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들이닥쳤을 때, 가장 현명한 대처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살아남기 위해 필수품을 챙겨 재난으로부터 도망갈 수도 있고, 운명을 받아들이며 재난으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다. 무엇하나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가장 멍청한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
세상은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다. 우주로 나가는 일은 해외 여행을 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 되었고, AI가 비서를 대신하는 일도 일상이 되었다. 인류가 거대한 재난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태양의 수명.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낸 이들은 지구 밖에 거대한 방공호를 구축했다. 폭발로 부터 이 땅을 지키고자 했고, 태양이 없어도 빛을 받으며 살 수 있도록 인공 태양을 만들었다. 폭발하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들이 아주 완벽한 대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재난은 언제나 변수를 불러 일으켰고 인류가 구축한 방공호는 태양의 폭발에 대부분이 부서졌으며 지구는 문명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 우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방사선에 동식물의 돌연변이가 생기기 시작했고 인간들은 수많은 병에 의해 죽어나갔다.
그래도 인간의 매력이란, 끈질긴 생명력 아니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납으로 만든 거대한 돔이 생겨났고 그 안에 인공 태양을 띄워 인간과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가 만들어졌다. 물론, 그 범위는 한정적이라 최상위층에서도 극소수만이 그 곳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인류는 먹을 것과 쉴 곳을 찾아 황폐한 대지를 방랑하며 살아가거나 이제는 동물이라 말하기도 뭐한 것들의 먹이가 되었다.
여기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누워있는 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의 인물이다. 끝 없는 방랑 생활을 하다가 지친 인간. 이제는 그만 안식이 찾아오길 바라며 미동 없이 숨만 쉬고 있는 이. 그러나 안식도 선택받은 이들의 축복이라 벌써 두달 내리 누워있는데도 굶어 죽거나 잡아 먹히지를 않았으니. 선택받지 못한 이는 결국 몸을 일으킨다.
"오늘도 글렀나..."
두달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누워만 있었다면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움직일 힘도 없어야 마땅하건만. 이 몸은 어떻게 된 것인지 잘만 움직이고 잘만 말한다. 이 자리는 죽을 자리가 아닌가보다. 다른 곳을 좀 찾아 볼까.
"하아-..."
잔해들의 먼지를 털어내고 새까만 하늘을 바라본다. 사람이 죽어 하늘의 별이 된다던데 그래서 하늘의 별은 저리도 빼곡한 걸까. 근데 왜 나는 저 별이 되지 못해서...
탕-!!
상념을 깨는 총성이 울린다. 인류의 발명품은 이런 세상에서는 매우 귀한 축에 속했다. 게다가 무기류는 말 할 것도 없고. 그런 귀한 것의 소리가 이리 가까이서 울리다니. 오랜만에 흥미가 동함과 동시에 몸이 쓰러진다. 가슴께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져 손을 가져다 대면 검붉은 것이 손에 묻어난다.
"오, 피."
그러니까, 그토록 바라 마지 않던 순간이 이렇게 찾아온다니. 감격에 겨워 운명을 받아들이 듯 눈을 감는다. 곧이어 말소리가 들리고 몸이 누군가에게 들려 어디론가 옮겨지는 것을 느끼며 아득히 멀어지는 정신을 굳이 붙잡지 않는다.
'잘 있어라. 세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