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위를 넘어 야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공기는 축축하고 비릿해졌다.
사방은 온통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가라앉은 이끼색과 푸르스름한 회색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달빛마저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처럼 탁하게 흩어지는 밤이었다. 질척이는 진흙 밟는 소리와 내 거친 숨소리만이 고요를 찢었다.
등에 업힌 남자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내 패딩 점퍼를 타고 흘러내려 끈적하게 엉겨 붙었다. 비린 혈향이 코끝을 찔렀지만, 나는 소매로 콧물을 쓱 닦아낼 뿐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의 나였다면 칠칠치 못하게 옷을 버렸다며 짜증을 냈을 텐데,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마침내 커다란 기암괴석 아래, 수풀에 가려진 좁은 바위 틈새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남자를 바위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팽개치듯 내려놓았다. 털썩.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고개가 꺾였다. 어깨의 감각이 마비된 듯 얼얼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흙바닥에 주저앉아, 허벅지를 탁탁 치며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억눌렀다.
'울 시간 없어. 정신 차려.'
스스로의 뺨을 세게 한 대 때려 이성을 붙잡았다. 그리고 냉철하게 심호흡을 한 뒤, 남자의 상반신 위로 몸을 숙였다. 지독하게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남자의 입에서 가느다란 입김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흔적을 지우는 것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남자의 주머니 안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원단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주머니를 뒤적이자 폰이 잡혔다.
침을 삼키며, 전원 버튼을 길게 누르고 배터리가 나갈 때까지 스마트폰을 바닥에 내리쳐 부숴버렸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이 다시 암전되었다. 푸르스름하게 잔상이 남았던 망막 위로, 잉크를 쏟아부은 듯한 야산의 어둠이 진득하게 감겼다.
이제 이 남자의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부서진 잔해를 축축한 흙 속에 파묻고, 숨을 죽인 채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짙게 가라앉은 이끼색 안개 사이로 가느다란 입김이 유령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춥다. 씨발."
암전된 어둠 속에서 짓눌리듯 터져 나온 남자의 거친 욕설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평소 세상만사 태연자약,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나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폭주했다.
반사적으로 놈의 품에서 떨어져 나가려 했지만, 내 외투를 움켜쥔 남자의 악력은 허벅지를 다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억셌다. 손가락이 내 옷자락을 파고들었다.
들켰다. 내가 자기를 쏜 범인이라는 걸 알아챈 게 분명하다. 온몸의 세포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진 남자의 밭은 숨소리와 초점 없는 눈동자를 본 순간, 내 서늘한 이성이 다시 돌아왔다. 놈은 통증과 오한으로 부르르 떨며 나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