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 · 곽진우1화 — 조난 (완결)

CHAPTER 1

조난 (완결)

조난 · 약 189분 분량 · 2026.10.05

이 작품은 실제 사건에 영향을 받은 픽션이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상의 인물입니다.

조난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Nam Sibyllam quidem Cumis ego ipse oculis meis vidiin ampulla pendere, et cum illi pueri dicerent: Σίβνλλα τί ϴέλεις; respondebat illa: άπο ϴανεΐν ϴέλω.”

-T. S. 엘리엇, 황무지 The Waste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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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천장이다.

그렇게 시작하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전자사전에 넣어 친구들과 돌려 봤던 것이었다. 그때는 전자사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사를 오면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이 방은 윤미에게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았다. 고모네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윤미는 그들이 아직도 그 집에 사는지부터 생각했다. 어렸을 때 그녀는 고모네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사촌 정호와는 학교와 학원도 함께 다녔다. 수학 학원, 영어 학원, 피아노 학원. 윤미는 그중에서 피아노 학원을 가장 싫어했다. 연습곡들을 따분하게 여기며 진도표에 그려진 과일을 한 번에 세 개씩 칠하고는 했다.

정호는 그녀와 다르게 성실한 학생이었다. 연습 한 번에 과일 한 개라는 규칙을 어긴 적이 없었으며 악보를 읽는 눈은 늘 열의에 차 있었다. 그는 피아노를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방에 전자 피아노를 두고 있는 것이리라.

윤미는 익숙한 방 구조를 둘러보았다. 문을 닫고 의자를 빼서 책상 앞에 앉았다. 한쪽에 쌓여 있는 참고서는 고모가 급하게 치운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주인의 성격이 묻어나는 정갈함이 있었다. 읽다 만 곳에서 적당히 벌어진 책과 필요한 물건들만 든 납작한 필통 따위가 그랬다. 알맞은 크기의 책들로 빼곡한 책장은 광고에 나올 법했다. 너저분한 곳을 굳이 찾자면 각종 편지나 사진 따위를 귀여운 무늬가 그려진 테이프로 붙여 놓은 벽지뿐이었는데, 동글동글한 여자 글씨와 어수선한 남자 글씨가 섞여 있는 꼴이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새 윤미는 저도 모르게 테이프를 손톱으로 긁어 떼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와 뒤를 돌아보았다. 거나하게 술판을 벌인 어른들이 문 뒤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모서리가 해지려고 하는 테이프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접착력이 약한 종이 테이프가 자꾸만 벗겨졌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문이 슬며시 열리는 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테이프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데만 몰두했다.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윤미는 숨을 쉬는 것도 잊어버렸다. 고개를 돌리니 고모가 무안한 얼굴로 서 있었다.

“졸았니? 깨워서 미안해. 침대에서 자도 되는데.”

“안 졸았어요.”

윤미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고모가 다행이라는 듯 미소지었다.

“그러면 다행이네. 다른 건 아니고, 밖에 잠깐만 얼굴 비춰줄 수 있나 해서. 지금 정호가 왔는데 어른들이 같이 좀 보자고 하셔. 과일 더 깎아 줄 테니까 조금만 앉아 있다 가. 오랜만에 정호 얼굴도 좀 보고. 둘이 동갑이지 않니, 그렇지?”

정호와는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정호는 2년 내내 반장 자리를 도맡았다. 고모는 학기마다 반에 햄버거를 돌렸고 자신의 어머니는 방과 후에 교실을 청소했다. 고모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보이는 것은 오늘 엄마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윤미는 마음먹었다. 게다가 자신을 데리러 온 그녀의 표정이 도움을 청하는 것처럼 간절했기에, 윤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밖으로 나오니 술 냄새가 진동했다. 다들 한껏 취한 모양새였다. 윤미는 조용히 고모의 손에 이끌려 술상의 모서리에 앉았다. 사촌을 찾아 눈을 굴렸다. 정호는 건너편에 앉아 어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원에서 막 돌아온 것인지 교복 차림이었고 옆에는 책가방이 놓여 있었다.

“여보, 윤미 데려왔어요. 정호야, 윤미 왔다. 둘이 오랜만에 보지? 어서 인사들 나눠.”

고모는 과일을 더 깎아오겠다며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녀의 말을 들은 이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정호만 주목하고 있었고 그는 취기 오른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느라 바빴다. 쏟아지는 칭찬에 연신 고개를 젓는 정호가 윤미는 조금 가엾게 느껴졌다.

그중 가장 요란을 떨고 있는 것은 아버지였다. 그는 구석에 앉은 딸을 힐끔 쳐다봤을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정호에게 더 바짝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그가 얼마나 훌륭하고 남자답게 컸는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아버지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정호는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해져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보기에도 키가 훤칠했으며 변성기가 막 지났을 목소리는 낮고 매끄러웠다. 반면에 아버지는 잔뜩 늙어 있는데다 술까지 마셔 얼굴이 울긋불긋했다. 조카의 어깨에 팔을 얹느라 앞으로 숙인 등은 좁고 옹졸했다. 그 모습이 혐오스러워 윤미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오, 윤미 다시 나왔냐? 한 잔 마실래?”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고모부였다. 그 역시 얼굴이 불콰했다. 윤미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잔을 받게 되었다. 고모부는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어 윤미의 잔을 가득 채웠다.

“왜 애한테 술을 주고 그래요.”

“한 잔 정도는 괜찮아.”

과일을 깎아온 고모가 핀잔을 줬다. 고모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윤미야, 너도 따라 봐라.”

“이놈 기지배야, 어른이 술 따라주시면 두 손으로 받아야지.”

아버지가 뒤늦게 눈살을 찌푸렸다. 고모부는 껄껄 웃으며 됐다고 손사래를 쳤다. 윤미는 둘의 눈치를 보다가 술병을 집어들었다. 고모부가 잔을 내밀자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술을 따랐다. 고모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술잔이 부딪쳤다. 투명한 액체가 넘치며 손가락을 적셨다. 고모부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윤미는 머뭇거리다 아버지의 따가운 시선을 못 이기고 술을 마셨다. 과학실에서 쓰던 알코올 램프 냄새가 났다. 역겨운 것을 참고 전부 삼켜냈다. 코 안쪽이 홧홧했다.

“어이구, 윤미 너 술 잘 마신다?”

고모부가 한결 더 붉어진 듯한 얼굴로 말했다.

“쟤가 공부는 못해도 저를 닮아서 술은 좀 할 겁니다.”

아버지가 실실 웃었다.

“공부를 못하기는 무슨. 안산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 다닌다며? 자사고인가 하는 그거.”

“그 정도 가지고 뭘요. 정호는 외고에서 반 1등도 척척 해오고 그런담서요? 윤미 쟤는 뒤에서 1등이에요, 1등.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일반고 보내서 내신이나 챙기는 건데, 애들 엄마가 괜히 고집을 부려서 말이죠.”

“자사고에서는 일부러 내신 안 챙겨요. 그 시간에 정시 준비하는 게 낫거든요. 윤미도 그런 거겠죠, 뭐.”

듣고만 있던 정호가 끼어들었다. 놀란 윤미가 그를 보았다. 정호는 그녀에게 눈을 찡긋했다. 윤미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에이, 나는 그런 거 들어도 잘 몰라. 우리 집은 정호 엄마가 다 알아서 해.“

고모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아버지 또한 더 말을 얹지 않고 술잔을 비웠다.

“삼촌, 제가 한 잔 따라 드려도 될까요?”

“네가?”

아버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빈 술잔을 냉큼 정호에게 들이밀었다. 정호는 술병을 들어 잔에 대고 기울였다.

“그럼 정호 너도 한 잔 마실래?“

“주시면 받죠.“

“잔 남는 거 있어? 미숙아, 소주잔 하나만 더 줘라.“

고모가 서둘러 잔을 들고 달려왔다. 아버지는 인사도 없이 그것을 받아 정호에게 건넸다. 정호는 아버지가 말한 대로 두 손으로 잔을 쥐고는 공손하게 술을 받아 한 번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윤미는 속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고모가 저녁상을 거나하게 차려 주었으나 어른들 틈에서 긴장한 채로 먹는 바람에 속이 부대끼고 있었던 참이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정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삼촌의 칭찬에 고개를 젓고 있었다. 윤미는 물을 찾았다. 상 위에는 온통 술병뿐이었다.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윤미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고모에게 다가가 두통이 있다고 속삭였다.

“어머, 머리가 아프다고? 약 있는데 줄까?”

윤미는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 술 마셔서 그런 것 같아요.”

“얼마나 마셨는데?”

“소주 한 잔이요.”

“어휴, 그러니까 왜 애한테 술을 먹여서는. 그럼 어디 들어가 있는 게 좋겠다. 정호 방 아까 가봤지? 침대 써도 되니까 누워서 좀 쉬고 있어.”

“감사합니다.”

몸에 열이 오르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윤미는 정호의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남의 침대를 흐트러뜨리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으니 혼곤하던 시야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본 것은 의자에 앉아있는 정호의 옆모습이었다. 그는 손님이 깬 것을 아직 모르는지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윤미는 일부러 뒤척이며 소리를 냈다.

“일어났어?”

고개를 든 정호가 미소지었다. 윤미는 머쓱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 얼마나 잤어?”

“많이 안 잤어. 30분 정도? 물 마실래?”

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는 밖으로 나가 물 한 잔을 가지고 돌아왔다. 윤미는 그것을 받아 남김없이 들이켰다. 마른 입이 적셔지는 감각이 반가웠다. 조금 기운이 나는 것 같아 침대 모서리로 기어가 앉았다. 정호는 다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윤미는 그를 따라 핸드폰을 켰다. 엄마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언제쯤 집에 올 것이냐는 내용이었다.

[몰라]

엄마가 연이어 메시지를 보냈지만 무시해 버렸다. 그녀는 남편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항상 자신을 통해서만 전달했다. 이번에도 아버지에 관해 묻는 내용일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다른 어른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자리를 뜨지 않을 게 뻔했다. 만취 상태인 틈을 타 늦게라도 대리를 부르면 된다는 명목으로 더 미적댄다면 모를까.

“누구야? 남자친구?”

정호가 물었다.

“아니. 엄마.”

윤미는 놀라서 대답했다.

“윤미는 남자친구 있어?”

“없어. 넌 여자친구 있어?”

“나도 없어.”

정호가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윤미의 핸드폰은 아마도 엄마가 보냈을 메시지로 인해 진동하고 있었다. 윤미는 핸드폰을 노려보다가 진동이 들리지 않도록 허벅지 밑으로 밀어넣었다.

“숙모는 잘 계시지?”

정호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너무 쉽게 당황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지극히 평범한 안부 인사에도 이렇게까지 소스라치니 말이다. 하지만 순전히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하기에는 조금 억울했다. 윤미는 정호가 두 집안의 사정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지 의문이었다. 한없이 착하기만 한 고모가 그녀를 불편해하는 것, 아버지가 고모부에게 유독 굽실대는 것, 엄마가 이사 이후 가족 모임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것. 그 모든 현상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순진한 것인지 말이다.

“응. 똑같지 뭐.”

윤미가 얼버무렸다. 그녀가 알기로 정호와 엄마는 이사 이후 만난 적이 없었다. 자신이 초등학교 때 이후로 정호를 보지 못했던 이유와 같았다. 만약 정호가 지금의 엄마를 마주한다면 꽤나 놀랄 것이었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곤충의 변태 과정을 빨리 감기로 보여주듯, 윤미는 지난 시간 동안 엄마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정호에게는 애벌레가 성충으로 바뀐 모습에 지나지 않으리라.

“숙모 마지막으로 본 게 너무 옛날이네. 오늘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일하느라 바빠.”

“회사 다니셔? 원래 집에 계셨잖아.”

“지금은 아니야.”

“아쉽다. 예전에 너희 집 놀러가면 숙모가 간식 해주시고 그랬는데. 그거 먹으면서 강아지랑 놀고…그 강아지 아직 키워?”

“까미? 키우지. 나이가 많아서 맨날 누워만 있어.”

“맞아. 까미였다, 까미. 네 동생이라 돌림자 썼다고 고모부가 그러셨는데.”

정호는 신이 나서 옛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호를 집에 부른 적이 있던가? 사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자신의 모친이 으깬 감자 샐러드와 돈까스를 만들어 줬다는 말을 들어도 남의 얘기처럼 느껴질 따름이었다.

대화의 주제를 바꾸고 싶었다. 천으로 덮여 있는 전자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윤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피아노 위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너 아직도 피아노 배워?”

“아니. 작년에 그만뒀어. 공부하느라 도저히 레슨 갈 시간이 없더라. 그래도 가끔 집에서 치기는 해.”

“봐도 돼?”

“당연하지.”

정호는 천을 걷어 주었다. 매끈한 건반이 드러났다. 윤미는 그것을 몇 개 눌러 보다가 악보대에 놓인 책을 집어들었다. 오선지 안에 까만 음표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윤미는 어느새 옆에 와 선 정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피아노 치는 거 보여줘.”

“무슨 곡 쳐줄까?”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

“음, 그건 지금 연습하는 중인데.”

“그래도 쳐줘. 나보다는 잘 칠 거 아냐.”

“윤미 너는 언제 피아노 그만뒀어?”

“이사 가면서.”

“그렇구나.”

사촌은 조금도 자신을 위로하려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어 윤미는 책상 의자를 끌고 그의 옆에 앉았다. 정호는 피아노의 전원을 켜고 그의 덩치에는 조금 작아 보이는 의자를 빼서 앉았다. 페달이 작동하는지 몇 번 시험해 보더니 악보도 없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연주는 짧고 강렬했다. 윤미는 페달의 울림이 멎기도 전에 박수를 쳤다. 정호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윤미가 물었다.

“이거 뭐야?”

“쇼팽의 겨울바람. 에튀드인데 겨울바람이라고 불러.”

“노래 좋네. 엄청 어려워 보이는데 잘 친다.”

“고마워. 요즘 계속 이것만 연습했거든.”

정호는 으스대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것이 어쩐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자격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체능 입시를 할 것도 아닌 외고생이 취미로 배운 피아노를 이렇게까지 잘 친다는 것은 조금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윤미는 취미 같은 거 없어?”

“나? 딱히 없어. 주말 빼고는 학교랑 자취방에 갇혀 있으니까 할 게 없기도 하고.”

“너 자취해?”

“응. 나 안산에서 학교 다니잖아. 통학하기가 너무 멀어서 학교 근처 원룸에서 살아.”

“밥 챙겨먹는 거 힘들지 않아?”

“어차피 세 끼 다 학교에서 먹고, 야자 끝나면 10시니까 자취방에서는 잠만 자서 괜찮아.”

“그렇구나. 가까우면 놀러갔을 텐데 아쉽네. 그건 그렇고 너 내 번호 있어?”

윤미는 핸드폰을 켜서 전화번호부에 정호의 이름을 검색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없는 것 같아.”

“그럼 우리 번호 교환하자. 내 핸드폰에 전화번호 찍어주면 저장할게.”

정호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윤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들고 번호를 입력했다. 정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노크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렸다. 고모였다. 윤미는 얼른 정호에게서 한 발짝 물러났다. 무언가 부끄러운 짓이라도 들킨 기분이었다. 고모가 말했다.

“둘이 놀고 있었구나? 예전에도 같이 잘 지내더니.”

“응. 우리 번호도 교환했어.”

정호가 말했다.

“잘됐네. 사촌지간인데 앞으로도 연락 자주 하고 지내.”

고모가 웃었다. 할 말이 없어서 윤미는 고개만 끄덕였다. 아버지와 다른 어른들이 나중을 기약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야 할 때임을 깨달은 윤미는 고모와 정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모는 어깨를 두드려 주었고 정호는 조심히 들어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부끄러운 느낌이 가시지 않아 윤미는 도망치듯 방을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불이 다 꺼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신발을 벗는 아버지에게 까미가 달려왔다. 늙은 강아지는 침을 흘리며 아버지의 다리에 기어올랐다. 아버지는 까미를 한 손으로 들어서 안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모습을 감추자 거실 소파에 누워 있던 엄마가 일어났다.

“잘 갔다왔어?”

“응.”

“고모 어떻게 지내든?”

“별일은 없는 것 같아. 아, 그리고 정호 외고 다닌대.”

“그래?”

“반에서 1등 한다는데.”

어둠 속에서도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윤미는 묘한 쾌감을 느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였다면 곧 닥칠 엄마의 히스테리가 두려워서라도 아무 말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만큼은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신에 정호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윤미야 나 정호야]

[오늘 재밌었어. 조심히 들어가]

[숙모께도 안부 전해 드리고]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얼른 자판을 두드려 답장을 보냈다.

[응 고마워]

[나중에 또 연락하자]

메시지를 확인한 정호는 이모티콘 하나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멍청하게 움직이는 동물 캐릭터가 괜히 귀여워 보였다. 어느새 윤미는 부모에 대한 미움과 불편했던 가족 모임에 대해서 잊어버렸다. 굳이 안타까운 점을 찾자면 정호의 안부 인사는 엄마에게 전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윤미는 인천에 살면서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안산의 한 대형교회에서 설립한 사립 고등학교로, 몇 년 전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되었다. 종교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것과 엘리트 학교로서의 전환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윤미는 잘 이해할 수 없었으나 교사들은 자율형 사립고가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종교가 없는 학생들도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전 교직원과 학생의 절반 정도는 여전히 기독교도였다.

윤미는 종교가 없었고 그녀의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녀는 엄마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모든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있어 종교나 다름없다. 신앙을 내려놓는 시기만이 다를 뿐이다. 남편의 회사가 부도난 뒤 윤미의 엄마는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학원비를 아끼지 않았고 하나 있는 딸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렇게 딸은 타지로 유학을 갔다. 면학 분위기가 좋고 특히 서울대를 잘 보내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녀는 딸이 아니라 딸이 입시에 성공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인천은 학군이 좋지 않았다. 그런 곳에서 가능성을 썩힐 수 없었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고등학교 입시 정보를 긁어모았고 각종 입학설명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다행히 성적은 안정권이었다. 딸은 당당하게 자율형 사립고에 합격했다.

그렇지만 윤미의 엄마만이 유별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한국의 교육열이란 언제나 대단했던 데다 윤미가 공부를 잘했던 탓에 그녀 또한 유별난 사람들만 모이는 곳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산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합격자 명단이 공개되자마자 커뮤니티 역할을 위한 네이버 밴드가 만들어졌다. 학부모들은 마치 자신들이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축하하며 통학에 대해 논의했다. 안산에 살지 않는 학생들이 많았기에 버스를 빌려 카풀을 한다고 했다. 카풀을 하기에도 먼 거리에 사는 이들은 근처 원룸 정보를 공유했다. 학교에는 기숙사가 있었지만 들어가기 위해서는 목사 추천서가 필요했고 수용 인원도 적었다. 그래서 학교 주변에 학생들을 겨냥한 작은 빌라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한 교회는 정말이지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 경제에 이바지한다.

엄마를 볼 때마다 윤미는 자신의 탄생에 의문을 품었다. 엄마처럼 모세 혈관까지 야망으로 들어찬 여자가 대체 왜 아버지 같은 남자를 골라 결혼했을까? 모든 여자애들이 이런 고민을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면서도 놀라웠다. 아버지는 사업을 연거푸 말아먹은 뒤 있는 돈이나 아끼라는 엄마의 경고에 그대로 집에 눌러앉았다. 간단한 집안일을 제외한다면 주말마다 안산으로 와 인천에 있는 본가로 딸을 실어나르는 것이 그가 이 집에서 맡은 역할의 전부였다. 최근의 가족 모임 이후로는 매부가 대표로 있는 공장에 자리를 하나 얻어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는 딸이 앞에 있거나 말거나 매부에게 전화를 걸어댔으며 언제나 그의 사업에 대해 캐물었다. 모임 때 그에게 연신 아첨을 하고 정호의 앞에서 자신을 깎아내린 이유를 윤미는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고모부에 대해 잘 몰랐으나 아버지가 그에게 굽실대는 모습은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고모부가 아무리 생각이 짧아도 아버지를 받아줄 가능성은 거의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고모부의 마음을 얻는 데 매일같이 실패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걸어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윤미는 그가 어떤 식으로 사업을 말아먹었는지 알 것 같았다. 잠시나마 고모네와 같은 아파트에 살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따위 무능력한 남자와 같이 살고 싶은 여자는 매우 드물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윤미는 엄마의 야망과 자신을 향한 믿음이 이해되지 않았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인해 어깨가 무거워져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믿음의 본질에 대해 정말로 알지 못했다. 엄마는 자신이 이 학교에 입학한 것만으로 모든 게 이루어진 것처럼 굴었다. 반에서 꼴찌를 다투거나 모의고사 성적이 좋지 않아도 혼내려는 기색조차 없었다. 마치 엄마 되는 사람의 노력이 부족해서인 것처럼 입시 정보를 찾는 데만 혈안이었다.

어쨌든 윤미는 이제 막 2학년이었다. 수능까지는 아직 2년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자신이 준비한 각종 공물들을 받아주기만 한다면 딸이라는 신은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고 모친은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윤미는 신이 아니었으나 그녀의 앞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정말로 신이 있다면 퍽이나 피곤할 것이라고 윤미는 생각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 기도를 올리고 싶다면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게 해야 했다. 있는 것에다 대고 빌면 부담이 될 테니까.

주말마다 오는 본가는 어느새 낯설어져 있었다. 윤미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었다. 소파에 누워 있던 엄마가 일어났다. 아버지는 밀린 빨래가 든 가방을 거실 구석에 던져두고는 헥헥대는 까미를 뒤에 매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로서 그의 일주일 치 임무는 완료된 셈이었다. 딸을 태우고 안산과 인천을 오가는 것과 언제 죽을지 모를 애완견을 돌보는 것이 아버지의 전부였다. 그 둘만 잘 해낸다면 아버지와 말을 섞을 필요는 누구에게도 없었으며, 아마 아버지 자신도 원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버지의 차에 실려가고 실려올 때마다 윤미는 자신이 택배라도 된 기분을 받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버지 또한 택배 기사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사람이지만 사람 아닌 취급을 당하는 것들. 인간의 자리를 부여받지 못한 것들. 가장의 의무마저 박탈당한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이제 임무는 끝났으므로 그는 오랫동안 씻기지 않아 꼬질꼬질한 말티즈 한 마리를 발치에 둔 채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 것이다.

“너 그 집에 뭐 놓고 왔니?”

빨래를 베란다에 가져다 놓은 엄마가 말했다. 언짢은 목소리였다.

“뭘?”

“네 고모 집에서 뭐 잃어버렸다고 전화 왔던데, 아니야?”

“고모가 전화했어?”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인천으로 이사를 오면서 그토록 친하던 시누이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그녀였다. 남편이 다시 사업을 한답시고 시매부에게 굽실대며 돈을 빌리려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가족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다. 신기한 점이 있다면 남편을 종놈 부리듯이 하는 시매부에게는 아무 감정도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녀가 증오하는 대상은 오직 시누이였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틀어지다 못해 기약 없는 냉전 시대를 맞이한 것은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라고 윤미는 짐작했다.

