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석 단편선 · 솔아래1화 — 운이 좋은 날

CHAPTER 1

운이 좋은 날

상지석 단편선 · 약 16분 분량 · 2026.09.30

“네, 엄마. 아니에요. 저 잘 지내요. 아뇨, 오실 필요 없어요. 저 그날도 출근할 것 같아요. 민주 결혼하는 데 돈 좀 보탤 수 있겠냐고요? 한 번 확인해 볼게요.” 어머니에게 걸려 온 전화에 확인해 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잔고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6,411원. 남은 돈의 전부. 그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그게 비단 지갑 사정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민준 기자, 이야기 좀 하죠.” 몇 달 전 일이다. 그는 최 이사가 자신을 호출할 때부터 불길함을 느꼈다. “아시겠지만, 지금 이런 기사 쓰는 거, 조회수에 아무 도움도 안 돼요. 사람들이 자살한다? 이런 거 뻔한 주제인 거 몰라요? 이미 다 관심 끝난 철 지난 이야기라고요. 사람들 관심 가질만하게 좀 자극적으로 쓰든가요. 뭐, 원인이 뭐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네, 사람들이 궁금해나 합니까? 민준 씨도 MZ 세대 아닙니까? MZ 세대가 관심 가질만한 이야기들 얼마나 많아요?”


“그건 그냥 불행을 포르노로 삼는 겁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옳냐, 아니냐를 물어보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돈이 안 된다고요. 민준 씨 월급은 하늘에서 뚝 떨어집니까? 이렇게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대표님이랑 인사팀이랑도 얘기 다 된 거니까, 너무 당황하지 말고요. 이번 주까지만 출근합시다. 알죠, 요새 언론사 어려운 거?” 그에게 항변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자르면 잘려야 했다. 많은 동료들이 잘려 나가는 걸 보고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본인의 탓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이후로, 그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그때 조금 더 기사를 잘 썼으면 됐을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하면서도, 동시에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소재가 있었을 텐데. 처음에는 최 이사를 탓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자책이 한 구덩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후 그는, 계속 방에 박혀 있다. 무언가를 도전하지도 시작하지도 못한다. 포트폴리오를 들고 다른 언론사를 찾아가 봤지만, 그에게는 면접을 제안하는 곳조차 없었다. 이건 다 내 실력 탓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에게 여유가 없어진 것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공간이었다. 그의 집,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은 한 평이 채 되지 않았다. 그의 집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해고 통보를 받고 2주쯤 지났을 때, 오지 않는 잠을 술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방 안에는 소주병과 시덥잖은 안주 찌꺼기, 그걸 포장하던 포장지가 모여 그가 밟을 수 있는 땅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소주병은 소주병을 낳았다. 쓰레기 위에는 쓰레기가 쌓였다. 치워야지, 생각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내 ‘내가 왜 그래야지’하고 다시 낙담하게 됐다.


그는 그 좁고 냄새 나는 방을 잘 나서지 않는다. 그 공간이 편하다. 퇴사할 무렵부터 친구들과 잘 만나지 않게 된다. 괜히 동정을 받는 것 같아 싫었다.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다. 굳이 남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건, 자신의 치부를 세상에 알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부모님에게도 숨겼다. 괜히 자식 걱정하시게 하기 싫어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그 스스로를 왕따로 만들었다. 오는 연락을 한 통, 두 통 거절하다 보니 이제 부모님께 가끔 오는 연락 외엔 핸드폰은 조용하기만 하다.


