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석 단편선 · 솔아래2화 — 수심

CHAPTER 2

수심

상지석 단편선 · 약 12분 분량 · 2026.09.30

민주에게.


민주야. 요새 잘 지내? 오랜만에 편지 쓴다. 어릴 때 우리 종종 이렇게 편지 주고받았는데 기억나? 그냥 오랜만에 네가 보고 싶었어. 그냥 요새 학교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들이 있어서 네 생각이 나더라. 우리가 그때처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이렇게 생각나면 편지 한 번 쓸 수 있는 사이인 건 맞지?


우리 학교 뒤에 작은 연못 하나가 생겼어. 원래 작년까지는 없었는데, 올해가 되고 새로 생긴 거 있지? 말이 연못이지, 수심은 채 5cm가 안 돼. 심지어 땅 위도 아니고 콘크리트 틀 위에 물이 조금 담겨 있는 수준이랄까. 학교 리모델링을 맡은 건축가가 되게 유명한 사람이더라. 그 사람은 연못을 통해서 학교에 부족한 채광을 채워주고 싶었대. 학생들이 더 밝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좋았어. 학교 안에서 보면 연못에 반사된 빛이 천장을 가득 채워서 꽤 예뻤거든. 너 어렸을 때, 건축학과 가고 싶어 했잖아. 분명 너도 이 연못 좋아했을 거야.


물론 수심이 5cm 정도밖에 안 되니까 거기에 뭘 키우지는 못해. 금붕어, 연꽃, 부레옥잠은커녕 물만 덩그러니 놓여 있지. 그런데 거기서… 놀라지 마.


우리 학교 학생이 죽은 거 있지? 나랑 같은 학년인데 그 연못에 빠져 죽었다는 거야. 아니 그게 말이 돼? 키가 3cm만 넘어도 거기 빠져 죽지는 않을 거야. 어떻게 그 깊이에 빠져 죽을 수가 있어. 이건 카더라인데, 목숨을 잃은 학생을 부검해 보니까 액체가 폐포와 기도로 흡입돼서 질식사했다더라. 너도 잘 알지? 이게 전형적인 익사의 모습인 거. 그런 수심에 빠져서 죽을 수 있다니 다들 놀라 하더라?


심장이 두근두근해. CCTV도 없어서 어떻게 죽었는지 증거 같은 것도 없나 봐. 모두들 그냥 사고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조금 불운하고 예외적인 그런 사고 있잖아. 선생님들이 연못 좀 조심하라고 말은 하시는데, 솔직히 5cm짜리 연못을 무슨 수로 조심하겠어. 애들한테는 그냥 이슈 거리 하나 생긴 느낌이야. 물론 울거나 놀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난 이런 꼴이 좀 웃기더라.


민주는 거기서 잘 지내? 거기서 새로 친구는 사귀었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좋은 소식 있으면 편지할게!

2022. 03. 17.

영주 씀.


민주에게.


며칠 전에 진짜 서프라이즈!!한 일이 있었어. 내가 지난번에 말했던 일 기억 나? 오늘 들었는데 다른 학생 한 명도 연못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됐대. 미쳤지. 사인도 똑같이 질식사라는 카더라가 있더라. 엊그제부터인가는 학교에 이상한 소문도 돌기 시작했어.


학교가 지어지기 전에 이 자리에 깊은 연못이 있었는데 거기서 몇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나?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물귀신이 됐단 거지! 옆 반 친구는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고 집에 가는 날에 그 근처에서 귀신을 봤다고 난리야. 좀 웃기지 않아? 귀신이라니.


애들은 다 그거 믿고 무서워하는 눈치이긴 해. 그치만 그냥 우연히 겹친 사고라고 생각하는 애들도 있더라. 학교에서는 그 일 있고 나서 학교 주변 순찰하고 안전 예방 교육한다고 하던데. 좀 우습긴 했어. 물에 빠진 친구들 구하는 방법, 물에 빠졌을 때 대처 요령. 아니 5cm 되는 물에 누가 빠진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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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도 계속 왔다 갔다 했는데 아직까지는 별 혐의 같은 건 발견 못 한 모양이야. 이번에도 CCTV는 없었거든.


지난 번에 소개해준 친구랑은 잘 지내고 있어? 너희 성격이 꽤 닮아서 잘 어울릴 거야. 참을성 있고, 성실하고, 친구 소중히 여길 줄도 알고. 잘 지내봐. 또 다른 친구 하나 곧 소개해 줄게. 좋은 소식 기대해!


2022. 04. 20.

영주 씀


민주에게.


내가 소개해 준 친구들이랑은 좀 지낼만 해? 내가 일주일 만에 아주 빅 뉴스를 들고 왔지. 어떤 일일까? 맞춰봐. 두구두구두구두구… 바로 지난번에 이어 또 다른 친구 하나가 죽었지 뭐야. 이번에는 전교 10등 정도 하는 아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성적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더라. 덕분에 뭐 내 석차는 올라갔지만!


