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투수는 9회에 던지는 투수 · 리또1화 — 마무리 투수 실종 사건

CHAPTER 1

마무리 투수 실종 사건

마무리 투수는 9회에 던지는 투수 · 약 11분 분량 · 2026.10.26


2026년 6월의 잠실 경찰서 안이 소란스럽다. 경찰 앞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도 말싸움을 멈추지 않는 둘 때문에 담당 형사는 참지 못하고 서류철을 세게 책상에 내리치며 주의를 환기 시켰다. 여러분,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고 계시는 거죠? 경찰서예요 경찰서. 예? 제가 질문하는 거에만 대답하시고 조용히 좀 하세요. 공무 집행 방해죄 처벌까지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그제서야 경찰 앞에 앉은 둘의 입이 멈췄다. 한 쪽은 줄무늬 유니폼이고 한 쪽은 남색 유니폼인 거 외에 등판에 커다랗게 숫자와 누군지 모를 이름이 쓰여있다. 그 옷들이 야구 유니폼이라는 걸 아예 모르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장 형사는 소속감이 뭐라고 이렇게 까지, 고개를 흔들고 혀를 차며 제 자리로 걸어갔다.


"올해는 좀 조용히 넘어간다 싶더니만 어떻게 잠실 야구장 마지막 해까지 이렇게 싸운다냐."

"누군가한테는 되게 중요한 일 일수도 있죠. 사람 하나 열심히 팰 만큼."


다시 잡혀온 사람들을 보면 둘 다 서로 시원하게 치고 받기라도 했는지 얼굴 꼬라지가 엉망이다. 한 쪽은 코피 때문에 휴지로 코를 틀어 막고 있고 한 쪽은 이마에 거대한 반창고 따위를 붙이고 있었다. 둘 다 얼굴이 멍 때문에 푸르딩딩하게 보였다. 형사가 서로 쌍방 폭행 하셨으니까 적당히 합의하시고 나가시죠? 제안한다. 그러자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쪽이 씩씩 대면서 벌떡 일어났다. 목소리가 워낙 커서 경찰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아는 그들의 사연. 오늘 잠실 야구장에서 경기가 있었는데 줄무늬 유니폼 쪽이 졌다나. 근데 지나가던 남색 유니폼이 유니폼을 보면서 온갖 비하 표현을 남발하며 비아냥 댔고 그 길로 말싸움이 붙어 결국에는 길 한복판에서 주먹질이 오가게 되었다고 한다. 주먹을 먼저 날린 건 자신이긴 하지만 싸움의 불씨를 던진 건 저쪽이라며 상당히 억울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담당 형사 눈에는 둘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듯 경청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장 형사는 남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고작 스포츠 따위로 싸우는 게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맞은 편에 앉은 오 형사는 관심이 많은지 둘 중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혼자서 떠들었다. 아무리 말로 괴롭혔어도 주먹이 먼저 나간 쪽이 무조건 유죄가 아니겠냐는 그런 반응. 장 형사는 남의 일에 그만 신경끄고 우리 사건에나 집중하라면서 주변에 있던 서류 뭉치로 오 형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오 형사는 정수리를 붙잡으면서 작게 신음하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장 형사를 바라봤다. 뭐, 어쩌라고. 꼬우면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장 형사는 연차주의, 계급주의에 진심인 사람이라 후배들한테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 보통의 후배들은 형사로만 17년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이며 187cm에 몸무게 세 자릿수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덩치 앞에서 바짝 쫄을 수밖에 없었다. 항상 짧은 머리를 유지하고 매서운 눈매를 가진 강력 3팀의 팀장. 부산에서 오래 살아서 서울 살이 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억양이 말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압도되는 덩치에 무서운 외모, 거친 사투리까지 그를 쉽게 볼 수 있는 구석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에 비하면 오 형사는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였다. 잠실 경찰서에 온 지 고작 2년 차, 경찰대를 졸업한 엘리트라고 다들 환영했지만 직접 한 팀으로 움직이는 장 형사한테는 오히려 기분을 언짢게 하는 후배였다. 어떻게 경찰대를 졸업한 거냐? 요즘에는 허들이 많이 낮나? 볼 때마다 의문을 가지게 될 정도로 매사에 덤벙대고 부족한 점이 많았다. 가끔 멀쩡하게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면 모를 수 없는 부분까지 몰라서 멍청하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고 있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장 형사는 홧병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도 사건 수사할 때는 총명한 두뇌를 자랑하니 그거라도 잘해서 다행이다는 평을 내렸다. 그러니까 사건과 관련 없는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짐짝이었다는 뜻이다. 갓 경찰대를 졸업하고 형사 일에 기대가 가득 찬 현실을 모르는 어린 애 정도가 오 형사에 대한 장 형사의 첫 인상이다. 지금은 여러 사건들을 같이 해결하면서 조금 바뀌긴 했으나 여전히 살짝이라도 의지해볼 만한 동료는 못 되었다. 기생 오라비처럼 생겨서 허여멀겋고 신체검사는 어떻게 통과했나 싶을 정도로 호리호리한 몸매에 키는 커서 장 형사는 전봇대 같은 놈이라고 정의 내렸다.

