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엄마. 아니에요. 저 잘 지내요. 아뇨, 오실 필요 없어요. 저 그날도 출근할 것 같아요. 민주 결혼하는 데 돈 좀 보탤 수 있겠냐고요? 한 번 확인해 볼게요.” 어머니에게 걸려 온 전화에 확인해 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잔고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6,411원. 남은 돈의 전부. 그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그게 비단 지갑 사정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민준 기자, 이야기 좀 하죠.” 몇 달 전 일이다. 그는 최 이사가 자신을 호출할 때부터 불길함을 느꼈다. “아시겠지만, 지금 이런 기사 쓰는 거, 조회수에 아무 도움도 안 돼요. 사람들이 자살한다? 이런 거 뻔한 주제인 거 몰라요? 이미 다 관심 끝난 철 지난 이야기라고요. 사람들 관심 가질만하게 좀 자극적으로 쓰든가요. 뭐, 원인이 뭐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네, 사람들이 궁금해나 합니까? 민준 씨도 MZ 세대 아닙니까? MZ 세대가 관심 가질만한 이야기들 얼마나 많아요?”
“그건 그냥 불행을 포르노로 삼는 겁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옳냐, 아니냐를 물어보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돈이 안 된다고요. 민준 씨 월급은 하늘에서 뚝 떨어집니까? 이렇게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대표님이랑 인사팀이랑도 얘기 다 된 거니까, 너무 당황하지 말고요. 이번 주까지만 출근합시다. 알죠, 요새 언론사 어려운 거?” 그에게 항변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자르면 잘려야 했다. 많은 동료들이 잘려 나가는 걸 보고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본인의 탓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이후로, 그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그때 조금 더 기사를 잘 썼으면 됐을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하면서도, 동시에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소재가 있었을 텐데. 처음에는 최 이사를 탓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자책이 한 구덩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후 그는, 계속 방에 박혀 있다. 무언가를 도전하지도 시작하지도 못한다. 포트폴리오를 들고 다른 언론사를 찾아가 봤지만, 그에게는 면접을 제안하는 곳조차 없었다. 이건 다 내 실력 탓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에게 여유가 없어진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공간이었다. 그의 집,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은 한 평이 채 되지 않았다. 그의 집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해고 통보를 받고 2주쯤 지났을 때, 오지 않는 잠을 술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방 안에는 소주병과 시덥잖은 안주 찌꺼기, 그걸 포장하던 포장지가 모여 그가 밟을 수 있는 땅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소주병은 소주병을 낳았다. 쓰레기 위에는 쓰레기가 쌓였다. 치워야지, 생각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내 ‘내가 왜 그래야지’하고 다시 낙담하게 됐다.
그는 그 좁고 냄새 나는 방을 잘 나서지 않는다. 그 공간이 편하다. 퇴사할 무렵부터 친구들과 잘 만나지 않게 된다. 괜히 동정을 받는 것 같아 싫었다.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다. 굳이 남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건, 자신의 치부를 세상에 알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부모님에게도 숨겼다. 괜히 자식 걱정하시게 하기 싫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그 스스로를 왕따로 만들었다. 오는 연락을 한 통, 두 통 거절하다 보니 이제 부모님께 가끔 오는 연락 외엔 핸드폰은 조용하기만 하다.
그는 오늘 오랜만에 밖을 나섰다. 일용직 일을 하게 됐거든. 하루 일당 180,000원. 하루를 일하면, 이틀은 누워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에게 체력이라고는,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을 체력 뿐이었는데, 그 몸으로 자재를 나르고, 청소를 해야 하니 오죽 힘이 들겠는가.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30대 아저씨가 건설 현장에서 제 몫을 할만한 일은 거의 없다. 그나마 이 일을 하게 된 것도 꽤 운이 좋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에 그는 실종된 노인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가벼운 옷을 걸치고 외출을 간다며 나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제보 메일을 보낸 사람이 있었다. 기사를 썼고, 그 기사 내용 중 일부가 소셜 미디어에 캡처되어 공유됐다. 그 덕인지 노인을 찾았다는 연락을 기사가 올라간 지 하루 즈음 지나 받을 수 있었다. 족히 20km는 떨어진 먼 동네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고 한다. 치매였다. 제보 메일을 보냈던 그의 아들로부터 장문의 감사 메일을 받았다. 그는 이 맛에 기자 하는구나, 싶었단다. 물론 주요 내용이 다 캡처된 탓에 조회수와 광고수익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