“귀걸이 한 짝 없어졌던데 그 집에 놓고 왔나 보네.”

“비싼 거야?”

“아니.”

“그럼 버리라고 한다?”

“내가 직접 연락드릴게.”

“알았어.”

엄마는 방을 나갔다. 윤미는 옷을 마저 갈아입고 핸드폰에서 정호의 연락처를 찾았다. 일주일 전의 채팅 기록이 마지막이었다. 윤미는 고민하다가 정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지내?]

[나 너희 집에 귀걸이 두고 온 것 같아서]

정호는 바로 메시지를 읽었다. 미확인을 뜻하는 숫자가 사라지자 윤미는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 버렸다. 알림이 몇 번 울리고 나서도 메시지를 읽는 것을 주저했다. 또다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윤미는 자신이 뜯어 버린 정호의 사진과 편지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정호는 그것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몰랐다. 윤미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있다가 마침내 채팅창을 켰다.

[윤미 안녕]

[맞아 너 귀걸이 놓고 갔어]

메시지를 보는 순간 긴장이 풀렸다. 윤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자판을 쳤다.

[그렇구나]

[어떡할래? 내가 갖다줄까?]

[여기까지 오려고? 너무 멀지 않아?]

[괜찮아. 마침 학원 가기 싫었거든]

문득 정호가 일부러 여유로운 척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외고에서 1등 자리를 유지하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른들이 주는 술도 잘 받아마셨고 피아노 연주도 들려주었으며 답장 또한 빨랐다.

수상쩍다기보다는 질투가 났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여유가 거짓일지언정 부럽기도 했다. 지하상가에서 만 원에 산 귀걸이 한 짝을 위해 직접 가겠다고 답장을 보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음 주 토요일 저녁에 받으러 가겠다고 하니 그는 멀지 않냐고 되물었다.

[나도 학원 가기 싫어서 괜찮아]

[그래? 그러면 서울 와]

[응 토요일에 봐]

정호는 또다시 멍청한 이모티콘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윤미는 똑같은 것을 보낼까 하다가, 자신에게는 무료로 제공되는 기본 이모티콘이 전부라는 것을 깨닫고는 핸드폰을 꺼 버렸다.

풀무불 이겨낸 다니엘 세친구

여리고 점령한 여호수아 세대

유혹을 이겨낸 저 순결한 요셉

순종으로 세상 바꾼 기적의 세대

I believe, I believe,

일으키소서, 미라클 제너레이션

“레퍼토리 좀 바꾸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앉은 민주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엎드려 졸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기적은 존재할지도 몰랐다. 물론 민주에게는 농담이라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민주는 아주 진지한 반신론자였기 때문이다. 윤미는 반신론자라는 단어를 민주를 통해 처음 알았다. 민주에 따르면 반신론이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넘어서 신과 그를 믿는 종교들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민주는 리처드 도킨스라는 과학자를 가장 존경했고 그가 쓴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사물함에 성경처럼 모셔두었다. 또 독서대에는 “원치 않는 전도는 강간과 같다”라는 말을 영어로 적어두기도 했다. 자신이 전도를 원할 일은 없었으므로 자신에게 전도하는 행위는 강간과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민주는 친구가 없었다. 종교가 없는 아이들도 그녀의 과격하고 공격적인 태도는 피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반신론자도 친구는 필요했는지 민주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무리에 속하지 못한 윤미를 단짝으로 삼았다. 두 여자아이가 함께 외로워하든 말든 학교는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했다. 매일 아침마다 경건회를 했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각각 채플과 저녁 기도회가 열렸으며 야자가 끝나는 10시부터는 야간 기도회가 있었다. 금요일 저녁 기도회나 야간 기도회야 자유 참석이니 그렇다 쳐도 반마다 여는 경건회나 전교생을 대상을 한 채플은 빠질 방법이 없었다. 이럴 시간에 공부를 하면 모의고사 등수의 앞자리가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윤미에게 민주는 대변인 같은 존재였다. 자신에게는 재미없는 이야기일 뿐인 성경이 과학적으로 틀린 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을 보면 그 열렬함에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민주는 경건회 시간이 되면 항상 책상에 엎드렸다. 정말로 자는 것이든 그런 척하는 것이든 민주의 태도가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하지만 그런 민주도 채플에는 참석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채플에 한 번이라도 빠지면 교목과 면담을 해야 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학교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근거 없는 소문은 아닐 것이었다. 게다가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나 진화론을 옹호할 용기는 민주에게도 없어 보였다. 따라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찬양 시간에 앉아서 졸거나, 아니꼽다는 눈으로 교목을 째려보거나, 옆에 앉은 내게 이따금 반신론적인 이야기를 속삭이는 게 전부였다. 그마저도 비웃을 거리가 떨어지면 CCM의 가사까지 트집을 잡아 종교라는 것이 사실 얼마나 반인륜적인지에 대해 떠들어대고는 했다.

“여리고 전투는 전혀 자랑스러워할 게 아니야.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학살이라고. 갓난아기까지 다 죽였는데 대체 그걸 왜 찬양하는 거야?”

시끄러운 CCM 연주 속에서 민주가 중얼거렸다. 여호수아가 누군지도 모르는 윤미로서는 민주가 신기하기만 했다. 선교부장도 민주보다 성경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할 것 같았다.

찬양이 끝나고 기도 시간이 찾아왔다. 민주의 말처럼 레퍼토리는 지겨울 정도로 같았다. 강당에 들어서면 찬양단이 신나는 CCM을 연주하며 학생들을 반긴다. 노래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율동을 따라하게 만들며 진을 빼놓는다. 학생들이 조금 지쳤다 싶을 때 조명을 은은하게 낮추고 차분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기도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찬양단이 성스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감동적인 가사의 CCM을 배경음악 삼아 목사가 기도를 시작한다.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기도를 웅얼대는 2천 명의 목소리가 강당을 꽉 채운다. 단상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는 학생들도 있다. 목사는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함께 기도한다. 이때 민주는 일부러 일어서서 눈을 똑바로 뜨고 단상을 응시하고 있는데, 자신이 기도 혹은 그와 유사한 의식을 전혀 행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그녀 나름의 또다른 의식이다.

마침내 기도가 끝나고 눈물과 함께 손을 모았던 학생들이 코를 훌쩍이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또 얼마나 재미없는 농담과 함께 설교가 시작될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따분해 하품이 날 지경이었다. 목사란 일종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본론에 집중시키기 위한 그럴듯한 키워드를 늘 고민한다. 하지만 윤미는 종교가 없었고 민주는 종교를 혐오했으니 이 두 소녀에게 설교란 언제나 실패한 코미디였다.

오늘의 설교는 권 목사였다. 윤미는 두 명 있는 교목 중 권 목사를 유독 부담스럽게 여겼다. 친하지도 않은데 페이스북에서 자신을 찾아 먼저 팔로우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학생들과의 소통을 중시했고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넓은 것이었다. 어차피 친구도 몇 없어서 계정을 삭제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러다가는 정말 아무와도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아 게시물을 지우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놔뒀다. 권 목사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교직원에게, 그것도 목사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여러분, 오늘은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제 가족을 소개할까 합니다.”

인사를 마친 권 목사는 빔 프로젝터 스크린에 쌍둥이로 보이는 두 아이의 사진을 띄웠다. 활짝 웃는 모습이 퍽 귀여운 여자아이들이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아직 깨어 팔짱을 끼고 있던 민주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제 딸들입니다. 어때요, 귀엽죠?”

아이들이 네, 하고 입을 모아 대답했다. 민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여전히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윤미는 권 목사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스크린 화면을 넘기는 것을 바라보았다.

<순종>

하얀 파워포인트 화면에 두 글자가 떠올랐다. 권 목사는 본격적으로 설교를 시작하려는 듯 목을 가다듬었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권 목사가 입을 열었다.

“지금 한국 교회는 큰 위기를 맞이했다는 말,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혹시 가나안 신도가 뭔지 알고 있나요? 처음 듣는다고요? 이제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본래 주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한, 약속의 땅이라는 성스러운 뜻을 가진 이 가나안이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쓰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가나안을 거꾸로 말하면 어떻게 됩니까? 바로 '안 나가'입니다. 즉 가나안 신도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교회에 안 나가는 신도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버젓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더는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제가 교회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은 아닙니다. 여기 화면에 뭐라고 쓰여 있죠? 순종, 맞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순종입니다. 그런데 사실 순종은 아주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순종이라는 개념을 더더욱 무겁고 어렵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주님의 뜻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구별하는 혜안을 지니는 것, 그것이 순종하기 이전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마주하는 수많은 신앙적 위기 가운데서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권 목사는 잠시 숨을 골랐다. 강당이 침묵 속에 휩싸였다. 권 목사가 배에 힘을 주고 말했다.

“여러분,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민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윤미는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목사 특유의 우렁찬 발성이 귀를 찢어놓을 듯이 울렸다. 권 목사가 말을 이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근친상간이나 수간과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동성애라고요. 이 아이들이 커서 동성애자가 된다면 여러분은 받아들일 수 있으신가요?”

프로젝터 화면은 어느새 다시 아이들의 사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니요!” 학생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권 목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이 우렁차네요. 좋습니다. 동성애가 큰 죄라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동성애가 어떻게 지금 한국 사회를 좀먹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기에 빠뜨리는지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학교에 입학해서 놀란 것이 있다면 종교인들은 사랑이 넘치지만 관용까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다른 무언가를 미워하게 되는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그 사랑의 진실됨을 비춰 보고 비교할 거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옆에서 민주가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떠는 것이 느껴졌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윤미는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권 목사의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옆자리의 친구처럼 반감을 품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잃어버렸다. 단순히 아버지가 사업을 말아먹어서, 혹은 억지로 이 학교에 입학하여 항문 성교가 올바른 성문화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해서만은 아니었다. 윤미는 그 흔한 아이돌도 좋아해본 적이 없었고 자신과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 급우들을 유달리 미워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권 목사나 민주 같은 사람들이 가끔은 부럽기도 했다. 민주는 권 목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종교 수업 때마다 항상 그의 말에 딴지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권 목사는 그런 민주마저 사랑으로 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윤미의 직감에 따르면 그의 눈에 민주는 이미 구제불능의 사탄마귀였다. 권 목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증오하며, 반대로 민주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증오한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꼭 맞아떨어지는 퍼즐 조각 같았다. 권 목사는 천국에 갈 것이고 민주는 지옥에 갈 것이다. 물론 자신도 지옥에 가겠지만 민주가 떨어진 곳에 비하면 조금 처우가 나을 것이다. 자신처럼 밋밋한 사람에 걸맞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지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형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윤미는 이 세상에 자신과 닮은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미지근한 지옥에서 그녀는 또다시 혼자가 될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정말로 지옥에 형벌이 있다면 바로 고독일 것이었다.

“그리고 혹시 자신에게 동성애 성향이 있는 것 같다, 하는 친구들은 조용히 교목실로 오세요. 비밀 보장됩니다.”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권 목사는 설교를 마쳤다. 이어서 교목실 관련 소식이 전달되었고 찬양연주반이 다시 CCM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강당 문이 열리자마자 민주는 윤미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하나 있는 친구의 팔목을 낚아챈 손이 차가웠다.

“교목실 갈 거야?”

윤미가 물었다. 입을 꾹 닫고 학교 건물로 향하던 민주가 돌아보았다.

“내가 왜?”

민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윤미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

“싸우러 안 가? 너 이런 날엔 꼭 권목 찾아가서 뭐라고 하잖아.”

“저런 건 싸울 가치도 없어.”

민주는 윤미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교실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윤미는 서둘러 민주를 쫒아가며 권 목사의 말을 곱씹었다. 깔끔 떠는 남자는 게이라던데, 정호는 게이일까? 정호에 대한 생각이 윤미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정호를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민주는 파업이라도 한 듯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점심도 먹으러 가지 않아서 윤미는 혼자 급식실에 내려가야 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로 시끄러운 그곳에서 묵묵히 밥만 먹자니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윤미는 얼른 자리를 뜨기 위해 급하게 식사를 하다가 체하고 말았다. 명치가 쿡쿡 찌르는 듯 아파서 그녀는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하나 있는 친구처럼 책상에 엎드렸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귓전에 웅웅거렸다. 작은 소리가 아니었는데도 윤미는 그녀들이 뭐라 말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꼭 그 집까지 가야겠어? 비싼 것도 아니라며.”

“그렇다고 택배로 부쳐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윤미가 대답했다. 엄마는 자신이 고모네 집에 가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마치 꺼림칙한 곳에 들어간다는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윤미의 눈에는 그럼에도 가야 한다면 태워다 주겠다는 엄마의 제안이 더 수상쩍었다. 어쩌면 엄마가 진정으로 꺼리는 건 자신 혼자서 고모네 집을 가게 되는 일일지도 몰랐다. 민주에게서 때로 느꼈던 것처럼 지독한 무관심은 미움에 가까웠다.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은 가치를 판단해 볼 의지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엄마는 고모네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궁금해하는 게 분명했다. 정호가 외고에 다닌다는 소식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었다.

윤미는 옷장을 들여다보았다. 요 몇 년간 옷을 사본 일이 드물어 마땅한 사복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독서실을 갈 때 입던 추리닝을 걸쳤다. 정호가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냥 버리면 안 되는 거니?”

엄마가 말했다. 윤미는 가방을 메다 말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모친도 지지 않고 딸을 노려보았다.

“내 맘이야.”

윤미는 집을 나섰다. 엄마의 한숨 소리가 현관문 너머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정호의 집까지는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버스를 타고 주안역으로 가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는 승객이 꽤 있었다. 주말을 맞아 서울로 놀러 가는 듯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자리가 하나 비어 윤미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고 앉았다. 귀걸이 하나를 받아오기에는 지나치게 컸지만 메지 않으면 언젠가부터 등이 허전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노을이 주홍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눈이 부셔 윤미는 고개를 숙이고 가방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대로 잠들었다가 내릴 역을 알리는 방송에 눈을 떴다. 윤미는 얼른 일어나 열차에서 나왔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나서는 사람이 더 많아져 앉을 수가 없었다. 스크린에 오가는 낯선 역명들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내릴 곳이었다. 윤미는 몇 번씩 지도를 확인하고는 출구로 나와 고모의 아파트까지 걸었다. 분명 어렸을 때 살던 곳이었는데 하늘이 어두워져 있어서인지 온통 낯설게만 느껴졌다.

아파트 정문에 도착하여 정호에게 다 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호는 곧 내려가겠다고 답장해 왔다. 정호를 기다리는 동안 윤미는 자신이 알던 정문 현관 비밀번호가 아직도 유효할지 생각하며 도어락 위를 쓰다듬었다. 마침내 용기가 생겨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정호였다. 윤미는 얼른 도어락에서 손을 뗐다. 정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많이 기다리진 않았지? 얼른 들어와.”

정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윤미는 귀걸이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어느새 그녀는 사촌을 따라 높디높은 건물들 사이로 걷고 있었다. 정호는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윤미를 아파트 단지 중앙에 있는 공원으로 안내했다. 약속한 듯 자연스럽게 그네에 앉았다. 윤미도 따라서 다른 그네에 앉았다. 높이가 낮았기 때문에 정호는 다리를 앞으로 쭉 펴야 했다. 윤미는 그의 자세를 따라했지만 나란히 두기에는 다리가 많이 짧았다. 윤미는 정호의 쭉 뻗은 몸을 힐끔거리다가 그가 돌아보자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정호가 말했다.

“빨리 들어가야 해?”

“그건 아냐.”

“그럼 우리집 와서 좀 놀다 갈래? 공부 하기 싫어서 미치는 중이었거든.”

“고모랑 고모부가 허락하실까?”

“두 분 다 안 계셔. 엄마는 동창회 갔고 아빠는 야근.”

“그렇구나.”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정호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윤미는 자신이 아무런 거부권도 갖고 있지 않으며 있다 해도 그것을 행사할 마음이 없음을 깨달았다. 윤미가 말했다.

“그럼 잠깐만 있다 갈게.”

정호가 문을 열자 넓은 현관이 눈에 들어왔다. 윤미는 신발을 벗고 정호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정호의 집은 깨끗하고 가정적이었다. 깨끗하다는 말과 가정적이라는 말이 양립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정돈된 모습만을 봐서는 그랬다. 가족 모임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소소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거실 한켠을 차지한 장식장에는 예쁜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앤티크 벽시계도 벽지와 잘 어울렸다. 소파 앞의 테이블에는 신문과 리모컨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람이 사는 게 분명했으나 그들의 손때와 흔적들은 최대한 가려둔 듯한 집이었다.

“먼저 들어가 있어. 마실 것 좀 가져갈게.”

정호가 말했다. 그는 냉장고를 여느라 윤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윤미는 조용히 돌아서 복도 안쪽에 있는 그의 방으로 향했다. 닫혀 있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맨정신에 들어온 그의 방은 거실과 비슷한 인상을 주었다. 침대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옷장 손잡이에는 교복 와이셔츠가 걸려 있었다. 흐트러진 곳을 굳이 꼽자면 책상이었는데,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참고서 몇 권이 펼쳐져 있었다.

윤미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벽지를 들여다보았다. 자신이 뜯었던 테이프가 새 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호는 테이프를 뜯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 그냥 낡아서 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새로 붙인 건 아닐까? 정호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은 없었다. 윤미는 시선을 참고서로 돌렸다. 필기로 빼곡한 그것을 한 장씩 넘겨보았다. 정호의 글씨체는 깔끔했다. 벽에 붙은 편지의 주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윤미는 문이 닫히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정호가 음료수가 담긴 잔 두 개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편한 데 앉아.”

윤미는 음료수 잔을 두 손으로 쥐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정호는 책상 의자를 끌고 왔다. 그가 먼저 음료수를 들이켰다. 툭 튀어나온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윤미는 침대에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음료수를 마셨다. 오렌지 주스를 맛보니 얼마 전의 가족 모임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왜 웃어?”

“그냥.”

“그런 게 어딨어.”

“지난번 모임 때 생각나서.”

“그렇구나. 맞다. 그때 너 소주 한 잔 먹고 뻗어서 내 침대에서 잤었지.”

정호가 웃었다. 윤미는 민망함을 감추며 따라 웃었다.

“그러고 보니 내 귀걸이 어디서 찾았어?”

“그거? 내 베개 밑에서.”

“그게 거기서 나왔어?”

“응. 자다가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보니까 있더라고. 너 여기서 잘 때 빠진 거 아냐?”

“그랬나 봐.”

윤미는 왼쪽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정호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잡동사니들과 현금, 작은 지퍼백 하나가 들어 있었다. 지퍼백을 집어 건네는 정호에게 윤미가 물었다.

“웬 돈이야?”

“삼촌이 지난번에 주고 가셨어.”

“우리 아빠?”

“응. 맞다, 귀걸이 여기 있어. 집 갈 때 챙겨가. 또 잃어버릴라.”

“고마워.”

정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지퍼백을 다시 서랍 안에 넣었다. 마치 사건의 증거물을 다루는 것 같았다. 윤미는 귀걸이가 든 서랍을 바라보다가 정호가 침대맡에 와서 앉는 것에 놀랐다.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온몸에 긴장감이 돌았다. 윤미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애쓰며 물었다.

“피아노는 언제 연습해?”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이거 전자 피아노라서 음량 조절할 수 있고 헤드폰도 연결되거든. 그래서 밤에도 연습할 수 있어.”

“내가 방해했구나.”

“아니야. 내가 불렀는데 뭘.”

“그럼 지난번에 그 곡 한 번만 더 쳐주면 안 돼?”

“그게 뭐더라?”

“쇼팽. 겨울바람.”

윤미는 어떻게든 정호와의 간격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피아노 앞으로 향했다. 접이식 의자를 펼치고 건반 위에 덮인 천을 걷었다. 전원을 켜자 피아노에 불이 들어왔다. 정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기다란 손가락이 건반 위를 매끄럽게 헤엄쳤다. 오른손은 유리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장식적인 멜로디를, 왼손은 나무를 내려찍는 듯한 무거운 소리를 냈는데, 두 음률의 균일하지 않은 조합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연주가 끝났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윤미는 정호가 피아노 전원을 끄고 건반에 천을 덮는 사이 서둘러 허벅지에 땀을 닦았다. 정호가 반응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또 들어도 좋다.”

“그래? 고마워.”

정호는 뿌듯하게 웃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너 슬슬 출발해야 하지 않아? 여기서 인천까지 꽤 멀 텐데.”

“지금 몇 시야?”

“아홉 시 정도.”

윤미는 대답을 주저했다. 정호는 그녀의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촌을 잡으려는 것인지 보내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괜찮아.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

어디서 그런 거짓말이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정호와 있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의 존재가 자아내는 위압적인 긴장감은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머무르고 싶기도 한 양가적인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지금의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윤미는 정호가 자신의 인생에서 아예 사라지거나 그것을 완전히 바꿔 주기를 바랐다. 그의 곁에 조금만 더 참고 머무른다면 이 위태로운 공기는 압축되다 못해 터져 버릴 것이고, 그러면 자신은 비루하고 따분한 생활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몇 시쯤?”

“글쎄, 11시?”

“시간 많이 남았네.”

“응.”

정호는 다시 윤미의 옆에 앉았다. 연주를 끝내고 온 그가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윤미가 물었다.

“고모랑 고모부는 언제 오셔?”

“두 분 다 자정 넘어서야 오실 것 같아. 내일 일요일이라고 달리시나봐. 그리고 아빠는 원래도 야근 자주 하셔.”

“부모님이랑 친한가 봐. 좋겠다.”

윤미가 말했다. 정호는 대답 대신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을 추켜세우는 음식 평론가처럼 웃었다. 그가 말했다.

“근데 귀는 언제 뚫었어?”

“나? 중학교 때.”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선행학습용 문제집을 사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받은 돈으로 혼자 부평 지하상가를 빙빙 돌았다. 피어싱을 주렁주렁 달고 말투가 여성스러운 남자에게 귓불을 맡겼다. 기대했던 것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엄마에게 들키리라는 두려움이 너무 커 아픔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막상 귀를 뚫고 싸구려 큐빅이 박힌 침으로 구멍을 막아버리고 나니 엄마 따위는 아무래도 좋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윤미는 며칠 뒤 사태를 파악한 엄마가 귀걸이에 피가 배어나올 때까지 귀를 잡아당겨도 아무렇지 않았다.

“봐도 돼?”

정호가 물었다. 윤미는 귀를 뚫어주던 직원이 자신의 귓불 모양을 칭찬했던 것이 떠올랐다. 면적이 알맞아서 귀걸이가 잘 어울릴 거라고 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귓불은 윤미의 작은 자랑거리였다. 너무 작아서 그녀 스스로에게도 잊힌 지 오래였던 그것에 열이 올랐다. 윤미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발개진 귀를 정호에게 내보였다. 정호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 남자친구 없다고 했지?”

“응.”