그 아이는 연못에 바짝 엎드린 채로 죽어 있었대. 어른들은 성적 비관해서 죽은 거 아니냐, 연못 감시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런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학교에서는 결국 연못 앞에 CCTV를 설치하기로 했대. 새벽 시간대만 제외하면 선생님들이 계속 돌면서 순찰도 하고! 정말 안전하겠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귀신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세인가 봐. 이 자리에서 죽은 사람들이 교장 선생님한테 빙의를 해서 연못을 만들게 했다더라. 재밌지. 어딜 가나 사람들 생각하는 게 비슷비슷한가 봐. 근데 뭐 괴담이잖아. 증거는 없어. 물에 젖은 신발 소리를 들었다, 온몸이 젖은 채로 학교를 배회하는 학생을 봤다… 내가 아는 너라면 절대 안 믿을 거야. 아마 걔들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너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도 좋은 소식 있으면 연락 줄게. 다른 친구 한 명도 너랑 친해지고 싶다더라! 걔 공부 잘하는 애니까 친하게 지내봐! 아, 그리고 내가 요새 다른 친구들이랑 논다고 너무 서운해하지 마. 너는 나한테 영원히 처음이니까.


2022. 5. 1.

영주 씀


민주에게


너무 오랜만에 편지 쓴다! 요새 너랑 친해지고 싶다는 친구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어. 그런데 당분간은… 이번이 마지막 소개일 거야! 네 친구들 더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됐어! 너무 아쉬워하지 말고!


이번에도 한 명이 더 죽었어. 사실 서너 달 가까이 조용히 했었거든. 그래서 아마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좀 방심하고 있었던 것 같아. CCTV가 감시 잘 하고 있으니까 선생님들도 순찰을 좀 설렁설렁하신 건 아닌가 싶고. 아무튼, 이럴 때 문제가 생겨. 너도 조심했어야 해. 방심하면 당하는 건데.


아, 이번에는 좀 특이한 점이 있어. 이번에도 다른 익사 사건들처럼 질식사가 사인이라는데, 문제는 시신이 연못 밖에서 발견됐다는 거야. 연못에서 20m쯤 떨어진 화장실이라나. 웃기지 않아? 화장실. 연못에 빠져 질식한 사람이 어떻게 화장실 근처까지 가서 죽었는지 다들 엄청 궁금한 모양이야. 근데 그것도 웃긴다. 다들 연못에 빠져서 죽은 거라고 확신하고 있잖아. 이런 확신은 좀 위험하지 않나 싶어.


아 맞아. CCTV는 점검 중이었대! 화장실 앞은 학생들이 잘 안 가는 곳이라 마침 거기도 CCTV가 없었고.


한 가지 더 말해주자면 이번에도 그 죽은 학생이 성적이 좀 많이 떨어졌었대. 세 번째 학생과의 공통점인 거지. 나는 둘 덕분에 성적이 좀 올랐지만 말이야. 경찰도 그동안은 학부모 항의다 뭐다 해서 잠잠하더니 네 명이 죽었다니까 발등에 불이 좀 떨어졌나 봐.


경찰은 연쇄살인 사건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범인으로 잡힌 사람이 누군지 알아? 학생부장 선생님이야. 학생 네 명 다 죽기 전날, 혹은 직전에 학생부장이랑 면담을 했다는 게 그 이유라나. 리모델링에 참여해서 동선도 잘 안다는 게 이유라나. 그런 건 이 학교 1년만 다니면 다 아는 건데. CCTV 점검 일정 등도 꿰고 있다는 것도 이유래. CCTV 점검 일정이야 보통 학생들은 알기 어렵겠지.


선생님은? 당연히 부인하지. 세 번째, 네 번째 학생의 경우, 성적이 크게 떨어져서 걱정이 되어 면담을 한 거라고 하더라. 첫 번째, 두 번째 사건의 경우 학생들이 먼저 면담을 요청했다고 그랬고. 첫 번째, 두 번째 학생은 학교폭력 때문에 학생들이 면담 요청했다고 하던데 결국엔 아무런 말도 안 했던 모양이야. 상담 일지에 아무 것도 안 적혀 있더라. 물증은 당연히 없고. 물에 빠져 죽은 학생들한테 무슨 물증.


입시 결과가 안 좋아질까, 학생들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쉬쉬하던 학부모들의 여론도 조금씩 바뀌더라. 학교 측도 항의에 못 이겨서 연못이 있던 곳에 학생들이 넘나들기 힘든 높이의 펜스를 설치하고, 물도 모두 비워버렸고. 이제 뭐, 더 이상 안 죽지 않을까?


당분간 친구 소개는 어렵겠지만, 거기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내 친구들한테도 안부 전해줘. 좋은 소식 있어서 또 편지 쓸 수 있게 기도해주고!


2022. 09. 13.

영주 씀


민주에게.


