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 여띠1화 — 서신 1화

CHAPTER 1

서신 1화

서신 · 약 5분 분량 · 2026.10.03

1990년 5월 3일 독일 베를린에 한 마을에서 큰 화재가 났다는 소식입니다. 부디 다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라디오 마치겠습니다.

콜록, 컥…

숨을 들이마실때 마다 매케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기침을 불러왔다. 창문으로 흘러 나간 새카만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넘어진 책장, 그 아래 깔린 다리… 의식도 점점 흐려진다……



허억..!!

맑은 공기가 기도를 흘러 들어온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자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꿈이구나…”

또 그때의 악몽이다. 20살때 큰 화재로 부모님과 평생을 달고다닐 암을 얻은 그때.

끔찍했던 장면이 다시 머릿속에 아른거려 당장 이 사방이 새하얀 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저 창문으로………


창틀에 손을 올리자 옆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페레스씨, 죄송합니다. 오늘 길에 차가 막혀서… 어라, 왜 그러고 계신가요?”

“… 아닙니다.”

“또 악몽을 꾸신 거군요.”

“… 괜찮습니다.”

“그렇게 참기만 하면 좋지 않다고 여러번 말씀 들렸는데… 그럼 진료 보겠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은 날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검진을 와주는 믹스 호스는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매번 친절히 대화를 나누며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참 좋은 사람이고, 의사지.


“자, 오늘도 진료 끝났습니다.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네요.”

“믹스씨가 잘 진료해준 덕분이에요.”

“뭘요, 그럼 다음주에 봬요.”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믹스가 나가니 하얀 방에는 틸 페레스 홀로 남았다. 적막만 감도는 이 방에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려온다.


“…”

틸 페레스는 부모님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였고, 또 그런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왁자지껄한 소리, 웃는 얼굴로 마주보며 대화… 이젠 못 하는 것.

째깍째깍째깍………


털썩, 이불보가 구겨지도록 힘주어 뒤로 누웠다.하얀 먼지가 공중에 둥실 떠다닌다. 열린 창 밖에는 광장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아아아아아…… 나가고 싶어.

틸 페레스의 취미는 창 밖으로 사람들 구경하는 것 이다. 처음엔 사람 하나하나 구경하며 그 사람을 추측하는 것이 재밌었다. 하지만 5층짜리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저 사람들은 너무 작았다. 닿지 못할 만큼.


어느날 믹스에게 외롭다고 하자 이런 조언을 둘러주었다.

“그럼 편지를 써보는건 어떨까요? 일기보다 재밌을 거예요.”

그러면서 편지지와 만년필, 실링 왁스를 선물로 주었다. 잘 이겨내고 있다는 선물이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심심할때마다 정해지지 않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그것을 서랍에 넣기를 반복했다. 그러고 한 달이 지나면 전에 썼던 편지를 꺼내 읽었다. 하루하루 쌓이는 편지 봉투를 보니 뿌듯했다. 재밌기도 하고.

1화를 다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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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같이 편지를 쓰고 실링 왁스로 편지 봉투를 밀봉하고 뒷면에 from T를 썼다.

휘이잉-

갑작스럽게 분 찬바람에 손에 힘을 풀었더니 창 밖으로 편지가 바람따라 흘러갔다.

“어엇..?”

허망하게 비어있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책상 정리를 했다.


똑똑똑-

“누구세요?”

“편집니다.”

“네?”


그럴리가, 편지가 올리가 없는데…

“자, 잠시만요! 나가요!”


다급하게 나가 편지를 건내받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요리조리 살펴봤다. 평범한 편지 봉투다. 묘하게 꼬질해보이는 것 같기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위로하고 편지를 열었다.

“푸흡..!”


편지를 열자 보인 것은 삐뚤빼뚤한 아이 글씨였다. 잘 쓰려고 노력한 듯 꾹꾹 눌러 적어 종이 뒤에 글씨가 우둘투둘 튀어나오도록 힘주어 적은 것이 눈에 보였다.

“하하하…”

눈물까지 글썽이며 한참을 웃다가 편지를 훑었다.

자유분방한 글씨체와 다르게 내용은 그리 아이같지 않았다.

이름 모르는 아이는 16살로 그리 어리지 않은 나이지만 어릴적 부모님이 군대로 버리듯이 두고가 글씨를 배울 기회가 없다며 사과의 말을 적었다. 또한 나의 폐암이 꼭 나을거라며 기도하는 내용도 아래에 적혀있었다.

“…”

편지 봉투 뒷면을 확인하자 그 아이의 군부대 주소와 삐죽삐죽 적혀있는 from D가 보였다. 아마 내가 쓴 것을 따라 쓴 거겠지.

한참 편지를 바라보다 서랍을 열어 편지지와 만년필을 꺼냈다.


안녕, 네 편지는 잘 봤어. 고마워. 그리고 군인이라니, 멋진걸?……

웃음을 흘리며 편지를 적어내렸다. 그 아이에게.



똑똑똑-

“편지요.”

“네! 나가요!”


이제 매일 그 아이와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일상이 됐다.


“후후후…”

오늘 훈련에서 제일 잘 했다며 자랑하는 모습에 어른처럼 자신을 위로해주고 있지만 영락없이 16살 남자 아이라는 것이 느껴져 웃음이 나왔다. from D .이름도 모르는 그 아이가 재미있고, 만나고 싶어졌다.



“축하해요 페레스씨.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나아졌어요.”

“정말요?”

“네, 그토록 밖에 나가시고 싶어하셨는데, 뭘 제일 먼저 하고싶으세요?”

“… 제 친구를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