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보는 여자 · 푸딩1화 — 장례식

CHAPTER 1

장례식

연을 보는 여자 · 약 6분 분량 · 2026.10.04

-비가 오는구나.

범이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곧 구름 한 점 없던 밤하늘이 잿빛으로 물들고 천둥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이내는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연성은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의 장례식 날에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그는 분향실 앞에 서 있었다. 복도에는 근조화환들이 늘어서 있었다. 정선 비서는 입구를 지키고 서 있다가 들어오는 손님들을 안내했다. 상조업체 직원은 조의금함 옆 작은 책상에 앉아 무신경한 얼굴로 장부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 식장을 채우는 사람들의 태반은 그저 백양의 외동딸에게 눈도장 한번 찍어 보고자 얼굴을 비춘 것이리라. 연성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상주 완장이 팔뚝을 옥죄는 것만 같았다.

그룹의 임원들은 조문객들의 발길이 뜸해질 무렵 하나 둘씩 스멀스멀 등장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참 훌륭한 분이셨지요. 이리 빨리 떠나실 줄이야...

-백양의 미래를 위해 저희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위로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연성은 고개를 숙인 채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들은 청년을 둘러싸고 하나하나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어머님을 대신해 잘 부탁드립니다.

-유산 배분에 문제가 생기거든 절 불러주십시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옆에 있던 여자가 그러지 마, 라며 그의 팔을 장난스레 툭 쳤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연성은 허리를 숙였다. 정장 입은 백발 뒤통수 여럿이 일제히 멀어져 갔다. 이어 식장 입구의 유리문이 펄렁 닫혔다. 연성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넣고 제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액자 속의 여인은 입을 다문 채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짧은 청흑색 머리카락, 동해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 다소 주름졌지만 강인하고 날카로운 인상.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듯 생생했다.


접객실에서 육개장 냄새가 풍겼다. 손님들이 그릇과 수저를 달그락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백양도 이제 망조가 들려나 보군.

안타깝지만 명운이 다한 게지.

저주야, 저주. 전대 회장도 단명했잖나.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저 집, 달리 친척도 없다지? 이참에 우리 딸내미하고 결혼이나 추진해 볼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백양그룹을 멋대로 주물러 보겠어.

이 양반아. 자네 딸 나이가 벌써 사십 아닌가? 허허, 거 순 도둑놈이구만!


-아가씨.

정선 비서가 육개장과 편육, 약간의 김치가 담긴 식판을 들고 들어왔다.

-좀 드세요.

-배 안 고파.

-하루 종일 드신 거라곤 물 한 잔뿐이었잖습니까. 그러다 쓰러지시면 어떡하려고요.

-왜? 내가 죽으면 그룹이 무너질까 봐?

-네?

정선 비서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비쳤다. 그는 말을 이어가려 노력했지만 연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손을 쳐냈다.

-됐어. 이딴 기괴한 집안 아주 지긋지긋해. 할머니도, 당신도 다 짜증나!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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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은 식장을 가로질러 내달렸다. 철로 된 뒷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왔다. 장대비에 옷과 머리가 삽시간에 쫄딱 젖었고, 찬바람이 몸에 남은 모든 온기를 뺏어가 버렸다. 연성은 멈춰서서 고개를 깊이 숙였다. 빗물이 뺨을 타고 끝없이 흘러내렸다. 밝은 하늘색의 머리카락이 얼굴에 들러붙었다. 몸에 꼭 맞는 검은 정장이 그의 가냘픈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 무게를 청년은 견디지 못하고 이내 무너져내렸다. 연성은 두 다리를 끌어안고 울었다.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러다 온몸의 힘이 전부 빠져나갔을 무렵, 머리 위로 우산 그림자가 드리웠다.

-날이 춥습니다.

정선 비서는 재킷을 벗어 아가씨의 어깨에 얹었다. 연성은 팔에 고개를 파묻었다.

-빌어먹을 노인네......


사흘의 장례식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새벽, 연성은 정선 비서와 함께 유골함을 들고 해안가로 향했다. 비서는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두 사람은 함께 방파제의 상치 콘크리트 위를 걸었다. 길 끝에 도착하자 비서는 가볍게 눈짓을 했다. 연성은 등을 돌렸다. 비서는 유골함을 열고, 하얀 잿가루가 소복이 쌓인 종이 한 겹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바닥에 올려놓았다.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가 마중 나오듯 불어와 잿가루를 조금씩, 조금씩 쓸어갔다. 동이 틀 무렵, 가루는 전부 사라지고, 끝내는 나무조각 같은 덩어리 하나가 파도 위로 굴러가더니, 한순간 잠잠해진 물을 가로질러 수평선을 향해 조용히 흘러갔다. 비서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여전히 뒤돌아 있는 아가씨를 향해 말했다.

-...끝났습니다.

-집에 가자.

연성은 말을 마치고 앞서나갔다. 비서는 빈 상자를 한 팔에 끼우고 그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연성은 짜디짠 해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검은 벤츠의 뒷좌석 문을 열었다. 비서는 운전석에 앉았다.

두 사람의 차는 텅 빈 도로를 달렸다. 연성은 차창을 내리고 창틀에 팔꿈치를 걸쳤다.

-정선 씨.

-네, 아가씨.

-그 노인네, 아니 할머니가 내 앞으로 뭐 남긴 것 없었어? 어디 커다란 시골 별장이라든가, 숨겨진 친척이라든가...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비서는 룸미러를 통해 뒷자리를 곁눈질했다.

-...그룹을 물려받는 게 두려우십니까.

연성은 고개를 숙인 채 빈 유골함 표면에 음각으로 새겨 검게 칠한 어머니의 이름자를 손끝으로 따라 썼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가씨. 회장님께선 철두철미한 분이셨습니다. 떠나시기 한참 전부터 아가씨와 그룹의 미래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 두셨죠.

-......

-무엇보다, 아가씨께 저를 남겨주시지 않았습니까. 아가씨께서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실 때까지 곁에서 지켜드릴 사람을요.

-......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긴 무엇하지만... 부디 회장님을 너무 원망하지는 마세요. 그분께서 하신 모든 일은 전부 아가씨를 위해서였습니다.

비서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연성은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노인네가 그렇게 좋으면 따라가지 그래?

-네? 아가씨, 저는......

-당신 집 도착하기 전까지 한 마디만 더 해봐. 해고해 버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연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