민주야! 지인짜아 오랜만이지. 거의 1년 만에 편지 쓰는 거 같다. 그동안 쓴 편지 들고 너 보러 가야 하는데 영 시간이 없네. 용서해줘, 수험생이잖아. 그 동안 잘 지냈어? 친구들이랑도 잘 놀고? 그냥 오랜만에 근황이나 전할까 했지. 그리고 대충격적인 소식도 하나 들고 왔고!


나는 요즘 성적이 많이 올라서 기분이 좋아. 이대로라면 원하는 대학 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모두 네가 거기서 응원해준 덕분이야. 수능 시험도 착착 준비 잘 되고 있고. 넌 수능 이야기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너 열심히 공부했었는데 안타깝다.


아. 얼마 전에 비가 엄청나게 왔는데 그날 반장이 실종됐어. 폭풍 오듯이 비바람이 쳐서 갑자기 정전 되고 난리도 아니었거든. 근데 정전 직전까지만 해도 앉아 있던 반장이 불이 들어오니까 없는 거야. 마침 종례 시간인데 갑자기 사라져서 우왕좌왕 난리도 아니었지. 웃겼어. 그리고 반장은 다시 학교에서 볼 수가 없었어. 집에도 연락 해봤는데 집에도 안 들어왔다 그러고 말이야.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연못 근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더래. 학생부장 선생님이 펜스를 열고 딱 들어가보니까 거기 반장이 있었어. 그 냄새는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였지. 부검 결과는 어땠는지 알아? 너도 잘 알겠지만 바로 익사. 사람들 완전 멘붕이었지. 아니 물은 다 뺐는데, 펜스도 다 막아봤는데 어떻게 들어왔고, 어떻게 죽은 거지?


CCTV는 마침 정전이 됐던 터라 찍힌 게 없고, 펜스 열쇠는 학생부장님이랑 시설실에만 있는 거라 누가 열었던 것 같지도 않아.


좋은 소식 하나 더. 나 반 1등했다! 미쳤지. 원래 위에 그 반장 걔가 전교 1, 2등 하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없으니까 내가 1위를 딱 차지해버렸지 뭐야. 걔 입장에서야 아쉽겠지만… 뭐 어쩌겠어. 내신 관리 중요하잖아. 9월 모의고사도 그렇고. 학생한테 그런 수심에 빠져 있을 시간이 어딨어.


아, 오랫동안 친구 소개 못해줘서 좀 심심했었지? 이번에는 진짜 똑똑하고 리더쉽까지 있는 친구야.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또 편지 할 일 있으면 할게!


2023. 09. 30.

영주 씀.


민주에게.


아마 이번이 마지막 편지일지도 모르겠어.


걱정하지는 마. 안 좋은 일 있는 건 아니고, 이제 더 이상 너에게 친구 소개해주는 건 어려울 것 같아서. 그때 기억 나? 우리 같이 중학교 다닐 때 너 나 말고 친구 없었잖아. 그런데 이제는 꽤 친구들이 늘어난 것 같아서 내가 다 뿌듯하다, 야.


며칠 전에 졸업식 즈음 다 돼서 학교에 갔는데 옆자리 앉아 있던 애가 그러더라. 자기 아빠가 경찰서에서 일하는데, 그 동안 우리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들 어떤 학생이 자기 맘에 안 드는 애들 괴롭히다가 죽여버린 거라고. 성적 좋았던 애들 두 명은 자기 성적 올리려고 죽인 거라고. 경찰에서 조사는 다 끝났는데, 그 학생 가족이 경찰 고위직이어서 그냥 덮은 거라고 하더라.


이건 좀 억울하다. 나는 우리 민주한테 단지 좋은 친구들 소개해주고 싶었던 건데 말이야. 그치.


걔 꽤 자세히 알더라. 그 학생이 자기랑 노는 애들이랑 같이 화장실 변기에서 물고문해서 죽였다고. CCTV가 있을 때는 연못 근처에 못 가서 그냥 화장실 앞에 버린 거라고, 비가 올 때 반장을 죽인 건, 펜스를 넘어가지 못하니까 수도용으로 만들어 놓은 넓은 배관을 통해서 시체를 옮긴 거라고 말이야. 물 고문을 하다니 너무 끔찍하다길래 내가 너 생각해서 공감 좀 해줬어. 물고문이 끔찍한 건 당해본 사람이 알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 너는 그래도 무슨 느낌인지 알아서 잘 공감해줬으려나?


그래도 내가 그랬다는 건 모르는 눈치야. 다행이지. 알았다면 네 친구 한 명 더 생겼을지도 모르겠어. 그치만 아무래도 여섯명 정도면 딱 적당하지? 짝수라 어디 놀러 가기도 좋고 말이야. 아, 거기는 굳이 안 놀러가도 경치도 좋고 그러려나? 내가 너가 사는 곳 본 건 넷플릭스 드라마에서가 전부라서.


이만 마쳐야겠다. 나 이번에 졸업생 대표로 뭐 하나 하기로 했거든. 곧 연습이야. 멋지게 해내고 올게.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 해!


2024. 02. 18

영주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