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A · 3THING1화 — 이방인 A

CHAPTER 1

이방인 A

이방인 A · 약 11분 분량 · 2026.10.01

등장인물

A (나이와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 (불특정 다수. 역시 나이와 성별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국적 또한 다양하다.)

-이어폰 낀 사람

-모자 쓴 사람

-두 명의 연인

-외국인

-꽃집 사장


무대

무대 중앙에 동그란 맨홀이 하나 있다. 블랙박스 무대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업스테이지 양쪽에 등퇴장로가 있다. 다운스테이지와 객석의 구분이 모호해 관객과 배우가 완전히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다운스테이지 양쪽에는 스피커가 배치돼 있다. 크기나 모양은 중요하지 않다. 관객의 눈에 스피커가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외에 다른 것은 없다.


1장


무대 전체를 비추는 조명이 은은하게 켜진다.

무대 중앙, 동그란 맨홀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그는 등에 여행용 백팩을 메고 있다.


A 저기요, 도와주세요. 제가 길을 잃은 것 같아요.


상수에서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A, 이어폰 낀 사람을 발견하고 그에게 팔을 뻗으며 앞으로 가려 한다.


A,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려 하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당황한 눈빛으로 다리를 붙잡는다.

딱딱한 돌처럼 굳은 다리를 매만지다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지 못한다.


A 어, 저기.


이어폰 낀 사람은 이를 못 들은 것처럼 네모 모양으로 무대를 한 바퀴 돌고 하수로 퇴장한다.

A,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A는 망연자실한 얼굴이지만 다시 사람을 기다린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아무 버튼이나 눌러본다.


A 얘는 또 왜 안 돼.


A가 핸드폰을 탁탁 때린다.

때마침 모자를 쓴 사람이 나타난다.

1화를 다 읽었어요.

이전 화
0%다음 화
1/1

모자를 아래로 푹 눌러써 그 자신도 시야 확보가 어려운 듯 비틀거린다.


A 저기요, 저기요?

모자 ......

A 듣고 계신 것 다 알아요.

모자, 옆으로 휘청거리다가 다시 중심을 잡는다.


A 어어, 조심하세요! 모자 그거 그렇게…….


모자를 쓴 사람은 앞으로 성큼성큼 걷는다.

위태롭거나 휘청거리는 기색 없이 올곧게 일직선으로 걷는다.

A와 정면으로 부딪힌다. 그러나 모자를 쓴 사람만 넘어진다.

A, 넘어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만 모자는 이를 보지 않는다.


모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짜증난 얼굴이 보인다. 입이 움직이지만 무슨 말인지 소리가 들리지 않고, 모양으로도 유추하기 어렵다.


A 제 말은 안 들리세요?


A, 망연자실한 얼굴이다.

여행용 백팩을 앞으로 메고 가방에 든 것을 뒤적거린다.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낸 A는 관객 쪽으로 불을 비춘다.

깊은 동굴에 고립된 것처럼 여러 방향으로 손전등을 비춘다.

점점 표정이 일그러진다. 화가 난 것 같기도, 오열하는 것 같기도 하다.

A는 손전등을 백팩에 넣고 아래로 내던진다.


2장


상수와 하수 양쪽에서 두 사람이 등장한다.


연인1, 한숨을 푹 내쉬며 A를 가로등처럼 여기며 앞에 선다.

연인2, 연인1의 앞에 가만히 서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쳐다본다.


A 저기요, 앞이 안 보여요. 좀 비켜주세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는 상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연인1,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는다.

연인2, 지긋지긋하단 표정이다.

연인2는 들어왔던 방향으로 다시 들어가고, 연인1은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사이.


A 그, 힘내세요. 어차피 안 들릴 것 아는데…….

연인1 (고개를 푹 숙여 바닥을 보고) 지금 누구 놀려?

A 어?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연인1 왜 비까지 오고 난리야, 씨.


A, 연인1의 팔을 붙잡고 작게 흔든다. 그러나 연인1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걸 보고 힘 없이 놓는다.


사이.


A 비 안 오는데.


연인1, 한숨을 뱉고 연인2가 들어간 방향으로 퇴장한다.

A는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내밀고 눈을 감으며 비를 느껴본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아무것도 없다.

애써 뭐라도 느껴보기 위해 아랫입술을 말아 물고 눈을 질끈 감는다.


A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이런다고 비를 맞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3장


관객석에 앉아 있던 사람이 무대에 등장한다.

A의 것과 비슷한 백팩을 메고,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본다.

A와는 사뭇 다르게 생겼으며, A와 국적이 다른 사람이다.


A 그쪽도 길 잃으셨어요?


외국인, A를 쳐다본다. 그를 흥미롭게 쳐다보면서 고개를 기울인다.


A 어! 나 보이는 거죠? 보이는구나.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외국인, 미간을 찌푸린다. A에게 말하는 것처럼 입을 열고 벙긋거리지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A 네? 뭐라고요?


A는 귀를 기울이지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무엇을 말하는지 추측한다.

하지만 모국어도 입모양은 알아보기 힘든데, 타국어인 탓에 더욱 알기 어렵다.

외국인, 제스처까지 쓰며 입술을 움직인다.


A (외국인의 입모양과 제스처에 집중하지만 하나도 이해하지 못 한 듯) 뭐라고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는데. 저기, 익스큐즈 미. 트랜슬레이터 플리즈. 아이 캔트 언더스탠드……. 플리즈. 아이 원트 투 톡 위드 유.


외국인, 어설픈 A의 영어 실력 때문인지 여전히 못 알아들은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은 최선을 다해 그와 소통하려 노력한다.

A, 외국인의 제스처를 따라해 보지만 어떤 뜻인지 하나도 알아낼 수 없다. 발을 동동 구른다.