한창 경찰서를 소란스럽게 만든 두 명이 떠나고 다시 고요해져 서류 넘기는 소리와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 작은 목소리로 하는 잡담 정도가 공백을 채웠다. 장 형사는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종이를 한 장 씩 넘겼다. 요새 왜 이렇게 실종 사건이 많냐. 최근 들어 실종 신고 들어온 건수가 적지 않았다. 연령, 나이, 성별, 거주지 뭐하나 겹치는 부분이 없는 사람들. 시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모두 살아 있다고 가정하고 찾는 게 원칙이다. 이 복잡하고 정신없는 서울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휴대전화 기록을 떼봐도 어느 시점부터 기록이 없고, 카드 사용 기록이나 실종되기 전 방문한 가게 주변의 cctv를 뒤져봐도 방향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꼭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것 같다. 장 형사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실종자들 사이에 연관성이 없길 바랐다. 연쇄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면 그것대로 골치 아팠다. 사람이 이렇게 죽어나가는 동안 실종 수사를 어떻게 했길래 어쩌구 저쩌구 질책이 쏟아질 걸 생각하면 그것 만큼은 아니길 바랐다.

1화를 다 읽었어요.

이전 화
0%다음 화
1/1

"여기 실종 신고 관련으로 이쪽으로 가면 된다고 하던데...."


서류에 코를 박고 보다가 말소리에 고개를 들면 뻣뻣하게 서있는 젊은 남자 한 명이 서있다. 강력 3팀이 언제부터 실종 수사 전문팀이 됐냐? 1팀 2팀이 미뤄서 여기까지 떠내려온 건데. 여긴 강의 하류같은 곳이었다. 윗물에서 떠넘긴 사건들이 내려오는 곳. 장 형사는 눈짓으로 맞은편 오 형사한테 손님 대접을 맡겼다. 떨떠름한 얼굴로 일어나 경찰서를 방문한 민원인이 앉을 의자를 내밀었다. 장 형사는 서류에 집중하고 오 형사가 마주보고 앉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저는 야구단 소속 선수 관리 담당 매니저 김경민이라고 합니다. 2일 전부터 선수 한 명이 아예 연락을 안 받아서요. 이름은 손지혁이고, 1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라 소재파악이 급합니다. 그동안 이렇게 동료나 코치, 가족들한테도 연락하지 않고 잠적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고요."

"그건 구단 사정 아닌가요? 가출 신고를 해도 가족들이 하는 거고, 성인 실종은 조건이 안 되면 신고 수리도 잘 안 됩니다. 사람 찾는 거 전부 세금으로 돌아가는 거니까요. 구단에서 직접 찾으면 안되는 겁니까? 어린 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인데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단순히 연락을 받지 않고 잠수를 탔다. 이것도 문제인데 사라지기 전에 문제가 조금 있었거든요."

"구단과 불화라도 있었나요?"

"아뇨. 동료 선수와 충돌이 있었습니다. 실종되기 전 날 경기 9회에 유격수 실책으로 송구가 빠졌고 그대로 끝내기를 맞았는데 그 날 실책한 선수와 거친 몸싸움이 있었다고 전달 받았습니다."

