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은 명함을 손에 든 채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먼지 한 톨 없는 본체의 전원 버튼과 역시 멀끔한 모니터를 켠다. 로딩음과 기계장치 돌아가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약 1분 후 컴퓨터가 켜졌다. 아델은 지체하지 않고 검색창을 열어 ‘레전드 연구소’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404 ERROR Sorry We Can’t Find That Page!
이럴 줄 알았다. 클리셰적인 결과에 아델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대로 드라마가 끝나버린다면 참 좋겠건만, 아델은 아직 무대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멈춘 컴퓨터 대신 멋대로 켜진 프린터기가 인쇄물을 뽑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델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프린터기로 나온 인쇄물을 천천히 살펴 보았다. 미로찾기였다.
이런 퍼즐은 사실상 마주친 순간 본능이 풀어버린다. 가령 미로찾기의 경우, 입구에서 출구가 아닌 출구에서 입구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의 수를 따지면 순식간에 풀어버릴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왜 이렇게 재미없는 걸 준비했을까. 방문을 열면 미로라도 펼쳐지려나. 그럴 리가 없지. 아델은 책상 옆에 푼 흔적 없이 깨끗한 종이를 내려놓고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그에게는 일어난 직후 몸을 씻고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이 있었다. 열린 방문 너머에는 당연하게도 평소의 집이 있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아델은 확실히 번듯한 사회인처럼 보였다. 적어도 어젯밤의 신경증 환자같은 모습에선 확실히 벗어나 있었다. 기절잠이라도 잔 덕분이겠지. 아델은 속으로 포말하우트에 대한 감사함과 반감 섞인 미묘한 감정을 진정시키며 냉장고를 열었다. 전체적으로 텅 빈 냉장고 안에 붉은 사과 몇 알이 들어있는 게 눈에 띄었다. 아델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 중 한 알을 집었고, 싱크대에서 가볍게 헹군 뒤 송곳니로 그것을 깨물었다. 막 양치를 한 입에 과일이 들어오니 쓰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에 먹는다는 행위를 그만둘 만큼의 구실은 없었다. 다른 생명이라곤 하나도 없는 집안에 아델의 사과 씹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던 중이었다. 바닥에 무언가 푸른 파편이 반짝이고 있는 게 보였다. 아델의 시선이 무심코 그것을 향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눈을 마주친다.
그것은 순식간에 솟아올라 아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밖으로 나와.’ 그렇게 말한 그것은 아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의 허리를 휘감고는 순식간에 현관으로 이동했다. 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아델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그 괴상한 무언가에게 떠밀려 백색의 공간 너머로 떨어지고 말았다.
눈앞에 온통 새하얀 정경이 펼쳐졌다. 보기에는 눈밭 같은데, 바닥이 매끈하고 딱딱했다. 아델은 주위를 살펴 보았다. 자신이 서 있는 방향 기준으로, 양옆과 뒷쪽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오직 앞쪽, 저 너머에만 초록빛이 살짝 보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일단 그 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이 공간에 떨어지고 나서 이상하다는 감각을 느낀 것은 이 공간에서 벗어난 후에야 벌어진 일이었다.
아델은 정원수가 가득한 길으로 들어섰다.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 분명히 아까 프린팅된 그 미로다. 입구가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 걸 보니 70% 정도는 확신할 수 있다. 이제 아델에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었다. 전자는 이미 풀어본 미로라는 것, 후자는 그 시험지를 두고 왔다는 것. 아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 있지 않은가. 몸이 좋으면 머리가 편하고, 머리가 좋으면 몸이 편하다. 아델은 어느 한쪽 뒤처지지 않게 뛰어난 축에 속했다. 그렇기에 항상 겪는 상황이 극단적이었다. 몸이 고생하고 머리가 고생하거나, 머리가 편하고 몸이 편하거나. 그 중에서도 아델은 후자의 상황을 선호했다. 할 수 있는 한 일에 앞장서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에 놓인 상황은 어쩔 수가 없었다. 머리를 쓰면 몸이 고생하고, 머리를 안 쓰면 몸이 뒤지게 고생한다. 아델은 마음속으로 저울질을 해 보았다. 역시 몸보다는 머리가 고생하는 편이 더 편하다. 그렇게 생각한 아델이 눈을 지긋이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