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는 놀라움을 표시하지도, 농담 삼아 되묻지도 않았다. 그 당연한 사실이 윤미는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정호의 시선을 피하며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근데 있잖아, 우리 학교는 연애 금지다? 남녀공학인데 남자반 여자반 따로 있고 연애하다 걸리면 징계 받아.”

“그렇구나.”

“그리고 윤리 거리라는 것도 있는데, 남자랑 여자랑 같이 있을 때는 50센티미터 이상 간격을 유지해야 한대. 그것보다 가까이 붙어있으면 징계야.”

마치 이렇게. 윤미는 생각했다. 정호가 그녀의 쪽으로 몸을 숙였다. 귓불을 만지던 손은 어느새 뒤통수를 쓰다듬고 있었다.

“진짜 웃기지. 자 들고 다니면서 잴 것도 아닌데 뭐가 윤리적이라는 건지…….”

윤미는 울 것처럼 속삭였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이대로라면 정호의 침대를 노랗게 물들여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정호는 윤미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는 것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곧 윤미는 완전히 침대에 눕혀졌다. 자신의 옷을 벗기고 위에 올라탄 사촌은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채였다. 딱히 차려입은 것이 아닌데도 자신이 입었던 허술한 마감의 추리닝과는 다르게 태가 났다. 그러니까 자신이 알몸이 되는 것이 맞다고 윤미는 생각했다. 그래야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정호의 방 천장과 어떤 것들은 낯설게 기울어지고 있는 걸까? 마침내 시야가 제자리를 찾았을 때 윤미는 한 바퀴를 돌고 온 시계바늘이 된 기분이었다. 그녀는 전혀 고장나지 않았다. 시계를 이루고 있는 세 가지의 바늘은 전부 다 각도를 달리하며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미는 자신이 어째서 시계와 같이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미안해. 울지 마.”

정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시끄럽게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윤미는 훌쩍거리며 벗겨진 옷을 주워입었다. 반면에 정호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말끔한 차림새였다. 그는 책상에 놓인 티슈곽에서 휴지를 뽑아 윤미에게 건넸다. 윤미는 몇 번이나 코를 풀었다. 다 쓴 휴지를 어디에 버려야 할 지 몰라 난처해하자 정호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축축해진 휴지 뭉치를 받아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했다.

“부모님한테 말할 거야?”

윤미는 우는 것을 멈추고 정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태연했다.

“뭘?”

윤미가 되물었다. 정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어려운 일은 단 하나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아니.”

그러므로 윤미가 그렇게 대답한 건 성교육 시간에 매번 딴청을 피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 감정은 서로 옮았다. 어느새 윤미는 정호만큼이나 태연하게 사촌의 집을 나서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던 윤미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윤미는 눈을 떴다. 민주였다.

“안 그러던 애가 왜 하루종일 졸고 있냐?”

민주가 속삭였다. 윤미는 담임 교사가 교단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정호의 집에 다녀온 다음날 그녀는 독서실도 가지 않고 온종일 잠만 잤다. 오늘도 계속 졸음이 쏟아져 자습은 물론 대부분의 수업을 놓치고 말았다. 민주가 깨우기 전까지는 꿈까지 꾸고 있었는데, 정호의 학교로 전학을 가는 내용이었다. 얼굴이 지워진 학생들이 환영의 뜻을 내비치며 자기 소개를 청했다. 윤미는 입을 열었지만 목 근육이 마비가 된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아 자신이 꿈을 꾸고 있음을 깨달았다. 윤미에게 꿈은 늘 수조 속과 같았다. 그 안에서는 아무리 입을 뻐끔거려도 공기방울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와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윤미는 스스로의 잠꼬대를 들으며 깨어나고는 했다.

“자, 조용히들 하고. 수학여행 간다는 얘기 다들 들었을 걸로 안다. 가정통신문 나눠줄 테니까 뒤로 돌려라.”

이제 눈앞에는 정호와 이름 모를 새 친구들 대신 회색 가정통신문을 돌리는 급우들의 고양된 얼굴만이 보였다. 종이를 받자 윤미는 아이들이 신이 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며칠 전부터 소문이 돌던 수학여행 신청서가 나온 것이었다.

“이번에는 수련회가 아니네.”

윤미는 내용을 확인하며 말했다. 장소는 제주도였고 3박 4일의 일정이었으며 경비는 30만원이었다.

“또 수련회면 난 이번에 안 갈래.”

민주가 대답했다. 수학여행마저 빠지겠다는 선언이 지독하게 느껴질 법도 했으나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민주와 친해지게 된 것도 작년에 갔던 영성 수련회 덕분이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독교적인 문화가 낯설게만 느껴지던 시기였다. 가족적 전통을 제외하면 본디 교회란 마치 피아노 학원이나 태권도장처럼 친구의 손에 이끌려 한 번쯤 나가게 되는 법이다. 여름성경학교나 수련회 같은 행사들은 더욱 그렇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민주를 만나기 전의 윤미는 친구가 있었던 적이 드물었다. 덕분에 주일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것을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 들었고 보통의 수련회와 교회에서 여는 수련회의 차이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1학년 때의 현장학습은 영성 수련회라는 이름답게 후자에 가까웠다. 2박 3일의 일정 내내 학생들은 CCM을 부르며 돌아다녔고 배가 아파 보건실에 간 한 친구를 위해 기도회도 열었다. 숙소에 오자마자 선교반 아이들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 앉아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양손이 붙들린 채로 멍하니 앉아 있던 윤미는 구석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는 민주와 눈이 마주쳤다. 민주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술을 비틀어 보였다. 그 순간 윤미는 자신이 그녀와 친구가 될 운명임을 깨달았다. 사실 기독교인이 아닌 학생들은 더 있었고 그들 나름대로 모여 파벌을 꾸리고 있었는데, 윤미는 그곳에조차 섞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도 자신과 같은 처지임을 깨닫는 데에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윤미는 민주의 곁에 가서 앉았다. 밥도 같이 먹고 이동할 때도 무리와 떨어져 단둘이 걸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윤미는 주일이라는 말을 이 학교에서 처음 들었다고 민주에게 속삭였다. 민주는 처음으로 윤미의 앞에서 소리내어 웃었다.

“설마 세족식을 또 하겠어?”

“혹시 모르지. 어차피 담임도 바뀌었잖아?”

수련회의 마지막 날에는 세족식을 진행했다. 담임 교사들이 반 학생들의 발을 손수 씻겨 주는 행사였다. 무릎을 꿇은 선생님의 앞에서 훌쩍이는 아이들과 달리 윤미는 발을 내보이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의 손이 자신의 발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발톱을 제때 깎았던가? 냄새가 나거나 발가락 때가 밀리지는 않을까? 다행히 의식은 발등에 물을 두어 번 끼얹는 정도로 끝이 났으나 윤미는 선생이 의식의 마지막으로 자신을 안으며 사랑한다고 속삭일 때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세족식은 의미와 의의도 모르는 채 그렇게 끝이 났다.

한편 선교부장에게 붙들려 온 민주는 욕조에 빠뜨려진 고양이마냥 잔뜩 날이 서 있었다.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물어뜯기라도 할 기세였다. 먼저 의식을 마친 윤미는 민주가 자신의 발을 씻기는 선생을 혐오스럽다는 얼굴로 내려다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윤미는 그녀가 선생을 걷어차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었으나 민주는 그럴 가치도 없다는 듯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포옹을 받을 뿐이었다.

세족식이 끝난 뒤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묘사한 성극을 관람했다. 무대 위를 제외한 조명이 꺼졌다. 윤미는 민주를 따라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앉은 자리에서 곁눈질을 하면 커튼 뒤가 보였다. 배우가 예수의 손에 못을 박는 시늉을 하는 것에 맞춰 커튼에 숨은 스태프가 양손에 든 빗자루를 서로 부딪쳤다. 딱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관객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윤미 또한 손바닥이 저려 오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눈꺼풀을 까뒤집어 스테이플러를 박아둔 것 같았다. 망치를 흉내낸 빗자루의 파열음, 퍼뜩 솟는 어깨와 단말마 같은 비명이 눈물샘에 스며들었다. 어느새 윤미는 울고 있었다. 아무것도 믿지 않는데 눈물이 솟았다.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활에는 죽음이 선행했다. 신의 아들이라 자칭하는 자가 무대 위에서 숨을 거뒀다. 윤미는 저도 모르게 민주의 손을 잡았다. 민주가 자신을 한심하게 여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무대 위의 배우가 흉내내고 있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 남자가 무척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민주는 손을 빼지 않았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만 보고 있었다. 윤미는 또다시 수치스러워졌다. 울음을 그치려고 했다. 그러나 성극이 끝날 무렵 스크린에 송출되기 시작한 영상 때문에 또다시 엉엉 울고 말았다. 영상은 충격적일 정도로 잔인했다.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가 끊임없이 매를 맞았다. 병정이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마른 몸에 붉은 줄이 그어졌다. 더 상처를 낼 곳도 없게 되었을 때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렸다. 손바닥 가운데에 못이 박히는 장면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윤미는 입을 틀어막았다. 손등 위로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가 윤미에게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같은 반의 선교부장인 선희였다. 선희는 너무 울어 얼굴이 부어 있었다. 윤미는 민주의 손을 놓치며 그녀에게 안겼다. 어느새 민주도 다른 선교부원에게 붙들려 있었다. 예수님을 부르짖으며 통곡하는 아이들 틈에서 윤미와 민주는 각각 기도를 받았다. 윤미는 민주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선희의 어깨에 가로막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선희는 잠긴 목소리로 기도를 올리고는 윤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윤미가 예수님을 꼭 만났으면 좋겠어.”

만난다. 그 말이 윤미의 마음을 때렸다. 텅 빈 그릇이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래도 못을 망치로 내리치는 소리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이제 윤미는 울고 있지 않았다. 대신에 묻고 싶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될까? 예수님은 나처럼 외로운 사람이야? 윤미는 제 마음의 크기와 예수의 손바닥에 뚫린 구멍의 지름을 비교하려 했다. 어쩌면 그들은 기름칠을 한 잠금 장치처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결정을 내리고 구세주의 품에 뛰어들기 전에 불이 켜졌다. 윤미는 선희에게서 풀려났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잊고 민주에게로 달려갔다. 씨발. 민주가 입모양으로 말했다. 이건 강간이야.

윤미는 가정통신문을 읽고 또 읽었다. 제주도. 3박 4일. 30만원. 제주도. 3박 4일. 30만원. 30만원……

“세족식은 안할 것 같네. 그래도 재미없어 보인다.”

민주가 중얼거렸다.

“수학여행 가면 보통 뭐 해?”

윤미가 속삭였다.

“너 수학여행 안 가봤어?”

“응. 초등학교 땐 신종플루 때문에 못 갔고 중학교 때는 영어마을 갔어.”

“맞다. 신종플루 돌았지. 나도 그때는 안 갔던 것 같아. 근데 영어마을은 진짜 싫었겠네.”

민주는 하품을 하더니 가정통신문을 가방에 구겨 넣고 엎드려 버렸다. 수학여행 따위 가봤자 별 것도 없다는 투였다.

그 말을 직접 듣지 못했기 때문인지 윤미는 수학여행이란 것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그 흔한 제주도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괜찮게 돌아갔을 때도 가족은 여가와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주말에만 집에 들어왔고 엄마는 여행을 사치로 여겼다. 그래서 정호가 가족과 함께 로마니 그랜드 캐니언이니 하는 곳에 갔다와서 쥐여주는 기념품을 받고만 있어야 했다. 냉장고는 온갖 관광 명소가 그려진 자석들로 알록달록해졌다. 뒤에 병따개가 붙은 것들은 아버지의 손에 들어갔다가 영영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건 어떤 느낌일까. 흐릿해진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윤미가 안다고 할 만한 장소는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가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 여겼던 적도 있었다. 엄마가 한 마디 말도 없이 구해온 원룸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처음 들어선 자취방은 낯설었지만 그뿐이었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언덕 위에 지어진 건물은 높았다. 윤미는 하루도 빠짐없이 숨이 찼다.

야자가 끝나고 자취방에 도착했다.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왜 전화했어?”

“우리 이번에 수학여행 가.”

“수학여행? 얼만데.”

“30만원.”

침묵이 이어졌다. 윤미는 구형 스마트폰이 내보내는 백색소음을 듣고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안 될 것 같은데.”

“왜?”

“엄마가 당장 현금이 없네.”

“1학년 때 수련회는 보내줬잖아.”

“그건 그때고 지금은 돈 없어. 그리고 학부모 밴드에 올라온 거 보니까 그거 완전 교회 수련회던데, 이번에도 가봤자 그런 것만 하다 오는 거 아니야? 내가 너 공부하라고 그 학교 보냈지 예수쟁이 되라고 보냈냐?”

“왜 말을 그렇게 해. 그리고 이번엔 기도회 같은 거 안한대.”

윤미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아직 제대로 된 일정표가 나오지 않아 가서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명색이 수학여행이었다. 이름부터 영성수련회였던 1학년 때와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엄마는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무슨 말을 하든 돈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윤미가 고집을 부리자 이제는 아빠한테 부탁하라며 말을 돌렸다.

아버지에게는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돈이 있을 리도 없었거니와 윤미에게 아버지는 대화를 나눈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였다. 버려져서 이끼가 낀 석상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경외가 담긴 손길을 받았던 시절은 이미 너무 예전이었다.

또한 윤미는 엄마가 남편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주가 종교를 혐오하고 기피하듯이 엄마는 아버지를 경멸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손을 뻗었다간 자신 또한 엄마에게 버려질 것임을 윤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알았어. 그럼 안 갈게.”

윤미는 귀에서 핸드폰을 뗐다. 엄마의 한숨 소리가 낮은 음질로 새어나왔다. 그녀가 말했다.

“정윤미. 너 자취방 월세만 30만원이야. 너 그 학교 보내고 나서 돈이 있어본 날이 없어.”

“그럼 그냥 여기 말고 동네 일반고 보냈으면 됐잖아.”

“뭐?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내가 너 거기 보내려고 얼마나-”

윤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벨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무음 모드로 바꾸고 베개 밑에 밀어넣었다. 피부 밑이 서늘해지고 겨드랑이가 차갑게 젖었다.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윤미는 얼른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수도꼭지를 돌리는 손이 덜덜 떨렸다. 서둘러 물을 틀어 식어가는 피를 데우려고 애썼다.

예담은 윤미의 반 선교부장이었다. 이름의 '예' 자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윤미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독실했는데, 성격이 좋고 기타를 잘 쳐서 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게다가 예담은 노래의 음을 음을 맞출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인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예담은 경건회의 찬양 반주를 도맡았을 뿐 아니라 가요 따위를 기타로 연주하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었다.

민주에게는 비밀이었지만 윤미 또한 예담에게 호감이 있었다. 민주의 눈치가 보여 경건회 때 늘 민주를 따라 엎드려 있었으나 실제로 잠에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쉬는 시간이나 야자가 시작하기 전 예담의 주변에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저들끼리 즐겁게 떠드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문제집을 푸는 민주가 가여웠다. 그러나 윤미에게는 민주를 데리고 예담에게 다가갈 용기도, 민주와 함께 투쟁을 위한 투쟁에 가담할 각오도 없었다. 윤미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예담의 연주를 멀찍이서 듣고 속으로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기타 줄을 튕길 때마다 윤미의 샤프가 문제집 종이 위에서 미끄러졌다. 윤미는 무관심을 가장하며 속으로 박수를 쳤다. 예담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려 주었으면 하는 기대는 하지 않으니 자신을 미워하지만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얘들아! 우리 이번 수학여행 때 마니또 하려고 하는데 어때?”

마니또라는 단어에 윤미는 고개를 들었다. 민주 또한 동그래진 눈으로 교탁을 바라보았다. 경건회를 끝낸 예담이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서 있었다.

“랜덤으로 마니또 배정받으면 간단한 선물이랑 편지를 준비해서 수학여행 때 주는 거야. 하고 싶은 사람?”

“나 할래!”

“나도!”

웅성거리던 아이들이 곧장 손을 들었다. 민주는 다시 엎드려 버렸다. 윤미 또한 손을 들기를 주저했는데,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지가 불투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동안 예담은 손을 든 아이들의 수를 세고는 다수결이라며 마니또 이벤트를 하기로 결정해 버렸다.

“그럼 지금 바로 마니또 뽑을까? 번호 적힌 쪽지 각자 하나씩 가져가서 정하는 걸로 하자.”

예담과 선교부원들은 일이 진행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미리 준비해둔 이면지에 번호를 적었다. 작은 통에 쪽지를 넣은 뒤 교실을 돌아다니며 추첨을 진행했다. 윤미는 선물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해하며 쪽지를 뽑았다. 쪽지를 펼쳐 16이라고 쓰여 있는 숫자를 보자마자 숨길 새도 없이 한숨이 나왔다. 16번은 예담이였다.

“돈만 더 나가게 생겼네.”

민주가 투덜거렸다.

“민주 너 수학여행 가?”

“응? 당연히 가지.”

“너 학교 행사 싫어하는 줄 알았어.”

“그래도 수학여행은 가야 하지 않아? 별로 기대는 안 되지만.”

윤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민주가 물었다.

“설마 넌 안 가?”

“응. 이번에는 못갈 거 같아.”

“왜?”

“지난 모의고사 성적이 안 좋아서 그냥 공부하려고.”

“뭐? 진짜?”

“나 수학 4등급이라 학원에서 보충해준대.”

“너 학원 안 다니잖아. 언제부터 다녔어?”

“3월 모의고사 치고 나서 수학 학원 들어갔어. 인천에 있어서 주말에 다녀.”

“야. 너 안 가면 난 누구랑 노냐? 저것들 맨날 기도나 중얼거리는 거 안 그래도 꼴보기 싫어 죽겠는데.”

“미안해.“

윤미는 보란 듯이 문제집으로 시선을 내리는 민주를 힐끔거렸다. 그녀는 더 화를 낼 생각도 없어 보였다. 매일같이 쏟아져 내리는 성스러운 말들을 온몸으로 튕기듯이 자신을 거부하고 있었다.

윤미는 민주의 화를 풀어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감히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수학여행에 민주를 혼자 보내게 된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으로 민주가 조금 미워지기도 했다. 여태껏 민주는 자신의 대변자였다. 스스로가 나설 필요 없이 모든 것을 알아서 내쳐 주던 유일한 보호처였다. 너무 많은 것을 대신 나서서 거부하는 바람에 정윤미는 김민주라는 사람 말고는 의지할 곳이 한 군데도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민주마저 자신을 내치려 드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윤미는 그 점이 두려우면서도 억울했다. 민주마저 참석하는 수학여행에 가지 못하게 된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엄마의 반대였고, 엄마의 말이 맞다면 집안의 경제적 사정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의지로 비롯된 것과는 달랐다.

윤미는 책상 서랍에서 꼬깃꼬깃해진 가정통신문을 꺼냈다. 아직 신청서도 작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오늘이나 내일 종례 때 신청서를 걷을 모양이었는데 참석 표시를 해도 좋을지가 여전히 불투명했다. 엄마는 마음을 돌릴 것 같지 않았고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기는 여전히 꺼려졌다. 가장 신경을 거스르는 것은 집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불현듯 납득하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이었다.

윤미는 자신의 마니또가 된 예담을 떠올렸다. 예담은 마니또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선택지 따위는 없다는 것처럼 굴었다. 수학여행에 가지 않는 학생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후자야 어떻게든 둘러대고 넘어갈 수는 있었다. 사정상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면서 사과하면 예담은 이해해 줄 것이었다. 예담은 선교부장까지 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따라서 누구보다 심성이 고운 아이일 터였다. 문제는 예담에게 줄 선물을 살 돈도 마땅치가 않았다는 것이다. 착하디 착한 선교부장은 편지만이라도 기쁘게 받아줄 것이었지만 제대로 된 선물을 주지 못한다면 돈이 없다는 것을 들킬 수도 있었다.

사실 윤미는 유일한 친구인 민주에게도 집안 형편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했다. 윤미 자신도 스스로의 사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돈이 많지 않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전학을 가게 된 것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새로 입주한 빌라는 구축이었고 방이 세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까미가 씹던 개껌은 다 닳고 해져 버렸다. 헌데 그런 형편에 무슨 돈으로 자신을 타지의 사립 고등학교에 보냈는지 윤미는 언제나 의문이었다. 정말로 돈이 없다면 자신은 타지에서 자취를 하며 삼시 세끼를 학교에서 해결하기는 커녕 문제집을 살 돈도 없어 선생들에게 구걸하고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에 나온 것처럼 저소득층 지원금으로 연명하며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윤미는 자신이 충분히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교육까지 받지는 못했지만 엄마의 말에 따르면 ‘후줄근한 동네 보습학원’보다야 훨씬 나은, 명문대 출신 교사들이 즐비하고 좋은 면학 분위기가 조성된 자율형 사립고에는 다니고 있다. 그런 주제에 정작 수학여행을 갈 돈은 없다는 것이 윤미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야자 시간은 물론이고 자취방에 도착한 후에도 윤미는 수학여행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결국 엄마의 변덕 혹은 그 이상의 존재에게 달렸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다는 사실이 애처로웠다. 사실은 기도가 이루어지리라는 희망마저도 품을 수 없었다. 윤미에게 있어 희망이란 곧 기대였다.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은 언제나 아팠다.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답보 혹은 유예의 상태가 차라리 나았다. 윤미는 이대로 멈춰 있고만 싶었다. 수학여행도 가지 않고 졸업도 이루지 않은 채로, 영원한 희망의 안이함에 갇혀 눈을 감고 싶었다.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뉴스피드가 학교와 교목실에 대한 소식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권 목사가 자신을 학교 커뮤니티에 추가해 준 덕분이었다. 윤미는 학교를 방문한 졸업생들의 사진을 구경했다. 다들 내로라하는 대학교의 과잠을 입고 있었다. 멋진 새가 그려진 연세대, 가슴팍에 새겨진 대문자 S 하나만으로 신분 증명을 끝낸 서울대, 정복에 모자까지 갖춰 쓴 육군사관학교.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또 자랑스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윤미는 교목실에 찾아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학력이 갖추어져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인서울’도 어려울 자신은 학교를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문과라지만 수학을 4등급밖에 받지 못했다면 상위권 대학 진학은 힘들 것이었다. 게다가 내신 성적도 좋지 않았다. 대다수의 자사고 학생들이 그렇듯 윤미는 모의고사 등급보다 내신 등급이 훨씬 낮았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일반고로 옮겨 내신을 챙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내심 생각했지만 엄마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낮은 점수를 보여주어도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다고만 여겼다. 넌 어렸을 때부터 자기주도학습이 되는 아이였잖니. 사교육 안 받고 스스로 공부하는 게 제일 똑똑한 거야. 엄마는 중학교 때부터 윤미에게 세뇌를 걸듯이 그렇게 말했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딸의 성적이 가파르게 추락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은근슬쩍 다른 얘기를 끼워넣었다. 너는 분명히 좋은 대학에 갈 거야.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나 돈이 없기 때문이지. 윤미에게는 그 말이 마치 어떤 시련에 대한 댓가를 기대하는 것처럼 들렸다. 자식이라는 시련. 혹은 자식이라는 신. 윤미는 자신이 어느 쪽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문득 정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사고에서는 일부러 내신을 챙기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정시를 준비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비난의 틈에서 자신을 구해주려는 의도가 명백한 그 말이 윤미는 고마운 동시에 가증스러웠다. 반에서 1등이라니, 그것도 외고에서!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호는 '인서울'은 물론 스카이도 충분히 갈 수 있을 터였다.

