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5월 3일 독일 베를린에 한 마을에서 큰 화재가 났다는 소식입니다. 부디 다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라디오 마치겠습니다.
콜록, 컥…
숨을 들이마실때 마다 매케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기침을 불러왔다. 창문으로 흘러 나간 새카만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넘어진 책장, 그 아래 깔린 다리… 의식도 점점 흐려진다……
허억..!!
맑은 공기가 기도를 흘러 들어온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자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꿈이구나…”
또 그때의 악몽이다. 20살때 큰 화재로 부모님과 평생을 달고다닐 암을 얻은 그때.
끔찍했던 장면이 다시 머릿속에 아른거려 당장 이 사방이 새하얀 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저 창문으로………
창틀에 손을 올리자 옆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페레스씨, 죄송합니다. 오늘 길에 차가 막혀서… 어라, 왜 그러고 계신가요?”
“… 아닙니다.”
“또 악몽을 꾸신 거군요.”
“… 괜찮습니다.”
“그렇게 참기만 하면 좋지 않다고 여러번 말씀 들렸는데… 그럼 진료 보겠습니다.”
폐암 진단을 받은 날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검진을 와주는 믹스 호스는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매번 친절히 대화를 나누며 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참 좋은 사람이고, 의사지.
“자, 오늘도 진료 끝났습니다.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네요.”
“믹스씨가 잘 진료해준 덕분이에요.”
“뭘요, 그럼 다음주에 봬요.”
철컥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믹스가 나가니 하얀 방에는 틸 페레스 홀로 남았다. 적막만 감도는 이 방에 시계 초침 소리만 들려온다.
“…”
틸 페레스는 부모님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였고, 또 그런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왁자지껄한 소리, 웃는 얼굴로 마주보며 대화… 이젠 못 하는 것.
째깍째깍째깍………
털썩, 이불보가 구겨지도록 힘주어 뒤로 누웠다.하얀 먼지가 공중에 둥실 떠다닌다. 열린 창 밖에는 광장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아아아아아…… 나가고 싶어.
틸 페레스의 취미는 창 밖으로 사람들 구경하는 것 이다. 처음엔 사람 하나하나 구경하며 그 사람을 추측하는 것이 재밌었다. 하지만 5층짜리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저 사람들은 너무 작았다. 닿지 못할 만큼.
어느날 믹스에게 외롭다고 하자 이런 조언을 둘러주었다.
“그럼 편지를 써보는건 어떨까요? 일기보다 재밌을 거예요.”
그러면서 편지지와 만년필, 실링 왁스를 선물로 주었다. 잘 이겨내고 있다는 선물이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심심할때마다 정해지지 않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그것을 서랍에 넣기를 반복했다. 그러고 한 달이 지나면 전에 썼던 편지를 꺼내 읽었다. 하루하루 쌓이는 편지 봉투를 보니 뿌듯했다. 재밌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