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캠퍼스는 CC와 풋풋함의 상징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학교의 곳곳을 걸어 다니는 대학생들의 옷차림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꽃을 보고 싶은 건지 꽃이 되고 싶은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사람을 피해 걸어 다니던 남자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앗!”
멀쩡히 잘 가고 있던 사람에게 콩, 하고 부딪힌 여자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는 개나리가 되겠다는 포부를 온몸으로 밝히고 싶었던 건지 오프숄더의 커다란 리본이 달린 샛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굵은 웨이브가 규칙적으로 늘어진 갈색의 긴 머리칼은 윤기가 반짝였고, 동그랗고 앳된 얼굴에 오밀조밀 잘 자리 잡은 이목구비는 눈에 띄는 정도이긴 했었다. 딱 보기 좋게 생기를 부여한 옅은 화장은 귀여운 외모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눈에는 여타 다른 사람들의 눈코입과 달리 보이지 않았다.
‘노리고 왔네.’
세상의 빛을 전부 흡수해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싶은지 온통 검은색 의복으로 몸을 가린 남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도 없이 겪은 상황이었다. 마음대로 부딪혀오고, 마음대로 물이나 커피를 쏟고, 마음대로 부르고 잡아 대는 몰상식하기 그지없는 상황.
여자가 부딪혀온 곳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것이, 향수를 진하게 뿌린 것 같았다. 정한송은 쓰고 있던 검은 마스크를 더욱 더 얼굴에 밀착시키며 그대로 여자를 비껴 지나갔다.
“엥?”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한송의 뒤에서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조차도 가뿐히 무시한 한송은 학과 사무실이 있는 인문관을 향해 바삐 걸었다.
한송이 지나갈 때마다 모든 인간, 하물며 학교의 명물로 유명한 고양이와 까치까지 그를 쳐다보곤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아주 익숙한 듯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중앙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성큼성큼 뻗던 긴 다리가 3층의 어떤 문 앞에서 멈췄다. ‘♥사학과 학과사무실♥’이라는 두툼한 캘리그라피가 그려진 가짜 나무 문패가 정 중앙에 걸려 있었다. 그 밑에는 A4 용지 크기의 코팅된 판이 붙어 있었는데, 조교들과 학과장의 이름 옆에 ‘외출’, ‘휴무’, ‘근무 중’, ‘출장’이라고 쓰인 각각의 칸이 있었다. 그 칸 아래에는 마그넷이 이름 당 하나씩 붙어 있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인력들의 현재 상황을 보고하는 현황판이었다.
‘우서람 조교’ 칸의 마그넷이 ‘근무 중’에 붙어 있는 걸 확인한 한송은 바지 주머니에서 페퍼민트 오일을 꺼냈다. 마스크를 내려 인중에 오일을 바른 그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다시 마스크를 얼굴 위로 꾹 눌러 쓴 한송이 정확한 박자로 세 번 노크한 후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우서람 조교님 뵈러 왔습니다.”
“아! 정한송 학생?”
문 바로 앞의 파티션에서 머리가 불쑥 튀어 나오더니 망설임도 없이 이름을 외쳤다. 보통 조교나 교수가 이름을 기억하면 좋은 상황은 아니라던데, 한송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다. 화사하게 웃은 서람이 한송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어서 와요. 교양 수업 관련해서 교수님께 전달했고, 진단서 가지고 오면 바로 취소 처리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예의 상 인사를 건넨 한송이 메신저 백에서 투명 파일을 꺼내 서람에게 건넸다. 파일을 받은 서람이 컴퓨터 옆의 파일 수납함에 그것을 꽂아 넣고, 다른 칸을 열어 프린트 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근데 내가 한송 학생의 시간표를 확인해보니까, 최소 학점에 딱 맞게 신청했더라고요. 웰니스 케어가 2학점짜리라서, 이걸 취소하면 이번 학기 이수 최소 학점이 2학점 모자라게 돼요. 원한다면 학과장님께 말씀드리고 이렇게 들어도 괜찮지만, 고학번이 될수록 학점 부담이 커져서 1학점이라도 힘들어하긴 하거든요…….”
끊임없이 중얼거리던 조교가 파티션 밖으로 나왔다. 그는 앞에 놓인 탁상 위에 종이를 올리고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몇 개 쳤다. 종이를 받아 든 한송이 글자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원한다면 이 교양 수업들 중 하나를 선택해도 돼요. 교수님들께 미리 연락 드려서 허락은 받아 놨어요. 다 2학점.”
“아…….”
의외의 선의에 잠시 말을 잃은 그가 서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교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방긋 웃었다. 한송은 다시 종이를 쳐다보며 과목의 이름과 개요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