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적 캐릭터 · 제이여라2화 — 2화

CHAPTER 2

2화

작위적 캐릭터 · 약 9분 분량 · 2026.10.05

서늘한 총구가 세 사람을 둘러쌌다. 레베카가 몸을 돌려 달려왔다. 그녀의 온 얼굴이 일그러졌다. 난생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레베카는 그대로 크리스와 세라를 감싸 안으려고 두 팔을 벌렸다. 단말마처럼 총성이 울렸다. 피가 주변으로 튀겼다.

“엄마……?”

크리스가 쓰러진 레베카를 안아 들었다. 그녀는 눈을 반쯤 뜬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하얀 손끝 위로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크리스는 계속해서 레베카를 흔들었다.

엄마. 크리스가 천천히 그녀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크리스의 중얼거림이 허무하게 사그라졌다.

그녀의 피부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세라가 비명을 내질렀다.

“엄마!”

“시끄러워!”

군인 한 명이 다시 총을 겨누었다. 철컥, 쇳덩이들의 마찰음이 방안을 울렸다. 크리스는 휘청이는 세라를 부축했다. 군인들 사이에서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한 사람이 레베카를 발로 찼다.

“명령대로 처리 완료. 목표는 살아있군.”

크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본능에 따라 크리스는 손바닥을 펴 눈을 가리고 세라를 감싸 안았다. 군인들 중 한 명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이렇게 공을 들여 달랠 필요없다. 그냥 데려가. 시간이 없어. 황명이 있었다. 우리의 임무는…….”

큰 굉음이 집 안에 울렸다. 집 문이 부서진 것 같았다. 군인들이 술렁이며 총구를 뒤쪽으로 겨누었다. 챙이 아주 넓은 모자를 쓴 사람이 또각또각 집 안으로 들어왔다. 우아하고 섬세한 몸짓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누구냐!”

크리스는 순간 넋을 놓았다. 상황에 맞지 않는 표현이었지만 그가 싱긋 웃는 입꼬리가 마치 사람이 아닌 듯 아름다웠다. 그는 그대로 묶고 있던 머리카락을 풀었다. 허벅지까지 풀어진 머리카락은 자아를 가진 듯 구불구불 움직이더니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한 군인의 목덜미를 낚아채 그대로 벽에 꽂아 넣었다.

겨우 상황을 파악한 군인들이 그를 향해 총을 일제히 쐈다. 그녀는 날개가 달린 듯 가뿐히 총알들을 피하며 한 명씩 숨을 끊었다. 그 비현실적이게 아름다운 모습에 크리스와 세라는 두 눈을 깜빡였다. 후, 숨을 내쉰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머리를 올려 묶었다. 그러곤 천천히 크리스에게 손을 뻗었다. 크리스가 세라를 안고 다시 몸을 웅크렸다.

“음, 혹시 상황을 이해 못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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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은 상황에 맞지 않지만 황홀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도자기처럼 생긴 걸까. 마치 하나하나 공들여 세공한 것처럼 각져있다. 리에는 힐끔 레베카를 바라보다 활짝 웃었다.

“그래도 늦지 않았네.”

“다, 다가오지 마!”

세라가 급하게 말을 막았다. 크리스가 세라를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너랑은 초면인데 널 어떻게 믿어? 우리도 죽일 생각이지? 아니면 어두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던가……!”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세라에게 눈을 맞췄다.

“반은 정답, 반은 틀렸어. 어두운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난 밝은 곳에서 왔어.”

“뭐?”

크리스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가 천천히 허리를 펴며 모자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면 신뢰의 의미로 눈과 이름을 보여줄게. 내 이름은 리에.”

그녀의 눈동자는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세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에는 세라에게는 맨손을, 크리스에겐 흰색 머리카락 덩이를 내밀었다. 머리카락을 잡고 일어서는 느낌은 묘했다.

“네 어머니의 일은 유감이야. 내가 늦었어.”

리에는 레베카를 포함한 사상자를 모두 땅에 묻어주었다.

묻는 그 순간까지도 세라는 레베카의 손을 놓지 못했다.

“우리 엄마 추운데⋯⋯.”

크리스는 세라를 껴안아주었다.

리에는 천천히 그녀의 무덤을 내려다보다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세라는 만들다가 만 목도리를 천천히 무덤에 둘러주었다. 아직 다 뜨지 않은 짧은 목도리였다.

레베카는 항상 목도리를 길게 만드는 걸 좋아했다. 목에 감으면 누군가 안아주는 것 같다나.