"싸웠던 선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대요?"

"네. 다음날, 야구장 출근 안하는 거 보고 전화도 해봤는데 아예 안 받더랍니다. 신호음이 가긴 하는 걸 보니 차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데...."

" 그 외에 특이사항은 없나요?"

"... 사실 같은 팀 선수를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유격수인 안경준 선수가 다혈질인 편입니다. 싸우는 걸 목격한 선수단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말싸움이었다가 나중에는 주먹까지 휘둘렀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에 다른 선수들이 보고 있으니 자리를 옮기자고 해서 야구장 밖으로 나갔는데 그 뒤로 연락두절입니다. "

" 지금 매니저님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대화를 엿듣고 있던 장 형사가 보던 서류를 내려놓고 일어나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매니저님께서는 안경준 씨를 의심하고 있는 거잖아요. 살인사건 용의자로. 단순 실종인데 다툼이 있었다는 이유로 의심하시는 건 비약이 지나치지 않습니까? 그냥 단순 실종이면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실거고, 매니저님은 어쩌면 손지혁 씨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저도 어디 찜질방이나 피시방 이런 곳에서 자기만의 휴식이라도 하고 있길 바랍니다. 그저... 실종 직전 상황이 그랬다는 거죠. 그, 그러니까 빨리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선수가 사라진 뒤로 연패가 계속 되고 있는데 팬들은 왜 손지혁 선수 안 나오냐고 난리예요. 구단 입장에서는 조용히 해결하고 넘어가고 싶은데 괜히 기사까지 나서 선수단 내 불화로 실종 상태라느니 소란스러워지는 거 힘듭니다. 사건 커지기 전에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예요. 저라고 소중한 선수가 죽길 바라겠습니까...."


매니저는 돌아가고 장 형사는 또 들어온 실종 사건에 한숨을 푹 쉬며 미간을 짚었다. 오 형사는 잽싸게 자기 자리로 가서 포털 사이트에 선수 이름을 검색했다. 손지혁은 1군 마무리 투수지만 점수 차가 적은 어제 상황에서도 등판하지 않았다. 구단 측에서는 어깨 불편감으로 며칠 쉰다고 둘러댄 기사가 나와있었다. sns에서는 마무리 없이 며칠 동안 어떻게 버틸 거냐는 팀 팬들의 볼 멘 소리가 가득했다. 손지혁과 싸웠다는 안경준을 검색하자 실종된 뒤로도 꾸준히 멀티히트와 호수비를 보여주면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무리 없이 제 포지션을 소화하고 있었다.

유격수와 마무리 투수와의 불화, 그리고 실종. 오 형사는 이 사건에 제대로 꽂혔다. 평소에 야구를 즐겨보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때까지 야구부였던 그에게 야구선수의 비밀이라는 건 구미가 땡기는 일이다. 잘 풀렸다면 경찰이 아니라 계속 운동을 하고 데뷔까지 해서 지금쯤이면 연차가 좀 쌓인 프로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 형사는 오 형사의 표정을 보고 사건은 순서대로 처리하라면서 꾸짖었다.


"연락 두절 된 지 고작 이틀 지났다. 이틀. 이런 혼자서 삔또 상해서 사라진 케이스는 보통 일주일 안으로 복귀해. 신경 쓰지 말고 다른 사건부터 처리해라. 딴 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경기 빠질 수록 본인이 손해지 남이 손해냐? 구단에서도 좋게 안 볼 게 뻔하잖아. 가만히 두면 끝날 일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큰 일을 당한 거라면 요?"

"너 지금 저주 하냐? 그 사람 죽은 채로 발견되길 바래? 그냥 멀쩡히 살아서 '아이고, 민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고생하시는 김에 이거라도 좀 드세요.' 하고 커피 한 잔이나 얻어먹으면 그만 인 일이야. 어릴 때 야구 좀 하다 왔다고 신경 쓰이나 본 데, 공무원 됐으면 공무원 답게 일해라."


오 형사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제자리로 돌아가 쌓인 서류 뭉치들 중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래도 계속 매니저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