윤미는 교목처 페이지를 나와 검색창에 정호의 이름을 쳤다. 어렵지 않게 그의 계정을 찾을 수 있었다. 프로필에는 그가 다니는 학교의 이름이 걸려 있었고 친구 수는 자신보다 훨씬 많았다. 게시물들은 수많은 ‘좋아요’와 댓글을 받고 있었다. 친구들과 야자 시간에 찍은 사진들과 빗자루를 다리 사이에 끼고 뛰어다니는 동영상 속 정호의 모습은 퍽 즐거워 보였다. 그와 친구들에게서는 우정을 넘어선 어떤 결속력까지 느껴졌다. 렌즈에 비친 그 누구도 외롭지 않을 권리였다. 윤미는 자신과 민주 사이에도 그런 것이 있는지를 생각하다가 민주와 그 흔한 사진 한 번 같이 찍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자신과 민주는 각자 외로웠고 그런 의미에서 협정을 맺은 것일지도 몰랐다.

윤미는 팔로우 신청을 할까 고민하다가 정호의 페이스북을 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에 방치되어 있던 알림창을 확인했다. 밀린 알림들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아무 내용이 없었다. 누군가가 새 게시물을 올렸다는 것, 같이 아는 친구가 있다는 제안. 윤미는 그것들을 훑어보다가 익숙한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최예담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팔로우했다는 알림이었다.

윤미는 알림창을 눌러 프로필에 들어갔다. 학급의 선교부장 예담이 맞는 듯했다. 정호처럼 학교명을 걸어둔 데다 자신도 알고 있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게시해 놓은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져 알림의 날짜를 확인했다. 이틀 전, 즉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이 나온 날이었다.

반가운 한편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선교부의 요주의 인물인 민주와 가깝다는 것을 예담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맞팔로우를 하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윤미는 우선 예담을 친구로 추가했다. 얼마 없던 친구 수가 하나 늘어났고 뉴스피드에 예담의 게시물이 뜨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선교부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었다. 교회 강당에서 기타를 치거나 예배를 드리고 난 뒤 다같이 국수를 먹는 모습이 정호만큼이나 즐거워 보였다.

문득 민주가 기독교인들에게 느끼는 반감이 사상적 대치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서는 민주와 자신 사이에는 없는 돈독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전부 같은 종교를 믿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민주 같은 냉소주의자나 자신처럼 처음부터 혼자였던 사람은 영영 알지 못할 감정이었다.

윤미는 자신의 계정에 예담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게시물이 있는지 확인했다. 페이스북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 이렇다 할 내용이 있는 게시물은 없었다. 외로움이 덮쳐 와 윤미는 핸드폰을 끄고 눈을 감았다.

민주를 따라 항상 엎드려 있었던 탓에 윤미는 기독교인 학생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민주가 고개를 숙인 것을 확인한 윤미는 경건회를 준비하기 위해 칠판에 CCM의 가사를 적고 있는 예담에게 다가갔다.

“예담아, 안녕.”

“윤미야, 안녕! 아침 먹었어?”

“응. 급식실에서 먹었어.”

“너 자취하던가?”

“맞아. 예담이는 통학해?”

“아니. 나는 기숙사 살아.”

“그렇구나.”

예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칠판에 가사를 적기 시작했다. 윤미는 잠자코 서서 가사를 읽어내렸다. 보라 주님, 구름 타시고, 나팔 불 때에, 다시 오시네…모두 외치세, 이는 은혜의 해니, 시온에서 구원이 임하네……. 시온은 어디일까. 천국과 비슷한 곳일까? 종교 수업 시간에 들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편 가사를 다 적은 예담은 기타를 멨다. 다른 선교부원들이 교단 주변에 모여들었다. 윤미는 예담을 붙잡고 말했다.

“예담아. 나 부탁이 있는데.”

“응. 뭐야?”

“혹시 오늘 경건회 때 그 찬양 불러줄 수 있어?”

“당연히 되지. 무슨 찬양?”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주님의 은혜, 내게 넘치네, 하는 노래 있잖아. 알아?”

“‘주 신실하심 놀라워’ 말하는 거지? 나도 이 찬양 좋아해! 오늘 같이 부르자.”

잠시만, 윤미가 듣고 싶은 찬양 있대! 예담이 외치자 선교부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중에는 눈살을 찌푸리는 아이도 있었다. 윤미는 얼굴이 달아올라 얼른 고개를 숙였다.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예담과 친해질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망신스럽고 주목을 받는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야, 경건회 때 자지나 마. 맨날 자놓고서는 이제 와서 뭐냐?“

“미, 미안해.”

누군가의 말에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이제 안 잘게”. 윤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 듯했다. 자리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윤미는 저들끼리 떠드는 선교부원들 옆에 머쓱하게 선 채로 예담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칠판에 새로운 가사를 쓰는 것을 마친 예담이 교탁 뒤로 가자 서둘러 그 옆에 가서 섰다. 예담이 외쳤다. “얘들아, 경건회 하자!”

주 신실하심 놀라워 죄인의 마음 흔드네 자비의 물가로 인도하시니 그 무엇도 끊지 못해 주여 기억하소서 주 백성 자녀들 신실한 주님의 약속 주님의 은혜 내게 넘치네 나를 향한 주 은혜 주님의 은혜 내게 넘치네 나를 향한 주 은혜

예담이 미소를 띤 얼굴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윤미는 예담의 옆에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박수를 쳤다. 윤미를 힐끔대던 선교부원들이 점차 그녀를 에워싸고 다가왔다. 손을 붙잡고 흔들며 찬양을 유도했다. 윤미는 그들과 함께 몸을 흔들고 자리에서 뛰었다. 겨드랑이 밑이 축축하게 젖었다. 자켓을 걸치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고조되며 모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윤미는 율동을 추는 아이들을 어설프게 따라했다. 팔을 가운데로 모으고 손을 어깨에 올렸다. 곧 윤미는 다른 종족으로만 느껴졌던 선교부의 일원이 되어 춤을 추고 있었다. 빨간 구두를 신은 것처럼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싫지 않았다. 어느새 일어난 민주가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것을 외면하고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부르짖었다. 교단에서는 교실 전체가 보였다. 과거의 자신처럼 엎드려 자는 아이들, 무시하고 문제집을 푸는 아이들, 콘서트에 온 것처럼 찬양을 따라하는 아이들. 그 앞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윤미는 자신이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후들거리는 다리에 끝까지 힘을 주고 찬양을 마칠 수 있었다.

“야, 너 뭐냐?”

경건회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온 윤미에게 민주가 쏘아붙였다.

“뭐가?”

“너 언제부터 개독이었어?”

개독이라는 단어에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

“나 기독교 아닌데.”

당황한 윤미는 그렇게 말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기껏 예담과 선교부원들의 환심을 샀는데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근데 경건회를 왜 해?”

“그냥 노래가 좋아서 불러달라고 한 거야.”

“아, 그래?”

민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물함으로 가서 과장된 몸짓으로 안을 뒤졌다. 윤미는 다음 교시가 정보 수업임을 기억해내고는 컴퓨터실로 가기 위해 교과서를 찾았다. 원래대로라면 자신을 기다렸을 민주는 소지품을 챙겨 먼저 밖으로 나가 버렸다.

“민주야, 화났어?”

윤미는 서둘러 민주의 뒤를 따라갔다. 민주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어?”

윤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애처로운 말투를 가장했으나, 사실 민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날 민주는 윤미를 완전히 무시했고 윤미는 예담과 그 친구들의 틈에 섞여서 밥을 먹으며 역시 수학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까미야?]

[귀엽네!]

답장을 받기까지 정확히 삼십일 분이 걸렸다. 귀걸이를 찾으러 갔던 날 연락했던 것이 정호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하교한 뒤 윤미는 핸드폰 사진첩을 뒤져 몇 장 없는 까미의 사진을 찾았다. 그나마 사랑스럽게 나온 한 장은 아버지의 불룩한 배 옆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버지의 몸이 나오지 않게 사진을 편집한 뒤 아무 덧붙임 없이 정호에게 보냈다.

마침내 답장이 왔을 때 윤미는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정호가 자신을 내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벌써부터 흐릿한 그 기억이 윤미에게는 마치 공모(共謀) 혹은 내통의 순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가 따질 수 있는 손익이란 자신에게 입단속을 시킨 정호가 먼저 나서서 그 일을 떠벌리지는 않으리라는, 별 영양가 없는 추측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입단속은 자신을 믿는 것보다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더욱 효과적일 수 있었다. 엄마조차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귀엽지]

[근데 나 너네 집 또 놀러가도 돼?]

읽음 표시가 사라졌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윤미는 기다리는 대신 연락처에서 정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길게 이어지다가 달칵 하는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정호였다. 윤미는 숨을 들이마시고는 인삿말을 건넸다.

“안녕.”

“응. 무슨 일인데 전화까지 했어?”

정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태연했다. 윤미는 자신의 목소리도 그렇게 들릴지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훌륭한 연기자가 틀림없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은 지금 정호조차 배제한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었다. 윤미가 말했다.

“나 귀걸이를 또 놓고 와서.”

“맞다. 그때 돌려주는 걸 잊어버렸구나. 미안해.”

“다시 너네 집 가도 돼?”

“그래, 오고 싶으면 와. 이번주 주말에 올래? 부모님께는 말해둘게.”

집이 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윤미는 정호가 고모 내외에게 어떤 핑계를 댔을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윤미의 출발은 그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주안역으로 가 전철을 탔다. 아파트 정문에서 정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마중을 나온 그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고모 내외는 이번에도 외출 중이라고 했다. 윤미는 그때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정호 또한 어제 보았던 사람을 대하듯 집으로 가는 내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너희도 수학여행 가지?”

“응. 그저께 가정통신문 나왔어.”

“어디로 가?”

“여러 군데로 나눠서 가는데 나는 일본어과라서 일본 팀이야. 중국어과 애들은 중국 가고, 제주도 가는 팀도 있고. 너희는 어디로 가?”

“우리는 다같이 제주도야.”

“제주도 좋지. 나는 세 번인가 가봤어.”

정호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윤미의 정신은 정호의 방에 혼자 남게 될 순간에만 쏠려 있었다. 자신을 방에 집어넣은 정호가 마실 것을 가지러 가는 순간이 기회였다. 윤미는 웃옷 주머니에 찔러넣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손이 손목으로부터 잘려나온 듯 제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마침내 정호의 방에 들어섰다. 윤미는 몸을 돌려 정호를 마주보았다. 그는 밖으로 나가는 대신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제 보니 그는 자신보다 한 뼘도 넘게 컸다. 자신의 정수리 냄새 정도는 손쉽게 맡을 수 있는 키였다. 윤미는 그가 지금이라도 자신을 손님으로 대접해 주기를 기다렸지만 정호는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미소 띤 얼굴은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는 가로등 같았다. 그리고 자신은 그 밑에 꼬여드는 나방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윤미는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호야. 나 피아노 쳐줘.”

“그래. 이번에도 겨울바람 쳐 줄까?”

정호가 대답했다. 윤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른 거.”

“그럼 어떤 거 듣고 싶어? 베토벤 비창 3악장도 칠 줄 아는데, 딴딴딴 딴, 따단, 따단 하는-”

“그거 잘 쳐?”

“연습을 많이 안 해서 아주 멋있게 연주하진 못해.”

“그러면 됐어. 그걸 듣고 싶어.”

“정말?”

정호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묻어났다. 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정호가 미소지었다. 뜻을 알 수 없어 윤미는 그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정호가 말했다.

“윤미 너는 참 특이한 애 같아.”

“그래?”

“음. 조용해 보이는데 어딘가 튄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비창 3악장 쳐줄게.”

정호가 의자에 걸터앉았다. 건반을 덮은 천을 걷고 전자 피아노의 전원을 켰다. 변명처럼 건반 몇 개를 누르며 말했다.

“좀 버벅대도 이해해 줘. 악보는 어렵지 않은데 멋있게 연주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정호는 손을 풀려는 듯 옥타브를 반복적으로 연주했다. 윤미의 손도 마법에 걸린 것처럼 달그락거렸다. 사촌이 완전히 등을 돌렸을 때는 양손을 맞잡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베토벤의 비창 3악장이 얼마나 긴 곡인지 몰랐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행동해야 했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자신도 익히 아는 곡이었다. 정호의 시선이 부지런히 건반 위를 쓸었다. 윤미 또한 그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목각 인형처럼 팔을 치켜들었다. 등 뒤로 손을 뻗어 책상 서랍의 손잡이를 만지작댔다. 쉴새없이 흐르는 음악 덕분에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마침내 손잡이를 붙잡고 천천히 앞으로 당겼다. 서랍 바퀴가 덜컥대며 굴러가자 심장도 멎을 것처럼 두근거렸다. 혈관이 당기는 느낌을 참고 고개를 돌렸다. 5만 원권 지폐의 누런색 끄트머리가 보였다. 윤미는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건드렸다. 지폐의 빳빳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음악 소리가 저 먼 천국에서 기원하는 듯 부드럽게 멀어져갔다. 윤미는 서랍에서 지폐를 있는 대로 챙겨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곧 사라질 것처럼 여려지던 연주가 도자기를 깨뜨리듯 강렬해졌다. 정호의 커다란 손이 가짜 건반을 때리듯 뒤덮었다. 악 하고 비명이 터져나왔다. 한계까지 팽팽해진 혈관이 마침내 끊어진 듯 팔다리가 저렸다. 윤미는 책상 모서리를 붙잡고 비틀거렸다. 놀란 정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미야?”

“미안. 나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 연주 잘 들었어. 안녕.”

윤미는 그대로 정호의 방을 나섰다. 무슨 일이냐며 따라나오는 정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신발을 꿰차고 대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 없어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내렸다. 십 층이 넘는 계단을 돌고 돌아 내려가며 정호가 아파트 현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숨을 몰아쉬며 현관마저 나선 뒤로는 역을 향해 달음박질했다. 발목이 뻐근했고 종아리 근육이 꿈틀거렸다. 마침내 개찰구를 통과하여 열차에 올라탔는데도 아직 달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는 도주하고 있었다. 명백한 범죄의 현장으로부터 능동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금기를 깨고 말았다는 점에서 이는 처음이 아닐 것이었다. 윤미는 그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좋지 않은 성적이 우둔함을 증거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녀는 한 번도 멍청했던 적이 없었다. 열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윤미는 생각했다. 난 자격이 있어.

있고 말고.

윤미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반으로 접힌 지폐가 만져졌다. 빳빳한 종이 표면을 쓰다듬으며 심호흡을 하다가 돈을 꺼내서 한 장씩 세어보았다. 기껏해야 서너 장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일곱 장이나 되었다. 수학여행을 가려면 30만원이 필요했으므로 5만원어치 죄를 더 저지른 셈이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증거는 없다. 정호의 침대에 눕게 되었던 그날처럼, 말해 보았자 누구도 믿어줄 리 없는 것이다. 윤미는 지폐를 구길 것처럼 꽉 쥐었다. 정호의 집을 나온 뒤 줄곧 두근대던 심장이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이제 윤미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고 있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는 정호의 서랍에서 돈을 꺼낼 때 느꼈던,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감상마저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신에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취하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엄마, 나 수학여행 갈래.”

모친이 소파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윤미는 살면서 두어 번 정도 목격했을 시신의 생김새를 떠올리고는 했다. 유치원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초등학교 때는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뒤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던 때였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아버지에게 임종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윤미는 충격을 받은 그가 평정심을 잃고 사고를 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과속 한 번 하지 않고 차를 몰아 할머니가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암환자였던 할머니는 초췌한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했을 때 윤미는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다는 표현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죽은 사람 같지 않았다. 갓 임종한 시신은 미지근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모친이 시켜 할머니의 손을 잡아보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하고 지나갔을 터였다.

윤미는 소파 밖으로 늘어진 엄마의 손도 그렇게 미지근할지 생각했다. 헛된 망상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었다. 엄마로부터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수학여행 정도는 이제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윤미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누워 있는 엄마를 다시 불렀다.

“엄마. 자? 나 수학여행 갈 거라니까.”

“무슨 소리야?”

엄마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부스스한 머리에 새치가 듬성듬성 껴 있었다. 엄마는 헛소지 말라는 듯 윤미를 노려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말했다.

“돈 없다고 했잖아.”

“진짜 없어?”

“말이라고 해? 네 학비랑 생활비 대는 것도 힘들어 죽겠어. 이번 달도 마이너스야.”

“그럼 내가 돈 내면 가도 되지?”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래?”

엄마가 눈을 치켜떴다.

“지난번에 고모부가 용돈 주셨어. 30만원 정도.”

“네 고모부가 용돈을 줬다고?”

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리닝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지폐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 꿈틀거렸다. 윤미는 주머니 위로 손을 올렸다. 바스락대는 감촉이 느껴졌다.

머리통이 옆으로 돌아갔다. 시야가 흐려졌다가 빙글빙글 돌았다. 윤미는 얻어맞은 곳을 감싸며 엄마를 보았다.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새하얬다.

“야, 너 거지야?”

“어?”

“너 거지년이냐고. 그걸 왜 받아와? 너도 니네 애비처럼 되려고 작정했어?”

“내가 뭘! 그냥 주시길래 받은 건데!”

윤미가 소리쳤다. 모친이 다시 손을 치켜들었다. 윤미는 손찌검을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씩씩대는 모친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가 우리집 거지라며?”

“너 미쳤어? 우리가 왜 거지야!”

“돈 없으면 거지잖아!”

머리채가 잡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윤미가 비명을 질렀다. 놀란 까미가 왕왕대며 짖기 시작했다. 머리끄덩이가 당겨지는 와중에도 윤미는 안방에서 아버지가 고개를 내미는 것을 보았다. 순간 실날 같은 희망이 피어올랐으나 잠시뿐이었다. 윤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버지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다시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충직한 애완견만이 그를 대신하여 윤미와 엄마의 주변을 맴돌았다.

윤미는 손톱을 세워 엄마의 손등을 긁어내렸다. 살갗을 때리고 꼬집기까지 한 뒤에야 엄마는 손을 놓아주었다. 윤미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매만지고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답지않게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려는 개를 발로 밀어냈다. 방문을 잠그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와!”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들겼다. 낡은 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들썩거렸다. 개 짖는 소리가 엄마의 비명 같은 고함과 뒤섞여 불협화음을 자아냈다. 윤미는 침대에 웅크려 귀를 틀어막았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몸을 옹송그렸다.

두피와 귓구멍이 욱신거렸다. 그러나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한동안 잊고 있던 감각을 되찾은 것이 오히려 반가웠다. 돌이켜보면 부모는 항상 그런 존재였다. 모친은 물론 아버지도 자신에게 손을 댔을 때가 있었던 것이다. 아직 그의 존재가 무능에 희석되지 않았을 시절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맞지 못했다는 이유로 초등학생이었던 자신을 때렸다. 안경 콧받침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둘둘 만 신문지로 얼굴을 내려쳤다. 비틀린 안경 때문에 콧잔등에 작은 생채기가 났다.

그때 윤미는 어렸다. 정호와 같이 서울의 아파트에 살던 시절이었다. 생채기는 흔적도 없이 나았고 모멸감이 무엇인지 깨닫기엔 너무 미숙했다. 다만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플 때도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느꼈다. 너무나도 아파서 다시 몸으로 환원되는 가슴 속의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얻어맞은 곳은 얼굴이었는데 심장이 뻐근하게 조였다. 그 다음에는 위장이 아팠고, 또 그 다음에는 과학 시간에나 겨우 배웠을 이름 모를 내장들이 엎어진 퍼즐처럼 뒤죽박죽 꼬이다가 어느 순간 멈춰버렸다.

부모가 두렵지는 않았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미는 무의식에 파묻어 두었던 정신의 통증이 재발하는 것을 느꼈다. 조롱받는 건 언제나 당연했고 딱히 모범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자신의 나약함 때문이건 아니건 윤미는 더 이상 모멸을 내면화하며 스스로의 정신을 보호할 수 없었다. 폭력의 주체를 지목하고 비난하고 기억하는 것마저 성가신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기에 그녀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서 발버둥쳤다. 그 분노 속에서 엄마와 아버지와 까미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 불쾌한 덩어리들로 뭉뚱그려졌다. 엄마의 고함은 개가 짖는 소리로, 개가 짖는 소리는 아버지의 침묵으로, 아버지의 침묵은 다시 엄마의 고함이 되었다.

거지년이 아니라 도둑년이겠지. 윤미는 엄마를 비웃으려고 했다. 뒤섞인 폭력의 토막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반사 신경처럼 튀어나오는 조소가 전부였다. 나는 도둑년이야. 나는 마침내 무언가가 되었어. 이제 수학여행을 가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예담이에게 선물을 줄 수 있어. 30만원은 학교에 내고 3만원으로는 선물을 사고 2만원은 용돈으로 써야지. “나도 다 계획이 있다는 말야.”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입으로 소리를 내어보았다. 승리의 선언 비스무리한 말들이 좁은 방안에 맴돌았다. 헌데 그건 전혀 윤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더러운 기분에 잠식되어 있었고 자신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도 모르는 채로 혀를 놀렸다. 머리가 뱃가죽에 닿을 정도로 깊이 고개를 숙였다. 흙 속에 파묻힌 굼벵이처럼 몸이 동그랗게 말렸다.

그래. 나는 굼벵이 같은 거다. 고작 일주일 동안 날기 위해 칠 년을 지하에서 보내는 굼벵이. 이제 곧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야. 3일밖에 살 수 없다고 해도 어쨌든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지. 그런데 그 시간이, 지하에서 보낸 십칠 년이 이제 와서 분하게 느껴진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지하에서 나는 지상에 있던 사람들의 소식을 너무 많이 접하고 말았던 거야. 고모네가 아니었더라면 우리집은 가난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어. 정호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서울대를 갈 수도 있었고, 또 민주가 없었더라면 딱히 외롭게 살지 않았을 수도 있었어.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나쁘고 하찮은 게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채로, 비참하되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채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몰라. 혹은 다른 모두가 나를 닮아 아주 조금씩만 불행해졌다면, 내 인생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지도.

정보 시간이었다. 수능이나 내신에 중요하지 않은 과목의 수업이 그렇듯 제대로 집중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수업이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대부분의 학생들이 인터넷에 접속해서 웹서핑을 하거나 장난을 치고 있었다. 담당 교사인 김 선생은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빔 프로젝터 스크린만 쳐다보며 엑셀 프로그램으로 함수를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윤미는 컴퓨터실에 도착하자마자 프로그램을 켜지도 않고 책상에 엎드렸다. 옆에 앉은 예담이 인터넷으로 연예 기사를 보며 조잘대는 것도 무시해 버렸다. 경건회 사건 이후 민주와는 줄곧 냉전이었으므로 평소였다면 예담의 비위를 맞추는 데 열심이었겠으나, 오늘은 아무런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신청서도 아직 내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어떤 사건이라도 일어나 수학여행이 아예 취소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래도 삶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손해를 본다면 그건 사실 손해가 아니었다.