세라는 항상 레베카를 위해 긴 목도리를 뜨려 했지만 실패하곤 했다.

“미안해, 난 또 엄마한테 줄 목도리를 만들지 못했어.”

이제는 영원히 주지 못하게 된 목도리.

그 위로 눈이 내렸다.

세라는 고개를 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흐느끼는 세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허공에서 멈추었다. 거친 바람이 세 사람을 감쌌다.

몸과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행복이란 유리와도 같다는 말을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가장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깨지면 그만한 아픔이 없다고…….

온몸에 유리 조각이 박힌 듯한 고통.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크리스와 세라를 감쌌다.

“가자.”

리에가 손짓했다. 크리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도와준 건 고맙지만, 우리가 아직 널 믿어야 하는 이유는 없어.”

“너희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마침 있어서. 예를 들면 장로라던가. 너희도 돌봐주겠대.”

리에는 천천히 크리스와 세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세라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엄마⋯⋯.”

“응?”

“엄마는 어떻게 해? 우리 엄마 혼자 놔두면 안 돼.”

휘청이는 세라를 부축하며 크리스가 말했다.

“엄마 물건이라도 챙기게 해줘. 부탁할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크리스는 세라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리에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근처 벽에 기대섰다.

집 안으로 들어가던 크리스의 발치에 무언가 치였다.

레베카의 거울이었다.

크리스는 천천히 거울을 들어 올려 주머니에 넣었다.

“다 챙겼어?”

리에가 고개를 까딱이며 앞장섰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나무엔 불이 붙어 있었고 어제 봤던 우리 집도, 빵집도 전부 다 타서 재가 돼버렸다. 그 광경을 멍하게 보던 세라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워워, 울지마. 예쁜 아가씨.”

리에가 세라의 어깨 위로 머리카락 덩이를 올렸다. 세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리에를 바라봤다.

“애초에 네가 늦게 오지 않았다면 엄마는 아직 살아있었을지도 몰라⋯⋯.”

“으음⋯⋯.”

리에의 낯빛이 약간 변했다. 리에가 이어 말했다.

“맞아. 난 항상 한발 늦더라.”

세라의 이마 위에 핏줄이 솟았다. 달려들 기세의 세라를 겨우 말린 크리스가 리에에게 물었다.

“목적이 뭐야.”

“목적이라⋯⋯.”

리에가 잠깐 고민에 빠지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래도 한 가지는 알려줄게. 네 어머니는 그냥 고아원 선생님이었는데 왜 군인에게 최후를 맞아야 했을까?”

크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질문의 답을 원해?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

세라는 천천히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레베카의 일기장을 안고 있던 크리스의 손이 떨렸다. 리에가 말했다.

“일단 가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리에는 그들을 사방이 가려져 있는 마차에 데려갔다. 리에가 돈뭉치를 건네자 마부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그들을 숨겨주었다. 마차는 끝없는 오솔길을 달렸다. 리에한테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도 리에는 아무런 말 없이 그 수려한 입꼬리를 위로 올릴 뿐이었다.

마차가 멈춘 곳은 숲 한 가운데였다. 그들이 내리자 마부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 사라졌다. 세라가 말했다.

“여긴 어디야. 집 같은 것도 보이지 않잖아.”

“여기서부턴 걸어가야 해.”

리에가 앞장서며 천천히 손짓했다. 그렇게 다시 오랫동안 숲 속을 걸어가니 아주 작은 폐가가 나왔다. 리에가 폐가의 바닥을 더듬자 다락문이 하나 나왔다. 리에는 다락문을 열고 두 사람을 다락문 안쪽으로 밀었다.

“뭐, 뭐하는 짓이야!”

그렇게 밀려온 다락문의 안쪽은 또 다른 숲 속이었다. 그런데 뭔가 다른 숲과는 달랐다. 크리스와 세라의 상식 속에선 숲이란 구불거리는 나무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이었는데 이 숲은 나무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올곧게 뻗어 있었고 나뭇잎이 없었다. 동물의 울음소리나 풀벌레가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도 않았다.

“여긴 어디야.”

“자, 안쪽. 집 보이지?”

시선을 옮기자 아주 큰 저택이 서 있었다. 아니, 저택이 아니라 대저택이라 불릴 정도로 크고 앙상한 집이었다. 리에는 두 사람의 어깨를 잡고 다시 대저택의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엄청난 힘으로 밀려난 두 사람은 어느덧 대저택의 거실 안쪽에 서 있었다.

“너희로구나.”

“누구야?”

커튼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천천히 사람 형체를 띄었다. 목소리는 그 형체에서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