그는 오늘 오랜만에 밖을 나섰다. 일용직 일을 하게 됐거든. 하루 일당 180,000원. 하루를 일하면, 이틀은 누워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에게 체력이라고는,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을 체력 뿐이었는데, 그 몸으로 자재를 나르고, 청소를 해야 하니 오죽 힘이 들겠는가.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30대 아저씨가 건설 현장에서 제 몫을 할만한 일은 거의 없다. 그나마 이 일을 하게 된 것도 꽤 운이 좋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에 그는 실종된 노인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가벼운 옷을 걸치고 외출을 간다며 나가신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제보 메일을 보낸 사람이 있었다. 기사를 썼고, 그 기사 내용 중 일부가 소셜 미디어에 캡처되어 공유됐다. 그 덕인지 노인을 찾았다는 연락을 기사가 올라간 지 하루 즈음 지나 받을 수 있었다. 족히 20km는 떨어진 먼 동네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고 한다. 치매였다. 제보 메일을 보냈던 그의 아들로부터 장문의 감사 메일을 받았다. 그는 이 맛에 기자 하는구나, 싶었단다. 물론 주요 내용이 다 캡처된 탓에 조회수와 광고수익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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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보 메일과 감사 메일을 보낸 것이 바로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소장이었다.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달라고 했다. 이런 일로 연락하는 것이 우습고 민망했지만, 그에게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밀린 두 달 치 월세를 보증금에서 제하겠다는 문자를 받고, 그는 엉거주춤 사무소로 달려갈 뿐이었다. 그는 이제 현장에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점심이야 함바집에서 급하게 채워 넣었지만, 저녁을 사 먹을 만큼 돈 같은 건 손에 쥐지 못했다. 그는 그냥 굶기를 택했다.


집에 간다. 꽤 먼 거리다. 보광동에서 현장 일을 마치고 나면 일곱 시쯤. 하늘은 흐리지만, 비가 오는 건 또 아니다. 원룸이 있는 동작까지는 걸어서 대략 두 시간쯤 걸릴 거다. 도착해서 청소 안 된 화장실에서 몸을 대충 세수를 한다 해도 하루가 다섯 시간이나 남는다. 샤워? 그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에게 무얼 할지 계획 같은 건 없다. 그냥 언제 빨았는지 모를 베개 위에 누워 언제 청소했는지 모를 천장을 바라보겠지.


그러나 그는 우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아니, 본인이 우울하다는 자각이 없었다는 편이 맞다. 그냥, 이런 힘든 일을 겪으면 누구나 조금 기분이 처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는 우울하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인터뷰어로서 만나본 우울증 환자들을 생각하면, 자신이 가진 이런 감정 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소될 무언가라고 믿었거든. “나 정도면 행복한 거지.” 그는 우울하다는 감정이 들 때마다 습관적으로 중얼거렸다.


오늘 처음 걷는 길, 저 멀리 오래된 카페가 보인다. 문이 여닫힐 때마다 고소한 빵 냄새가 가득하다.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남은 6,411원. 이걸로 빵 몇 개는 살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돈은 한 푼도 쓰고 싶지 않았다. 자주 마시던 소주도, 배달 음식도, 제로 콜라 같은 것도, 마지막으로 통장 잔고를 확인한 후에는 모두 끊어버렸다. 그 돈이 그에게는 마지막 보루 같은 거였다. 정말, 정말 힘들 때 쓰자고 다짐했거든.


그렇게 카페 앞을 지나고 있을 때, 직원 중 하나가 울상인 표정으로 봉투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였다. 카페에서 나올 수 있는 음식물 쓰레기가 뭐가 있을까. 빵이면 좋으련만. 얼핏 보기에 꽤 멀쩡해 보이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직원이 저 멀리 수거함 근처에 쓰레기봉투를 가져다 두고 들어가는 걸 지켜보고, 그는 쓰레기봉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봉투를 풀어헤치자, 조금 타버린 빵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직원의 울상인 표정이 이해가 된다.


그는 그 상심한 직원을 위해 마음속으로 작게 기도하는 한편,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정도면 내일까지 끼니는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정말 운이 좋다니까.” 그는 또 그렇게 생각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긴 새까만 빵을 들고 그는 계속 걷는다. 보광동을 지나 서빙고, 조금만 더 걸으면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동네, 그는 더 이상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빵을 깨물었다. 딱딱했다. 매캐한 맛이 났다. 왜 빵에는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그랬다면 살짝 타더라도 맛있었을 텐데. 그는 새까맣게 탄 빵을 쥐고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탄 빵이어도 어쩔 수 없다. 깨물고, 씹고, 삼켰다. 그가 상상한 고소한 향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배를 채워야 했다. “배고픈 사람에게 나타난 빵이라니, 이처럼 운이 좋은 날이 어딨어.” 그는 웃었다. 웃고 있었다. 웃고 있다가 깨달았다. 자신이 꽤,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 깊은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을.