“어?”

어디선가 탄식이 들렸다. 김 선생은 수업과 관련 없는 반응들을 무시하기로 작정했는지 소리를 낸 학생을 지적하는 대신 계속해서 진도를 나갔다. 그러나 웅성임은 멈추지 않고 퍼져나가 분위기 전체를 엉망으로 만드는 지경이 되었다. 아이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하자 김 선생은 결국 설명을 멈추고 인상을 썼다. 주의를 주려는 그에게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외쳤다.

“선생님. 지금 전라남도에서 배 가라앉고 있다는데요? 단원고 애들 타고 있대요.”

“네가 지금 그걸 어떻게 알아? 얼른 인터넷 끄고 수업 들어라. 이것들 나중에 기말고사에 낼 거다.”

“사고야 뭐야?”

“그건 모르겠는데 지금 전원 탈출 성공했대.”

탈출에 성공했다는 말에 반 전체가 와악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의 입에 오른 승객들은 여객선이 아닌 구명 보트를 타고 노를 저으며 망망대해를 헤매고 있었다. 누군가가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흉내내며 두 팔을 벌렸다. 셀린 디온이 부른 주제가인 ‘My Heart Will Go On’의 멜로디가 컴퓨터실에 울려퍼지자 김 선생은 이마에 손을 짚고는 아이들을 윽박질렀다.

“구조됐다니까 다행이긴 하다만은 너네 성적은 걱정이 안 되니? 자꾸 딴짓하면 수행평가 점수 깎는다.”

“네.”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점수라는 단어 하나에 가라앉았지만 아이들의 마음마저 그렇지는 않았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었기에 타교가 겪은 해프닝은 더욱 신기하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엎드린 채로 꼼짝도 하지 않는 윤미만이 가장 상황에 무관심했다. 신기하게도 전혀 외롭지 않아서 이대로 영원히 교실에 남겨져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자신은 작고 외딴 방이었고 문은 안에서 잠겼다. 버려지고 도태된 것이 아니라 버리고 없앤 것이었다. 폭력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감히 맛보도록 허락내린 것이었다. 세상 전부를 여집합으로 돌릴 수 있을 만큼 짙은 반점. 그게 자신이었다. 또 그것은 어떠한 구명(救命)의 조치도 무효할 만큼 새까맸다. 깊게 누적된 물은 화살도 총알도 뚫지 못한다. 윤미는 바로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다만 의문인 것은, 어떠한 구호의 손길도 거절하기로 마음먹은 이 상태가 어째서 조난의 한 순간처럼 느껴지는가였다.

“윤미야, 들었어? 단원고 애들 수학여행 가다가 배 침몰했는데 전원 탈출했대. 완전 재밌었겠다. 그치.”

예담이 몸을 숙여 윤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응.”

윤미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엎드린 자세였기에 목뼈와 어깨가 기묘하게 굽었다가 펴졌다.

“너 괜찮니?”

예담의 목소리에 걱정이 섞였다. 윤미는 또다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담이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부적절한 반응을 보이게 됐을지도 몰랐다. 나보고 어쩌라고? 예담이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윤미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그것뿐이었다. 이제 막 외로움을 타지 않게 된 참에 남들의 사정 따위 상관할 바 아니었다.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외로움을 잘 알겠지.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고독이 뭔지도 몰랐던 거야. 윤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죄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좋았을 것들 투성이였다. 그 사실이 손톱 가장자리의 거스러미처럼 콕콕 쑤셨다.

오전 수업이 모두 끝났음에도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윤미는 같이 점심을 먹자는 예담의 권유를 거절했다. 급식실의 뜨겁게 북적이는 공기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걱정하는 예담에게 대충 고개를 저어 보이며 아침을 많이 먹었다고 둘러댔다. 많이 먹었다는 말은 거짓이었지만 어떻게든 끼니를 때웠던 건 맞았다. 사람이 몇 없는 새벽 여섯 시 반의 급식실은 점심 시간과 비교도 되지 않게 적막했다. 혼자 줄을 서서 배식을 하고 혼자 앉아서 밥을 먹어도 눈치가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교생이 몰려드는 점심 시간은 달랐다. 혼자 앉거나 입을 꾹 다문 채 밥을 먹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었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상대적인 것이었다. 천사 같은 예담이 곁에 있어준다 해도 오늘만큼은 급식실에 가고 싶지 않았다.

예담과 그 친구들을 보낸 뒤 텅 빈 교실에서 스탑워치를 켜고 자습을 하는 중이었다.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아 하나 둘 교실로 돌아오는 급우들의 대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음식 냄새를 달고 돌아온 아이들에게서는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포만감에 젖어서는 배를 두드리며 농담을 주고받는 대신 당황스러운 얼굴로 저들끼리 쑥덕거리고만 있었다. 그중 하나가 수학 문제에 집중하려 애쓰던 윤미의 귀에 들어왔다.

“있잖아. 세월호 승객들 구출됐다는 거 오보래. 아직 다 배에 있어서 구조중이래.”

일부러 풀이를 늘려 쓰던 윤미의 손이 멈췄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떠들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한창 때의 여고생들이라고 하기에는 심각한 분위기였다.

“진짜? 누가 그래?”

“정현이가 오늘 핸드폰 안 내고 화장실 가서 뉴스 봤대. 실시간인가 보던데.”

“단원고 어떡하냐. 수학여행 갔다가 완전 봉변 당했네.”

“그래도 어떻게든 구조하지 않을까? 우리 못 사는 나라도 아니고 나름 선진국이잖아.”

어느새 윤미는 샤프를 내려놓고 아이들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몇 번 눈치를 보다가 스탑워치를 껐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있잖아. 단원고가 어디야?”

“너 몰라? 우리 옆 학교잖아. 단원구에 있는 거. 안산은 뺑뺑이라서 단원고에 친구 있는 애들도 많을걸?”

한 아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 안산 출신 아니라서 잘 몰라. 그렇게 변명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무지를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맥락도 이유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중요한 것임은 분명했다.

복도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불안한 기분이 들어 윤미는 친구들을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에서 몰래 뉴스를 확인했다는 정현이 다른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훌쩍대고 있었다. 그녀가 벌개진 눈가를 두 손으로 비비며 중얼거렸다.

“배에 탔던 친구가 연락이 안 돼.”

“아직 탈출중이라 그런 것 아냐?”

“모르겠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구명조끼 입고 기다리고 있다는 게 마지막 연락이야. 계속 카톡 보냈는데 읽지도 않고 있어.”

내 친구 못 나왔으면 어떡해? 정현이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괜찮을 거라는 말만을 중얼거리며 정현을 안고 등을 쓸어 주었다. 윤미 또한 정현의 어깨에 슬그머니 손을 올렸다. 하지만 연민보다 무서운 것이 모두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직감이었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절망이 구체화된 것은 저녁 즈음이었다. 마지막 교시가 끝날 때까지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마저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업을 포기하고 뉴스를 시청하기에는 잘못된 정보들이 너무 많았다. 승객들 모두가 탈출에 성공했다는 오전 시간의 오보가 가져다준 충격은 사람들에게 낙관도 비관도 아닌 의심만을 심어주었다. 그들이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흉내내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배는 이미 침몰하고 있었고, 점심 시간이 되기도 전에 완전히 가라앉았다는 것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교사들은 말을 아꼈고 학생들 사이에는 운좋게 핸드폰을 내지 않아 바깥 세상과 연결된 아이들이 물어온 소식이 불법 복제된 저작물처럼 돌아다녔다.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받아들인다 해도 희망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 속에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실종자들이 전부였으며, 그마저도 이름이 불리지 못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는 숫자로 변환되었을 뿐이었다.

윤미는 점심을 굶은 것을 후회했다. 뒤숭숭한 분위기 중에도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예담과 그 친구들은 저녁을 먹는 대신 승객들을 위한 즉석 기도회에 갔고 민주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혼자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평소였다면 벌레 떼가 웅웅대는 소리 정도로만 들리지 않았을 급식실의 소음이 제멋대로 해석을 거쳤다. 세월호. 단원고. 팽목항. 침몰. 사고. 고작 저녁을 먹으러 모였을 뿐인 전교생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보다도 더 기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신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게 아니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모두가 모두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밥과 반찬을 식판에 담으며, 빈 자리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며, 잔반통에 남은 음식을 털며 서로의 불안을 거울처럼 반사하고 있었다. 그 팽팽한 긴장감을 피하기 위해 윤미는 식판에 코를 처박듯 하고 밥을 먹었다. 그러나 음식을 씹을수록 허기도 포만감도 아닌 이상한 것이 위장에 들어찼다. 구역질을 하기에는 먹은 게 없었고 더 먹기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자신을 급식실로 끌고 내려왔던 배고픔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마치 정호의 집에서 느꼈던 불쾌함과 비슷했다.

정호. 정호는 어떻게 되었을까? 외고생인 그 또한 자신과 비슷하게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야간자율학습을 준비중일 것이었다. 사건은 오전에 터졌고 지금껏 구조가 진행중이었다. 정호는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알고 있을까? 처음 발표된 오보를 들었을까? 정호가 다니는 학교의 분위기도 지금 이곳처럼 뒤숭숭할까? 윤미는 부디 그러기를 바랐다. 정호와 친구들이 더 알아준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을 텐데도 그랬다.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돌려받은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사고 소식을 다루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윤미는 헤드라인을 살피며 기사를 뒤졌다. 이상할 정도로 내용이 비슷했다. 실종자가 300명이 넘는다는 사실만 믿기로 마음먹었는데 어느 정도 규모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자신의 전교 석차를 떠올려 보았다. 작년 기말고사에서 윤미는 618명 중 315등을 했다. 즉 2학년 학생 중 2분의 1 하고도 넘는 인원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버뮤다 삼각지대도 아닌 대한민국 해역에서 말이다.

팔뚝에 닭살이 올랐다. 윤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뱃속이 뒤틀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이라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화장실에는 자신처럼 공포에 질려 피신을 온 아이들이 가득했다. 세면대 거울 속에 든 그들의 안색은 전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가면처럼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부릅뜬 얼굴들이 혼자 안으로 들어온 윤미를 응시했다.

“아직 배 안에 공기 남았대. 해경이 거기에 공기 주입하고 있대. 생존자들이랑 카톡 될지도 몰라.”

낮에 복도에서 눈물을 보인 정현도 그중 하나였다. 정현은 우는 대신 그렇게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연신 인터넷 뉴스 창을 새로고침하고 메시지 알림을 확인했다. 다른 아이들도 정현의 주변에 모여 그녀의 핸드폰 화면을 지켜보았다.

윤미는 아이들을 피해 변기가 있는 칸으로 들어갔다. 변기 뚜껑을 열었다가 고여 있는 물을 보고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서둘러 화장실을 나와 교실로 돌아갔다. 문제집을 펴고 암호 같은 수학 공식을 눈에 억지로 구겨넣었다. 어느 순간부터 소변이 마려웠으나 방광이 저릿할 때까지 참고 참았다. 야자가 끝나고 자취방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변기 위에 앉을 수 있었다. 참았던 소변을 찔끔찔끔 내보내면서 핸드폰을 보았다. 해가 져 버려 구조 작업이 정지되었다는 기사들이 업로드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평소였다면 웹툰 따위를 보다가 늦게 잠들었을 것이었지만 오늘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윤미는 핸드폰을 베개 옆에 뒤집어놓고 침대에 누웠다. 오한이 들어 이불을 몸에 둘둘 말았다.

지옥의 변두리였다.

자진해서 발을 들인 것이 아니었다. 죄인이 떨어지는 곳이 지옥이라고 했다. 허나 그 누구도 죄를 짓지 않았다. 지옥이 우물 속의 두레박처럼 멋대로 실려 올라왔다. 일상을 갈기갈기 찢고 가르며 사람들의 앞에 도래했다. 전라남도 끝의 진도군에서 출발한 여객선에 일반 승객들과 안산시 단원구 소재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배는 옆으로 뒤집혀 침몰했고 대부분의 탑승객들이 나오지 못했다.

수요일 이후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금요일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멀리했다는 것만이 어렴풋한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지금도 윤미는 멋대로 잊어버렸을 뿐 자신이 그때 큰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무겁게 내려앉는 분위기의 무게와 웃음이 사라진 교실의 전경이 전부였던 목요일과 금요일에, 그녀는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어떤 사람의 부고를 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것이 상상에 지나지 않음을 깨우쳐준 것은 정말로 자신에게 잊혀졌던 한 아이의 얼굴이었다. 점심 시간을 맞아 급식실로 향하는 아이들 뒤에 홀로 앉아 있는 민주가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민주는 엎드려 있지도, 공부를 하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앉아서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담을 따라가던 윤미는 저도 모르게 멈춰서 민주를 보았다. 경건회 사건 이후로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했던 민주였다. 윤미는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되다 못해 반갑게 느껴졌다. 언제나 그랬듯 민주는 아무것도 자신을 상처입힐 수 없다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나 있는 친구의 배신에 괴로워하는 대신 그 배신의 행위를 철저하게 공고히 하여 스스로를 심판자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투명인간이 된 쪽은 민주 같았다. 칠판에 시선을 고정한 민주는 두 팔을 책상 밑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마치 녹아내리느라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고 있는 얼음처럼 보였다. 세속적인 총기가 가득하던 눈은 비어 있었고 치켜든 고개는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민주야. 밥 먹으러 안 갔어?”

윤미는 조심스럽게 민주에게 다가갔다. 민주는 대답 대신 여전히 앞만 보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모습이 평소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위화감을 자아냈다.

도망치는 대신 계속 말을 붙이게 된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냉소적이고 침착한 민주라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걱정과 불안 대신 상황의 본질을 꿰뚫는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윤미는 민주의 비아냥대는 말투를 일부러 흉내내어 말했다.

“하기야 오늘 밥 안 넘어간다고 굶는 애들 많더라. 다들 저녁까지 거르고 기도회 갈 모양인가 봐. 오늘 620이잖아.”

620이란 매주 금요일 저녁 6시 20분에 열리는 기도회였다. 시간상 저녁을 굶을 수밖에 없어 열리는 날이면 매점에 빵이 동났다. 예담과 그 무리는 오전 중 매점에 가서 간식을 사왔다. 책상 군데군데 놓인 빵 봉지를 보아 다른 아이들도 기도회에 참석할 생각인 듯했다. 가본 적은 없지만 분명 여느 때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모일 것이었다. 기도의 효과는커녕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민주라면 비웃고도 남을 일이었다.

“매점 벌써 다 털렸겠다. 그치?”

윤미는 대답을 기대하며 평소의 민주처럼 입가를 삐딱하게 비틀어 보였다.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었다. 자신을 무시하지도, 그렇다고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 민주의 앞에서 무대 위의 배우처럼 시니컬한 태도를 연기했다. 함께한 시간이 있어서인지 연기는 꽤나 자연스러웠다. 어쩌면 이것이 자신의 본심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무엇에도 몰두하지 않고 모든 것을 관조하는 상태는 마치 하늘 위의 신이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무능함과 전능함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이다. 그 때문에 민주는 반신론의 길을 걷기로 선택했을지도 몰랐다. 윤미가 말했다.

“마음은 알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리고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민주가 책상에 엎드렸다. 절을 하듯 손을 가운데에 모으고 이마를 내리찧었다. 놀란 윤미가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에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민주가 기침을 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가느다란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윤미는 민주가 안산 어드메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냈다.

“민주야. 내가 말실수했어. 정말 미안해.”

윤미는 뒤늦게 민주를 달래려고 애썼다. 헛수고였다. 민주는 화음이 맞지 않는 건반들을 내리치듯 곡성을 토해냈다. 순식간에 팽창한 울음소리가 텅 빈 교실에 메아리쳤다. 윤미는 귀를 의심하며 아래로 숙인 민주의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사방으로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 사이로 벌겋게 달아오른 귓바퀴가 보였다.

민주가 운다. 강간당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던 세족식 때도, 권 목사의 허튼소리를 들을 때도, 자신의 배신을 알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민주가 울고 있다. 그것이 윤미가 겪은 최초의 큰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온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로 돌아왔다. 복도까지 퍼져나간 울음소리에 벌써부터 긴장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엎드려 통곡하는 민주를 보았을 때, 모두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심지어는 예담의 무리마저도 침묵을 택했다. 수업이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남았음에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아 있기만 했다. 윤미 또한 민주의 곁을 떠나 자신만의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민주의 짝꿍이었던 탓에 도망칠 방법이 없었던지라, 윤미는 그녀의 앞에 선 그대로 목석처럼 굳어버렸다. 마치 투명한 껍질이 자신과 민주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안은 아주 시끄러웠고 밖은 쥐죽은 듯 조용했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한 장의 사진 같은 현장에 침범한 것은 5교시를 맡은 조 선생이었다. 앞문을 열자 서른네 구의 박제들이 그를 맞이했다. 그중 하나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되찾았다. 윤미는 조 선생이 엎드려 우는 민주를 볼 수 있도록 몸을 비켰다. 이 교실에서 유일한 어른인 그가 상황을 해결해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조 선생은 어떤 조치를 취하는 대신 또다른 박제가 되어버렸다. 민주를 발견한 그는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로 문턱 앞에 서 있었다.

민주는 수업 종이 치고도 십오 분이나 지나서야 조용해졌다. 울음이 잦아들자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윤미는 휴지를 가져다주려고 했다. 그 전에 민주가 고개를 들었다. 빨개진 얼굴이 눈물로 번들거렸다. 민주는 교복 소매로 얼굴을 문질러 닦고는 헛기침을 하며 잠긴 목을 가다듬었다. 입이 바짝 말랐을 조 선생을 보며 말했다.

“죄송해요. 저 괜찮으니까 이제 수업하셔도 돼요.”

“정말 괜찮은 거 맞니? 힘들면 보건실 가 있을래?”

“아니요. 그냥 교실에 있을게요. 수업 들을 수 있어요.”

민주가 웃어보였다. 밝고 순수해 보이는 미소는 윤미가 겪은 두 번째 큰일과도 같았다. 언제나 쌀쌀한 비웃음만 지었고 그것밖에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민주가 예쁘게 웃었다. 마치 경건회 때 기타를 치는 예담을 보는 듯했으며, 억지스럽기는커녕 조금 개운해 보이기까지 했다.

“알겠다. 그럼 이제 진도 나가자. 윤미 너도 자리에 앉으렴.”

“네. 죄송합니다.”

윤미는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민주가 신경이 쓰여 수업 내내 옆을 힐끔거렸다. 민주는 평소처럼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방금 전의 일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삼십 분 남짓한 곡소리로 모든 비탄을 털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윤미는 민주가 울었던 이유가 수요일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일 가능성을 생각했다. 부모님과 갈등이 있었다거나 권 목사와 싸웠다거나 누군가에게 전도를 당했다거나. 하지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너무나 사소한 일들이었다.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건 저녁을 먹고 교실로 돌아온 뒤였다. 민주가 짐을 싸고 있었다. 가방을 메고 칠판에 이름을 적었다. 야자를 빠진다는 뜻이었다.

“민주야, 야자 안 해?”

윤미가 물었다. 웬만큼 아프거나 큰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면 단 한 번도 야자를 빠진 적이 없는 민주였다. 윤미는 올해 들어 민주가 야자를 뺀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아직까지는 없는 듯했다.

“응. 아까 담임한테 말했어.”

그렇다고 어딘가 아픈 구석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대답을 들은 윤미는 민주의 안색을 살폈다. 점심 시간의 여파로 얼굴이 살짝 부은 것을 제외하면 평소처럼 무표정했다. 윤미가 물었다.

“어디 가?”

“장례식.”

민주가 말했다. 다시 몸이 굳었다. 윤미가 얼어버린 사이에 민주는 인사도 없이 교실을 나가버렸다.

윤미는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민주의 이름이 적힌 칠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보니 야자를 빠지는 것은 민주 하나가 아니었다. 민주를 제외하고도 열댓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의 명단이 초록색 바탕에 쓰여있었다. 윤미는 저녁 시간의 교실이 텅텅 빈 이유가 다들 급식실이나 기도회에 갔기 때문만은 아니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은 한 해에 서울대를 스무 명씩 보내는 명문고였다. 야간자율학습은 그들 중 하나가 되기 위한 신성한 의식과도 같았다. 그런 야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저 아이들 모두가 민주와 같은 이유로 학교를 나서는 것이라면.

갑자기 책을 읽고 싶어졌다. 윤미는 교실을 나와 1층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모든 책은 허구이거나 딴소리를 지껄였다. 그 안에 몸을 담그면 변두리의 국경을 넘어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죽지 않고 그러므로 슬퍼할 필요도 없는, 예를 들어 천국 같은 곳 말이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도서관에 비치된 컴퓨터에는 전부 사고와 관련된 뉴스 생중계가 틀어져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뉴스를 보고 있는 한 남학생의 옆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가 손을 들었을 때 윤미는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다만 안경을 치켜올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설령 정말로 울었다 하더라도 자신은 결국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름이나 얼굴을 알기는커녕 같은 학년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동창생은 뉴스를 보기 위해 도서관에 왔으나 자신은 책을 읽기 위해 그렇게 했기 때문이었다.

윤미는 시계를 보았다. 기도회가 끝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곧장 도서관을 나와 지하의 소강당으로 향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미 계단을 메우고 있었다. 소강당 입구에 도착하자 어두침침한 조명 아래서 기도를 웅얼거리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제사를 올리듯 서너 명씩 둥글게 모여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윤미는 눈치를 보며 강당 안으로 들어가 예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예담아.”

“윤미잖아! 와줘서 고마워.”

예담이 윤미를 끌어안았다. 어찌나 세게 안았던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예담은 윤미의 호흡이 한계에 달했을 때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풀려난 윤미는 멍한 표정으로 예담을 마주보았다. 어두운 조명 때문인지 저녁을 굶었기 때문인지 얼굴이 수척해져 있었다. 윤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도 단원고에 친구 있어?”

“초등학교 동창이었어. 친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페이스북으로 계속 소식 확인했었거든. 아직 실종 상태인 것 같아.”

예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침 경건회 시간에도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를 드리자고 했던 그녀였다. 그때 예담은 우는 모습을 보이거나 슬퍼하는 대신 굳센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부디 한 명도 남김없이 돌아오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렇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선교부장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성스러운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 예담이 눈물을 보였다. 윤미는 지금까지 느꼈던 암담함과는 다른 종류의 절망을 느꼈다. 예담마저 확신을 잃고 무너진다면 자신은 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기위로에 불과하더라도 희망은 중요한 것이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낙관이 이 순간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전부였다. 포기해서는 안 되었다. 이미 모두 죽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마음으로라도 살인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혹시 민주는 안 데리고 왔어?”

예담이 물었다.

“민주?”

“응. 너 민주랑 친했잖아.”

“글쎄. 교실에 없던데.”

