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탐방동아리 · 놀램이1화 — #1

CHAPTER 1

#1

유적탐방동아리 · 약 9분 분량 · 2026.10.04

3월의 캠퍼스는 CC와 풋풋함의 상징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학교의 곳곳을 걸어 다니는 대학생들의 옷차림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꽃을 보고 싶은 건지 꽃이 되고 싶은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사람을 피해 걸어 다니던 남자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앗!”

멀쩡히 잘 가고 있던 사람에게 콩, 하고 부딪힌 여자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는 개나리가 되겠다는 포부를 온몸으로 밝히고 싶었던 건지 오프숄더의 커다란 리본이 달린 샛노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굵은 웨이브가 규칙적으로 늘어진 갈색의 긴 머리칼은 윤기가 반짝였고, 동그랗고 앳된 얼굴에 오밀조밀 잘 자리 잡은 이목구비는 눈에 띄는 정도이긴 했었다. 딱 보기 좋게 생기를 부여한 옅은 화장은 귀여운 외모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눈에는 여타 다른 사람들의 눈코입과 달리 보이지 않았다.

‘노리고 왔네.’

세상의 빛을 전부 흡수해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싶은지 온통 검은색 의복으로 몸을 가린 남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도 없이 겪은 상황이었다. 마음대로 부딪혀오고, 마음대로 물이나 커피를 쏟고, 마음대로 부르고 잡아 대는 몰상식하기 그지없는 상황.

여자가 부딪혀온 곳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것이, 향수를 진하게 뿌린 것 같았다. 정한송은 쓰고 있던 검은 마스크를 더욱 더 얼굴에 밀착시키며 그대로 여자를 비껴 지나갔다.

“엥?”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한송의 뒤에서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조차도 가뿐히 무시한 한송은 학과 사무실이 있는 인문관을 향해 바삐 걸었다.

한송이 지나갈 때마다 모든 인간, 하물며 학교의 명물로 유명한 고양이와 까치까지 그를 쳐다보곤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아주 익숙한 듯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중앙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성큼성큼 뻗던 긴 다리가 3층의 어떤 문 앞에서 멈췄다. ‘♥사학과 학과사무실♥’이라는 두툼한 캘리그라피가 그려진 가짜 나무 문패가 정 중앙에 걸려 있었다. 그 밑에는 A4 용지 크기의 코팅된 판이 붙어 있었는데, 조교들과 학과장의 이름 옆에 ‘외출’, ‘휴무’, ‘근무 중’, ‘출장’이라고 쓰인 각각의 칸이 있었다. 그 칸 아래에는 마그넷이 이름 당 하나씩 붙어 있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인력들의 현재 상황을 보고하는 현황판이었다.

‘우서람 조교’ 칸의 마그넷이 ‘근무 중’에 붙어 있는 걸 확인한 한송은 바지 주머니에서 페퍼민트 오일을 꺼냈다. 마스크를 내려 인중에 오일을 바른 그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다시 마스크를 얼굴 위로 꾹 눌러 쓴 한송이 정확한 박자로 세 번 노크한 후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우서람 조교님 뵈러 왔습니다.”

“아! 정한송 학생?”

문 바로 앞의 파티션에서 머리가 불쑥 튀어 나오더니 망설임도 없이 이름을 외쳤다. 보통 조교나 교수가 이름을 기억하면 좋은 상황은 아니라던데, 한송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다. 화사하게 웃은 서람이 한송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어서 와요. 교양 수업 관련해서 교수님께 전달했고, 진단서 가지고 오면 바로 취소 처리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예의 상 인사를 건넨 한송이 메신저 백에서 투명 파일을 꺼내 서람에게 건넸다. 파일을 받은 서람이 컴퓨터 옆의 파일 수납함에 그것을 꽂아 넣고, 다른 칸을 열어 프린트 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근데 내가 한송 학생의 시간표를 확인해보니까, 최소 학점에 딱 맞게 신청했더라고요. 웰니스 케어가 2학점짜리라서, 이걸 취소하면 이번 학기 이수 최소 학점이 2학점 모자라게 돼요. 원한다면 학과장님께 말씀드리고 이렇게 들어도 괜찮지만, 고학번이 될수록 학점 부담이 커져서 1학점이라도 힘들어하긴 하거든요…….”

끊임없이 중얼거리던 조교가 파티션 밖으로 나왔다. 그는 앞에 놓인 탁상 위에 종이를 올리고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몇 개 쳤다. 종이를 받아 든 한송이 글자를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원한다면 이 교양 수업들 중 하나를 선택해도 돼요. 교수님들께 미리 연락 드려서 허락은 받아 놨어요. 다 2학점.”

“아…….”