그에게는 별다른 빛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그저, 바닥에 누워, 그 바닥이 무너지는 것을 몸소 느낄 뿐이었다. 우선 무기력했다. 하면 된다는 건 누가 몰라. 그렇지만 그에게는 그럴 에너지가 없었다. 자신도 없었다. 반복되는 좌절은 자신감 많던 청년을 놀랍게도 쪼그려뜨렸다.


그에게는 별다른 취미도 없었다. 하루 종일 취재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와, 블로그에 올릴 글들을 정리하는 게 전부였다. 아니면 가끔 넷플릭스에서 새로 나온 드라마를 찾곤 했다. 그도 이제 끝이다. 이미 두 달 전에 구독이 끊긴 넷플릭스 앱을 아직 지우지 못한 채 그는 습관처럼 그 아이콘을 누르곤 했다. 자꾸 다른 생각이 든다. 그 대신 그는 잠을 자기를 택했다. 눕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그런 건 그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살필 필요가 없었다. 이제 출근 시간도, 퇴근 시간도, 발제도, 마감도 없으니까. 그냥, 잠을 자면서 시간을 죽였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그제야 느꼈다. 지금 자신이 우울한 것이라는 걸, 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우울은 이미 그의 몸에 옷처럼 착 달라붙어 있었다. 벗겨내려 해도 이제는 벗을 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먹던 빵을 뱉어버리려다가, 이내 멈추고 주저앉고 말았다. “아, 나 왜 이렇게 됐을까. 원래 이렇지는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멈출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도, 집에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동작대교를 건너가면 곧 그가 사는 원룸이 나온다. 그는 동작대교 위에 적힌 수많은 글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산책이나 할까?” “아니, 지금 좀 힘들어.” “밥은 먹었어?” “응, 먹고 있어.” “또 사랑하세요.” “무얼 사랑한단 말인가요.” “모든 힘든 순간은 흘러갈 거예요.” “정말 그럴까요?” 혼자 중얼거리면서 한강 위를 걷다가 그는 생각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나는 계속 여기서 헤매고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꿈꾸던 삶은 이게 아닌 것 같다고, 지금 자신이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자신이 없다고.


그래서, 대교 아래편을 내려다보았다. 새까만 물, 저 아래 무엇이 얼마나 빠져 있을까. 물은 얼마나 차갑고 아플까. 그는 저 물 아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자 머릿속에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이 일어났다. 뛰어내리고 싶다고, 여기서 그만 다 끝내고 오래도록 쉬고 싶다고. 그는 한쪽 다리를 뻗어 난간 위에 걸치고,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만 놀라서 떨어지고 말았다. 강 속이 아니라, 다리 위로. 그는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그가 회사에 다닐 때 썼던, 모 연예인의 사망 기사가 떠올랐다. 그는 차 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기도했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이렇게 죽는다면, 좀 덜 무섭지 않을까. 그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휴대폰을 꺼내 번개탄을 피웠을 때 어떻게 되는지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번개탄 사용 시, 뇌 손상에 의한 사망 가능, 10분 내 사망에 이르지 않을 시 장시간 정신이 혼미한 상태, 호흡장애나 장기 손상에 의한 고통이 발생함. 극심한 어지럼증과 오심, 구토로 인해 기도가 막혀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운이 나빠 생존하는 경우 치매 등을 동반한 영구적인 뇌 장애를 앓게 될 수 있음.