당황한 윤미가 말을 더듬었다. 민주의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민주 있잖아, 친척이 단원고 다녔었대. 근데 이번에 못 나왔나봐.”

예담이 속삭였다. 민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윤미는 비로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도 몰랐던 사실을 예담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평소 서로를 못본 척 무시하던 예담과 민주였다. 윤미가 물었다.

“넌 어떻게 알았어?”

“옆반 친구한테 들었어. 걔도 단원고에 친구 있는데 민주 친척이랑 같은 반이래.”

“그렇구나.”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작은 사회에서 나쁜 소식은 둥그스름한 파동과 같이 퍼져나갔다. 예담과 민주처럼 대척점에 있는 이들도 재앙 앞에서는 하나가 되었다. 그것의 일원이 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마땅할진대, 갑작스런 외로움이 찾아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윤미는 작년의 수련회를 떠올렸다. 거의 모두가 울고 있는 가운데서 홀로 욕설을 지껄이던 민주의 얼굴을 말이다.

강간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윤미는 모든 영적 몰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가 당한 피해를 깨닫는 건 아마 좋은 일일 것이다. 그래야 어떻게든 되갚아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윤미가 느꼈던 것은 오직 고독뿐이었다. 꿈에서 깬 뒤의 허탈한 개운함. 다만 외롭지 않기를 원했을 뿐인데 행복한 상상과 냉혹한 현실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잔인했다.

“너무 슬퍼. 내가 더 열심히 해서 그 친구들이 하나님 만나게 해 줬어야 하는데…….”

예담이 눈가를 손으로 쓸었다.

“아직 생존자가 있을 거야.”

윤미가 중얼거렸다. 예담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윤미는 그녀가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있다 느꼈다.

“윤미야, 같이 기도해줘. 응?”

예담이 윤미의 두 손을 붙잡았다. 윤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예담이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맞잡은 손에서 배어나온 습기만이 불쾌했다.

문득 구심점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윤미는 예담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기도회에 온 것은 분명 진심에서 우러난 행동이었다. 헌데 자신의 서툰 기도를 이끌어주리라 믿었던 예담의 말은 윤미를 의문 섞인 놀라움에 빠뜨렸다. 무엇을 열심히 했어야 한다는 말인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그 아이들이 지금 처한 곤경이 무슨 상관인가?

윤미는 수련회 때 선희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이 예수님을 꼭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도 윤미는 그 말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외로움을 예수라는 자의 고난이 조금 상쇄해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정돈하기도 전에 민주의 분노가 닥쳤고 윤미는 생각을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잖아.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에 비하면 내 외로움과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왜 모든 게 끝났다는 것처럼 말해? 왜 그 아이가 하나님을 못 만나서 유감이라는 듯이 굴어? 하나님이 그 배를 심판하셨나? 그 배는 노아의 방주가 아니었어? 그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돼? 설마.

지옥에라도 떨어진다는 거야?

윤미는 예담의 손을 뿌리쳤다. 놀란 예담이 기도를 멈췄다. 다른 학생들이 통곡하며 웅얼대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윤미는 자신을 부르는 예담을 무시하고 강당 밖으로 뛰쳐나갔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썰렁한 교실들이 보였다. 남아있는 아이들은 앉아있는 대신 몇 명씩 모여 교실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거닐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민주를 찾았다. 장례식에 가는 것을 똑똑히 봤음에도 그랬다. 어디서도 민주의 모습을 찾을 수 없자 짐을 싸서 교실을 나왔다.

야자를 빠질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열 시나 되어야 도착할 것이었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윤미는 자취방으로 가지 않고 바로 상록수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어떻게든 이 지역을 벗어나고 싶었다. 최대한 멀리, 어쩌면 소식이 닿지 않고 닿는다 해도 모든 게 끝난 뒤인 곳을 원했다.

버스에서 내린 뒤에야 그런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윤미는 인적이 드문 역 광장에 홀로 남겨졌다. 어디로 가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중 핸드폰이 울렸다. 정호였다. 불길한 기분에 일부러 받지 않으니 곧바로 메시지가 왔다.

[윤미야]

[뉴스 봤어]

[너 괜찮아?]

윤미는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았다. 정호 또한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사건이 터진 지 이틀째였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괜찮아. 괜찮고말고. 윤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지 않은 건 그 아이들이지 내가 아니야. 그러나 어째서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대는 것인가?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바닥이라도 좋으니 어딘가에 눕고 싶었다. 가급적 혼자, 혹은 자신보다 비참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말이다. 이 순진하고 알량한 고통을 적당히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갑자기 정호가 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그와는 말이 통할지도 몰랐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지, 입을 열 수나 있을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로 윤미는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윤미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정호는 바로 받다시피 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 지금 너네 집 가도 돼?”

“지금 온다고? 너 지금 학교 아냐? 부모님 허락은?”

“상관없어.”

정호는 당황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했다. 윤미는 전화를 끊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시간이 징검다리를 건너뛰듯 뭉텅뭉텅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내릴 역이었다. 윤미는 역을 나오며 정호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한 주민이 아파트 정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윤미는 남자의 뒤를 따라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정호와 갔던 공원을 찾아 그네에 앉았다. 흔들거리는 의자에 체중을 싣자 맥이 풀렸다. 윤미는 전화가 오는 것을 받을 생각도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 한 점 없는 심해처럼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우주에서는 숨을 쉴 수 없으니 어쩌면 하늘과 바다는 같은 곳일지도 몰랐다. 학교에서 들었던 창조과학 수업에 따르면 노아의 홍수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대기권 밖의 물층이 무너져내린 것이며, 홍수가 끝난 뒤 남은 물들은 다시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간 것이었다. 방주 안에 있던 생물들은 밖으로 나와 다시 생육하고 번성했다.

“윤미야!”

정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미는 고개를 들었다. 헐레벌떡 뛰어온 그가 자신의 앞에 멈추어 섰다. 교복에 달린 플라스틱 명찰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정호. 윤미는 그네에 앉은 채로 그것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정호가 물었다.

“너 괜찮아?”

괜찮지 않을 것은 또 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야자를 빠지고 사촌을 보러 왔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 안에 맨홀 뚜껑이라도 들어앉은 것 같았다. 정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안산 지금 완전 비상이겠다. 그치?”

“그렇지.”

“지금 우리 학교도 수학여행이랑 현장학습 다 취소하고 난리도 아냐. 반에 안산에서 온 애가 있는데 엄청 힘들어하더라고. 같은 동네 친구가 단원고 학생이래. 다행히 구조되기는 했다는데 다른 실종자가 워낙 많으니…….”

정호가 말끝을 흐렸다. 윤미는 뻔한 이야기에 싫증이 났다. 고작 이런 말을 들으려고 먼 서울까지 정호를 보러 달려온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호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이끌어내자니 애초에 무엇을 바라고 그를 찾은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혹시 단원고 교감선생님 얘기는 들었어?”

“무슨 얘기?”

“방금 오면서 뉴스 봤는데 오늘 산에서 발견되셨대. 유서를 보니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이같은 소식이 전해드는 건 역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윤미는 느꼈다. 희망을 품기는커녕 위로조차 건네지 못한 죄. 철저한 무능에 대한 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건 그 배에서 살아 나왔다는 뜻이었다. 모두가 그토록 바라던 생존자가 자진하여 목숨을 내버렸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부조리하다고 생각되었다.

“너무 안타까워. 친구의 친구가 당한 일이라 남의 일 같지도 않고.”

정호가 한숨을 쉬었다.

“야.”

고개를 숙인 윤미가 정호를 불렀다.

“너 왜 여기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왜 야자 안 하냐고.”

“학원에 있다가 너 온다길래 수업 빠지고 온 거야.”

정호가 대답했다.

윤미는 빈 교실을 나서던 민주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교실에 모여 앉아 문제집을 푸는 대신 뿔뿔이 흩어지게 된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운이 좋은 일인가. 결국 자신의 불행은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도둑질을 할 만큼 염원했던 일정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한테 할 말 있지?”

윤미가 말했다.

“무슨 말?”

정호가 되물었다.

윤미는 고개를 들어 정호를 보았다. 가족 모임 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순수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윤미는 완벽해 마지않는 사촌이 늘 자신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앉아 있었음을 알았다.

정호에게 벌을 받고 싶었다. 죗값을 치러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의무이자 권리였다. 하지만 정호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윤미야.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정호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자신의 침묵을 슬픔의 표지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윤미는 정호와 시선을 맞췄다.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 밤도 불빛이 없어 구조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는데 똑같은 어둠 속에 자리잡은 그의 눈동자는 놀라울 정도로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어떤 감정은 서로 옮는다는 것을 윤미는 경험으로 알았다. 정현과 민주와 예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옆에 서있던 자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 생각했다. 그때의 나도 저렇게 눈을 빛내고 있었을까. 고아와 거지와 병자를 구경하듯 연민으로 가장한 호기심을 품은 채 그들을 지켜보았을까. 우리 안을 맴돌며 죽어가는 짐승들을 향해 과자를 흩뿌리는 동물원의 관람객들. 뜻모를 울음소리에 환호성을 지르며 유리창을 두드리는 무구함이여.

윤미는 살아 있는 것이 싫어졌다. 삶이라는 행운을,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고 있을 귀중한 생명의 빛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싶었다. 그런 건 정호에게나 어울렸다. 성실하며, 예술을 즐길 줄 알고, 금기를 깰 정도로 대범하면서도 그에 대한 사죄를 잊지 않을 만큼 점잖은 아이. 거리의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의 환한 빛.

그러므로 정호를 찾아온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은 것이다. 사촌의 세계는 안온하고 무사태평했다. 그곳에는 삶이 있었다. 무의미한 목숨을 내버릴 생각을 하는 자신과 다르게 금강석 같은 생명이 단단하게 박혀 순진한 빛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두 사람 다 완벽하게 무지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우리는 알 수 없잖아. 시체를 보지도 않고 죽음을 확신하는 그 기분을 너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어. 모르는 건 모르는 거야. 괜히 아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여봤자 곧 들통나고 말 거야. 마치 시험처럼 말이지. 네가 아무리 똑똑해도 이번 건 틀릴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말이지. 그것만이 우리의 조그만 비극임을 인정한다면 적어도 위선자는 되지 않을 수 있을지 몰라. 윤미는 입가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남았다는 안도를 듬뿍 담아 웃어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체 모를 경련이 얼굴 근육을 타고 올라왔다. 눈꺼풀이 수축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벌어진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왔다. 윤미는 스스로의 고함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이건 슬픔이 맞을까?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슬퍼할 수 있는 걸까?

주말 동안 전화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친척들은 물론 지인들까지 자신의 안위를 물었다. 자신이 안산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음에 감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윤미는 그 배에 타고 있지 않았다. 엄마와 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딸의 무사함을 전달했다. 사람들은 윤미가 단원고가 아닌 다른 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안도하며 전화를 끊었다.

주변인들에게 소식을 전한 엄마와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금요일에 야자를 빠진 것에 대한 잔소리 몇 마디가 전부였다. 학교에 합격했을 때는 사방에 전화를 돌리며 자랑을 늘어놓았던 그들이었다. 하나 있는 딸이 타지의 명문고로 유학을 갔으니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도 식은 죽 먹기라는 태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윤미가 온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고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만을 기계적으로 전할 뿐이었다. 마치 무균실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학교에서 겪었던 일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TV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고정된 실종자 숫자를 보아야만 사고가 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일 소식을 전해 오는 뉴스는 무의미한 소음처럼 흘러만 갔다. 가끔씩 속이 울렁거릴 때도 윤미는 그 진공의 상태를 차마 깰 수 없었다. 귀신을 보아도 보지 못한 척해야 한다는 속설처럼 눈과 귀를 닫아야 했다. 그것이 윤미가 자라난 방식이었다.

예담은 며칠 동안 경건회를 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아이들에게 두 가지 공지를 한 것이 전부였다. 하나는 사고 희생자들을 위한 특별 기도회가 열린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니또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수학여행 자체도 취소되었거니와 지금은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다질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땅 위로 솟아오른 지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나라 전체가 한마음 한뜻으로 품은 비탄에 균열이 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지부진한 구조 작업에 대한 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앞다투어 팽목항에 모인 취재진들이 온종일 현장을 중계했으나 정보값이 유효한 소식은 이상할 정도로 드물었고 새롭거나 희망적인 내용은 신뢰성이 떨어졌다. 다이빙벨이라는 장비를 사용하면 효율적이고 빠른 구조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도대체 왜 투입이 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제대로 된 비난의 대상조차 찾지 못했으며 역병 같은 뜬소문만 이승을 떠돌았다.

사고 당일 대통령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 또한 혼란을 가중시켰다. 국가적 대처가 늦어 희생자가 늘어난 것이 아니냐는 말과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대치했다. 그런 중에도 어째서 멀쩡하던 배가 갑자기 침몰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보도국에 들어앉아 이런저런 가설을 늘어놓았지만 결국은 가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흘렀다. 차라리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거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날짜와 요일은 막힘없이 바뀌어,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에 대한 희망을 천천히 바닥냈다.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에어 포켓 속의 산소도 이제는 동이 났을 것이었다. 부정하고 싶었고 그래야만 했던 죽음의 그림자가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한 곳까지 드리웠다. 살아 돌아올 가능성마저 내려놓고 만 실종자들의 가족은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유족이 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자식이 죽어 돌아온 현실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인지 윤미는 알 수 없었다. 만약 장례식을 가야 할 운명이었다면 답을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갈 수 있는 장례식이 없었고 아무 잘못도 없이 지옥에 수감된 죄수들은 침묵을 택하기 시작했다. 아랫지방의 혼란 뒤에 남은 이들은 스스로의 무력함을 그런 식으로 드러냈다.

경건회가 중단된 지 사흘째였다. 금요일의 기도회 이후로 영영 오지 않을 것 같던 채플 시간이 찾아왔다. 전교생이 모인 강당은 늘 그랬듯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했지만 평소와는 다른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신나는 음악과 춤으로 학생들을 맞이하던 찬양반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한켠에 비치된 악기들만이 누런 불빛 아래서 반짝거릴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단상에 아이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수군거렸으나 강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물에 빠진 개미 떼처럼 우왕좌왕하던 학생들을 진정시킨 것은 권 목사였다. 그는 시작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아무 기척 없이 단상 위에 나타났다. 마이크를 들고 있었지만 학생들의 이목을 끌거나 주의를 주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대신에 청중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알아서들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곧 강당이 고요해졌다. 전교생의 절반 정도가 기독교인인 곳에서 목사는 언제나 존경받는 직책이었다. 게다가 이 학교는 안산은 물론 경기도에서 손꼽히는 명문고였다. 서류와 면접으로 걸러진 모범생들은 선생과 어른의 말을 귀담아들어 마지않았다.

“여러분.”

마침내 권 목사가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하기 전 숨을 들이키는 것이 멀리 앉은 윤미의 눈에도 보였다. 어두운 색의 정장을 걸친 어깨가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날 이후 많은 학생들이 제게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도록 그냥 두셨냐고요.”

권 목사가 말을 멈췄다. 순간 윤미는 그가 울고 있음을 확신했다. 마이크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토록 신실하던 권 목사가, 하나밖에 없는 반신론자 친구의 영원한 적이, 신을 입에 올리며 기쁨이 아닌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보면 안 될 것을 본 기분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싶은 알량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산산조각이 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부서지는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에, 윤미는 비로소 영혼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권 목사가 허리를 굽혔다. 마치 이 모든 일이 자신의 탓이라는 듯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말로 그의 탓이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배가 완전히 기울기 전 선내에 울려 퍼진 안내 방송은 승객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했다. 그로 인해 피해가 더 심각해졌다고 언론은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권 목사가 그 방송을 내보낸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해야 할 일은 사죄가 아니라 어떤 돌파구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죄 없는 영혼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구원은 없다는 헛소리를 떠든다든가. 그렇게만 된다면 윤미는 마음껏 그를 증오할 수 있었다. 눈물을 머금은 채 그들을 지옥에 보내는 권 목사를 되려 지옥에 떨어뜨리고 희생자들에게 피안의 낙원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줄 수 있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이 지옥만을 지으실 만큼 잔인한 분은 아닐 터, 지옥이 있다는 건 그 반대의 장소도 있다는 뜻이 틀림없었다. 지옥은 우리에게 멋대로 찾아오는 곳이고 천국은 우리가 향하는 곳이라는 사실만이 달랐다. 그러므로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부디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배웅해 주어야 했다. 권 목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마침내 몸을 일으킨 권 목사가 말했다.

윤미는 두 손을 모았다. 눈을 감고 권 목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멘.

기도를 마친 권 목사는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힌 뒤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꺼진지도 몰랐던 조명이 켜졌다. 강당 문이 열리며 등 뒤에서 바깥 공기가 들어왔다. 그 누구도 채플이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또 지나치게 일찍 끝난 것에 대해서 의아해하지 않았다. 권 목사와 함께 기도를 마친 학생들은 조용히 줄을 서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음악도 잡담도 없이, 오로지 잘 차려입은 교복이 사부작대고 실내화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만 즐비했다. 다함께 움직이는 군중이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소음이었다.

말없이 밖으로 향하는 학생들을 보며 윤미는 배신감을 느꼈다. 단상에 뛰어올라가 모두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너희들이 모르면 대체 누가 알아? 세상 모든 진리에 통달하다 못해 부활과 기적까지 신봉하던 건 언제고 이제 와서 입을 다물어? 비겁한 행동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의 하나님도 비겁하신 분이야.’ 하지만 발걸음은 착실하게 무리를 따르고 있었으며 흥분한 숨소리조차 너무 미약하여 강당 안의 침묵에 조금의 상처도 낼 수 없었다. 무력감에 치가 떨렸다. 이때 민주가 있었더라면. 윤미는 저도 모르게 옛 친구를 떠올렸다. 이렇다 할 아군도 없이 항상 혼자 최전선에 뛰어들어 예수쟁이들과의 전쟁을 치르던 그 모습을.

누군가가 자신의 뒤꿈치를 밟았다. 실내화 뒤축이 벗겨졌다. 윤미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자그마한 뒷모습 하나가 보였다.

윤미는 자리에 멈춰 섰다. 뒤에서 따라오던 무리들과 몸이 부딪쳤다. 윤미는 피하는 대신 몸을 돌렸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듯 그들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어 가는 강당의 안쪽에 도달했을 때에는 겨드랑이에 식은땀이 나 있었다. 줄지어 비치된 장의자의 끄트머리에 오도카니 서 있는 민주가 보였다. 지난 일들이 생각나 덜컥 두려워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윤미는 깊은 물에서 걸어나오려는 것처럼, 혹은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처럼 허우적대며 조금씩 민주와 가까워졌다.

몇 발자국 남지 않았다. 윤미는 숨을 헐떡였다. 둘만 남은 강당에서는 그마저도 크게 울렸다. 마침내 민주의 옆에 나란히 섰다. 이제 돌아가자고, 함께 이곳에서 빠져나가자고 말하며 손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민주가 앞을 응시하며 턱을 쳐들었다. 윤미는 단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도 잊고 민주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저 멍청한 예수쟁이들을 깔보려는 줄만 알았다. 그러나 민주의 눈동자는 아래가 아닌 위를 향했다. 그 끝에는 벽에 걸린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문득 수련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윤미는 충동적으로 민주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도 민주는 손을 빼지 않았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권 목사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불길함이 엄습했다. 민주가 영영 자신을 떠나버릴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살아 있는 자신을 등지고 죽은 친구를 따라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바다에 갇힌 민주.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채 물속 한가운데에 고요히 정지한 민주. 그녀의 몸에 흐르던 피는 멈췄고 바닷물은 그것을 서늘하게 식힐 것이다. 저 깊은 곳의 액체 두 종류는 같은 온도를 공유한다. 그러므로 냉기는 더 이상 외로운 감각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민주가 함께 대부도에 가자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안산에 있는, 경기도에서 가장 큰 섬이라고 했다. 가서 뭘 하고 놀 것이냐고 묻자 민주는 어깨를 으쓱였다. 바다와 해변을 보고 박물관에 가도 된다고 했는데 딱히 내키지 않았다. 장소만 정해진 약속은 기약 없이 미뤄지다가 어느 순간 잊혔다.

윤미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자신도 민주도 다시는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바다를 볼 수 없을 것이었다. 몸에 난 흉터나 반점처럼, 지울 수는 있어도 잊지는 못할 것들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한 번 아문 상처를 보며 더 이상의 통증은 없을 것이고, 지저분한 흉터 조직은 더 단단해질 거라 믿는다. 그러나 상실은 박탈되는 순간의 통증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면서 몸과 마음에 자국을 남기는 행위를 지속한다. 긁히고, 닳고, 침식되는 그 과정이 언젠가 우리를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지워지지 않되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수업을 알리는 종이 쳤다. 민주가 눈을 감았다. 여전히 십자가를 마주본 채였다. 윤미는 바다 대신 민주를 눈에 담았다. 맞잡은 손이 따뜻하여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돌려받은 핸드폰을 켜자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야자 하지 말고 자취방으로 와]

발신인은 엄마였다. 윤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안산에 머무는 평일 동안 엄마가 먼저 연락을 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야자까지 빠지고 오라니, 아무리 봐도 엄마가 할 말은 아니었다.

[왜?]

윤미는 이유를 물었다. 야자가 시작하기 직전까지 기다렸지만 연락은 없었다.

윤미는 한숨을 쉬고는 칠판에 이름을 적었다.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인 칠판이 뽀득뽀득 소리를 냈다. 오늘 야자를 빠지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다시 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울면서 야자를 빠지거나 화장실에 모여 수군대는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도서실에 비치된 컴퓨터는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수업 발표용 자료를 만드는 용도로 돌아왔다. 전국의 수재들이 다니는 명문 사립고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안산시 전체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으므로, 모두는 다시 학생으로서의 의무만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윤미는 이름 뒤에 간단한 사유를 쓰고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문제집 두어 권을 챙겼다. 마지막으로 책상 서랍을 정리하는데 손끝에 구겨진 회색 종이 한 장이 걸려나왔다. 수학여행 신청서였다.

윤미는 종이를 잘 접어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서기 전 교실을 둘러보았다. 키다리 책상에 책을 펼쳐둔 민주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자습응ㄹ 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방해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윤미는 민주를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윤미야, 어디 가?”

신발을 갈아신다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예담이었다. 620 기도회에 다녀온 것인지 손에 빵을 들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눈물을 흘렸는지 눈가가 발갰다.

“어, 엄마가 오늘 야자 하지 말고 오래.”

윤미가 말을 더듬었다. 지난 620 기도회 이후 줄곧 예담을 피하고 있던 윤미였다. 경건회 때 선교반과 어울리는 것을 그만두었고 식사 시간이나 이동 수업 시간에도 마치 민주처럼 혼자서 움직였다. 예담이 먼저 다가올 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예담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예담을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이 따위로 여길 때는 언제고 윤미는 그녀가 자신을 미워할 것이라 생각했다. 혹은 미워할 가치도 없는 배신자로 간주하고 불신자들이 가는 지옥에 떨어뜨리거나. 하지만 지금 자신을 붙잡은 예담의 얼굴은 조금 부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의 것이었다.