의외의 선의에 잠시 말을 잃은 그가 서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교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방긋 웃었다. 한송은 다시 종이를 쳐다보며 과목의 이름과 개요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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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스무 살이 된 한송은 유의미한 인간관계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건 그의 지병이 불러온 결과였지만, 그가 나고 자란 환경 요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조용히 참여했던 신입생 OT에서조차 사람들은 한송을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대학 생활과 학과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는 얻지도 못한 채 중도 탈출을 하고야 말았다. 그게 또 얼마나 이목을 끌었던지 한송의 존재는 한국대학교 에타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되어 있었다.

매일 강의실로 향하는 길이 고되었다. 하루에 한두 명은 꼭 그에게 일부러 부딪히거나 음료를 쏟았고, 번호나 sns를 물어보는 사람들은 숫자로 세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많았다. 물론 강의가 시작된다고 해서 편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강의실 안에서도 한송의 주변은 항상 사람으로 붐볐다.

한송은 병을 앓고 있었다. 어릴 땐 이 정도로 심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갈 무렵 병환이 심해져 일상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온갖 약을 다 쓰고, 온갖 상담을 해 보아도 낫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항상 창가 자리에 앉았다. 진단서와 부모님의 압박 덕분에 학교는 특별대우를 제공해주었다. 사시사철 창문은 열려 있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더위와 추위에 견디지 못한 학생들이 단체로 항의하는 바람에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을 홈스쿨링으로 전환해야 했다. 다행인 건, 한송은 천재라고 불리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대학교 강의의 개요는 조금 애매한 설명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한송은 세 번째로 강의 목록을 읽어 내려가며 고민에 빠졌다. 웰니스 케어도 개요만 봤을 땐 땀내 나는 활동성 교양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제일 넓은 강의실을 쓰는 교양 과목이 어떤 건가요?”

“아, 잠시만요. 음……여기, 인문관 204호가 제일 넓어요. ‘중국어 회화’랑 ‘문학과 역사의 이해’가 이 강의실에서 진행되네요.”

한송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두 과목의 정원을 확인했다. ‘중국어 회화(74/80)’, ‘문학과 역사의 이해(50/50)’라고 쓰인 글자를 확인한 그는 다시 조교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학과 역사의 이해’를 듣고 싶습니다.”

“아.”

서람이 약간 난처한 듯 웃었다.

“사학과 학생만 들을 수 있는 교양이라서 교수님이 받아주신다곤 했지만, 이게……3학년, 4학년만 듣는 교양이고, 학고 맞은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교양이라서 시험도 되게 어려워요. 게다가 오늘 있는 수업이라 이미 3주차가 지나버려서……버거울 수도 있을 텐데 괜찮아요?”

“네. 이거 들을 게요.”

살면서 학습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 없었던 한송에게 그런 장애물은 장애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단호한 그의 말에 서람이 결국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파티션 안으로 돌아가 포스트잇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알겠어요. 교수님께 말해둘게요. 아, 마침 그 교양을 듣고 있는 2학년 친구가 있거든요? 곧 오기로 했으니까 수업 관련해서 도와주라고 말 해둘게요. 잠깐 기다릴래요?”

“아뇨. 괜찮습니다. 가보겠습니다.”

확고한 거절에 어어, 하고 난처한 신음을 흘리던 서람이 붙잡기도 전에 다급히 학과 사무실을 빠져나온 한송은 문을 닫고 몸을 돌리자마자 누군가와 세차게 부딪힐 뻔 했다.

“앗.”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피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상대방은 아주 가뿐한 몸놀림으로 한송을 피했다. 당황한 한송이 발을 헛디디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분명히 넘어져야 마땅한데, 몸이 기우뚱 기운 채로 고정되어 있었다. 한송의 팔을 붙든 손이 그의 거대한 몸을 완벽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조심해.”

느리고 부드러운 미성이 들려왔다. 산뜻한 바람이 불었다.

솔바람 냄새가 났다.

“……?”

한송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태어난 이래로 이 정도로 기분 좋은 향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멍하니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하얗고 마른 몸과 앳된 얼굴이 보였다.

엄청난 미인이었다.

한송과 눈이 마주치자, 쌍꺼풀이 없는 큰 눈이 곱게 접히며 온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이었다.

‘뭐지? 이 사람…….’

뚫어져라 쳐다보는 한송의 눈빛에 당황한 그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신입생이야?”

“네? 어?”

귀에 콕 박히는 목소리에 한송은 약간 정신이 들었다. 팔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화들짝 놀란 그가 세차게 팔을 휘둘러 그의 손을 뿌리쳤다. 마르고 고운 손이 허공에 떨어졌다.

타인에게 닿았다는 생리적 거부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피부를 타고 오르는 소름끼치는 느낌.

처음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를 겪은 당황스러운 감정이 뒤섞이며 혼란에 빠진 한송은 뒷걸음질을 치다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또 도망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