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 호이1화 — 너는 사람이었다

CHAPTER 1

너는 사람이었다

고라니 · 약 3분 분량 · 2026.09.30

총기 수렵면허증과 지자체 유해야생동물 포획허가서.

아버지의 평생 자랑이자 우리 집 벽면에 훈장처럼 걸려 있던 그 서류들이 오늘따라 잔인하게 느껴졌다.

"ㅇㅇ동 일대 유해 멧돼지 출몰. 농가 피해 우려로 긴급 포획 요망."

오후 늦게 지자체에서 날아온 긴급 재난 문자가 화근이었다. 아버지는 익숙하게 장비를 챙겼고, 나는 그저 아버지의 일이 끝나면 근처에서 같이 파전이나 먹을 생각으로 가볍게 따라나섰다. 오후 4시를 넘긴 산속은 겨울 해가 짧아 벌써부터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여길 벗어나면 안돼. 멧돼지 궤적을 확인하고 올 테니 넌 총을 쥐고 대기해."

그것이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오후 5시를 기점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야산 속에서 아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끝없는 수풀과 짙게 가라앉은 안개뿐.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차갑고 묵직한 아버지의 엽총 한 자루가 전부였다.


"아버지 어디예요?"


답은 없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스산한 소리만이 귓가를 스쳤다. 그때였다.


거친, 거친 숨소리.


멀지 않은 수풀 너머에서 무거운 짐승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무엇인가가 나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온다. 사라라락. 숲을 헤치며 다가오는 속도감에 뇌의 회로가 정지했다.

당장 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탕—!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정적을 깨부셌다. 강력한 총의 반동이 그대로 내 어깨를 강타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격통에 어깨를 움켜쥐고 털썩 주저앉았다. 시야가 흐려지고 귀에서 이명이 웅웅거렸다. 고통보다 생존확인이 먼저였다.


내가 쏜 건 뭐였을까?


어깨를 부여잡고 잡나무 가지에 가려진 바닥의 검은 덩이로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간 순간, 심장은 그대로 멎어버렸다

"아……."

너는 사람이었다.

1화를 다 읽었어요.

이전 화
0%다음 화
1/8

어스름해지고 추적해지는 숲 한가운데,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은, 그것은 한 인간이었다.

죽은 걸까? 내가 사람을 죽인 건가?

평소 세상만사는 무사안일, 웬만한 일에는 무덤덤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나 이 순간만큼은 온몸의 피가 전부 빠져나가는 것처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사고가 정지되었지만 나는 다시 빠르게 중심을 잡았다.

119에 신고한다? 오발 사고라 해도 사람을 쐈다. 이대로면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생계도, 내 앞날도 끝장이다.

머릿속을 지배한 단어는 단 하나, 증거인멸이었다. 냉철해진 판단력이 나를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진 총을 거칠게 낚아채 어깨에 메고, 쓰러진 남자의 맥박을 짚었다. 다행히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죽지 않았다면 더더욱 흔적을 지워야 한다. 주저 없이 남자를 들처맸다. 반동으로 다친 어깨의 통증은 이 상황을 가려야 한다는 맹목적인 집착에 묻혀 느껴지지도 않았다.

사고 장소에서 벗어나야 했다. 총을 버리고 앞으로 계속 걷자 고속도로 터널 바로 위를 지나는 산등성이가 나타났다. 터널 아래로는 차들이 전조등을 켜고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겠지만, 이곳은 그 소음조차 아득하게 묻히는 완벽한 단절의 공간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터널 위 숲길을 기어오르듯 넘었다. 가파른 능선을 지나,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야산의 더 깊고 어두운 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남자의 축 늘어진 무게감이 내 죄의 크기처럼 나를 짓눌렀지만, 내 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