“그렇구나. 잘 가. 주말 잘 보내고.”

예담이 미소지었다. 윤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담은 남은 빵을 베어물며 교실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오자 어둑하게 지는 해가 하늘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윤미는 건물을 나서서 언덕을 내려갔다. 밤바람이 아직 서늘하여 교복 자켓을 여몄다. 자취방에 난방을 켜지 않고 왔다는 것이 떠올랐다. 건물이 낡아서인지 5월이 가까워지고 있었는데도 저녁에는 바닥이 차가웠다. 부디 창문은 닫아두었기를 바라며 윤미는 학교 건너에 있는 빌라촌으로 향했다.

“아빠?”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대문을 열었다. 작은 부엌과 하나짜리 방을 나누는 덧문을 밀자 의외의 인물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엄마였다.

“왔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윤미가 당황한 사이 엄마가 몸을 일으켰다. “안 들어오고 뭐 해?“ 그녀가 채근하자 윤미는 그제야 안으로 발을 디뎠다. 난방을 어찌나 세게 틀어둔 것인지 바닥이 후끈거렸다. 윤미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빠는 어디 가고 엄마가 왔어?”

“너네 아빠 출장 갔다.”

엄마가 대답했다. 윤미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출장을 간다는 소리는 서울에 살던 시절 이후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또다시 사업 따위를 벌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헌데 아버지의 돌발행동에 제일 분노해야 할 엄마는 정작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멀뚱멀뚱 서서 뭐 하고 있어? 빨리 짐 싸.”

“옷 먼저 갈아입을게. 교복이라 불편해.”

“됐어. 갈 데 있으니까 짐만 대충 싸도 돼.”

“불편하다니까. 스타킹 올도 나갔단 말야.”

“정윤미. 말 안 들을래?”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옷을 벗으려던 윤미의 몸이 굳었다. 조용히 엄마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침대에서 나온 엄마도 윤미를 노려보았다.

윤미는 풀었던 자켓 단추를 다시 여몄다. 짐을 챙기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은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책상 한쪽에는 필기구 따위의 소지품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물건들을 그대로 가방에 담던 윤미는 최근에 책상을 정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가 옷을 미리 정리해 넣은 것인지 옷걸이 또한 텅 비어 있었다. 남은 것은 일주일에 한 번 본가에 들고 가는 빨랫감이 전부였다.

“그건 놔둬도 돼. 어차피 다 한 번 입은 건데 뭐.”

“그러니까 빨아야지. 교복을 안 가져가면 어떡해.”

“됐다고 하잖아. 다른 것 다 챙겼으면 빨리 출발하자. 벌써 일곱 시 반이야.”

“왜 이렇게 재촉해. 야자까지 빠지라고 하고서는……. 집에 누구 오셨어?”

엄마는 대답 대신 윤미의 어깨를 붙잡고 현관 쪽으로 밀었다. 닫히지 않은 가방 지퍼를 잠그고 한쪽 팔에 걸쳤다. 윤미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대문 밖으로 떠밀렸다. 먼저 내려가 있으라는 엄마의 명령에 결국 운동화 뒤축이 꺾인 채로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딜 뻔했다.

빌라 주차장에는 아버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윤미는 안에 누군가 있나 싶어 차창을 들여다보았다. 조수석에는 아무도 없었고 뒷좌석에는 정체 모를 상자와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타.“

뒤에서 나타난 엄마가 말했다. 뒷좌석에 자리가 없어 윤미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안고 안전벨트를 맸다. 곧 시동이 걸리고 차가 출발했다. 구형 소나타가 덜덜대는 소리를 내며 어두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엄마가 모는 차를 타는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자가용을 타는 것은 안산과 인천을 오갈 때뿐이었고 운전은 늘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와 엄마 사이에 그나마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자신을 태워 주는데도 아버지는 공부가 잘 되고 있냐느니 따위의 뻔한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견디기 어려워 윤미는 아버지가 모는 차를 탈 때 항상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는 했다.

어쩌면 엄마와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 자체가 재앙일지도 몰랐다. 윤미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문구점에서 산 싸구려 이어폰은 음질이 좋지 않았다. 음량을 조금만 키워도 지직대는 소음을 내보냈다. 윤미는 멜로디만을 겨우 따라갈 만한 음량으로 가요를 들으며 가로등 빛이 번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스쳐 지나가는 바깥의 풍경이 무언가 낯설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엄마가 라디오를 틀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앵커가 뉴스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어폰에서 계속 음악이 나오고 있어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으나 사고에 관련된 내용인 건 분명했다. 현재 구조자는 172명으로……사고 당일 박 대통령이 어째서 뒤늦게……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뉴스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낯설다고만 느꼈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곳은 인천에 있는 집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학교는 도시의 외곽에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진작 고속도로에 진입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시내였다. 길 건너로 한양대학교 에리카 캠퍼스가 보였다. 그리고 엄마는 고속도로도 아닌, 횡단보도가 있는 4차선에서 시속 80km에 가까운 속도를 내고 있었다.

“속도 좀 줄이면 안 돼?”

윤미는 이어폰 줄을 잡아 뺐다.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뀌었는데도 엄마는 감속 없이 차를 몰았다. 이러다 사고라도 날 것 같았다. 정지선을 한참 넘어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 한가운데에 차가 급정거했을 때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속도 줄이라고!”

윤미가 짜증을 냈다.

엄마는 같은 짜증으로 대응하지도, 변명을 중얼거리지도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며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던 손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윤미는 다시 이어폰을 꼈다. 음량을 최대로 올리고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눈은 차마 감을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너무 무서워서 공포에 떨다가 심장이 멎을지도 몰랐다.

그래, 무서웠다.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횡단보도를 건너던 이름 모를 보행자도 아닌, 바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할머니의 주검을 만지고 장례식을 치렀을 때도 찾아오지 않았던 소멸의 공포가 왜 지금에서야 드리운 것인지 윤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간절히 빌게 되는 건 아무래도 싫다는 것. 자신까지 죽는 건 사양이라는 것. 그 애들의 곁으로는 아직 가고 싶지 않다는 것. 자신은 그 애들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데 엄마는 왜 하나밖에 없는 딸을 천국인지 지옥인지도 모를 곳에 보내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

“다 왔다. 내려.”

윤미가 그 모든 울분을 드러낼 적절한 표현을 찾는 동안 차는 처음 보는 곳에 멈추어 섰다. 윤미는 차에서 내렸다. 어둠 속에서 커다란 체육관 같은 건물의 형상이 보였다.

“여기가 어디야?”

윤미가 물었다. 엄마는 대답 대신 윤미의 종아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너 스타킹이 왜 그러니? 다 찢어진 걸 아직도 입고 있으면 어떡해?”

“올 나갔다고 아까 자취방에서 말했잖아.”

“미리미리 바꿔 신었어야지. 학교에서도 종일 그러고 다녔을 거 아냐. 지금 빨리 새 걸로 바꿔 신고 와.”

“새 스타킹이 없는데 어떻게 지금 갈아신어?”

“여분도 안 가지고 다니니? 너 여학생 맞아?”

엄마는 차 뒷문을 열었다. 몸을 안으로 굽혀 짐을 뒤지다가 결국 빈손으로 문을 닫았다.

“됐다. 그냥 지금 가자. 문 닫겠다.”

윤미는 앞장서는 엄마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산시 올림픽기념관 실내체육관이라는 명패가 보였다. 그리고 양쪽으로 열린 철문에 부착된, 임시 합동분향소라는 단어와 안내 화살표도.

휑했던 주차장과 다르게 내부에는 조문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너머에는 꽃으로 장식된 희생자들의 사진이 줄을 맞추어 걸려 있었고, 천장 가까이에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부착되어 있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조문객들이 각각 다른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하염없이 사진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고 흐느껴 우는 이도 있었다. 신발을 벗는 한 남자의 등이 볼록하게 솟아올랐다. 그는 두 번 절을 올린 뒤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누군가가 등을 떠밀었다. 엄마였다. 윤미는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득 올이 나간 스타킹이 부끄러워졌다. 화장실에 가서 벗고 올까 생각했으나 이미 늦은 것을 알았다. 윤미는 사진이 걸린 곳을 향해 홀린 듯이 걸어갔다. 앞으로 갈수록 시야가 좁아져 안 그래도 많았던 망자들의 사진을 한눈에 담지 못하게 되었다. 대신에 우연히 자신의 눈앞에 자리했을 몇몇 영정들이 크기를 키웠다. 유리 너머에 표구된 초점으로 오로지 앞만을 응시하는 얼굴들을 윤미는 하나씩 천천히 뜯어보았다. 아수라장이 된 이승을 굽어살피는 대신 언젠가 들이밀어졌을 카메라의 렌즈만을 담아내고 있는 눈동자들은 웃고 있었다. 적어도 윤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시선을 맞추려 애쓰는 고동색 동공의 주인이 정현의 친구일 수도, 예담의 동창일 수도, 민주의 친척일 수도 있었으므로, 윤미는 난생 처음 만나는 얼굴의 주인들을 웃는 표정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표정은 이미 너무 많이 목격한 것이었다. 얼굴을 찌푸리는 건 산 자의 몫이니 죽은 자에게는 하염없이 웃을 일만 있어야 했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엄마 또한 사진들을 하나씩 바라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그 얼굴 뒤에 무슨 감정을 가려두었는지 윤미는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이 자리에 동행한 사람이 늘 말도 표정도 없는 아버지였다면 그럭저럭 납득했을지도 몰랐다. 물론 아버지는 까미와 함께 안방에서 은둔하는 존재였기에 이런 곳에 발걸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행동을 한 것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윤미에게 엄마는 자식에게 화를 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7시간이나 늦게 사건 현장에 나타난 대통령에게 분통을 터뜨릴 일도 없었고, 허무하게 스러진 청춘들을 위해 비탄할 일은 더더욱 없었다.

갑자기 엄마가 앞으로 나섰다. 무더기로 쌓인 꽃에 가슴팍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제단에 다가갔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여 묵념하는 자세를 취했다.

의식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이제 거의 동상처럼 보였다.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때문에 표정을 볼 수 없었으나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만약 눈을 뜨고 있다면 시린 눈물이 흐를 때까지 한 번 깜박이지도 않고 있으리라고 윤미는 생각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독종이니 그런 식으로라도 눈물을 보여야 했다. 그녀의 딸은 이유도 없이 당당하게 살아남았기에, 그녀는 딸과 달리 허무하게 죽고 만 동갑내기의 아이들을 눈여겨보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슬픔의 사각지대를 억지로라도 벗어나 외부의 감정을 마주하기. 그것이 엄마의 의무였다.

정현이 울고 예담이 운다. 민주가 울고 권 목사가 운다. 엄마마저 억지로 눈물을 짜낸다. 그렇다면 다음은 누구 차례일까, 윤미는 대답이 이미 나온 질문을 곱씹었다. 그녀는 지난주 수요일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그저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떠돌았을 따름이었다. 믿지도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까지 울어줄 수 있었던 나약함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신에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 의문만이 황무지의 회전초처럼 입안에 굴러다녔다. 엄마. 난 죽으면 어디로 갈까? 사람들은 죽으면 어디로 가지? 엄마는 그 애들을 어디로 보내줬어? 나는 엄마를 어디로 보내줘야 해? 엄마는 날 어디로 보내? 나도 그 애들이 있는 곳에 보내줄 거야?

그곳에 가면 나는 비로소 울 수 있을까?

윤미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뒷걸음질했다. 좁아졌던 시야에 모든 영정을 다 담을 수 있을 때까지 뒤로 갔다. 뉴스와 신문 기사 속 숫자로만 존재했던 영혼들의 흐릿한 표면 위에 눈과 코와 입이 그려졌다. 이백 명이 넘는 얼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지 않아도 전부 다르게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난지도처럼 거대한 매장지가 되어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세상이 차츰 흩어졌다. 누군가의 소중한, 그리고 사실은 그 자체로도 귀한 조각들로 부서져 윤미의 마음에 우수수 박혔다.

윤미는 잊지 못하게 된 것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분향소를 나온 모녀는 말없이 차에 탔다. 다시 시동이 걸린 차체가 앞으로 나아갔다. 윤미는 조수석에 두고 갔던 이어폰 줄을 만지작거렸고 엄마는 라디오를 꺼 버렸다. 내려앉은 침묵은 고개를 숙이게 할 정도로는 무거웠고 허리를 펴게 할 정도로는 가벼웠다.

윤미는 창문에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고개를 댔다. 처음 보는 길과 도로들을 보고 있자니 각각의 명칭이 궁금해졌다. 이 도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잠시 머물고 떠났다가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곳에 정을 붙이기란 어렵다는 것이 변명이라면 변명이었다.

“네가 태어나던 해에 IMF가 터졌다.”

엄마가 말했다. 놀란 윤미는 창문에서 얼굴을 뗐다.

“그때 김영삼이가 대통령이었어. 네 돌반지를 금모으기 운동에 다 가져다 바쳤지. 네 아빠도 처음에는 월급이 밀렸다가 결국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래서 몇 년 놀다가 빚까지 져가면서 사업 벌린 거야. 그런데 너네 고모는 금을 안 팔았다. 그때 그 집에 현금이 좀 있었거든. 은행 이자가 20프로씩 할 때였어.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돈이 불어났겠지.”

고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윤미가 인상을 썼다. 뭐라고 비꼬기도 전에 엄마가 물었다.

“네 친구들 죽은 애 없니?”

”뭐라고?”

”죽은 친구 없냐고. 그 배에서.”

”없어.”

“친구도 없다는 말이지. 누굴 닮아 그래.”

엄마가 빈정거렸다. 마치 사람이라면 죽은 친구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산 사람들 틈에서 홀로 외로운 것과 죽은 사람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행위 중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일지 윤미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민주와 예담과,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으며, 그 생각은 중학교 영어 시간에 스쳐 지나가듯 배운 어떤 이론으로 번졌다. 케빈 베이컨 게임이라는, 최대 여섯 다리만 거치면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그 게임을 창시한 이는 각 관계의 깊이와 너비가 다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죽은 친구를 둔 민주의 슬픔보다 그런 민주를 친구로 둔 자신의 슬픔이 더 얕고 알량함은 명백했다.

“친척이 죽었다고 들었어.”

윤미는 엄마가 그 사실을 알기를 원했다. 비록 자신은 아니더라도 자신 주변의 누군가는 실제로 고통받았다는 것을 어떻게든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너랑 친한 애야?”

“응.”

윤미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운전을 하던 모친이 윤미를 곁눈질했다. 딸에게 친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윤미는 부끄럽기도 했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엄마가 말했다.

“나 때는 강남에서 백화점이 무너졌다. 결혼하기 전에 공장 다닐 때 만난 친구가 거기서 일했었어. 무게를 달아서 돈 받는 사탕 코너에서 말이다. 걔가 어떻게 탈출을 했더라,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 이후로 어디 들어가기가 무섭다면서 몇 달을 쉬다가 갤러리아 백화점에 다시 취직했지. 너는 기억이 안 나겠지만 내가 너 낳았다고 선물로 모빌을 사서 우리집에 왔었는데 지금 뭐하고 지내려는지 모르겠다.”

서울 한복판에서 백화점이 무너졌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에 윤미는 어리둥절해졌다.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엄마는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앞만 보며 때때로 눈을 깜박이고 핸들을 조작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백화점 때는 말야. 거기 건물 잔해에 깔려 있다가 나중에 구조된 사람들이 몇 명 있었어. 그 밑에 공간이 있어서 운좋게 살아남은 거지. 왜 그 배에도 에어 포켓이니 뭐니 하면서 설레발 치던 사람들 있지 않았니. 웃긴 거지. 백화점은 지상이지만 바다는 온통 물인데 거기에 숨쉴 군데가 어디 있겠니. 그냥 다 한순간에 개죽음 당한 거야. 좋은 소식 하나만 있어라, 있어라 해봤자 결국은 개죽음이거든. 대통령 잘못이든 해경 잘못이든 선장 잘못이든 간에 말이지.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참 많다. 하도 많아서 이젠 뭐가 더 별난 것 같지도 않아. 부천 사는 너네 막내이모도 옛날에 동네 주유소가 폭발해서 큰일 겪을 뻔 했었다. 그때는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지. 뉴스 보고 놀라서 전화했더니 자기네는 괜찮다길래 천만다행이라고, 신령님이 도와주신 거라고 돌아가신 네 외할머니가 그러셨었다. 그 이모도 이번에 너 괜찮냐고 나한테 연락했더라.”

윤미는 창밖을 내다보는 것을 그만두고 룸미러에 시선을 주었다. 엄마의 좁은 이마와 손질되지 않은 눈썹이 비쳤다. 관자놀이에는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 있었고 눈가에는 주름이 져 있었다. 늘 보던 모습인데도 오늘따라 유독 늙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점진적인 노화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떤 놀라운 사건을 겪고 한순간에 머리가 세어 버린 전래동화의 주인공 같았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야.”

엄마가 말했다.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 있는 건 아닐까? 윤미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엄마에게 반기를 들 용기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커먼 고속도로를 노려보는 엄마의 눈에서 지독한 생의 의지가 느껴져서였다. 배에서, 백화점에서, 폭발하는 주유소에서 직접 기어나온 것도 아닌 주제에 이를 꽉 깨물고는 주어진 삶을 아등바등 살아가려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모르는 사이 큰 생명의 위협이라도 겪은 것처럼.

오한이 느껴져 윤미는 팔뚝을 손으로 문질렀다. 어딘가에서 찬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창문을 손가락 한 마디쯤 열어 놓은 것이었다. 치익 소리를 내며 새어드는 공기가 묘하게 맑았다.

“여기가 어디야?”

윤미는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지도에는 강화군이라는 위치가 찍혀 있었다. 같은 인천이었지만 집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출발지가 평소와 달라서 경로 또한 바뀐 것이겠거니 생각했으나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속도를 줄였다. 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도 아닌 작은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다 닳은 타이어가 울퉁불퉁한 길 위를 지나며 불쑥불쑥 솟아올랐고 윤미의 몸도 덩달아 덜컹거렸다. 윤미는 양쪽 허벅지를 붙이고 상체를 웅크렸다. 차갑게 식은 지 오래인 차 안의 공기에 불쾌한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배설물 냄새 같기도 했고 무언가 썩는 냄새 같기도 했다.

엄마는 차를 점점 더 안쪽으로 몰았다.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작은 집과 컨테이너 따위가 헤드라이트 너머로 불쑥불쑥 드러났다. 길 너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금방이라도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할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런데도 엄마는 멈추지 않고 엑셀을 밟았다. 사고가 날 일은 없거나, 만약 그렇다고 해도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는 태도였다.

마침내 차가 멈췄다. 엄마는 건축 자재 같은 것이 쌓인 공터에 아무렇게나 차를 대고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윤미는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엄마를 따라 내렸다. 차문을 열자 불쾌한 냄새가 더 지독해졌다. 거름 냄새가 분명했다.

“엄마.”

윤미가 뒷문을 열고 짐을 꺼내는 엄마를 불렀다.

“아빠 출장 간 거 아니지.”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매연 대신 비료가 썩는 농촌의 공기에 침묵이 섞여들었다.

”아빠 어디 갔어?”

윤미가 재차 물었다.

”나중에 올 거야.”

”나중에 언제? 까미는 어쨌어. 아빠가 데리고 있어?”

“이모 집에 맡겼다.”

“왜?”

엄마는 양손에 짐을 들고 공터 옆에 있는 작은 주택으로 향했다. 문앞에 짐을 대충 내려놓고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집안은 밖과 다름없이 캄캄했다. 엄마가 말했다.

“안 들어오고 뭐 해. 짐은 엄마가 나를 테니까 새로운 집 구경하고 있어. 네 물건 정리도 미리 좀 하고.”

“우리 여기로 이사온 거야? 갑자기?”

“사정이 그렇게 됐다. 넌 신경 쓸 필요 없어.”

윤미는 집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먼지 냄새가 훅 끼쳤다. 현관 센서등은 고장났는지 몇 번 깜박거리다가 꺼졌다. 손을 휘저어 보아도 반응이 없었다. 완전히 맛이 간 것 같았다.

“우리 진짜 거지 됐네. 그렇지?”

윤미가 말했다.

어둠 속에서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윤미는 또 머리채를 잡히지 않도록 엄마에게서 물러났다. 그러나 엄마는 거지가 아니라고 악을 쓰거나 손찌검을 하는 대신 버릇없는 딸을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엄마가 말했다.

“다시 시작하면 돼. 일반고 가서 내신 따. 이 동네는 촌구석이라 공부하는 애들 거의 없어서 따기 쉬울 거야. 그걸로 수시 쓰면 스카이는 몰라도 서성한 정도는 충분히 간다더라. 열심히 하면 지역균형으로 서울대 쓸 수도 있고.“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전학을 왜 보내? 일반고는 분위기 나쁘니까 가지 말라며?“

“그냥 여기서 학교 다녀. 엄마 말 들어서 손해볼 거 없어. 너 어차피 지금 학교에서는 계속 하위권이었잖아. 그럴 바에 내신이라도 챙기라는 말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니?”

엄마의 목소리는 평이하다 못해 나긋나긋했다. 명백한 몰락의 결과를 자발적인 선택으로 포장하는 솜씨가 훌륭했다. 혹은 이 상황을 실재하는 고난이라 여기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천적을 앞에 두고 도망가는 대신 모래밭에 머리통을 파묻는 기린처럼, 당장 아무것도 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 그게 엄마가 지닌 신앙의 기저였다. 엄마가 말했다.

“내일 올게. 어디 가지 말고 가만히 여기 있어. 냉장고에 인스턴트 죽 넣어뒀으니 배고프면 데워 먹고. 이 동네 치안 안 좋으니까 밖에 나가지 말고 낯선 사람한테 문 열어주지도 마.”

“……”

”모르는 번호로 전화 와도 절대로 받지 말고. 아니다. 그냥 핸드폰을 엄마한테 맡겨. 번호 바꿔다 줄게. 그게 편할 거야.“

“싫어.”

“내놓으라니까.“

“싫다고.”

엄마가 윤미의 손목을 붙잡아 비틀었다. 윤미가 비명을 질렀다. 엄마는 윤미의 허벅지를 더듬어 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리 내놓으라며 달려드는 것을 쳐내고는 핸드폰 배터리를 빼서 윤미에게 돌려주었다.

“다 너 잘 되라고 이러는 거야.”

엄마가 말했다.

“그럼 어디 가는지라도 알려줘.”

윤미가 말했다.

“집에만 있어.”

대문이 닫혔다. 윤미는 곧장 다시 문을 열었지만 엄마는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이미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시동이 걸리고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엄마!”

