 밝힐 때쯤, 저 멀리 가드레일과 아스팔트 도로가 보였다. 터널 옆으로 이어지는 외딴 국도였다.
"조금만 참아요. 다 왔어."
남자를 가드레일에 기대어 앉혀두고 도로 한복판으로 나섰다. 지나가는 차가 너무 없었다. 남자의 호흡은 점점 가빠지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안개등을 켠 육중한 실루엣이 다가왔다. 낡은 1톤 트럭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양손을 흔들었다.
트럭 기사는 침묵을 지켰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백미러로 나를 흘끔거리는 그의 시선이 칼날처럼 따가웠다.
기사는 병원 대신, 투박한 시골 읍내의 콘크리트 건물 앞에 차를 거칠게 세웠다. 파란색과 흰색이 기분 나쁘게 뒤섞인 간판, [〇〇파출소]였다.
"여기서 먼저 신고하고 병원 찾아가쇼. 꼴들이 영 수상쩍으니까."
기사가 툭 던지듯 말하며 문을 열었다. 파출소 유리문 너머로 제복을 입은 경찰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잡힌다. 감옥에 간다. 평소의 냉철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날것의 공포가 온몸을 지배했다.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남자를 경찰들에게 떠넘기듯 밀어 넣으며 다급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화장실…… 화장실 좀 급해서요."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파출소 뒷골목의 눅눅한 공기를 가르며, 인근의 이름 모를 야산 속으로 정신없이 기어올랐다. 가시덤불에 뺨이 긁히고 신발이 진흙탕에 빠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바위 뒤에 숨어 들여다본 휴대폰 배터리는 겨우 4퍼센트.
희미하게 깜빡이는 액정 지도를 더듬어 반대편 산등성이로 미친 듯이 걸었다. 안개를 헤치고 다른 작은 마을의 국도로 내려왔을 때, 기적처럼 낡은 초록색 택시 한 자루가 다가왔다. 나는 홀린 듯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