A 제발, 아, 트렌슬레이터. 번역기. 말 좀 하자고, 나도, 말 좀, 제발!


A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친다.


외국인, 고개를 내젓는다.


A 어? 안, 안 돼. 안 돼요. 당신이 가면 난 여기에 혼자 남는단 말이에요. 그냥 여기에, 곁에라도 잠시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큰 소리를 낸 건 당신에게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라, 저, 저한테 화가 난 거예요. 너무 답답해서. 오죽하면 제가 이러겠어요? 제발요. 포기하지 마세요…….


사이.


외국인, 불쌍한 눈빛으로 A를 바라보고는 퇴장한다.


A 지금 누구 놀려? 차라리 날 보지나 말든지!


A, 말한 직후 곧바로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둘러본다.

A의 곁에는 아무도 없이 그저 텅 빈 검은 공간이다.


A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러 방향으로 상체를 굽히며 사과를 한 A가 아래로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서 있는다.

꼭 죄를 지은 사람처럼 기가 죽은 모습이다.


4장


하수에서 화분을 든 사람이 등장한다.

A는 눈으로 그를 흘끔 쳐다볼 뿐, 말을 걸지 않는다.


사장 (무대 곳곳을 살피다가 맨홀 뚜껑 앞, A의 발치에 화분을 두며) 휴.

A (답이 돌아오지 않을 걸 안다는 듯 기대하지 않는 투로) 왜 여기다가 두세요?

사장 여기가 햇볕이 잘 들어요.

A 전혀 그렇지 않던데. ...... 아니, 잠깐. 제 말에 대답하신 거죠?

사장 네. 물어보셨잖아요.

A 하하! 아, 다행이다. 하하…….


사장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다정한 눈빛으로 A를 바라본다.


사장 힘든 일이 있었나 봐요. 이제 괜찮을 거예요.

A 감사합니다. 제가 정말, 너무.

사장 안아 드릴까요?

A 네, 얼마든지요. 제가 정말, 사람이 너무 그리웠거든요. 나는 내가…….

사장 (A를 꽉 껴안으며) 그래요, 저는 다 알아요. 얼마나 힘들었을까?

A (사장의 말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흐느끼며) 흐윽, 흑, 흐으윽. 제가, 얼마나.

사장 그런데요, 자리 좀 양보해 주실 수 있으세요?

A (잘못 들은 건지 의심하는 눈빛으로) ...... 네?

사장 이 자리가 정말 좋은 자리거든요.

A (얼빠진 표정을 짓고) 어, 제가 서 있는 곳이요?

사장 네.


사이.


사장 (A를 더 세게 껴안으며) 자리, 양보해 줄 거죠?


A,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사장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을 뗀다.

A의 팔이 떨어져도 사장은 그를 더욱 강하게 안는다.

A는 두 팔로 사장의 어깨를 붙잡고 끌어내리듯 발버둥친다.


사장 이 정도도 못 해줘?

A 아니, 아, 숨이.


사장, 한순간 A에게서 떨어진다. 더 이상 말이 없다.


A 제가 죄송해요. 진심이에요. 저도 양보하고 싶은데, 다리가 안 움직여요.

사장 (A를 가만히 바라보며) 다리가 안 움직인다고?

A 네. 정말이에요. 길을 잃어서 잠시 멈춰 있었는데, 다리가 굳어서 여기 밖으로 나갈 수가…….


사장, A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화분을 발로 퍽 차고 가 버린다.

흙이 바닥에 퍼지고 식물의 뿌리가 드러난다.

A는 사장이 퇴장해 사라질 때까지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5장


조명이 전보다 더 밝아진다.

여전히 공간은 검은색이고, 화분에서 쏟아진 흙만이 바닥을 어지럽히고 있다.


A (뿌리가 드러난 식물을 내려다보며) 말라 죽겠네.


사이.


A 지친다.


퇴장했던 모든 인물이 무대로 등장한다.

A를 제외한 모두가 관객석을 향해 상체를 숙여 인사한다.

A는 그들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A를 제외한 모두는 인사를 끝내고 퇴장한다.

A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조명이 희미해진다.


A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다 끝났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말 한마디 나눌 수가 없어. 들리는 것도 없고, 들어도 대화가 안 통하니까. ...... 난 그냥 똑같은 사람인데.


A는 백팩에서 모자를 꺼내 푹 눌러쓴다.

핸드폰에 이어폰을 연결해 귀에 꽂는다.

우산도 백팩에서 꺼내 쓴다.

그러나 비 내리는 소리도, 음악 소리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으며 어둡기만 하다.


A 비도, 음악도, 햇빛도 다 허상이야. 나에게는 닿지 않는 것들. 차라리 비를 맞았으면, 음악 소리가 들렸으면, 따사로운 햇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아니, 처음부터 내가 여기에 있지 않았다면…….


사이.


A (고개를 푹 숙이며) 이만 가자.


A가 천천히 다리를 움직이자 이제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음을 직감한다.

A는 흙을 밟으며 몇 발자국 앞으로 갔다가 뒤돈다.

동그란 맨홀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자신이 착용한 모든 물건을 내려놓는다.

아무렇게나 둔 탓에 이어폰, 우산, 모자, 백팩 등이 널브러져 있다.


A (관객석을 향해 인사하며)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도 언젠가는 느낄 겁니다. 아니, 내가 될 겁니다. 당신들도 나 같은 이방인이 되어서, 이름도 없이 A란 단어로 불리면서, 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사이.


A 고립될 겁니다.


A,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입을 꾹 다물고 두 손으로 맨홀을 연다.

맨홀 뚜껑을 열자 검은 원이 보이지만, 이것은 구멍이 아니며 들어갈 수 없다.

A의 울음 섞인 웃음 소리가 들린다.


막.