윤미가 소리쳤다. 집 밖으로 뛰쳐나가 차 뒷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냈다.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좁은 시골길을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윤미는 벌겋게 반짝이는 후미등을 쫓아갔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빛은 더 멀어지기만 했다. 마침내 작은 두 점으로만 남은 그것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각도를 바꾸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더 가면 길을 잃고 말 거라는 두려움에 뜀박질을 멈추려는 순간이었다. 운동화 끝이 툭 튀어나온 시멘트 덩어리에 걸렸다. 윤미는 그대로 길에 고꾸라졌다. 손바닥이 쓸리고 무릎이 깨졌다. 피가 나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이대로 땅이 꺼져 자신을 삼켜 주었으면 했다. 그런 기적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윤미는 가만히 있고 싶었다. 운좋게 지나가던 차에 치여 죽거나 낯선 사람에게 구조되거나 할 때까지 기다리고만 싶었다. 그토록 원했던 완벽한 불행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온전히 내려놓고 엎드릴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윤미는 일어섰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었다. 적어도 그녀 스스로를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녀는 초월자의 구원을 끈기 있게 기다리지도, 자기 자신을 직접 구제하려 들지도 못했다. 그녀는 무언가가 아니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으며, 기껏 홀로 서게 된 순간에도 여전히 남의 핑계를 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정호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 민주를 안아주고 예담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윤미는 흙먼지가 묻은 손바닥을 치마에 문질렀다. 몸을 돌려 왔던 방향으로 걸었다. 사방이 논밭이었다. 흙과 시멘트, 아스팔트로 범벅이 된 길이 가로등 밑에서 얼룩덜룩한 빛을 냈다.

곧 새로운 집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윤미는 반쯤 열려 있는 대문 사이로 들어갔다. 엄마가 두고 간 짐을 뒤져 체육복 주머니에 감추어 두었던 돈을 꺼냈다. 오만원권 일곱 장을 두 번 접어서 왼손에 꼭 쥐었다.

꽉 닫은 대문을 등지고 섰다. 아무리 주변을 살펴도 길은 하나뿐이었다. 윤미는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이라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다.

넘어졌던 곳을 지나치고 나서도 한참 뒤에, 멀리서 한 쌍의 헤드라이트가 반짝였다. 윤미는 길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양팔을 벌리고 섰다. 거침없이 달려오던 버스 한 대가 코앞에서 멈췄다. 윤미는 경적 소리를 무시하고 왼편으로 가 창문을 두드렸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계단을 올랐다. 동전 몇 개가 든 요금함에 지폐 한 장을 밀어넣으며 말했다.

“잔돈은 가지세요.”

버스 기사는 귀신이라도 본 표정이었다. 윤미는 안으로 들어가 아무 좌석에나 앉았다. 다친 곳이 뒤늦게 쓰라렸다. 치마를 걷어 깨진 무릎을 보았다. 그새 굳은 피가 찢어진 스타킹에 엉겨붙어 있었다. 윤미는 아직 물렁한 피딱지를 손톱으로 떼어냈다. 번뜩이는 통증이 내려앉았다. 톱밥처럼 너덜거리는 거스러미 위로 핏방울이 고이다가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마침내 버스가 출발했다. 윤미는 창문에 머리를 댔다. 또다시 피로가 찾아왔다. 눈이라도 잠깐 붙이고 싶었으나 차가 덜컹거리는 탓에 잘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바깥을 바라보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 가로등만 줄지어 반짝였다. 지루한 광경이었다.

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버스에서 윤미는 끔찍하게 외로웠다. 너무 외로워서 갚아야 할 빚을 떠올렸다. 빚을 진 이상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낯선 하늘이다.

며칠간 비가 내렸다. 늦은 봄의 밝은 햇살은 온데간데없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바람까지 부는 탓에 바지 밑단이 팔락거리며 발목을 간질였다.

정호는 잘 꾸며진 담벼락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서있는 곳에서는 광화문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에 탁 트인 광장은 언제 보아도 마음에 들었다. 궂은 날씨 때문에 성문 뒤의 궁궐이 안개에 가려진 것은 유감이었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 더 넓히니 흐린 하늘이 광장의 회색 바닥과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잿빛으로 모호해진 지평선 가운데 두 위인의 동상이 천공의 섬처럼 걸려 있었고, 그 사이에 솟아난 작은 천막들 사이로는 노란색 점들이 탁하게 반짝였다. 대도시에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정호야. 거기서 뭐 해!”

정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약혼녀인 하영이 건물 안에서 손을 흔들며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정호는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그가 움직이지 않자 하영은 건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잰걸음으로 정호에게 다가왔다.

“비 안 오는 거 맞아?”

하영이 이마에 손그늘을 만들며 말했다.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영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경치 좋지?”

정호가 말했다.

“날씨가 계속 흐리네.”

하영이 불만스럽게 말끝을 늘였다.

“결혼식 때도 이런 건 아니겠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았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고 비 오면 실내 웨딩홀로 바꾸면 돼. 거기도 예쁘던데 뭐.”

“정호 네가 야외에서 식 올리고 싶다고 해서 여기 예약한 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비 맞으면서 입장하는 건 너도 사양이지 않아?”

정호가 미소지었다. 하영은 대답 대신 샐쭉 입을 내밀었다.

어쩌면 하영에게는 실내 웨딩홀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어두운 천장 아래서 홀로 반짝이는 것이 하영의 직성에는 맞으리라고 정호는 생각했다. 드레스샵에서도 스튜디오에서도 하영은 내내 흰 배경에 대한 거부감을 내비쳤다. 하얀 드레스는 어두운 곳에서 더 눈에 띄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플래너와 직원들은 당황한 기색을 웃음으로 감추며 차라리 야외 촬영을 하자고 하영을 설득했지만 하영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하객들도 흰옷을 입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이 드레스가 아니냐고 했다. 그렇게까지 민망하게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드레스의 중요성이 어째서 어두운 배경에 대한 요구로 튀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호는 추가금을 지불하고 하영이 검은색 배경에서 사진을 찍게 해 주었다. 하영은 눈을 살짝 내리깔고 옆태를 드러낸 채 앉은 자세를 취했다. 신부라기보다는 교회 벽에 그려진 성녀 같았다. 비즈가 달린 흰 면사포는 정수리 위에서 반짝거렸고 목 끝까지 올라오는 반투명한 레이스는 금욕적인 느낌을 주었다. 반면 자신은 검은 턱시도를 입은 탓에 온통 배경에 묻혀 있었다. 밝은 톤의 메이크업을 얹은 얼굴과 왼쪽 가슴팍의 부토니에만이 어둠 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어쨌든 하영은 결과물에 만족했다.

“걱정하지 마. 비가 오면 그것대로 운치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넌 장난이 너무 심해.”

무슨 사랑의 도피도 아니고. 하영이 투덜거렸다. 정호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드레스 자락을 양손으로 걷어들고 빗속을 뛰어가는 하영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영이 웃고 있다면 나름대로 봐줄 만한 광경이겠으나 하영의 성격상 그럴 일은 없을 듯했다.

“왜 웃어?”

“아니야.”

정호는 대답 대신 하영의 귓불에 손을 댔다. 손가락 끝에 작은 귀걸이가 만져졌다.

도피는 아니었으나 곧 한국을 떠날 예정이기는 했다. 하영과는 비가 내리는 정원이 아니라 넓고 쾌적한 공항에서 작별할 것이었다. 5월에 결혼식을 올린 뒤 두 달간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하영은 미국으로 떠나고 자신은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하영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같은 대학에 진학하며 말을 텄고 학부 내 피아노 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친해지게 되었다. 목사인 아버지를 둔 하영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교회에서 찬양 반주를 도맡았다고 했다. 악보에 충실하게 연주하는 법만 알던 정호는 하영의 즉흥 연주 솜씨를 흥미롭게 느꼈다. 반면 하영은 클래식에 해박하고 기교가 뛰어난 정호를 부러워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휴학계를 내고 카투사로 복무한 정호는 전역한 뒤 하영에게 청혼했다. 하영은 기다렸다는 듯 승낙했다. 결혼 준비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두 사람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갈 생각이었으므로 한국에서 미리 혼인 신고를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영이 먼저 보스턴으로 건너가고 정호는 한국에서 남은 학기를 끝마친 뒤 따라갈 예정이었다.

주말부부도 아닌 방학부부가 되었다며 하영은 불평했다. 절반은 농담이었으나 나머지 절반은 확실한 진심임을 정호는 알고 있었다. 신혼여행을 위하여 결혼 준비 비용에 버금가는 돈을 들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다 봤으면 이제 들어가자. 언제 또 비가 올지 몰라.”

“그래.”

하영은 정호에게 팔짱을 꼈다. 둘은 아직 장식되지 않은 버진 로드를 걸어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그들을 알아본 직원들이 정중하게 목례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

“음, 오늘은 없는 것 같아.”

“그러면 이제 갈까?”

“이따 어머님이랑 저녁 먹기로 했잖아. 그때까지 시간이 뜨지 않을까? 집에 들르기엔 애매하고.”

“그럼 그냥 여기 있자. 로비에 있는 카페라도 갈래?”

“아니. 조금만 더 구경하고 싶어. 꽃향기가 좋아.”

웨딩홀을 장식하는 꽃들은 당연히 전부 생화였으며, 하영은 기본 옵션에 꽃병과 나무를 추가하여 좀 더 풍성하게 연출하기를 원했다. 특히 신부 대기실을 최대한 화려하게 해 달라고 매니저에게 직접 부탁까지 했다. 그들이 예약한 호텔 웨딩홀의 신부 대기실에는 큰 유리창이 있었는데, 밝은 배경을 싫어하는 하영은 그것을 꽃으로 가려 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자연광과 유색 꽃장식이 적절하게 서로의 존재를 무마하여 예식의 주인공인 신부만이 환하게 빛날 수 있도록 말이다.

마침 예식장 안에는 아마도 내일 예약되었을 결혼식을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정호는 하영과 함께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버진 로드와 하객석에 꽃을 한 송이씩 꽂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요구사항에 비하면 꽃과 장식의 양이 한참 적었다. 내일 이곳에 도착할 신랑과 신부는 꽃에 큰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그나마 있는 꽃들도 온통 하얀색이어서 하영이라면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게 뻔했다.

“촌스럽다.”

하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까치발을 들어 정호의 귓전에 소근거렸다. 정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긴 플라워 디자인 팀이 유명한 호텔인데 아깝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하영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안다는 정호의 반응을 무시하고는 기어코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이번에는 귓속말을 하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호는 하영을 보며 검지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댔다. 하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틀린 말이라도 했냐는 태도였다.

정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하영의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컸다. 그러나 직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혹은 있었다 해도 알 바 아니라는 듯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어쩌면 곳곳에 깔린 두터운 카펫이 발소리를 비롯한 쓸데없는 소음을 모두 흡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호텔의 장점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물론 무시당하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정호는 부모님의 결혼식 비디오를 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양옆에 앉은 하객들에게 허리를 굽히며 입장하다가 가슴에 단 꽃장식을 떨어뜨렸다. 그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며 꽃장식을 줍고 떨어뜨리고 또 주워 가슴에 꽂는 행위를 반복했다.

비록 하객들은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듯 웃고만 말았으나, 존경하는 아버지에게서 유일한 오점을 찾는다면 바로 그 일이리라고 정호는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도 아버지처럼 입장하다가 부토니에를 떨어뜨릴지 몰랐다. 굳이 부토니에가 아니더라도 발을 헛디디거나 예법을 잊어버리면 뒤에서 장인어른과 함께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하영이 얼굴을 굳힐 것이다. 자신은 더 이상 빛나지 않을 것이고 신부는 얼굴을 찡그리며 화를 내는 것으로 애써 한 화장을 망치리라.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야 했다.

물론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기도 했다. 사회는 자신의 친구가, 주례는 하영의 아버지, 즉 자신의 장인어른이 볼 예정이었다. 목사인 그는 먼저 두 사람을 축복하고 결혼의 신성함 등을 다루는 주례를 읊은 뒤 신랑과 신부 각각에게 앞으로의 각오를 묻는 것으로 의식을 마무리하겠다고 전달해 왔다. 정호는 성경책까지 뒤져 가며 대답을 준비했다. 사랑이라고 했을 때 가장 유명한 말씀은 역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어쩌구 하는 구절일 것인데, 바로 그 유명세 때문에 뻔하게 느껴지는 감이 있었다. 너무 흔하지는 않되 간단하고 감동을 줄 것. 그것이 정호가 세운 기준이었다.

몇 번의 검색 끝에 정호는 꽤 괜찮은 구절 하나를 찾았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였다. 잠시 흉내만 내는 것일 뿐 기독교인은 아니었기에 그 뒤의 문장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제외하기로 했다. 목사인 장인의 앞에서 신의 존재까지 거론했다가는 일이 귀찮아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흔한 동네 교회도 아닌 수도권에서 꽤 유명한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였고, 신부 측 하객이 될 다른 친척들도 전부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신이 성경을 인용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반대로 하영은 예식만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대답 따위야 상관없다는 듯했다. 하영은 딱히 신앙심이 깊지 않았다. 반주자라는 직책이 마음에 들어 교회에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가끔은 설교의 지루함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빠는 아직도 혼전순결이니 하는 말을 떠들고 다닌다니까.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여자들이 그런 말이나 듣고 있어야 해? 하영이 툴툴대면 정호는 그녀에게 동의하지만 장인어른의 말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조용히 미소짓고는 했다.

때로 정호는 하영이 조화 같다고 생각했다. 가짜라기보다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는 맥락에서 그랬다. 흙에서 뽑혀나와 잘린 꽃은 언젠가 말라비틀어지기 마련이다. 조화는 그렇지 않았다. 물을 줄 필요도 없었다. 조화라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느껴진다면 요즘에는 프리저브드 플라워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생화에 약품 처리를 해서 싱싱함을 보존하는 방법 말이다. 물론 관리가 까다롭고 시들기 쉬운 생화를 사용하는 것은 부를 과시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였으나, 하영과의 관계에 있어서 화려한 결혼식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하영이 결혼식 준비에 열을 올렸다면 정호는 결혼이라는 인생의 한 관문을 통과하고 배우자를 맞이했다는 성취감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영은 조화였다. 먼지만 잘 털어준다면 아름다운 상태 그대로 영원히 자신의 곁에 남을 사람이었다.

“정호야. 나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될까?”

하영이 말했다.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을 테니까 천천히 갔다 와.”

하영은 정호에게서 팔을 빼고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정호는 아까 보았던 것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한 버진 로드 주변을 거닐었다. 직원들은 여전히 금속 뼈대에 꽃을 심고 철사를 감는 중이었다.

조명이 꺼진 무대 구석의 무언가가 정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정호는 덮개에 싸인 그랜드 피아노를 바라보다가 한 직원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저 피아노를 좀 쳐 봐도 될까요?”

“아, 죄송하지만 이미 조율을 다 한 상태라서요.”

“한 번만 쳐 보면 안 되나요? 저도 다음 달에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데, 아내가 입장할 때 피아노를 쳐 주기로 약속했거든요.”

정호가 웃으며 말했다. 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피아노와 그를 번갈아 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이라면 가능하세요.”

“배려 감사합니다.”

정호는 곧장 피아노로 다가가 천을 걷었다. 윗뚜껑을 받침대로 받친 뒤 건반 뚜껑을 열었다. 의자를 빼서 앉고는 윤기가 도는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연주가 끝났다.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직원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모여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정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하고는 피아노를 원래의 모습대로 돌려두었다. 한 직원이 물었다.

“혹시 피아니스트이신가요?”

“아니요. 그냥 취미입니다.”

“취미치고는 너무 잘 치시는데요.”

“감사해요. 결혼식 때 연주할 곡이라 열심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듣기도 좋고 예식에도 잘 어울리네요. 제목이 뭔가요?”

“쇼팽의 에튀드 중 나비라고 불리는 곡이에요.”

“신랑분이 직접 연주를 들려주시다니, 신부분께서 정말 좋아하시겠어요.”

여기저기서 아첨이 쏟아졌다. 정호는 감사하다며 허리를 숙이고는 예식장을 나왔다.

하고 많은 에튀드와 결혼행진곡 중 ‘나비’를 고른 가장 큰 이유는 곡의 길이였다. 박자를 제대로 지킨다면 곡은 1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먼저 입장한 자신이 인사를 마치고 연주를 시작하면 하영이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 새하얀 드레스 자락과 면사포, 생화로 만든 부케를 자랑하며 버진 로드를 걸어올 것이었다. 그녀가 단상 가운데에 도달하는 순간 곡이 끝나고 자신은 다시 하영의 곁으로 돌아간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무례한 부탁이라도 하기를 잘했다고 정호는 생각했다. 한 달 뒤에 치게 될 그랜드 피아노는 예상했던 것보다 건반이 가벼웠다. 콘서트 피아노인 것을 감안하여 일부러 손에 힘을 줬던 터라 강약 조절이 엉망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지만 그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했다.

셈여림을 지키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정호는 하영을 찾았다. 지금쯤 화장실에서 돌아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하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층에 있다면 자신의 연주를 분명히 들었을 텐데 웨딩홀 가까이는커녕 다른 쪽을 찾아보아도 없었다.

정호는 하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안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영의 행방을 생각하던 정호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는 다시 웨딩홀 안으로 들어가 직원에게 말했다.

“죄송한데 부탁 하나만 더 드릴게요. 혹시 아내가 오면 제가 잠깐 나갔다고 전달해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정호는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비가 온 뒤의 습한 공기가 콧속을 메웠다. 정호는 큰길을 건너 편의점 따위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을 찾자 마침내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하영이었다.

“하영아.”

정호가 하영을 불렀다. 하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정호는 하영에게 다가갔다. 아스팔트에 고인 물이 구두 밑에서 찰박거렸다.

“담배 끊은 거 아니었어?”

정호가 물었다. 하영은 말없이 눈을 굴렸다. 왼손에는 반쯤 피운 연초를 들고 있었다. 이미 들켰으므로 버려 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쁜 거니까.”

하영이 중얼거렸다. 왼손을 들더니 담배를 그대로 입에 가져갔다. 끝을 한 모금 빨았다가 숨을 뱉었다. 주변으로 희뿌연 연기가 퍼져나갔다.

“나쁜 거니까?”

정호가 되물었다.

“다 피워서 없애버리려고.”

“그래? 하하하…….”

정호가 웃었다. 하영도 따라 키득거렸다.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긴장이 풀린 얼굴로 볼이 홀쭉해질 때까지 연기를 들이마셨다.

정호가 웃음을 멈췄다. 하영은 왼손을 내렸다. 허리를 굽혀 구두 끝으로 담배를 짓밟았다. 밑창이 더러워진 신발을 흙탕물 표면에 대고 휘저었다. 어떻게든 증거를 인멸하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하지만 둘의 주변에는 다른 사람들이 버리고 간 꽁초들이 이미 잔뜩 떨어져 있었다.

“미안해. 결혼식 생각하니까 긴장돼서 그랬어. 이제 안 피울게.”

하영이 얼굴을 굳혔다.

“알았어.”

정호가 답했다.

“누구한테 말할 건 아니지?”

하영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영은 과장된 미소를 지으며 정호에게 다가가 안겼다. 순간 정호는 하영이 귀찮다고 생각했다. 한때 하영을 좋아했고 지금은 사랑하고 있었으나 그녀를 밀어내고 싶은 때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지금의 하영에게서는 담배 냄새가 풍겼다. 담배를 기호식품 정도로 취급하는 것과 별개로 정호는 그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다. 역하다 못해 약간은 더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잠시만.”

그런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하영은 핸드백에서 작은 스프레이를 꺼내 몸 이곳저곳에 뿌렸다. 정호는 하영이 모르게 가방 안을 곁눈질했다. 저 작은 캡슐은 구취 제거제인가? 하지만 이 상황에서 꺼내 먹기는 민망하겠지. 아무리 임신 계획이 없다고 해도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한데. 정호는 저도 모르게 찌푸려지려고 하는 눈가에 힘을 주며 생각했다.

“혹시 화 많이 났어?”

하영이 속삭였다. 간지러운 숨이 턱에 와 닿았다. 정호는 그 안에 섞인 담배 냄새를 무시하려 애쓰며 말했다.

“아니야. 나온 김에 산책이나 좀 하고 갈까 싶은데 어때?”

“그래, 좋아.”

정호는 하영을 데리고 골목을 벗어났다. 잘 닦인 인도 가장자리를 따라 얼마간 걸었다. 건물에 가려져 있던 시야가 트이며 광화문 광장이 나타났다. 양쪽에 세워진 동상과 분수대, 잘 가꿔진 잔디밭을 보니 기분이 나아지는 듯도 했다. 비록 그 사이에는 온갖 시위꾼들과 텐트 따위가 들어차 있었으나, 그 또한 세계도시만이 제공할 수 있는 풍경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기꺼웠다. 실제로 정호는 광화문이나 종각 등지를 지날 때마다 거리를 메운 현수막과 피켓을 일부러 들여다보며 나라의 정세를 살피고는 했다. 물론 그의 전공은 산업공학이었고 정치에는 원래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얼마 전의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행사한 것이 그가 보일 수 있는 성의의 전부였다. 하지만 서울을 누비며 이런저런 사람들의 주장인지 진실인지 모를 말들을 듣고 있자면 그 간절함에 연민도 솟아오르고, 또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이었다.

“어휴, 저 사람 좀 봐. 여기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네.”

하영이 말했다. 정호가 두리번거리자 어서 보라는 듯이 앞을 가리켰다. 광장 한가운데에 설치된 천막 옆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조끼를 걸치고 이마에는 띠를 두른 것이 농성이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여기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데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저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거야. 그렇지 않아?”

담배를 피우다 들킨 것이 어지간히도 부끄러운지 하영은 계속해서 남자를 비난했다. 정호는 하영의 말을 흘려들으며 남자를 위아래로 흝었다. 그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뺨이 움푹 파여 있었고 전체적인 얼굴빛도 탁했다. 전형적인 시위꾼의 인상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남자가 필터를 빨아들일 때마다 연초 끝에서 깜박거리는 불씨가 괜히 시선을 사로잡아, 정호는 한동안 하영의 존재도 잊고 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속에서 호흡기를 단 것처럼 연기를 마시고 뱉던 남자는 순식간에 짧아진 담배를 검지와 엄지로 잡았다. 남아 있는 불씨가 그의 손끝에서 반짝였다. 정호는 그가 꽁초를 바닥에 내던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남자는 꽁초를 버리는 대신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불씨가 손바닥 안으로 사라져 들어갔는데 뜨겁다는 기색조차 없었다.

정호는 하영의 손을 잡아끌며 돌아섰다. 중심을 잃을 뻔한 하영이 짜증을 내는데도 억지로 그녀를 데리고 광장을 벗어났다.

큰 도로를 따라 호텔로 돌아갔다. 좋은 향이 나는 로비에 들어서니 담뱃불을 손으로 구겨서 끄던 남자의 모습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떠올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어쨌든 멀리서 봤을 땐 그럴듯한 곳이었다. 결혼식 당일에 비가 올 예정이라면 실내 웨딩홀을 빌리는 방법도 있었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는 피아노를 칠 것이고 하영과 서로 사랑하며 신혼여행을 떠날 것이었다.

따라서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다. 삶은 쉽고 예사로웠다. 정호는 헛배가 부른 것처럼 충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