운이 나빠 생존하는 경우… 라는 문장에 그의 시선이 머물렀다. 아니야, 나 오늘 운이 얼마나 좋은 편인데, 그럴 리가 없지. 슈퍼에 들렀다. 번개탄을 구매했다. 10개 묶음 3,060원. 그의 계좌 속 절반에 가까운 비용이었다. 그가 최후의 보루로 삼았던 6,411원은 번개탄 앞에서 무너졌다. 전쟁에서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다는 건, 결국 패배를 의미한다. 사망,만큼 확실한 패배도 없으리라.


집에 도착했다. 좁디좁은 방에 그가 발을 뻗을 곳은, 함께 주워 온 딱딱한 빵 때문에 더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상관 없었다. 이제, 정말 그의 마지막이 될 테니까. 좁은 집, 알게 뭐람. 냄비를 하나 꺼내와 그 안에 번개탄을 집어 넣었다. 라이터를 찾았다. 불을 붙여보았지만, 잘 타들어 가지는 않았다. 그는 방이 너무 습해서가 아닐까 고민했지만, 지난여름에 구입했던 제습기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씨름이 시작됐다. 1분, 2분, 3분, 4분, 5분…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그에게는 그 시간들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땀을 흘릴 정도로 라이터를 붙잡고 있던 그때, 드디어 희끄무레하게 불이 붙어가는 게 보인다. 이제 나, 갈 수 있게 되는 걸까. 왜인지 모르게 졸음이 몰려온다. 일산화탄소가 벌써 나올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아마 오늘 평소보다 수백 배쯤은 몸을 써서인 것 같다. 그는,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이런, 씨발.” 욕지거리가 나왔다.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가 보았던 문장을 떠올린다. ‘운이 나빠 생존하는 경우 치매 등을 동반한 영구적인 뇌 장애를 앓게 될 수 있음.’ “지금까지 운 좋았잖아, 씨발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이러는 건데.” 속이 약간 매슥거리기는 했지만, 몸에 크게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일어나 앉아 번개탄이 타고 있던 냄비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허탈함을 느꼈다. 번개탄은 활활 타기는커녕 불이 제대로 붙었던 흔적조차 없었다. 살짝 매캐한 냄새가 날 뿐이었는데, 이것이 그저 그가 먹다 남긴 빵 때문인지 아니면 불이 붙었다 꺼졌기 때문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다고. 그는 주저앉아 천장을 바라봤다. 이제 죽음조차 실패했는데 뭘 해야 하나 싶어서. 그는 남은 번개탄을 치워버리고, 핸드폰을 꺼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뭘까. 다시 걷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요새 잘 지내세요? 저 함께 일하던 막내예요. 혹시 다른 일하시는 곳 있으실까요? 아니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급하게 충원이 필요한 상황이 됐는데 혹시 다시 일하실 생각은 없으신가 하고요. 지난번에는 최 이사가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들었어요.” 왜 해고를 하게 됐는지 구질구질한 설명이 따라 붙었다. “종종 그 기자님 어딨냐고, 그 기사님 기사가 좋았다고… 문의 메일을 보내시는 분들까지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말씀은 못 드렸지만, 선배님 기사가… 참 좋았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한 번 방문하셔서 말씀 좀 나눠보는 건 어떠실까요? 당장 복직을 결정하시라는 건 아니고요.”


우선 알겠다고 대답한 뒤에, 그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에게 보이는 건, 전날 밤 그가 검색했던 번개탄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번개탄 사용 시, 뇌 손상에 의한 사망 가능, 10분 내 사망에 이르지 않을 시 장시간 정신이 혼미한 상태, 호흡장애나 장기 손상에 의한 고통이 발생함. 극심한 어지럼증과 오심, 구토로 인해 기도가 막혀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운이 나빠 생존하는 경우 치매 등을 동반한 영구적인 뇌 장애를 앓게 될 수 있음.’ 그리고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운이 나빠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가 살아 있는 것은 어쩌면 어제 그에게 따라붙던 운 덕분인지도 모른다고.


“난 정말 운이 좋다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화장실로 걸어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