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창조된 이래 가장 현명했던 자들이 연구하고 꿈꾸어 온 것이 이제 내 손안에 있었다.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지음
아델은 답지않게 한숨을 쉬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유 모를 악몽, 아니 사실 악몽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는 사나운 꿈자리에 고통받고 있었다. 깨어난 순간 모든 기억이 날아가 버리는 꿈. 텅 빈 마음의 자리를 불편함으로 가득 채우는 그 꿈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는 제 코 아래로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붉은빛 뜨거운 액체를 손으로 받아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협탁 위 탁상시계의 짧은 바늘은 3과 4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욕실에 들어선 아델은 물을 틀고 피를 씻어냈다. 붉은 생명의 색이 투명한 물과 섞이며 녹아내린다. 그리고, 푸르게 빛난다.
“……?”
푸른 피를 가진 생물은 이 세상에 많다. 아델이 과학쪽으로 식견이 깊은 건 아니었지만, 백신을 만들 때 쓰는 투구게의 피가 파란색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나는 투구게인가?
아니, 아마도 아닐 것이다. 투구게는 갑각류에 속하지만 아델은 갑각류가 아니다. 그는 분명히 포유류였다. 온몸에 털이 얇게라도 나 있고, 추위 속에서도 한동안 체온을 유지하며,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히 어미의 젖, 하다못해 비슷한 것이라도 먹고 살았을 것이다. 그럼 왜 피에서 푸른 빛이 나는 것일까. 아델은 제 손에 끈적히 묻은 붉은 피를, 어느새 막힌 세면대에 은은하게 내려앉은 푸른빛을 번갈아 보았다.
모르겠다. 아델은 손에 남은 피를 마저 씻어내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에게 병증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저 환각을 보았을 뿐이고, 그저 수면 장애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설명됐다. 아델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러나 다시 잠들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편두통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편두통 환자의 25%~30%는 전조가 있는 편두통을 앓는다. 아델도 그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아델은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종전의 이상 현상이 단지 편두통 전조의 시야 이상일 뿐인가. 글쎄, 온갖 전조란 전조는 다 겪어본 아델이었지만 양쪽 눈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전조는 경우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전조니 뭐니 하는 것들을 지금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첫 통증이 이 정도면 이후에 이어질 것들은 더 하리라. 아델은 눕히려던 몸을 다시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그곳에 약을 모아두는 상자가 있었다.
편두통 발병 시 트립탄 복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제 집에 놓인 물건의 위치라면 전부 강박적으로 기억하는 아델에게는 간단한 일이었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상자에 손을 넣어 약병을 찾아낸 후 내용물을 털어내 물 없이 삼켰다. 곧이어 트립탄의 부작용이 몰려온다. 수도 없이 먹어온 만큼 내성은 생겼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그 부작용이.
몸은 천천히 내려앉고, 근육에 위화감이 느껴지며, 심장 부근이 조여온다. 머리의 통증이 말끔하게 사라짐과 동시에 정신이 나른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다. 아델은 거실 소파에 등을 대고 누운 채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 속도는 점차 느려졌고, 이윽고 아델의 눈꺼풀이 완전히 감기었다.
꿈 속은 푸르렀다. 거대한 푸름이 아델을 덮쳐온다. 눈앞에 거대한 빛이 아른거리며 시야를 뒤흔들고, 얇디얇은 실타래가 세상을 엮어낸다.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며 시선을 빼앗은 푸른 빛무리가 한데 모여 무언가를 빚어낸다. 무심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 본 아델이 숨을 들이킨다. 아, 이 얼마나 불행한 운명인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